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는 힘이 세다
밤마다 은행나무 아래서 고양이가 울었다.
외할머니의 재봉틀 소리보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더 짜증이 났다. 고양이는 배고픈 아기처럼 응애응애 울었다. 홀로 어두운 골목과 지붕을 떠돌며 엄마를 찾아 헤매는 새끼 고양이. 고양이 울음소리는 깨진 창문과 낡은 벽, 지붕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와 잠을 방해했다. 그리고 귀에서 가슴 깊은 곳까지 내려와 그곳에서 슬퍼지곤 했다.
슬픈 노래는 힘이 세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나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같은 노래가 그렇다. 풍금 소리에 맞춰 그 노래를 처음 배울 땐 나도 모르게 울 뻔했다. 노래를 부르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나는 슬픈 노래한테 지고 싶지 않다. 슬픈 노래한테 힘을 쉽게 빼앗기는 사람은 우리 외할머니다. 외할머니는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가 나오면 구슬프게 따라 부르다 결국은 꼭 눈물을 흘렸다. 외할머니가 울면 나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다. 슬플 때에는 침대에 엎드려 가슴을 꾹 눌러주는 게 최고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슬픔이 가셨다.
‘아, 정말 저 고양이 새끼들, 다 때려죽일 수도 없고!’ 꿋꿋이 참다가 결국에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골목길 가로등 불빛을 받고 홀로 서 있는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백년 묵은 은행나무에는 여우 대신 고양이들이 와서 놀았다. 녀석들은 엉큼해서 사람이 없는 밤에만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고양이 두마리가 보였다. 한 녀석은 완전히 검고 다른 녀석은 흔히 보는 갈색 점박이였다. 그제 새벽에는 고양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가 “어떤 씨방새야! 조용히 해! 니가 더 시끄러워!”라는 욕만 얻어먹었다. 언제나 검은 양복만 입고 다니는, 동네에서 주먹이 제일 센 박정철 형이었다.
박정철 형은 앞집에 사는데, 외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바람 잘 날 없는 집이었다. 바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앞집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두들겨맞는 소리는 거의 매일 들었다. 비명 소리가 내 방 창문을 흔들 정도로 컸던 다음날 아침에도 앞집 할머니는 눈가에 시퍼런 멍을 달고 청소 일을 하러 나갔고 앞집 할아버지는 군복에다 빨간 모자를 쓰고 온몸에 잔뜩 힘을 넣고 외출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외할머니는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지청구만 주었다. 공부나 열심히? 외할머니는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운 줄로 안다. 나는 그게 싫다.
창문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니 오늘도 박정철 형은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에 방 안에 굴러다니던 볼펜을 집어서 고양이들을 향해 단검처럼 던졌다. 갈색 점박이가 볼펜에 맞고 후다닥 지붕 위로 도망쳤다. 아싸, 기분이 좋았다. 창문을 닫고 잠을 자려고 했지만, 곧 고양이들의 운동회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베개를 집어던지고 거실로 나갔다. 오늘도 외할머니 이희자 씨는 옷감을 잔뜩 쌓아두고 재봉틀을 밟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이 때문에 손이 느려서 일을 많이 하지 못하지만, 한푼이라도 벌어야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한다며 밤늦게까지 재봉질을 했다. 눈이 어두워 불량이 많이 나온다며 일감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가 짜증을 내곤 했지만, 그래도 외할머니는 꿋꿋하게 버티며 아주머니를 어르고 달랬다.
나는 가끔 외할머니를 희자씨라고 불렀다. 내가 희자씨라고 부르면 외할머니는 처녀 시절이 생각난다며 수줍게 웃었다. 외할머니에게 처녀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어쨌든 외할머니가 수줍게 웃는 모습은 예뻤고 또 살짝 징그러웠다. 외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재봉질을 멈췄다.
“희자씨, 고양이 새끼가 또 울어. 시끄러워 미치겠어.” 나는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시며 툴툴거렸다.
“배 아파? 그럼 똥 싸.” 코끝에 돋보기를 걸친 외할머니가 엉뚱하게 받아쳤다.
