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위한 무장
모든 것은 이미 책 속에 다 있다. 그리고 책에는 사랑하는 기술도 들어 있다. 정신분석학자 카트린느 미요Catherine Millot는 “만약 내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더라면, 결코 사랑에 빠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프루스트의 이 소설을 읽지 못한 채, 질투라는 감정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을까? 그 소설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라 로슈푸코Francois de la Rochefoucauld는 “사랑에 관한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고, 앙드레 지드André Gide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직접 전쟁터에 가지 않은 기자들이 기사에서 사용한 언어가 실제로는 부상당한 군인들이 자신이 겪었던 감정과 고통을 표현했던 말들에서 빌려 온 것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비평가 장 스트로벵스키Jean Starobinski에 따르면 감정과 정신 상태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언어 혹은 예술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고 했는데, 언어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비로소 그 감정과 기분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바로 그래서 인간의 내적 경험은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어는 우리의 가장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본보기를 제공한다. 이 점이 바로 독서 치료가 가능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다.
영미권 독서 치료의 선구자인 새디 피터슨 델라니는 1916년경에 이미 알라바마의 한 병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공포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군인들의 심리적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독서 치료를 임상에 적용했다. 하지만 독서 치료는 1961년이 되어서야 《웹스터 인터내셔널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겨우 등장했다.
“독서 치료란 의학과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치료 요법의 하나로, 선택된 작품들을 읽게 하는 것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필요한 방향으로 독서를 유도하여 환자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을 뜻한다.”
1994년 마르크 알랭 우아크냉이 파리에서 출간한 《독서 치료》는 독서와 언어가 서로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에 관해 프랑스에서 처음 소개된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책의 영향력’을 탐구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자유롭게 펼쳐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아크냉이 생각하는 독서 치료는 단어들이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법 같은 작업인 해석학을 통해 언어의 매듭을 풀어내고 우리 삶과 창조력을 가로막았던 정신의 매듭을 풀어내는 시학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 치료를 통해서 개개인들은 어딘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와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 결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언어와 더불어 우리도 매 순간 자신을 재발견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국과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심리학은 이러한 독서 치료가 가진 진정한 영향력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실정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독서 치료에서는 활력과 생동감을 주는 훌륭한 문학 작품들이 모든 사람의 경우에 적용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이런 작품들에는 여러 겹의 의미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은유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마치 쓸모없는 대팻밥이나 파리처럼 아주 업신여겨지고 하찮게 취급되는 것 같다. 영미식 독서 치료 방법인 ‘비블리오 코치biblio-coach’는 문학 작품보다는 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사들도 안심하고 다룰 수 있는 두 가지 범주의 책을 더 선호한다. 하나는 대중 심리학 분야의 책들로 그 내용은 대부분 잘사는 법(특정한 문제에 관한 정보 등)과 관계있는 책들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계발(개인의 자기계발, 자기 긍정, 자아 존중,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맞서는 법 등)’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다.
이것들은 행동 심리와 인지 치료TCC에서 영감을 받은 치료 방법들인데, 병적인 공포나 비관적인 생각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런 책들은 행동이나 심리가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안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의료행위로 전락할 수 있는데, 마치 의사는 약을 처방하듯이 책을 권하고 환자는 치료를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크고 작은 고통을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영국에서 프란츠 카프카, 샤를로트 델보Charlotte Delbo 또는 안토니오 로보 안투네스Antonio Lobo Antunes의 작품들이 활발하게 번역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미국의 선정 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을 읽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 목록에 있는 독서 치료를 위해 선정된 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쉽다(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여기에 선정된 책들은 전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들이 많다. 가령, 일에 기진맥진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확실히 표시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쉬운 설명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다’라는 단어는 질겁할 만한 단어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터무니없는 단어인 것 같다. 왜냐하면 문학 또는 시에는, 다시 말해 예술작품에서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정확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열네 살의 한 중학생이 생각난다. 그 소년은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의 《몽유병자들》을 일곱 달에 걸쳐 읽으며 감탄했다고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중학생은 책의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읽고 있는 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부차적일 때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책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페이지 위에 쓰여 있는 신호들에 녹아 들어가고, 해석이 아닌 텍스트 속으로 흠뻑 젖어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는 의미를 묻는 일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모든 즐거움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즐거움이란 일종의 현기증 같은 것이다. 2세기도 더 전에 랍비 나흐만 드 브라트슬라브Nahman de Bratslav가 분명히 말한 것처럼, 이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묻지 않는 것이 낫다. 길을 잃고 이리저리 가보는 자신만의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이제 몇몇 의사들이 처방의 하나로 환자에게 진정한 책을 권하고 있다. 작가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마리 디디에Marie Didier는 유달리 불안에 떠는 환자들에게 에티 힐레숨Etty Hillesum의 《뒤엉킨 삶Une vie bouleversée》에 빠져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가 일어나던 중 어느 젊은 여성이 웨스터보르크의 임시수용소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일기이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부조리 속에도 의미가 충만한” 삶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에티는 후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다.
정신과 의사인 모리스 코르코스Maurice Corcos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이 책 속에는 밝고 환한 태양과 같은 환희와 쾌락주의적인 색채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사는 이가 우울증에 빠진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면, 윌리엄 스타이런의 놀라운 소설 《보이는 어둠》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즉,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책들에 나오는 화자나 주인공은 이러저러한 감정의 고통을 겪고 난 뒤에 자신의 성공이나 상처를 독자들에게 유익하게 설명해준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주인공들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생각하면서 감정 이입해 책 속의 대화에 참여한다.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배우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해주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들은 분명히 의학보다 정신 철학에 훨씬 가깝다. 그래서 산드라 로지에Sandra Laugier나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과 같은 철학자들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해석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소설 (또는 텔레비전 드라마, 여기에도 먼저 대본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삶에 열정적으로 흥미를 쏟고 이끌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감정, 맞닥뜨리게 되는 윤리적인 갈등, 경험과 정신적인 모험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본보기가 되는” 등장인물들의 풍요롭고, 독창적이며, 비범한(이 단어가 지닌 대단히 인간적인 의미에서) 모험들을 함께 겪고 뒤따라간 덕분에 이제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가장 압축해서 살아본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이 보여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면서 그 소설을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