SNS 플랫폼 장치 토론
현대 정보자본주의는 수많은 장치를 가동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세상의 거대 서비스 플랫폼은 이용자들의 활동을 자동으로 거둬 모으며 이용자를 감시하고 추적하는 장치다. 이 장치가 증식되고 대규모로 축적되는 동시에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가치 증식과 축적을 위한 자동기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푸코, 들뢰즈Gilles Deleuze, 아감벤Giorgio Agamben이 만나 장치 개념을 SNS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을 통해 규율적인 장치의 기능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여했다면, 들뢰즈는 장치에 대한 철학적 분석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아감벤은 ‘세속적 장치론’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장치 개념을 적용하는 실마리를 탐색한다.
‘장치’ 개념과 SNS 플랫폼
아감벤 나는 지금 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최종 단계를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으로 정의합니다. …… 일찍이 푸코 선생이 《감시와 처벌》에서 보여 준 감옥이라는 감시 장치의 개념은 이제 아주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치의 개념과 적용 대상을 감옥이라는 틀에서 확장해 인터넷 세상에도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치란 무엇인가Che cos'è un dispositivo?》에서 장치 개념을 더 일반화해 제시한 나는 “생명체의 몸짓, 행동, 의견, 담론을 포획하거나 지도, 규정, 차단, 주도, 제어, 보장하는 능력을 지닌 모든 것을 장치”라고 부르기를 제안합니다.
푸코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는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같은 거대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은 부를 생산하는 방식과 관계,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만들거나 운동하는 방식, 사람과 사물의 관계, 권력관계를 바꿨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용자 데이터로 장난질을 합니다. 이용자는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들의 플랫폼 놀이에 놀아납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플랫폼이라서, 권력이 생기고 이윤이 쌓이는 과정을 밖에서는 보지 못합니다. 텔레비전과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않지요. 상영되는 동안 그들의 주목과 집중만 요구합니다. 신문과 잡지는 이보다 더욱 무력해서 독자가 불러 주기 전까지 꽃은커녕 아무것도 될 수 없고요. 그것들은 아주 수동적인 매체입니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이 대표하는 SNS는 우리를 침식하는 능동적 매체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살아 있는 알고리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용자의 활동을 면형하고 축적합니다. 포디즘의 매스미디어가 갖는 일방성을 극복했다고 칭송되는 인터넷 시대에 아주 역설적으로 이용자는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포디즘이 인간의 노동을 표준화했다면 인터넷은 인간의 감각과 의식, 생각까지 표준화합니다. 포디즘의 대량생산 공장처럼 인터넷 플랫폼은 디지털 시대의 표준화 도구입니다. 인터넷은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새로운 텔레비전이자 엄연한 대중매체로 성장했습니다. 인터넷은 이용자(시청자)의 시간을 흡수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과 같지만, 이제 플랫폼은 이용자의 땀과 피까지 빨아들입니다. 대단한 흡입 기계지요.
아감벤 인터넷 시대에 이용자가 주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진단은 이제 현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은 플랫폼 서비스의 확장으로 완전히 능동적 매체가 된 반면, 이용자의 수동성과 인터넷 체제의 불가지성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이용자는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이용되고 축적되는지 모른 채 자신의 활동 결과물을 속절없이 서비스 플랫폼에 넘겨줌으로써 전례 없이 무력화되고 있지요. 나는 당신의 개념을 일상 영역으로 확장하기를 제안합니다. 그래서 ‘장치의 세속화’를 주장하는 겁니다. “장치들을 세속화하는 문제, 즉 장치들 안에 포획되고 분리됐던 것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돌리는 문제는 그만큼 긴급한 사안입니다. 이 문제를 짊어진 자들이 주체화 과정이나 장치들에 개입할 수 있게 되고 통치될 수 없는 것에 빛을 비추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는 올바르게 제기될 것입니다.” 세속화는 민주화이기도 하고 대중화이기도 합니다. 일부 엘리트들이 이용하던 장치에 대중이 다 접근할 수 있게 된 사태에 주목하자는 겁니다. 나는 장치론이 단지 분석 수단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에서 실천 형태를 마련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장치의 세속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장치의 세속화는 특정 지배 세력에게 귀속된 장치를 일반 대중이 접근해 그들의 전유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실천적 장치 정치학을 통해 SNS 플랫폼을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대중이 전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장치로 파악하자는 겁니다.