“고양이가 운다고!” 나는 외할머니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또 보청기를 뺀 모양이었다. 반짇고리에서 보청기를 찾아 외할머니의 귀에 끼우고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이 안 와” 하고 소리쳤다.
“은행나무가 우는 거여. 어여 자.” 외할머니가 엉뚱한 말을 했다. 은행나무가 운다는 소리는 외할머니에게 처음 들어보았다.
“나무가 어떻게 울어? 희자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원, 녀석도. 크면 알아.”
“나도 다 컸어!” ‘크면 알아’라는 외할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외할머니는 말문이 막힐 때마다 크면 안다고 우겼다. 나는 그게 정말 싫다. 외할머니는 모르고 있지만, 나는 사실 다 컸다. 삼년 전 11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나는 빠른 속도로 자랐다. 키보다 먼저 마음이 자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잘 참는다. 그게 어른이다. 아무리 아프고 억울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 대신에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복수를 맹세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하지만, 낳으라지 뭐, 그까짓 거.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쪽팔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울어서 무언가가 해결된다면, 한강 물이 넘치도록 울 자신도 있다. 눈물은 주먹보다 힘이 약하고, 심지어는 째려보는 것보다도 효과가 적다. 눈물은 코피보다 더 치욕스러운 패배로 판정받는다. 코피가 나면 손등으로 슥 닦고 또 싸우면 된다. 하지만 눈물은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삼진아웃을 당하고 돌아서는 야구선수의 뒷모습과 비슷하다. 배트 한번 시원하게 휘두르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삼진아웃을 당하는 타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은 없다. 비록 삼진아웃을 당해도 파울을 대여섯개는 날리면서 최선을 다해야 박수를 받는다. 그걸 알기에 나는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울었다. 이불을 덮어쓰고 펑펑 울면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풀렸다.
나는 새천년이 시작되던 용의 해에 태어났다. 그 덕택에 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받아온 ‘김우룡’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어리석은 용’이라는 뜻풀이 때문인지 애들은 나를 자주 ‘우롱’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버지가 지어준 아명인 ‘만돌이’를 좋아해서 지금도 그렇게 불러주고 있다. 만돌이는 위대한 시인 윤동주의 동시에 나오는 어떤 아이의 이름이다. 나도 만돌이처럼 시험 보기 전에 전봇대를 향해 돌멩이 다섯개를 던지기도 했다. 다섯개를 다 맞힌 날도 있었지만 백점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게 나의 불행이었다.
나는 대도시의 변두리에 살고 있다. 재개발지구 혹은 빈민지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천사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번지수가 산1004번지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들었다. 1004번지인 웃말과 1003번지인 아랫말 두 마을을 합쳐 천사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웃말이나 아랫말보다는 천사마을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천사마을이 속한 포치동은 천사마을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값이나 집값이 제일 비싼 지역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멀리서도 오십층이 넘는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게 보인다.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천사마을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천사는커녕 술주정뱅이, 껄렁한 형들, 껌 씹는 누나들, 고집 세고 목소리 큰 노인네들, 막노동하는 아저씨들, 식당에서 일하거나 파출부로 일하는 아주머니들, 거리에서 붕어빵을 파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산다. 새벽 일찍 포치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주워 낡은 유모차에 싣고 돌아오는 할머니들도 있다. 천사마을 사람들은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귀가했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나는 세상을 잘 모르겠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면 돈을 그만큼 벌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참 이상하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마을버스 종점을 경계로 포치동과 천사마을은 정확히 나뉘어 있다. 포치동 사람들이 천사마을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 천사마을은 쉬는 시간의 교실처럼 시끄럽다. 재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대책 없는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있다. 다투는 정도를 넘어 무섭게 싸웠다. 싸움의 한복판에서 외할머니는 한숨만 내쉬었다. 외할머니는 천사마을과 주변을 떠돌며 거의 육십년을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열몇살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떠나지 않았다며 가끔 옛이야기를 해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은행나무집이라고 부른다. 집 바로 옆에 나이가 오백살이 넘은, 늙고 뚱뚱하고 키가 큰 은행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천사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은행나무를 사랑했다. 정초가 되면 은행나무 앞에 큰 상을 차려놓고 동네 어른들이 절을 했다. 제사가 끝나면 고등학생 형들 몇이서 잽싸게 돼지머리를 들고 튀었다. 중학생 형들은 고등학생 형들의 뒤를 따라 뛰었고, 나도 그 끝에 매달렸다. 그들은 빈집 중에서도 가장 번듯한 해피빌라 삼층에 모여 잭나이프로 돼지머리를 잘라 소주와 함께 먹었다. 나도 귀때기 한점을 얻어먹었는데 쫄깃한 게 아주 꿀맛이었다.
