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교시
내 마음 알아주기
지치고 힘들어서 휴학을 하고 싶다는 문수가 말했다.
“마음이 좀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많이 불편한가보구나. 그래, 어떻게 하면 좀 편해질 것 같니?”
“잘, 모르겠어요…….”
“그럼 문수야, 네 마음이 편하다는 건 어떤 거니?”
한참 생각한다.
“……그것도 잘……모르겠어요……. 전 사실……마음이 편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민재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며 속상해했다.
“아무도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요. 다들 너무합니다.”
나는 민재의 원망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많이 서운한가보구나. 그럼 내가 다 들어줄게. 네 마음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봐. 오늘 한번 시원하게 풀어보자.”
민재는 당황한다.
“어……제 마음은요……, 그러니까……이게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어……그러니까 자꾸 짜증이 나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하는 청춘들이 많다.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다가도 막상 편하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면 난감해한다. ‘그게 뭐 어렵다고 설명을 못하지?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혹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질문 하나 해보자.
“넌 요즘 마음이 어때?”
누군가 당신에게 물었다. 무어라 답할 것 같은가? “응, 나는 말이야……” 하며 가슴속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을 편하게 잘 풀어낼 수 있는가? “괜찮아.” “그냥 그래.” “힘들어.” 이런 간단한 대답 말고 감정의 종류와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 타인에게 내 마음이 어떤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싫을 수 있다. 물어보는 사람에게 다 얘기해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나 스스로는 내 마음이 어떤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 알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하게 답을 하지 않는 것과 나 스스로도 잘 몰라서 뭉뚱그려 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청춘들이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한 단어
수업 시간에 ‘정서’에 대해 공부하다가 그룹 활동을 한 가지 했다. 주제는 ‘부정적 정서 적어보기’. 우리가 느끼는 ‘나쁜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를 조원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활동이다. 그런데 확인해보면 질문에 맞지 않은 답을 쓴 경우가 많다. 대부분 부정적 정서의 ‘종류’가 아니라,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경우’를 적는다. 다시 말해, 기분이 ‘어떻게’ 나쁜지를 나타내는 단어 대신에, ‘언제’ 기분이 나빠지는지를 적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시험 못 봤을 때, 약속에서 바람 맞았을 때,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이런 식이다. 잘 생각하고 다시 써보라고 하면 당황한다. ‘쓰라고 하는 거 썼는데? 다른 어떤 걸 쓰라는 거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청춘들은 어느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왜 요구 사항과는 다른 내용을 적는 걸까?
‘언제’와 ‘무엇 때문에’는 아는데 ‘어떻게’ 나쁜지는 잘 몰라서 그렇다. 자신이 ‘언제’ 기분이 상하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기분이 나빠지는지는 알지만, 부정적 정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적으려니 어렵게 느껴져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을 해준다.
“시험을 못 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우울해요.” “슬퍼요.” “속상해요.”
“사람들 앞에 나와서 발표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떨려요.” “불안해요.” “도망가고 싶어요.”
답을 말하며 눈빛이 반짝인다. “아, 그런 거~. 이제 알겠네!”
자, 이제 뭘 써야 하는지 알겠다. 부정적 감정의 ‘종류’를 써야하는 거구나! 그런데 또 어렵다. 조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웅성웅성한다. “우울한, 슬픈, 불안한, 떨리는…… 또 뭐가 있지? 이게 다 아닌가?”
물론 아니다. 한번 보자.
우울한, 슬픈, 서러운, 불만족스러운, 지루한, 불안한, 답답한, 걱정되는, 겁나는, 주눅 든, 무기력한, 절망적인, 떨리는, 긴장되는, 화가 나는, 억울한, 기가 막힌, 아까운, 서운한, 어이없는, 부담스러운, 허전한, 허무한, 공허한, 고통스러운, 두려운, 창피한, 조급한, 아쉬운, 귀찮은, 무서운, 피곤한, 비참한, 패배감, 죄책감, 소외감, 외로움, 거부감, 수치심, 자괴감, 질투, 시기, 분노, 혐오, 경멸, 낙담, 배신감, 박탈감, 자격지심, 초조.
