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별이 있었다네
옛날 옛적, 우주 저 멀리에 푸른 별이 하나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별이어서, 점성술사도 우주 비행사도 두 번 다시는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태양과 달이 매일 한 차례씩 푸른 별 주위를 돌았고, 바람은 풀과 꽃 들을 한들한들 움직여 주었으며, 높은 산 속에서는 폭포의 물줄기가 깊고 어두운 계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그 뒤로는 별들이 반짝였다. 푸른 별은 땅으로 덮여 있고, 땅과 땅 사이에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했지만, 으르렁거리는 거센 바람에 사로잡히면 바위해안에서 자잘한 물방울로 부서졌다.
푸른 별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는 아이들만 살고 있었다. 물론 식물과 동물도 있었지만, 푸른 별은 생김새와 몸집이 제각각인 아이들 세상이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통통한 아이, 마른 아이,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거울에서 볼 수 있는 괴상하게 생긴 아이까지. 아이들은 백 명도 훨씬 넘었다. 그러니 그냥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해 두자. 어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았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정한 야생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그사이에는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뛰어놀았다. 어른들한테 뭐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어른들 중에도 좋은 사람은 꽤 많으니까.
푸른 별은 아름답지만 위험한 곳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위험한 일이며 짜릿한 일이 끊이지 않아서, 어른들이 살았다면 스트레스와 근심 때문에 머리가 하얘지고 결국에는 지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푸른 별에 사는 가장 어린아이조차 어른이 이 별에 발을 디뎠는지 기억이 없고, 천문학자들은 푸른 별 쪽으로 감히 망원경을 들이대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 이쯤에서 뭔가 궁금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인구는 어떻게 늘어났지? 아이들은 영영 자라지 않나? 어른이라곤 한 명도 없다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났지?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모른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과학자들은 이곳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이 별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별에 영영 자라지 않는 야생의 아이들이 가득하다는 것뿐이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 심장 속 젊음의 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는 몇 백 살을 훌쩍 넘겼을 테지만.
푸른 별에서는 끝도 없이 모험이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는 반딧불이를 쫓아다니고, 험한 낭떠러지에 올라가서는 따뜻한 바닷물로 텀벙 뛰어들었다. 바닷가에서는 조개껍데기를 줍고, 알을 낳으러 해변으로 기어오는 거북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높은 절벽에는 둥지를 튼 새들이 가득하고, 새하얗고 차가운 빙하는 바사삭 소리를 내면서 바다로 녹아들었다. 호랑이와 앵무새가 돌아다니는 낮 시간에 연초록이던 숲은 늑대들이 짖어 대는 저녁이면 진초록으로 변했고, 박쥐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거미들이 털북숭이 다리를 놀려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밤이 되면 검푸른 색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한 번씩 푸른 별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일어났다. 한 줄기 빛이 푸른 산의 어느 동굴 벽 작은 구멍으로 들이칠 때가 있다. 이곳은 보통 동굴이 아니다. 동굴 안은 잠자는 나비들로 가득했다. 동굴 속으로 물밀 듯 쏟아진 빛이 잠든 나비들의 날개에 닿으면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비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나비들은 아주 천천히, 아주 살며시 날갯짓하며 하나둘씩 하늘로 날아올라 동굴 입구로 빠져나갔다. 나비들은 하루 종일 태양을 따라 땅과 바다, 산과 계곡 위를 날며 푸른 별을 휘감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또 한 해가 지날 때까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비들의 비행은 푸른 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었고, 해마다 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행복을 느꼈다. 아이들은 자리에 누워 하늘을 수놓은 나비들을 바라보고는 했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 함께 나비들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이 모든 경이로운 사건과 흥미진진한 일들도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속 모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푸른 별의 그 어떤 아이도 전혀 상상 못했던 가장 아슬아슬하고 가장 믿기 힘든 모험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지
깊은 바다 위 어느 작은 섬, 해마다 펼쳐지는 나비들의 비행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화창한 여름날, 브리미르는 조개껍데기도 줍고 납작한 돌멩이로 물수제비도 뜨면서 검은 모래 해변을 거닐었다. 펭귄들이 알을 품고 있는 구역에 접어들었을 때는 알을 밟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며 펭귄 무리를 요리조리 피해 빠져나갔다.
브리미르는 푸른 산 근처에서 주운 예쁜 돌멩이를 친구 훌다에게 보여 줄 참이었다. 하얗고 까만 펭귄 무리에서 삐쭉삐쭉 솟은 브리미르의 노란색 머리는 흘깃 곁눈질만 해도 아주 잘 보였다. 브리미르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먹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펭귄들이 엉덩이 아래에 품고 있는 맛있는 알이 눈에 들어오자 군침이 고였다. 하지만 펭귄들의 심상치 않은 시선을 느낀 브리미르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서 펭귄 수천 마리를 당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브리미르는 머리가 아주 예리했지만, 펭귄들의 부리 또한 예리하기가 작살 못지않았다.
브리미르는 커다란 자루를 끌고 오는 훌다를 보고 단숨에 달려갔다.
“잘 있었어? 자루 안에 든 건 뭐야?”
브리미르가 물었다.
“바다표범.”
훌다가 대답했다.
“바다표범?”