우리 집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마음만큼은 아주 편하다. 산 아래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 큰아버지나 외삼촌과 함께 살던 때에 비하면 천국이다. 큰아버지의 집은 운동장처럼 넓은 아파트였고 외삼촌의 집은 교회 삼층의 사택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은행나무집은 콧구멍보다 조금 넓은, 무너지기 직전의 초라한 시멘트 블록집이다. 주황색 기와는 색이 바랬고, 기와 틈새에 민들레나 개망초가 가끔 뿌리를 내렸다. 비가 많이 오면 깨진 기와 틈으로 빗물이 흘러들어 천장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젓가락으로 천장에 구멍을 뚫으면 빗물이 오줌 줄기처럼 떨어져내렸다. 양동이에 빗물을 받으며 외할머니는 흘러간 옛 노래를 불렀다.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이 나오려는지 치맛자락으로 코를 팽 풀기도 했다. 보다 못한 아랫집 침쟁이 할아버지가 목수인 아들을 시켜 지붕을 파란 비닐로 덮어주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빚을 진다며 아주 불편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빚이 아니라 우정이었다. 외할머니한테 흑심이 있는 침쟁이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나와 친구가 되었고, 단둘이 있을 때에는 말도 놓기로 했다. 사실 내가 친구를 먹자고 한 게 아니었다. 침쟁이 할아버지가 먼저 친구로 지내자고 말을 꺼냈다. 나는 무려 삼십초나 고민한 끝에 침쟁이 할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늙은 친구라 마음에 살짝 걸렸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나았다. 침쟁이 할아버지도 나만큼이나 철이 없었다. 그래서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내 친구는 외할머니를 애인으로 만들려고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그 노력이 가상해서 내가 시간 날 때마다 놀아주고 있는 것이다.
삼년 전 11월 셋째 주 토요일, 우리 가족은 역사유적 탐방 과제를 위해 소수서원을 향해 떠났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안개가 짙었다. 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를 아빠는 조심스레 운전했고, 마침내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는 구불구불했고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안개 속에서 시커먼 무엇이 불쑥 나타났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나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흘 뒤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뜬 뒤에야, 중앙선을 넘어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아빠, 여동생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고 멀미와 두통에 시달렸다. 졸지에 고아가 된 나는 그후로 두해 동안 큰아버지 집과 외삼촌 집을 떠돌다가 6학년으로 올라갈 즈음에 외할머니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와 같이 살기 전의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에 꽁꽁 묻어두었다.
내가 살던 포치동 주공아파트가 환히 보이는 천사마을로 오니 엄마와 아빠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한테 맡겼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아침 일찍 외할머니가 우리 아파트로 와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유치원에 갔고, 유치원이 끝나면 천사마을의 외가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외할머니와 함께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통사고를 당할 때까지 나와 동생은 아침마다 외할머니를 만났고 저녁마다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지는 그사이에 엄마 아빠는 시장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주공아파트를 팔고 포치동에 더 큰 아파트를 장만했다. 아빠한테서는 늘 비릿한 고등어 냄새가 났고, 엄마한테서는 상큼한 수박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너무 그리웠다. 고아가 되니 언제나 마음이 고팠다.
“희자씨.”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외할머니를 불렀다. 외할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 입술에 빨간 루주를 바르고 있었다. 가방을 거실 바닥에 던져두고 외할머니를 빤히 쳐다봤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름살 많은 얼굴과 빨간 루주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일흔셋의 외할머니는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서는 키도 크고 몸매도 날씬한 편이지만 빨간 루주만큼은 아니었다.
