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가 일하는 이유
나를 잃지 않기 위하여
‘사회 의사’로서의 정치학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이 제게는 단순히 나태함을 경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이란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한편 ‘침식을 잊고 일에 몰두한다폐침망찬 廢寢忘餐 ─ 옮긴이’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침식을 잊고 놀이에 몰두한다’라고는 하지 않으니 사람이 마음속 깊이 몰두하는 것은 역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일’은 인생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왜 사람이 일을 하는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정식으로 질문을 받는다면 무어라 답하면 좋을지 몰라 곤란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돈을 위해서’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일지라도 실은 ‘아니, 잠깐만. 정말로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람은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해 보이나 실은 간단하지 않고, 누구나 아는 듯하나 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역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1장에서는 ‘사람은 왜 일을 하며, 또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정치학 연구자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제 전공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원래의 출발점은 정치학 중에서도 동서고금의 정치사상을 비교 연구하는 ‘정치사상사’였습니다. 정치학이란 정치에 관해 사고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저는 정치가들처럼 정치 그 자체를 행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정치학은 학문으로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 경제가 ‘일류’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일본의 정치는 삼류라고 일컬어졌습니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아도 일본 정치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문으로서 정치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한데 묶어서 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다만, 실제 학문적으로 보면 둘은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경제학은 과학적으로 수량화하여 분석할 수 있으나 정치학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학은 아날로그적인 학문이므로 경제학과 달리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초한 예지나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용無用의 학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실은 저 또한 젊은 시절에는 ‘정치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현실과 칼싸움을 하듯 접전을 벌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마치 생명의 반짝임이 없는 ‘고고학’처럼 여겨져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그 위상을 잃고 현재의 모습에 모두가 의문을 품게 되자 경제학의 인기는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정치학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최근에는 전에 없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 경제가 깊은 미궁으로 떨어져버렸기에 정치학을 통해 작은 실마리라도 찾으려는 생각이겠지요.
정치학의 핵심은 ‘사회 의사’ 역할에 있지 않나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병이 들었을 때 무슨 이유로 어디가 나빠졌는지를 진단하는 것이지요. 고용 상황이 왜 이렇게 악화되었는지, 월급과 보너스가 왜 줄어들었는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왜 낮아졌는지, 또 다양한 사회보장제도가 왜 파탄 직전에 있는지 등에 대해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정치학자는 실제 의사처럼 환자가 스스로 찾아와 컨디션이 나빠졌다고 말해야 진찰을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스스로 최상의 컨디션이라 자부하는 이에게 “당신은 이미 병에 걸렸습니다.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몸과 마찬가지로 사회 또한 ‘만성중독’에 걸리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급성질환에 비하여 만성중독은 쉽게 걸리지는 않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심각해진 후에야 알게 되어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버블경제의 붕괴나 리먼쇼크가 바로 이런 예에 해당합니다. 사태가 파국에 이르기 전에 그 조짐을 찾아내 어떤 형태로든 경고를 하는 것 또한 정치학자의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은 쉽게 하지만 저 또한 사회의 내부 구성원이므로 사회를 진단하기가 솔직히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축적해온 경험치와 감으로 분석을 해나갑니다. 말하자면 정치학자란 ‘사회의 감정사’ 같은 역할이므로 이를 위해서라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시점을 필요로 합ㄴ니다.
이 일의 특징을 하나 더 들자면 바로 ‘연구실에서의 학문’과 ‘사회 활동’이라는 두 가지 일을 번갈아가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하고 있긴 하지만 학자의 자리에 몸을 두고 있기에 저는 문헌을 살피고 논문을 쓰는 이른바 ‘상아의 탑’ 같은 학문에 전념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인재를 육성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사회 의사’이기도 하기에 적극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바, 알아낸 바를 외부를 향해 발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꼭 매스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닿는 대로 가능한 한 제 생각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습니다. 외부를 향한 활동 없이 연구를 위해 갇혀 지내기만 해서는 정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족할 뿐 아니라 감히 ‘살아 있는 학문’을 한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나 인문학의 성과를 눈앞에 있는 현실과 사회에 적용하는 일, 즉 ‘튜닝’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저의 역할이며 이렇게 국면이 다른 두 장場을 왕래하는 일이 반드시 시너지를 가져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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