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앉았던 의자
Ⅰ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이상한 이야기를 해보라면, 나는 바로 정영재를 떠올린다. 정영재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 범죄자였는데, 막상 그를 붙잡고 보니, 그는 전혀 그런 부류의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점에서 흔해 보이는 얼굴에, 말투에, 옷차림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영재에게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설명을 듣고 난 후에 나는 여태 그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있다. 다음 내용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그가 남긴 말들을 빠뜨리지 않고 종합하여 다시 써 놓은 것이다. 묘사나 표현에 약간 과장이 있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런 것들도 모두 최대한 정영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Ⅱ
정영재는 여덟 살 때 천사를 보았다. 그때 그는 비행기 안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구름이 뿌연 안개가 되어 유리창 바깥을 가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날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날이었다. 빠르게 지상을 달리던 비행기가 기우뚱해지며 하늘로 치솟고, 그때 온몸이 기분 좋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영재는 그것을 즐거워했다. 창 바깥을 보니, 비스듬해진 땅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는 기분이 온몸에 쓱 밀려왔다. 높게 서 있던 아파트들이 멀리 작게 보이게 되었고, 그 너머 보이지 않던 산과 들의 경계선들이 단숨에 모여들어 한눈에 보였다. 정영재는 그 풍경을 놓치지 않고 모두 보려고 했고, 최대한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생각에 더 깊이 빠져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영재의 눈앞, 비행기 유리창은 희뿌연 것으로 뒤덮였다. 발아래 수천 미터의 허공이 있다고 머릿속에다 대고 직접 소리치는 것 같았던 그 거창한 풍경이 구름에 가려 단숨에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습기와 물방울이 이룬 답답한 색깔 한 가지뿐이었다. 정영재는 실망했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깜깜하게 사방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밤에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비행기의 쇳덩어리 동체와 수백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한 덩어리로 1초에 몇 미터씩 공중으로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정영재의 눈에 그 사실이 보이지 않았다. 정영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만약 하늘을 날아간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 상상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구름 낀 모습은 재미가 없었다.
“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정영재는 옆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비행기 입구에서 집어 온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고 있었다. 이 남자는 심심할수록 정성스럽게 읽게 되는 것이 신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무의미하게 없애버려야 하는 시간일수록, 신문 기사의 작은 내용 하나하나는 더 가치 있게 읽혔다. 그런 만큼, 그는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지역의 부동산 시세에 관한 기사와 처음 이름을 읽어 보는 마사지 기계 사업가가 매우 유명하다는 기사 사이에서 몰두하고 있었다. 정영재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구름 속에 들어왔잖아.”
아버지는 그대로 신문을 읽으며 입과 혀만 움직여 말했다. 그리고 신문에서 ‘나도 발가락 관절 마사지 기계가 이렇게 큰돈이 될 줄은 몰랐다’라는 말을 읽으며, 이게 광고인지 기사인지 의심했다. 정영재는 계속 아버지를 쳐다보아도 더는 말을 계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이라고? 창문의 허연 색깔을 보고, 정영재는 다시 답답해했다.
그런데, 잠깐 그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정영재는 놀랐다. 구름이라니! 지금 내가 구름 속에 와 있는 거라니! 구름이야말로, 정영재가 하늘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날 방바닥에 누워 있을 때, 베란다 창 바깥으로 손바닥만 하게 드러나는 하늘에서 흰 구름을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여러 가지 형체를 이루고 높다랗게 떠서 여유롭게 느릿느릿 떠가는 흰 덩어리는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재미있었다. 파랗고 밝은 하늘에 흰 구름 하나를 보면, 소리도 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마음도 같이 가지런하게 느려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에 하얀 것이 뭉쳐 떠 있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손을 한번 뻗어서 그 경계를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길을 걷다가 본 커다란 구름이 높고 낮은 굴곡을 이루며, 저 언덕 너머 시 경계 바깥 땅이 있는 곳까지 이어져 퍼져 있는 것을 보면, 구름 자체가 들판이나 산맥 같은 커다란 지형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름의 모양을 보는 것이 하늘 위에 떠 있는 또 다른 세상의 풍경을 올려다보는 듯했다. 그 하늘에 떠 있는 다른 세상의 풍경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움직여 하늘 저편으로 이동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신기해 보였다. 하룻밤이 지난 뒤에 다시 하늘을 올려 보면 어제 있던 구름이 모두 사라져서, 흘러간 구름은 세상 바깥의 먼 나라로 끝없이 멀리 가 버렸다고 상상했다.