“희자씨, 그 루주 안 어울려.”
“만돌씨가 간섭할 일이 아녀. 이래 봬도 배드민턴 코트에 나가면 복식 파트너 해달라고 남자들이 줄을 서, 줄을.”
“남자가 아니라 늙은 할배들!”
“저놈의 자식이 그냥! 뚫린 입이라고…… 쫙 찢어버릴라.” 외할머니가 귀엽게 눈을 흘겼다. 짝짝이로 그린 외할머니의 눈썹에 나는 그만 웃음이 빵 터졌다.
“근데 만돌이 너, 공부방엔 안 가고 왜 곧장 집으로 왔어? 또 뭔 일 저질렀어?” 외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약한 부분을 찔렀다. 나는 웃다가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빛이 지구를 도는 속도로 잔머리를 굴렸다. “어제도 안 가고. 수상해 너?” 빛이 미처 지구를 한바퀴 돌기도 전에 외할머니가 치고 들어왔다. 잔머리 대왕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갈 거야.” 자존심이 상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다.
“할미 약속 있어서 나갔다 올 테니, 공부방 가서 저녁 먹고 공부하고 와. 못된 놈들 꼬랑지나 따라다니지 말고.”
“무슨 약속인데?” 외할머니가 집에 없으면 공부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으로 환호를 지르면서도 일부러 따지듯 볼멘소리로 물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고, 사람보다 무서운 게 빚이여. 빚보다 더 무서운 게 이자고. 이자는 밤에도 쑥쑥 자라고 심지어 쉬는 날도 없단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아직 모를 것이다. 암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딱 한가지만 안하고 살아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빚지지 않는 거, 그게 중요한 거여. 만돌이 너도 꼭 명심혀. 할미 빚 갚으러 나간다. 에휴, 늙으면 냄새가 나.” 외할머니가 손목에다 향수를 뿌리며 말했다.
외할머니는 빚을 핑계로 침쟁이 할아버지와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야호, 나만의 세상이 온 것이다. 외할머니는 내가 미리 판을 깔아놓았다는 것을 몰랐다. 데이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침쟁이 친구는 내게 양념통닭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통닭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뭘 하지? 순간 당황했다. 공부는 싫고 독서는 시시했다. 사실 집에는 읽을 만한 책도 없어 독서는 꿈도 못 꾸었다. 밖에 나가 놀고 싶은데, 같이 놀아줄 애들이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또래 애들은 보습학원이나 태권도장, 미술학원이나 피아노학원엘 다녔다. 천사마을에는 학원이 없어서 주공아파트 상가까지 가야 했다. 학원에 다니는 애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가 없거나 아예 없는 애들 중에서 몇몇은 작은 공부방에 다녔다. 공부방에 다니는 애들은 가난한 천사마을에서도 더욱 가난한 형편의 애들이었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그제는 공부방에서 예쁜 척하는 지혜를 한대 쥐어박았다. 나는 공주처럼 구는 여자애들, 스스로 예쁘다고 주장하는 애들이 제일 싫다. 꿀밤 한대 먹은 정도인데도 지혜는 공부방이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6학년이나 되었으면 어리광을 그만할 때도 되었는데 지혜는 그게 안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싫어 그냥 공부방을 나왔고, 어제도 오늘도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공부방의 김선생님은 버드나무처럼 생겼는데도 무섭기는 가시나무였다.
