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내일도 또 지긋지긋한 일을 하겠지?”
잠들기 전 나의 연인이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 일이라니. 당신은 예술을 하는 거라고.”
나는 뒤에서 그녀를 보듬으며 말했다.
“아니라네, 예술은 아니라네. 그냥 가난한 재롱이지.”
알고 보면 30대 초반 우리 두 사람은 나름 21세기의 예술가적인 커플이었다.
내 연인의 직업은 연극배우였다. 대학로에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극단에서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그녀는 이 신도시의 한 극단에 취직했다. 계약 기간 2년에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흔치 않은 극단이었다. 그건 신도시의 유명 백화점에서 지원하는 소극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그곳에서는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호프, 사무엘 베케트, 장 주네의 작품을 공연하지는 않았다. 방학 때는 아이들을 위한 아동극을 올렸다. 봄과 가을에는 연인들을 위한 로맨스 작품을 공연했다. 백화점 회원들은 그녀가 출연하는 소극장 공연을 반값에 볼 수 있었다. 공은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을 ‘반값 연극’이라 불렀다. 반값 연극에서 내 연인의 역할은 거기서 거기였다. 작고 통통한 그녀는 엄마 아니면 파출부 혹은 그에 가까웠다. 앞치마와 식칼, 푸념과 수다는 무대에서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나의 연인은 수다스러운 분장을 한 피에로인 셈이었다.
내 직업은, 직업이라 말하긴 민망하나 한때 소설가였다. 물론 소설가라 말하기보다 대개는 논술학원 강사로 둘러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20대 후반에 한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에 오롯이 3년은 소설만 썼다. 학원에서 번 돈으로 당분간의 생활비는 충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사이에 나는 내가 진짜 유명해질 거라 착각했다. 키가 훤칠하게 큰 건 아니지만 콧대가 있고 눈썹이 짙고 눈이 부리부리해 나름 사진이 잘 받았으니까. 거기에 타고난 뼈대가 굵어 어깨도 다부져 보였다. 물론 그 때문에 내 직업을 모르는 사람은 소설가보다 첫인상이 유도 선수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 내내 나는 두 편의 단편만 문예지에 발표했다. 고로 세상에 나온 내 소설은 책으로 묶이지 않은 단편 세 편이 전부였다. 거기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에 딱 한 번 일간지에 칼럼을 썼다. 젊음과 열정에 대해 젊은 문학인의 시각으로 쓴 칼럼이었다.
열정,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답잖고 의심스러운 단어. 젊음, 이 시대가 만든 사회적 절름발이의 오타 아닌가?
물론 나는 젊음과 열정에 대해 소신 있게 냉소적으로 쓰진 못했다. 신문사에서 청탁받을 당시 젊음과 열정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써달라고 부탁받아서였다. 나는 신문사의 가이드라인을 당당하게 거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단락에 이리 썼다.
‘나는 젊다. 그건 살면서 한 번쯤 뒤통수를 맞아도 웃어넘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열정의 힘이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순박했다. 지금의 나라면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바꿨을 거다.
‘나는 아직 젊다. 그건 이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털어 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지닌 열정의 힘이다.’
의정부 시청의 공무원인 아버지는 신문에 자그마한 사진과 함께 실린 내 칼럼을 자랑스러워했다. 실패한 외판원도, 마약중독자 재벌 2세도 등장하지 않는 건전한 칼럼이었으니까. 그 시기에 아버지는 내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건 자랑스러워했지만 전업 작가로 사는 일만은 극구 반대했다. 반면 나의 연인은 내 선택에 분노하지 않았다. 나를 뜯어말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한마디만 덧붙였다.
“괜찮아, 소설가인 태권하고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까. 나란 여자, 그런 여자.”
연인은 나를 태권이라 불렀다.
손태권이란 이름 때문인지 다부진 어깨 덕인지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내게 황당한 요구를 종종 해왔다. 발차기를 해보라거나 한판 붙어보자거나. 심지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어느 술자리에서 만난 평론가는 애국 작가로 보수 정권에 어필하려는 필명이냐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아주 싫어했다. 공은 손유도보다 그나마 손태권이 그럴듯한 이름이라며 위로해주었다.