그런데 지금 정영재는 바로 그 구름 안쪽으로 직접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있었다. 정영재는 다시 한 번 얼굴을 창문에 대고 구름을 세밀하게 보려고 했다. 이게 구름이라고? 그렇지만 전혀 구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회색조의 단조로운 색깔이 아무 변화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동그란 덩어리가 마법처럼 하늘에 떠 있는 모습도 볼 수가 없었고, 갖가지 형상으로 굽이치는 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비행기가 구름을 지나가는 감촉도 전혀 상상한 것과는 달랐다. 정영재는 막연히 구름이 푹신푹신한 느낌일 거로 생각했다. 소파나 베개처럼 푹신한 것은 아니라도 적어도 무슨 털 뭉치나 눈송이처럼 부드러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상해서 잠깐 궁리해 보니, 그렇게 덩어리져 있는 것이라면 비행기가 자유롭게 구름 속을 드나들지 못할 테니 과연 그것은 아니겠다 싶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구름 덩어리에는 분명히 무슨 감촉 같은 것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다못해 연기 같은 것이 아주 빽빽하게 뭉쳐져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면 뻑뻑하고 보들거리는 느낌 속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나오면 다시 뽁, 하는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뚫린 곳으로 나온 감각이 있을 것 같다고 상상했다.
그렇지만, 지금 비행기가 구름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저 좌우를 보이지 않게 하는 뿌연 것이 끼어 있을 뿐이지, 아무 닿는 느낌도, 뚫고 지나가는 느낌도 없었다. 그냥 안개가 주변에 짙게 낀 것 같을 뿐이었다. 안개 속을 달릴 때, 특별히 안개 뭉치를 손으로 훑고 다리로 안개 덩어리를 밀치는 것을 느껴보지 못 했듯이, 비행기도 그냥 별 신경 쓰는 것도 없이 구름 속을 날고 있었다.
정영재는 땅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그렇게 신기해 보였던 구름 속을 지나고 있는데, 비행기가 이렇게나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누구를 붙잡고 억울하다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재미가 없어진 정영재는 고개를 돌려 다시 비행기 안을 보았다. 비행기 소음이 통로 안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사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먼 자리에서 칭얼대는 아기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아직도 신문을 보며 발가락 관절 마사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정영재는 반대편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쪽 편 창가에는 진짜 구름 속 같은 풍경이 보였다. 정영재는 감탄했다. 비행기 주변을 감싼 구름이 옅은 곳이라, 구름층과 구름층 사이의 먼 곳까지 보였다. 그 풍경 속에는 큰 구름이 이루고 있는 커다란 산과 같은 모양과 그런 산들이 겹겹이 겹친 사이에 나타난 갖가지 모양의 계곡 같은 형상이 보였다. 구름이 여럿 쌓여 거대한 층계 모양이 된 것도 있었고, 커다란 구름이 기둥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에 깔린 구름 위로 한참 더 하늘 높이 올라간 곳에 또 한 겹 뒤덮고 있는 더 높은 구름층에 닿은 모양도 보았다. 정영재는 몇십 층짜리 건물 보다 몇 백 배나 더 큰 거인이 갑자기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서 저 층계 모양의 구름을 걸어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구름이 이루고 있는 이 풍경은 금방 흩어져 사라지는 회색 연기로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구름 덩어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굳게 모여서 그 경치는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그것 때문에 더 신기해 보이는 것 같았다.