“응. 딱 한 마리. 오렌지하고 토끼 두 마리도 있어.”
“와! 바다표범을 네가 잡았어?”
“에이, 별거 아냐. 아주 작은데 뭐. 방망이로 때려서 쓰러뜨렸어.”
훌다는 브리미르의 머리를 톡톡 치며 대답했다.
“좀 들어 줄까?”
“그럼 고맙지.”
두 아이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자루가 끌리면서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을 지워 주었다.
브리미르와 훌다는 야자수로 둘러싸인 해안의 검은색 모래와 바다를 살펴보고는 어디 한군데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다표범 가죽을 벗기고 요리해 먹기로 했다. 통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바다표범을 통째로 구웠다. 배불리 먹고 나서는 모래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는 아예 드러누워서 어둠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인 것 같아.”
훌다가 속삭이며 미소를 지었다.
“응. 나도 지금까지 최고로 멋졌던 날보다도 오늘이 훨씬 더 좋아. 지금까지 최고로 좋았던 날은 어제였고.”
브리미르가 말했다.
“어제는 뭘 했는데?”
“별다른 건 없었어. 그냥 엄청 행복했다는 거 말고는.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브리미르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이제 곧 나비들이 올 거잖아.”
훌다의 얼굴은 행복으로 빛났다.
브리미르는 주워 온 돌을 훌다에게 보여 주었다. 돌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 수천 개의 무지개가 뜬 것 같고, 수백만 개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예쁘다!”
“가져도 돼.”
브리미르가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이건 정말 아름다운걸.”
훌다가 말했다.
“네가 받아 주면 좋겠어, 진짜로.”
브리미르가 말했다.
훌다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훌다는 브리미르를 기쁘게 해 주려고 돌을 받았다.
“무슨 돌일까?”
“소원을 들어주는 돌인 것 같아.”
“소원을 빌어 볼까?”
훌다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지만 소원을 빌고 나면 흔한 조약돌이 돼 버릴 거야.”
브리미르가 대답했다.
“한 가지 소원만 빌 수 있어?”
“응. 하지만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루어져.”
훌다는 골똘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머리를 짜내면서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떠올려 보았다.
“무얼 빌어야 할지 모르겠어.”
“빌 게 하나도 없어?”
“먹을 것도 많고, 모두가 친구니까 친구도 많고. 그렇지만 늘 바라 왔던 소원이 한 가지 있긴 하다.”
훌다가 말했다.
“뭔데?”
“가장 친한 친구가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소원을 들어주는 돌을 주면 좋겠다고 예 전부터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빌 게 더 이상 없지 뭐야!”
훌다는 수줍게 웃으며 브리미르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브리미르가 준 돌을 마치 참새 알을 손에 넣은 듯 조심스럽게 쥐었다.
“저기, 정말 이상한 별이 하나 있어!”
브리미르가 갑자기 외쳤다.
“어디?”
훌다가 물었다.
“저기!”
브리미르가 소리쳤다.
“저기 별이 있을 리가 없는데.”
훌다가 눈을 비볐다.
브리미르가 가리킨 별은 우주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꼬리에는 커다란 불덩이를 매달았는데, 휘어지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반짝이는 글자를 하늘에 새기고 있었다.
“하늘에 뭐라고 쓰고 있어.”
브리미르가 말했다.
“인-생-을-즐-겨-라.”
훌다가 한 자씩 읽었다.
“인생을 즐겨라? 저건 도대체 무슨 별똥별이야?”
돌진해 왔다. 무시무시한 고함이 들리는 듯했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브리미르와 훌다는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럴 순 없어! 소행성이야? 혜성이야?”
“저건 로켓이야! 곧 충돌할 거 같아!”
로켓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위에 있던 새들이 쇳소리를 내며 도망갔다. 다람쥐들은 토끼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물고기들은 해초 덤불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브리미르와 훌다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모래 속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 이제 끝장인가 봐!”
훌다가 소리쳤다.
“날 꽉 붙잡아.”
브리미르가 속삭였다.
훌다가 브리미르의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붙들었다. 곧이어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꽝!!!
요란한 폭발음이 산마루 사이로 울려 퍼지고, 모래와 자갈이 비 오듯 바닷가로 쏟아져 내렸다.
브르미르와 훌다는 귀가 멍멍한 가운데서도 곧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은 조심스레 일어서서 몸을 뒤덮은 모래와 흙먼지를 털어 내었다. 로켓이 떨어진 자리에는 분화구가 깊이 패었다. 두 아이는 가장자리로 천천히 걸어가 분화구 안을 들여다보았다.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물체가 밑바닥에서 반짝이는 것이 언뜻 보였다.
“낡은 진공청소기 같아.”
훌다가 말했다.
“우주선이야.”
브리미르가 속삭였다.
생명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쿵, 톡톡, 쾅. 마치 누군가가 로켓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외계에서 누군가가 찾아온 건 까마득히 오래전 일인데.”
훌다가 말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점점 더 강해졌다.
쿵쿵! 투두둑! 쾅쾅쾅!
“우주 괴물이 아니어야 할 텐데.”
브리미르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이 들리더니 누군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문을 밀어 냈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거대하고 시커먼 괴물이 문 앞에 나타났다. 괴물은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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