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책쓰기 교육의 즐거움과 이로움
─ 나만의 책을 쓰며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아이들
│ 김미경
교사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 있다. 나를 떠난 뒤, 교육의 공간을 떠난 뒤 아이들의 가슴에 무엇이 남게 될까?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후에, 자신의 내면에 남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때 아이들과 나누는 수많은 작업 끝에 무엇이 그들의 내면에 남기를 바라는가?
‘나만의 책쓰기 교육’은 학생 스스로 저자가 되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를 설정하고, 차례를 구성하며, 자료를 수집해 한 권의 책을 쓰게 하는 교육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좋은 책을 스스로 찾아 읽고, 자신이 느끼고 사고한 내용을 글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표현력,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학생 스스로 찾아 읽고 싶은 분야를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내 의미 있는 주제를 설정하게 돕는 것은 나만의 책쓰기 교육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설사 책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학생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여 쓰고 싶은 주제를 설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글쓰기 교육, 독서 교육, 인성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음은 내가 2012년부터 중학교에서 시도한 책쓰기 교육이 학생들에게 실제로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 정리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나만의 책쓰기 교육의 즐거움과 이로움을 가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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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 간 벽을 뛰어넘는 통합적 사고력 향상
비교적 우수한 읽기 능력과 쓰기 능력을 갖고 있지만, 지문을 얼마나 정확히 독해하는가에만 갇혀 창조적인 도약의 기회를 맛보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책쓰기 교육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정해진 답을 찾는 데 국한된 독해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써야 했던 닫힌 글쓰기에서 벗어나 종합적으로 읽고 창조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이것들은 교과 통합적 성격을 띤다. 다음 학생들의 사례를 보면서 확인해보자.(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음을 밝혀둔다)
『작곡가 6인과 명곡』을 쓴 민지는 친구들과는 살짝 다른 곳에 관심 있다는, 공부할 때 케이팝(K-Pop)을 듣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몰래 클래식을 듣는다는 학생이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친구였는데, 음악을 하는 엄마와 언니 밑에서 자랐고 혼자 간단한 작곡도 할 수 있다는 자기소개를 어느 글에선가 읽고 음악 분야의 주제로 책쓰기를 강력히 밀어보았다. 민지는 자기의 남다름을 감추고 싶어 했는데,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청소년으로서는 정말 독창적인 음악 평론집을 썼다. 분량은 많지 않아도, 한 음 한 음을 충분히 느끼며 음악을 감상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글들이었다.
글쓰기 능력과 표현력이 탁월하여 평소에 눈여겨보던 학생이긴 하나 책쓰기를 통해 더 많은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강유는 서술, 묘사, 대화가 완벽히 갖춰진 소설 『파란』을 썼다. 창작인 데다가 글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여 완벽한 문장을 쓴다고 계속 고쳐 쓰느라 제한 시간을 맞추는 데 실패하였으나, 써서 낸 부분은 다이아몬드급이었다. 열다섯 살에 이 정도의 소설을 쓴다면, 분명 소설가나 극작가가 될 수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책쓰기 과정을 따라오면서 계속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주제를 케이팝으로 정했다가 아이돌 동향 모음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연아에게는 더 창의적인 주제로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연아는 ‘연예계의 빛과 그늘’이라는 주제로 논평집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료 조사와 주제 전개가 어려워, 소설로 형식을 바꿔 『또 다른 나의 세계』를 썼다. 본래 아이디어가 많고 적극적인 친구이긴 했으나, 이 정도의 창작 능력이 있는지는 학생 자신도, 교사도 몰랐다. 창작한 소설의 이야기 전개가 대화 중심으로 흘러갈 때는 다른 소설책을 몇 권 가져다 함께 읽으며 묘사문 쓰기의 묘미를 가르쳤다. 그랬더니 잘 알아듣고 막다른 골목을 뚫고 나가기도 했다. 책쓰기를 하면서 숨겨진 능력이 드러나고 커진 경우이다.
초등학교 특기적성 시간에 처음 접한 로봇 제작이 너무 재밌어서 그 후로도 꾸준히 로봇에 관한 책들을 읽어온 상민은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를 썼다. 로봇 연구의 첨단 분야인 휴머노이드의 역사, 휴보와 아시모의 발전과 그 밖의 휴머노이드에 대해 조사하여 로봇책을 쓴 것이다. 스스로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몰두하여 작업한 사례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하던 남학생 철형은 『지구 ─ 중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우주의 신비』를 썼다. 사고력과 표현력이 남다른 데다 풍부한 독서량을 가진 학생이었는데, 처음에 세 가지 주제를 뽑아왔을 때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로 유도해 이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철형은 어려운 주제임에도 과학 저술가 못지않게 정보를 잘 소화하여 써 내려갔다.
연주는 그림을 좋아하고 전공하고 싶어 하는 점을 살려 미술 평론집에 도전했다. 어렵더라도 시도해보라고 지도 교사가 권유하여 좋은 성과를 낸 사례다. 평소에도 정보 수집 능력, 성실성, 문장의 정확성이 돋보였던 연주는 학생다우면서도 개성적인 글로 좋은 미술 평론집 『명화 이야기』를 써냈다.