정영재는 이 풍경이야말로 구름 속에 들어가서 보는 신기한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앉아 있는 가까운 쪽에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반대편에 이 모습이 보이는 것이 억울했다. 이럴 거면 일부러 창가 쪽에 앉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편 창문을 보아야 한다면, 차라리 반대편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복도 쪽 자리에 앉는 것이 오히려 더 유리했다. 구름의 위쪽 면을 하늘을 날아올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반대쪽 창문에 가까운 곳이었다. 정영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쪽 창문으로 재빨리 가보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허리에 채워진 안전띠가 느껴졌다. 정면을 보니, 안전띠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전등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안전띠를 매라고 하며 걸어 다니며 돌아보던 승무원의 웃는 얼굴도 기억났다. 훌륭한 웃음이었지만, 정영재는 그 웃음을 보고 겁을 먹었다. 지금 일어설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희뿌연 연기를 뿜는 것처럼 작은 구름 파편들이 비행기 옆으로 지나갔다. 반대편 창문으로 보이던 풍경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고, 비행기가 상승하면서 다음 구름층으로 들어가면서 곧 다시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았다. 정영재는 안타까워하면서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다가 그저 시선이 움직이는 사이에 다시 앉아 있던 쪽의 가까운 창밖을 보게 되었다.
정영재가 천사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정영재가 반대편 창밖을 안타깝게 멀리 넘겨보는 동안, 가까운 쪽의 창 바깥에도 비슷한 경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가깝게 둘러싼 구름을 비행기가 잠깐 뚫고 나왔을 때, 구름이 깔린 먼 경치가 모두 보였다. 넓게 펼쳐진 구름으로 된 평원이 있고, 하얀 연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언덕과 절벽과 치솟아 오르는 용의 흔적 같은 모양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영재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갖가지 복잡한 풍경이 가까이 덮여 오는 뿌연 구름에 가려지기 직전이었다. 회색 구름 중에 조금 더 밝고 새하얀 부분이 있었다. 거리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500m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이지 싶었다. 구름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으면서, 조금씩 흰 털처럼 가는 구름발 이 서 있어서, 풀이 돋아 있는 초원처럼 보이는 모습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 하얀 부분이 있어서 그 구름으로 된 초원 풍경 가운데에서 약간 더 위로 솟아 있는 작은 둔덕이나 덤불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 위에 천사가 있었다.
천사는 편안해 보이는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밝은 빛의 나무 의자였다. 까닥 약간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천사는 편안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었다. 까만 머리칼에 두 눈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답게 보일 만큼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초원처럼 편안해 보이는 하얀 구름이 계속 떠 있었다. 그 구름 위에 놓여 있는 의자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일 뿐이었다. 정영재가 무엇을 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집중하려고 했을 때, 비행기는 다시 재빨리 높은 고도의 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숨에 창문은 모두 뿌옇게 변했다. 정영재는 당황해서 반대편 창문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뿌옇게 구름으로 막혀 있었다. 사방으로 둘러보아도, 눈에 보이는 여든여덟 개의 창문이 모두 회색으로 다시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직후에는 정영재도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도 없었다. 그냥 어쩐지 주변 풍경 사이에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 휙 지나갔다는 정도만 알았다.
다만 그런 중에도 분명히 굉장히 놀라운 신비에 접했다는 감각은 아주 강하게 있었다. 온 정신에 주룩주룩 물줄기가 흘러내리듯이 감격한 것 같은 기분이 지나갔다. 정영재는 멍하게 있었다.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서, 비행기 안의 공간과 시속 800km의 속도와 하늘 가운데의 온 구름을 다 가로지르는 것 같았다. 그때껏 느껴본 적이 없었던 두려움과 낯선 느낌이 강한 희열에 섞여드는 감정이 자꾸 솟아 나와 심장이 막 뛰었다. 옆 자리의 아버지가 신문을 부스럭거리며 접고, 비행기의 안전띠 표시등이 꺼졌다. 그 소리에 정영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접어 넣으면서, 이미 발가락 관절 마사지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잊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고개를 빼고 기웃거렸다. 다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 승무원들이 언제 자기에게 음료를 갖다 줄까 짐작하는 눈치였다. 정영재는 그때 자기가 본 것을 바로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정영재 자신도 뭘 보았다고 말을 해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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