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일본 근현대사를 생각하다
전쟁으로 보는 근대
9·11 테러의 의미
처음 뵙겠습니다. 가토 요코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근대의 전쟁과 관련한 일본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모이신 분은 스무명 정도군요. 역사연구부 회원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학년은 다른가요?
─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입니다.
아, 딱 좋은 연령대네요. 저는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러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역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전공은 1930년대 외교와 군사입니다. 일본이 내리막길을 걷던 시대를 연구하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웃음) 물론 그 당시 역사를 당장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그 ‘형태’에 주목했습니다. 선전포고 없이 여객기를 공중에서 납치한 후 미국의 상징인 뉴욕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시켜 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것이었지요. 적의 내부로 침투해서 시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비행기를 이용해 일터와 생활공간을 기습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고한 시민이 일상의 공간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9·11테러는 적국이 미국을 상대로 일으킨 전면적 전쟁이라기보다, 국내의 무법자가 죄 없는 시민을 몰살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테러의 주체는 국가권력으로 진압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라면 전쟁으로 가는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각자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9·11테러 당시 미국은 전쟁에서 이긴다는 자세보다 악독한 범죄자를 잡는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싸움의 상대를 전쟁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은 과거 일본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 어느 시대를 말하는 건가요?
아직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주로 연구하는 193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이때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문가 출신의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가 당시 총리였는데요.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장제스蔣介石에 대해서 어떤 성명을 냅니다. 일본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는다”입니다.
네, 맞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蘆溝橋에서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충돌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데, 약 6개월 후인 1938년 1월 16일 고노에 내각은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는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보통은 ‘전쟁 상대국을 상대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의 군인과 고노에 총리를 보좌하는 참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쟁에 대해 더욱 기묘한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1939년 1월 현지에서 전투를 벌이던 일본군, 즉 중지나파견군中支那派遣軍 사령부는 “이번 사변事變은 전쟁이 아니고 보상報償,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손해, 손실을 갚는다’는 뜻의 보상補償과는 다르다.이다. 보상을 위한 군사행동은 국제관례상 인정된다”라고 말했습니다.
─ 보상이라는 건 처음 듣는데요.
무리도 아닙니다. 요즘 이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보상은 상대국이 조약을 위반하는 등 불법을 행한 경우 그 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해 실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중국이 일본과의 조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지키게 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당시 일본군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제관례롤 인정되던 보상은 훨씬 가벼운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국이 조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허용되는 실력행사는 화물이나 선박을 억류해 상대국을 곤란하게 만드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1937년 8월부터 본격화된 중일전쟁이 보상으로 인정받을 리는 없었습니다.
군인뿐 아니라 고노에의 참모들이 쓴 사료에도 중일전쟁을 상당히 이상하게 부르는 사례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 전쟁을 ‘일종의 토비전討匪戰’으로 보았습니다. 토비전이 뭘까요? 비匪는 비적匪賊입니다. 쉽게 말해 사회에서 불법행위를 일삼는 나쁜 사람, 갱 같은 무리를 말합니다. 토비는 이런 집단을 토벌한다는 뜻이지요.
결국 중일전쟁을 치르면서도 일본은 전쟁이 아니라며 상대국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2001년의 미국과 1937년의 일본은 동일한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보았습니다. 상대가 나쁜 짓을 했으니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무력행사를 마치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시대와 배경이 다른 두 전쟁을 비교함으로써 1930년대의 일본과 현대의 미국이라는, 언뜻 보기엔 전혀 다른 두 국가의 공통점을 발견한 셈입니다. 역사의 진정한 재미는 이처럼 비교하고 상대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자, 이제 ‘근대사 연구는 재미있을 것 같다’, ‘전쟁을 주제로 근대사를 연구하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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