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1
델마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 여든일곱이었다.
유품으로 알루미늄 지팡이와 가볍고 신기가 편해 효도신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화 한 켤레와 가늘어진 손가락에 맞추느라 실을 친친 감아서 구멍을 좁혀놓은 금반지 한 개가 있었다. 나중에 그녀의 방에서는 세 개의 이빨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인 온갖 종류의 건강식품과 약, 돋보기안경 등이 나왔다. 치석이 제거되지 않은 노랗고 까만 이빨은 두루마리 휴지에 곱게 싸여 있었다. 델마의 입속에 빠지지 않고 남아 있던 치아는 몇 개였을까.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었다. 죽기 전에 델마가 집을 떠났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2
델마가 집을 떠나기 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늦게 잠에서 깨 부은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날이 흐려서인지 집안이 흐릿했다. 거실 등을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위치를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다. 곧 낮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던 델마의 아들은 물소리 때문에 아내의 비명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덜 마른 몸에 샤워코롱까지 뿌린 후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코롱은 큰아들의 여자친구가 그의 생일날에 선물한 것이었다. 향수 따위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은 항상 긴장 속에서 치러졌다. 미세한 소리와 함께 뿜어져나오는 것은 향기였으나 향기는 때때로 얼룩으로 남았다. 그는 그 미세한 향기와 얼룩을 소중하게 여겼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화장품 냄새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도 이제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향수를 선물했을 때 그는 기쁜 얼굴로 그것을 받긴 했지만, 나중에 아내와 단둘이 방에 있게 되었을 때는 우울한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서 냄새가 나나? 아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자신의 질문에 아내가 당황하고 있다고 여겼고, 바로 그다음날 아침부터 샤워코롱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 델마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 그것에는 어머니의 냄새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진한 냄새가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팔을 이마 위에 올린 채 눈을 감고서였다. 샤워를 하다가 들은 듯했던 이상한 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가 묻자 아내가 손가락만 움직여 방밖을 가리켰다. 거실로 나가던 그도 그의 아내처럼 걸음을 멈칫했다.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 가슴이 내려앉았던 것 같기는 했다.
“당신도 놀랐지?”
그가 침실로 돌아왔을 때 아내의 말이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
열흘쯤 전부터 이모가 그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몇십 년 만에 귀국을 해서는 그의 집에 눌러앉아버린 것이다.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겠다고는 했지만, 그 며칠이 도대체 며칠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는 그후로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늙은 자매는 그날 아침 같은 시간에 깨어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둘이 그토록 닮은 얼굴이라는 것을 그 역시 그날 아침에 처음 알았다. 이모는 델마의 자리옷을 입고 델마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여든일곱과 여든아홉의 노인네 둘이 자식들을 골려먹자고 모의를 한 것은 아니겠지만, 소파 아래로 다리를 내리지 않고 오도카니 올라앉아 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가 침실 밖으로 나갔을 때 둘은 똑같이 고개를 돌렸고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앞니가 빠져 있는 것도 똑같았다. 어머니에게 그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 분명했음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 그도 어쩔 수 없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둘은, 귀신 같았던 것이다.
제발 좀, 새벽마다 불도 안 켜고 그렇게 앉아 계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겠냐고, 울컥 터져나오려는 말을 그는 눌러 참았다. 이모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곧 결혼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인들의 저물어가는 시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몫이 될 것이었다.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를지도 몰랐다. 두 노인이 귀신처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그 느낌이 더욱 울적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는 흘리듯이 말을 하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3
델마의 아들은 정년퇴직 후 횟집을 했다. 그의 아내도 가게 일을 같이 했다.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먼저 가게에 나갔다가 남편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며느리가 밤늦은 시간에 들어와 지갑과 열쇠를 내려놓고 겉옷을 벗을 즈음이면 델마가 자기 방에서 나왔다. 왔니? 델마가 묻고 며느리가 네, 하고 대답했다. 손님 많니? 델마가 또 묻고, 며느리가 또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대화는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이어질 것도 없었다.
대개는 늘 곯아떨어졌지만,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며느리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중에는 시어머니에 관한 생각도 있었다. 이날들이 언제까지 갈까. 그녀는 간혹 한숨을 내쉬기도 했는데, 그것은 싫다거나 지긋지긋하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심각하게 불화한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의 큰 분란은 없었고,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시어머니는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그녀에게 그런 것처럼. 늙어갈수록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졌다. 이제 와서는 시어머니가 빠져나간 가족의 형태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척 외로울 것 같기도 했고, 평생 처음으로 아주 편안할 것 같기도 했고, 또 그런 마음으로 인해 죄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델마의 언니가 난데없이 그녀의 집에 주저앉았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노여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하루이틀 묵고 가는 것과 ‘얼마 동안’ 머무는 것은 결코 같은 문제일 수 없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아흔이 가까운 노인네 둘을 한꺼번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델마의 언니를 모시고 온 남편의 이종사촌은 ‘그저 며칠’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노인네가 너무 고집을 피워서 당장 모셔갈 수가 없으니 ‘그저 며칠’만 계시게 해달라는 거였다. 곧 다시 귀국할 일이 있으니 그때 모셔가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미국이 어딘가. 갔다가 그대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게 벌써 며칠일 거였다. 시이모를 향한 분노는 고스란히 남편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도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이제 와서 나쁜 며느리에 나쁜 질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제 와서 착한 며느리 착한 질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식당에 나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고 델마의 방문을 열어보았을 때였다. 델마가 혼자 있을 때는 방문도 안 열어보고 나갔다 올게요, 밖에서만 말할 때가 많았지만 델마의 언니가 집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래도 방문은 열어보았다. 방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서 있어야 했다. 델마와 델마의 언니가 마주앉은 채 서로 머리채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둘은 기운이 빠져서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두 노인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싸움을 하고 있는 풍경이라기보다는 같이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는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보다도 더 무거운 것을 받쳐들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 무거운 것을 누군가 내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그러고 있어야 할 것처럼.
못 본 체하고 싶은 마음이 역겨움과 함께 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다가가 둘의 엉켜 있던 손가락을 풀어주었고, 둘은 동시에 뒤로 자빠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 않았다.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매가 추억하는 일 중에 노여운 순간이 왜 없으랴. 사소한 일일수록 용서할 구실이 없어 더 마음에 깊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을 이런 상황에 빠뜨린 남편을 결코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델마가 집을 떠났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걱정보다 앞선 것이 다시 격렬한 분노였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든 간에, 델마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팔십칠 세 노인이 집을 나갈 수는 없는 거였다. 사십 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으니 거의 반백 년이다. 그런 시어머니가 이제 와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거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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