라면 냄비를 레인지에 올려놓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고물 컴퓨터를 켰다. 일단 게임을 하면서 무엇을 하고 놀지 궁리해볼 참이었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컴퓨터는 무사히 켜졌다. 오늘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애들을 봤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수업하는 중에도 몰래 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고 말았다. 언제나 호기심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었다. 나도 구경해보려고 머리를 밀어넣다가 그만 짱구와 시비가 붙었다. 일단 붙기로 했으면 무조건 선빵이라는 싸움의 법칙을 성실하게 따랐다. 내 선빵에 짱구의 쌍코피가 터졌고, 덕택에 또 교실 뒤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종례를 할 때까지 벌을 서야만 했다. 누가 뭐래도 고아는 싸움의 법칙을 잘 익히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아는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아는 찌질이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착하다는 말보다는 독하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당장은 독하고 못됐다고 욕을 먹지만 나중에는 누구도 쉽게 나를 건드리거나 무시하지 못한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착한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열번 착한 짓을 하다가 한번 못된 짓을 하면 욕을 바가지로 퍼먹지만, 열번 못된 짓을 하다가 한번 착한 짓을 하면 칭찬이 마구 쏟아진다. 뭐, 그렇다고 일부러 못된 짓을 찾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솔직히 나는 못된 짓과 착한 짓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축구 게임을 하려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창이 활짝 열려야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우라지게도 열리질 않았다. 속도가 느린 컴퓨터는 그야말로 깡통이나 다름없다. “제기랄!” 창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사이에 냄비 안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라면을 넣고 계란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타령을 했는데도 외할머니는 계란 사는 것을 자주 잊어버렸다. 재봉틀에 라면 냄비를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는데 문득 햄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외할머니가 재봉질로 버는 돈으로 간신히 목구멍에 풀칠만 하는 처지라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햄버거가 먹고 싶은 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먹고 못 먹고는 나중 문제였다. 괜히 심술이 나서 젓가락을 탁 내려놓다가 그만 라면 냄비를 엎고 말았다. 국물과 라면 가락이 재봉틀 옆에 쌓인 옷감 더미를 덮쳤다. 옷감에 벌겋게 스며드는 국물과 여기저기 흩어진 라면 가락을 보니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단순히 욕을 먹고 혼나는 수준이 아니라 옷값을 물어줘야 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외할머니가 “에미 애비가 있었으면 니가 이렇게 호래자식이 되진 않았을 텐데,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우는 것을 보게 되는 게 제일 싫었다. 나는 방정맞은 손모가지를 탓하며 얼른 치운다고 치웠다. 라면 가락은 어떻게 버렸지만 문제는 옷감을 벌겋게 물들인 국물이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물든 것들만 골라 냉장고 앞에 쌓아두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스스로가 한심하고 화가 나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우울하고 슬픈 마음으로 집에서 나왔다.
칠이 벗겨진데다 아귀도 맞지 않는 파란 대문을 닫고 아랫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아파트 단지가 아련하게 보였다. 한때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살던 동네였다. 문득, 어떤 이유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을 때렸던 순간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동생을 때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후회가 밀려들었다. 두번도 아니고 딱 한번만 엄마 아빠, 동생을 만나고 싶었다. 가끔 꿈에 나타나 행복하게 어울리는 날들도 있었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너무 지랄같았다. 그런 날에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현실에서 딱 한번, 엄마의 품에 안기고 아빠와 전봇대를 향해 돌멩이 던지기를 하고 동생의 인형을 빼앗아 숨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무엇보다도 간절히 가족의 살을 만져보고 싶었다.
몸을 돌려 은행나무로 가보니 푸세식 변소에서 흘러나온 듯한 똥냄새 비슷한 구린내가 지독하게 풍겼다. 은행알이 익어서 나는 냄새였다. 냄새가 지독했지만 똥은 아니라 참기로 했다. 은행나무 둥치에 기대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던 고양이 한마리가 내 눈치를 슬슬 보았다. 크기로 보니 새끼였다. 주변을 살펴봐도 녀석의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도 고아니? 설마 아니겠지. 니 엄마가 곧 올 거야.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응?” 새끼 고양이한테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새끼 고양이는 모르는 척 내 눈길을 피했다. 나는 떠나간 가족을 생각하며 두 팔을 활짝 벌려 은행나무를 껴안았다. 은행나무는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엄마가 ‘만돌이 너, 어쩔래? 할머니 화내실 텐데?’라고 혼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엄마가 아니었다. 바람만 살랑 머리카락을 흔들고 갈 뿐이었다. ‘엄마 미워’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잠시 뒤 팔을 풀고 은행나무에 등을 기대 천사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짱구와 어떤 아저씨가 불쑥 나타났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저씨였는데, 태도로 보아 짱구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바보 같은 짱구 새끼.
