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뇌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첫 번째 발자국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안녕하세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정재승입니다. 이렇게 강연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무척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의사결정과 선택’입니다. 제 주요 연구 분야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복잡계를 탐구하는 물리학자로서, 저는 인간의 의사결정이 합리성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뇌의 각 영역들은 서로 다른 관점과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그것들이 서로 순식간에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최종 의사결정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복잡한 대뇌 활동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선택을 하는 과정은 정교하게 기록해야 하며, 선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을 뇌 안에서 샅샅이 찾아보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집중이나 학습과 기억, 사람 사이의 관계나 공감 같은 내적인 요인뿐 아니라 외부 요인들도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선택지를 어떻게 배치하고 제시할 때, 그리고 어떤 상황을 사전에 겪을 때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바뀌는지, 즉 뇌 안에 있는 내적 요인들과 세상뇌와 인간 바깥에 있는 외적 요인이 어떻게 인간의 최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두루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의사결정을 탐구하는 관점입니다. 저는 경제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처럼 단순한 문제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바라보기보다는, 복잡한 의사결정 자체에 정면도전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인간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며, 그렇다고 해도 어쩌면 그 원리 자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복잡할지도 모르니까요.
마시멜로 탑을 쌓는 방법
자, 이제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마시멜로 챌린지marshmallow challenge’라는 게임으로 선택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이 게임은 미국의 디자인 회사인 IDEO의 피터 스킬먼Peter Skillman이 고안한 것으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톰 우젝Tom Wujec이라는 학자가 했던 실험 내용이 테드TED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마시멜로 챌린지 게임의 룰은 매우 간단합니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 네 명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습니다. 그들에게는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가 주어집니다. 그들은 이 재료들을 이용해 탑을 쌓아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8분. 탑의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져도 상관없고요. 종료 시점에 이 탑이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도 온전히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을 때 바닥에서부터 마시멜로까지의 높이를 탑의 높이로 정의하고, 높이가 가장 높은 팀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해보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탑을 쌓을 수가 있는데, 우젝은 직업군에 따라 마시멜로 탑을 쌓은 방식과 결과가 다르다는 사실을 테드에 소개하면서 이 게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우선 우젝은 미국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이나 변호사처럼 소위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 명석한 사람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탑을 쌓는 과정도 매우 전형적입니다. 세션이 시작되면, 그들은 먼저 자기소개를 한 후에주로 명함을 돌리지요 어떻게 이 과제를 수행할지 계획을 짭니다. “우리 이렇게 해볼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하면 더 잘될 거 같아” 등등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원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짜고요. 계획이 확정되면 거기에 맞춰 쌓습니다. 17분 50초까지 열심히 계획에 맞춰 탑을 쌓다가 마지막에 탑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놓으며 ‘짜잔!’ 하고 결과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마시멜로 탑은 대개 무너진다는 겁니다. 처음에 어떻게 탑을 쌓을지 계획하고, 그 다음에는 계획에 맞춰 성실히 탑을 쌓고, 마지막에 결과를 살펴보는 것까지! 너무나 당연한 프로세스여서 그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시겠죠?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18분을 보낸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의 결과가 훨씬 더 좋고요. 우선 명함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웃음)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바로 말을 놓습니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일단 재료를 가지고 탑을 만들어봅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다음에 좀 더 높은 탑을 쌓죠. 다리를 붙이고 가지를 뻗고 안테나를 올리는 방식으로 탑의 높이를 올립니다. 그래서 18분 동안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여섯 개의 탑을 완성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쌓을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계획 없이 출발합니다. 일단 실행에 옮기고 보는 거죠. 작은 탑을 하나 쌓으면, “이거 너무 낮은데,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무너뜨리고 이렇게 해볼까?”라고 하면서 좀 전보다 조금 더 높은 탑을 쌓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거 너무 낮은데, 시간 남으니까 또 해볼까?”라는 식으로, 계속 성공하면서 조금씩 더 높은 탑을 쌓는 데 이른다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성공 확률도 아이들이 더 높고요. 그 덕분에 탑의 높이도 아이들이 쌓은 것이 훨씬 더 높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가지고 마시멜로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탑을 쌓아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계획을 세워봤자 잘못될 가능성이 높죠. 게다가 계획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회복할 기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실적을 보이죠.
아이들이 쌓은 탑을 관찰해보면, 흥미롭게도 탑의 다리 맨 밑을 접착테이프로 동여맨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탑의 다리 끝을 접착테이프로 동여매면 신발을 신겨주는 형상이 만들어지는데, 덕분에 무게중심이 내려가고 바닥과 탑 사이의 마찰력이 늘어나서 안정적으로 탑이 설 수 있습니다. 이건 실제로 여러 시도를 해보지 않고서는 계획할 수 없는 전략입니다.
이 실험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회사는 종종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를 중요하게 따집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가 더 좋더라도 왜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대부분을 그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도 하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준비를 안 해도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후 준비’를 해아죠. 젊었을 땐 자기 인생을 준비하고, 중장년 시절에는 자식들 인생까지 준비하고, 나이 들면 또다시 자기 노후 인생을 준비하고……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이 정말 계획대로 되었는지, 자신이 만든 계획 중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한 계획은 몇 퍼센트쯤 되는지 돌이켜보세요. ‘내가 왜 이런 짓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제가 예전에 ‘나꼼수’의 김어준 씨와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인간이 하는 것 중에 제일 멍청한 짓이 계획을 세우는 거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계획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이 있다면 그는 아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인간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살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김어준 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은 적이 더 많지만, 이 말만은 진실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웃음)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세상은 인간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물론 계획이 주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획을 완수하지 않더라도 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죠.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일단 간단히 계획을 세우고 한번 실행해보라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뭔가 한번 해본 걸 가지고 좀 더 의미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이른바 ‘실행을 통해 배우기learning by doing’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험적으로 그런 방식을 통해 과제를 수행합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는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던 여러분을 막고 ‘도대체 너의 계획은 무엇이냐’를 따져 묻고 시간 계획을 요구하고 나름의 가설을 세우게 하고 거기에 접근하라고 요구하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실행력으로 충만했던 유치원생 같은 여러분을 주저하게 만들고 계획에 치중하게 만든 곳이 안타깝게도 제가 있는 학교라는 곳입니다. 마시멜로 챌린지의 결과는 과연 그것이 좋은 교육방법인가를 회의하게 만듭니다. 한 번도 세상에 나가 장사를 해본 적이 없는 MBA 학생에게 장황한 창업 계획을 세우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한번 해보면서 감을 잡고, 도전해서 안 되면 다시 바꾸고, 시도를 통해 배우는 것이 좋은 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은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 데 그 유용함이 있습니다. 그들을 세상 한복판에 세우고 낯선 땅에서 치약 100개라도 팔아보라고 상황을 만들어주면서, 그들이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것이 더 나은 교육은 아닐까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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