들뢰즈 그런 접근은 자칫 자치에 대한 실체적 전제 때문에 잘못된 길로 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장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장악하거나 이용할 실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착취와 피착취, 감시와 피감시, 지배와 피지배가 이루어지는 배열이자 관계입니다.
아감벤 나는 장치에 대한 저항과 개입 같은 실천적 차원의 중요성에 주목합니다. 내가 말하는 장치에는 푸코 선생이 제시한 감옥, 정신병원, 학교, 공장, 규율, 법적 조치처럼 권력과 접속된 것들뿐만 아니라 펜, 글쓰기, 문학, 철학, 농업, 담배, 인터넷 서핑, 컴퓨터, 휴대전화도 포함됩니다.
들뢰즈 인터넷 세상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이라는 또 다른 ‘포획장치’에서 벗어날 기획을 도모하고 장치 내부의 배열을 바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기계장치를 권력과 자본의 지배가 실행되는 기계가 아니라 공짜 서비스 설비 정도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중은 장치를 실체로 봅니다. 그래서는 장치 안의 지배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푸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분명히 현재의 사회 상황을 주도하는 장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감벤 선생의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담배까지 장치라고 하시니 조금 황당하기도 하네요. 뭐, 철학은 좀 황당해야 제맛이니까 상관없습니다만 나도 장치 실체론에는 반대합니다. 그러면 장치로서 SNS 플랫폼 문제를 좀 더 따져 봅시다.
SNS 플랫폼 장치
푸코 SNS 플랫폼 장치는 일단 이용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이용자 활동 장치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수집하고 수취하는 장치이고, 세 번째로는 그런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메타데이터로 이용자를 추적하고 포획하는 장치입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서비스 회사가 제공하는 플랫폼 장치에는 이 세 가지 기능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용자들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런 통합적 기능이 플랫폼 장치의 숨은 핵심입니다.
아감벤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서비스 플랫폼은 인터넷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치입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굴뚝 공장’이 대표적인 축적 장치인 것처럼 인터넷 세상의 서비스 플랫폼은 현대 정보자본주의의 축적이 진행되는 사회적 공장 장치지요.
들뢰즈 나는 여전히 장치라는 실체보다 그 안의 배열과 그에 따른 관계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플랫폼에서 어떤 생산관계, 권력관계, 지식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정보자본주의의 대표적 장치인 서비스 플랫폼에서 그런 관계들이 형성되는 요소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를 장치와 기계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분석해 내야지요.
푸코 장치는 그것의 소유자나 고안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전략적 수단입니다. 그래서 장치를 둘러싸고 불균등한 힘의 관계가 조성됩니다. 서비스 플랫폼 장치를 매개로 만들어지는 지식 관계, 권력관계, 생산관계는 비대칭적입니다. 이용자는 자신의 활동 결과물을 서비스 플랫폼에 넘겨주면서 자신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부지불식간에 양도합니다. 이렇게 비대칭적인 지식 관계는 통제하고 통제당하는 권력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추동하는 핵심적 동력은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기업과 이용자의 간접화된 생산관계에서 나옵니다.
들뢰즈 맞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인터넷 세상의 서비스 플랫폼이라는 장치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용자와 기업 간의 관계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와대 위를 날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무인정찰기는 우리가 말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실체이지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푸코 나는 장치가 본성상 전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치는 힘 관계에 대한 조작이며, 그런 힘 관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개입입니다. 이렇게 개입하는 목적은 힘 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거나 봉쇄하면서 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안정시켜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감벤 플랫폼 제공자와 이용자 간에도 그런 불균등한 힘 관계가 있다는 의미겠지요?
푸코 물론입니다. “장치에는 늘 권력의 작동이 기입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생겨나고 그것을 규정하기도 하는 지식의 한 가지 또는 여러 제한과 연결됩니다. 지식의 여러 유형을 지탱하고, 그것에 의해 지탱되는 힘 관계의 전략들, 바로 이것이 장치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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