사실 나의 연인 공은 첫 술자리에서 만난 날부터 격투기 여사범처럼 “태권!”이라 소리 높여 나를 불렀다. 후배 녀석이 처음 쓴 희곡으로 올린 공연 뒤풀이 자리였다. 나보다 세 살 연상의 그녀가 밤새 몇 번이나 태권이라 외쳤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앞차기, 돌려차기 같은 발차기도 섞어가며 외쳤다. 희한하게 그녀가 외치는 그 태권이란 말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술에 취해 짧은 팔다리로 태권도 시범을 보여준다며 어기적대는 서른 넘은 여배우의 자태라니. 그 후로 몇 번을 누나라고 부르다가 함께 모텔 방의 낡은 침대에서 서로 킬킬대며 뒹군 이후로 나는 그녀를 공이라 불렀다. 나의 연인은 작고 동글동글한 몸집에 성까지 공 씨였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하루, 이틀, 일주일을 보낸 게 그리 오래는 아니었다. 사귄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온 건 한 달 전이었다. 전업 작가를 포기하고 재취업한 대학 선배의 논술학원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물론 지하철 7호선에서 국철을 갈아타고 의정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있었다. 다만 그곳에서 아버지와 마주 보며 한숨을 푹푹 쉬고 싶지 않을 뿐.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나를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분보다 못한 놈으로 바라본 지 이미 오래였다.
그렇게 공과 함께 살았지만 우리는 밤낮이 달랐다. 연인은 자정만 넘어도 졸려서 눈을 못 뜨는 아침형 인간이었고(희한하게도 술에 취하면 날을 새도 끄떡없었다) 나는 야행성이었다. 이곳에서 함께 산 뒤로 나는 그녀를 먼저 재운 후에 거실로 나와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태권, 재미있는 이야기 없어? 저녁에 에스프레소를 마셨더니 잠이 안 오네.”
잠든 줄 알았던 공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이야기?”
공이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깜빡대며 잠투정하는 아이처럼 속삭였다.
“그러니까 괴물이 나타났는데…… 그 괴물이 금방 주인공을 잡아먹을 줄 알았는데…… 고도비만이라…… 주인공을 쫓아오다 지쳐가지고…….”
그때였다. 뜬금없이 자정 다 된 시간에 메시지 알림음이 들려왔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이력서를 보낸 피트니스 남자 사우나였다.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헬라홀 피트니스 남자 사우나입니다. 내일 만나뵐 수 있을까요?
공이 옆으로 다가와 내 문자메시지를 눈으로 읽었다.
“태권, 언제 이력서 보냈어?”
“아까.”
겨우 세 시간 전에.
취업 사이트를 훑는 건 요즘 내 습관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밀레니엄 특급 똥 덩어리가 된 기분이라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질릴 대로 질려서 사교육 쪽은 접어두고 다른 곳들부터 훑었다. 그렇게 취업 사이트를 검색하다 발견한 공고가 이 신도시에 위치한 피트니스 센터 내 사우나 관리자 업무였다.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 걸어가면 다리 건너 20여 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 원룸촌과 달리 신도시 최고의 부촌으로 소문난 곳이 바로 거기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우선 땜빵으로 돈을 벌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이 시간에 문자를 보내고 그래? 그거 제대로 된 회사에서 취하는 품위 있는 행동이 아닌걸. 취업 사기 아니면 오지게 사람 부려먹다 내던질 게 뻔하겠네.”
공이 손사래를 쳤다.
“내 생각도 그래. 그렇다고 이렇게 놀 수도 없잖아.”
무엇보다 나에겐 현실적으로 급격하게 바닥을 찍고 있는 통장 잔고를 채워줄 숫자가 필요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답장을 보낸 지 1분도 안 되어 헬라홀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 오후 1시 면접에서 뵙겠습니다.
공은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헬라홀…… 헬라홀…….”
공은 자신이 출연했던 반값 연극 아동극의 마녀처럼 주문을 외우듯 그 이름을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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