학업 능력과 글쓰기 능력 모두 매우 우수한 남학생이었던 석우 역시 반듯한 자세 뒤에 숨은 호기심과 열정이 책쓰기를 하면서 모두 드러났다. 그리스에 관한 책과 인터넷 자료를 섭렵하여 얻은 지식을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하며 풀어냈다. 석우는 자신의 책 『그리스 여행기』의 저자 소개글에서 “꿈도 목표도 아직 생길 듯 말 듯”이라고 감성적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저자도 독자도 읽고 쓰는 내내 행복했던 모범적 사례였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언니의 영향을 받아 셰익스피어와 해리 포터, 비틀스, 헤이온와이 책마을 등의 테마가 있는 가상 영국 여행기를 쓴 학생도 있다. 가영의 책 『좌충우돌 영국 여행기』는 일반적인 여행서처럼 정보 나열만 되면 평범해지기 쉬우니 가상 여행기식으로 써보라고 권유하여 완성도를 높인 사례다. ‘가상 여행’이라는 책의 콘셉트를 정하고 써보라고 하니 정보를 종합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하고, 또래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윤정은 자신의 관심사를 소프트웨어, 기계공학, 웹 디자인 등의 세 분야로 크게 나누어 각 분야에서 유망한 직업을 조사하여 정리한 책 『컴퓨터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 알고 싶은 컴퓨터 관련 직업들』을 썼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확하게 조사하고 정리하는 성실성에, 글쓰기 능력이 합쳐져 이루어낸 성과물이었다.
학업 능력이 우수한 이과형 여학생 연희도 『CSI가 말하는 CSI』라는 책을 쓰는 동안 자료를 선별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한층 커졌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CSI 같은 과학수사대 요원이 되고 싶어 했는데, 책을 쓰면서 이 분야에 대해 즐겁게 탐색했다. 집필하는 동안 책을 두 권 이상 스스로 구입했으며, 학교 도서관 책까지 합치면 네 권 이상의 책과 인터넷 자료를 종합하여 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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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결정 능력 향상
책을 쓰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주제 설정, 차례구성, 자료 수집, 집필 등 각 단계마다 학생들은 장벽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탐구하고 싶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내용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은 이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훌륭한 장대가 되어 사고력과 표현력의 도약을 끌어내고 자신감을 키워준다. 자신만의 꿈을 수줍게 간직하고 있다가 책을 쓰면서 한층 성숙한 진로의식을 갖게 된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해보자.
성적이 중하위권이었던 세영은 『단 하나뿐인 네일아트 북』을 썼다. 이 주제가 아니었다면, 책쓰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흥미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관심 주제를 정해 자기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었던 사례였다. 세영은 막연하게 네일아트에 관심 있는 정도였으나 저자 소개글에 “아직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노력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쓰고 나서 꿈이 확실해짐을 느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책을 쓰면서 이게 정말 나의 꿈일까, 이걸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그냥 여러 가지 경험 중에서 한 가지를 해보는 것”이고 그렇게 “여러 가지 경험을 겪으면서 언젠가 진정한 나의 꿈을 찾게 될” 것이라고 썼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과 고민의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기능직도 노력하는 만큼 우대받고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 우리 학생들이 행복하게 미래를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음악가가 꿈인 다희는 국어 점수는 매우 낮았으나 책쓰기 수업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자신의 꿈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악기를 전공하려면』이라는 책을 썼다. 쓰는 내내 공부가 많이 된다며 즐거워하였다. 차례를 정하고, 정보를 조사하고, 내용을 부풀리면서 막힐 때마다 교사에게 성실히 조언을 구하였고, 교사가 안내하는 모든 내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계속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웹툰 작가 지망생 수희는, 아직 미숙하지만 열정 있는 친구들에게 자세한 전문 서적보다는 쉽게 간추려진 자기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며 『Webtoon ─ 웹툰에 대한 모든 것』을 썼다. 책을 쓰는 내내 열정적으로 임했고 차례를 매우 잘 짜서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모범적인 사례였다.
국어를 좋아하긴 하나 정확한 텍스트 이해 능력과 문제 풀이 능력은 중상위권 정도였던 남학생 홍주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자기를 오타쿠라고 부르지 말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신나게 자신이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평글을 써 내려갔다. 홍주는 비평가 못지않은 감각적인 눈과 필력이 느껴지는 책 『이 애니를 아나요?』를 썼다.
수업 시간에 급우들과 거의 교류가 없던 여학생 다빈은 『거기 당신, 방송 BJ가 되지 않겠는가?』를 썼다. 극히 내성적인 겉모습 안에 넘치는 장난기와 창작욕을 품고 있었는데, 수행 평가 때 내는 글에는 만화를 즐기는 학생들 특유의 장난기가 늘 조금씩 묻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다빈의 끼와 꿈을 고스란히 살려 쓴 책이다. 저자 소개글에서 다빈은 “아프리카TV BJ에 완전히 빠져버렸”다며 열심히 돈을 모아 겨울방학에 방송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책은 그러기 위해 조사한 내용들을 담은 것이다.
승민 역시 같은 분야의 책을 썼다. 승민은 동영상 제작, 편곡,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미 팀을 만들어 유튜브에 전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자기 경험을 살려 『1인 창작자가 뭔데?』를 써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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