부정적 정서나 불쾌한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를 이 정도만 정리해도 50가지다. 50개 단어가 모두 다른 기분, 다른 느낌을 표현한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라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허전’, ‘허무’, ‘공허’도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담고 있는 내용과 감정의 강도는 서로 다르다. 공들여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 느끼는 감정은 ‘허무’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는 몹시 ‘허전’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서 ‘허무’하거나 ‘공허’하지는 않다. ‘공허’는 인생이 텅 빈 것 같은 마음이다. 차이를 알고 감정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할진대 청춘들은 이 많은 부정 정서를 한 단어, 한 느낌으로 통일하곤 한다. 요즘 부정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맹활약을 펼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짜증’이다. 청춘들은 “짜증 나!” 한마디로 온갖 부정 정서를 표현한다. 공든 탑이 무너져서 짜증 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짜증 나고, 시험에 떨어져서 짜증 나고,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짜증 난다. 불안해도, 답답해도, 슬퍼도, 화가 나도, 낙담해도, 떨려도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걔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아, 짜증 나.”
“전철 왜 안 와. 짜증 나게.”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 완전 짜증!”
“다음 주 PT 어떻게 하지, 어우, 짜증 나.”
“졸업하면 뭐 하냐. 와, 정말 짜증 난다!”
이 상황이 어떤 건지 색깔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연두와 초록은 다르다. 노랑과 주황도 다르다. 노란색도 여럿으로 나뉜다. 노랗고, 누렇고, 노리끼리하고, 노르스름하고, 샛노랗고, 노릇노릇한 건 모두 노란색을 바탕으로 한 다른 색깔들이다. 슬퍼도 짜증, 불안해도 짜증으로 표현하는 건 노르스름하고, 노릇노릇하고, 샛노랗고, 누런 색을 ‘노랑’으로 합쳐버리는 것과 같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색깔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슬프면 슬퍼하고, 두려우면 두려움을 알아주고 달래줘야 하는데, 자신이 슬픈지 두려운지도 몰라주고 기분이 나쁘면 대뜸 짜증이라는 단어를 불러낸다.
짜증은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 또는 그런 성미’를 일컫는다. 짜증 난다는 말을 많이 해서인지 요즘 욱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내뱉은 ‘짜증 난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자신이 짜증이 난 것으로 생각하며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는 거다. 벌컥 발산하는 화를 통해 해결되는 감정은 거의 없다. 마음 안에 고스란히 쌓여간다. 제대로해결되지 않은 부정적 감정은 내면에 쌓여 우울과 불안이 된다.
우울한 청춘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대 우울증(질병코드 F22, F23 기준) 환자 수는 2010년 4만 5900명, 2015년 5만 1731명이다. 5년 동안 거의 6000명이 늘었다. 남녀로 나눠볼 때 2015년에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20대 남성은 2만 2186명, 여성은 2만 9545명이다. 남녀 간 차이가 크지 않다. 우울증은 보통 여성이 남성에 비해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많은데, 20대의 경우 수치가 비슷하다. 지난 몇 년간 우울증 여성의 수는 비슷하게 유지된 반면에, 남성 환자 수가 40퍼센트 이상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해석해보자. 첫째, 청춘은 이전보다 더 많이 우울하고 불안하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 등이 큰 원인이다. 둘째, 감정을 살피며 스스로 병원을 찾는 청춘이 늘고 있다. 셋째,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우울한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자도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돌보는 것이다. 20대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크다는 점은 걱정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치유하려는 청춘이 늘어나고 있는 건 다행이다. 몸이 아플 때 의사에게 진료 받고 약도 먹듯이, 마음이 힘들 때도 상담과 치료를 통해 회복하는 건 당연하다. 부끄럽다 여기며 괜찮은 척하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청춘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솔직하지도 않다. 지치고, 힘들고,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힘들고, 슬프고, 두려운 건 남들보다 무능하고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라며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괜찮다고, 괜찮아지고 강해져야 한다고 다그치며 자신을 몰아세운다.
원우도 그랬다. 사람들 앞에서 강한 척했지만 속마음은 힘들었다. 거짓 웃음을 지으며 버티다가 지쳐버렸다.
잘해야 한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강해져야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겉으로 난 늘 웃고 있다. 당당한 척한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버티고만 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나는 많이 힘들다.
상우는 두렵다고 말해버리면 더 두려워질 것 같고, 그러면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삶이 무서웠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댔다.
나는 힘겹게 산다. 경쟁이 치열한 가시덤불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먹고 경험이 쌓이면 삶의 문제에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안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본 시험은 아직도 힘들고 겁난다.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는 언제나 아프다. 어릴 때는 힘들고 아플 때 부모님이 위로해주시면 괜찮아지곤 했다. 이제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친한 친구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이겨내야 한다. 내 몫이다. 그걸 알기에 더 아프고 겁나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두려운데, 두렵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