“아빠, 저 새끼야!” 짱구가 손가락질로 날 가리키자 짱구 아버지가 성큼 다가오더니 냅다 내 뺨을 후려쳤다. 먼저 말로 타이를 줄 알았지 손이 날아올 줄은 몰랐다. 방심하고 있던 터라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한방 먹었다. 뺨에서 불이 번쩍하고 코끝이 찡하니 울렸다.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속으로 ‘짱구 너는 죽었어’라고 생각하며 짱구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이 깡패 새끼! 어디서 함부로 주먹질이야! 어쭈, 이런 좆만한 게 어딜 노려봐? 야, 정말 세상 거꾸로 가는구만. 눈 깔아, 새끼야!” 짱구 아버지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노련한 솜씨로 슬쩍 피했다. 고아가 되어 강호무림을 외톨이로 떠돈 지 어언 삼년, 소림사 똥개 삼년이면 염불을 외우고 태극권 흉내라도 내는 법. 주먹이 빗나가자 짱구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 양복 입은 신사가 쌍욕을 퍼부으며 나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조금은 웃겼다.
“이 깡패 새끼, 잘 걸렸다. 오늘 아주 죽어봐라. 너 집이 어디야?” 잔뜩 약이 오른 짱구 아버지가 발길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요리조리 피했다.
“쟤 고아야, 아빠.” 짱구가 즉시 일러바쳤다. 짱구 아버지는 헛발질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짱구 아버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더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눈길이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지난 삼년간 저런 눈길을 너무나 자주 받아봐서 특별히 화가 나진 않았지만 기분은 똥 밟은 듯 더러웠다.
“어쩐지 싸가지가 없더라니. 애비 에미도 없는 후레자식이었네. 너도 인마, 앞으로 저런 놈이랑 놀지 마! 알았어? 가자!”
“거지 새끼!” 짱구가 의기양양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짱구 아버지가 짱구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나는 분했다. 고아인 것은 맞지만 적어도 거지는 아니다. 내가 언제 구걸을 다녔단 말인가.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 기분이 팍 상했다. 멸시를 당하고도 상대방을 편하게 보내는 것은 남자의 자세가 아니다. 나는 물컹물컹한 은행알을 몇개 주워 짱구 아버지와 짱구한테 던졌다. 은행알은 정확히 두 사람의 머리를 딱 맞혔다. 짱구 아버지가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뻑큐를 날렸다.
“저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다 있나?” 짱구 아버지가 욕설을 퍼부으며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슬슬 약을 올렸다. 짱구 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고양이처럼 날랬지만 짱구 아버지는 살찐 강아지처럼 뒤뚱거렸다. 나는 요리조리 피하면서 사이사이에 은행알을 짱구한테 날렸다. 은행알이 짱구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짱구가 이마에 묻은 은행알의 물컹한 껍질을 손으로 닦아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찌질이 주제에 까불고 있어.’ 짱구 아버지는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나를 잡으려고 뛰어다녔다. 나는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슬쩍슬쩍 피했다. 결국 저질 체력 때문에 짱구 아버지는 포기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짱구 아버지가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짱구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은행나무에 기대서서 언덕을 내려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저 아저씨처럼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고 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 복수해주고 편을 들어주는 그런 아빠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아빠의 담배 냄새마저도 그리웠다. 엄마 냄새는 또 얼마나. 눈물이 핑 돌았다. ‘흡’ 하며 숨을 가슴 깊은 곳으로 끌어당겨 눈물을 막았다. 아빠처럼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짱구와 짱구 아버지의 모습이 골목 아래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집으로 도로 들어갔다. 갑자기 모든 게 시들해졌다.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드려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꾹 눌렀다. 한참 동안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거실로 나와 라면 국물이 묻은 옷감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외할머니처럼 늙은 세탁기가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돌았다. 나는 짱구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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