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침묵의 벽 너머로
전기 자동차의 장단점과 찬반양론을 들여다볼 때 나는 사전 조사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다. 초보자의 견지에서 다가서는 나에게 내부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나는 같은 방법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초보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암스테르담과 런던에 있는 친구와 지인에게 금융의 세계에 대해 궁금한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접촉한 사람들은 거의 다 금융에 대해 분노했다. 그러나 왜 분노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2008년 미국 은행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하고, 뒤따라 1930년대 이래 최대의 금융 공황이 닥쳐 시장이 붕괴될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계속 이런 이야기만 했다. 「금융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준다면야 고마운 일이겠지만, 무슨 설명을 듣든 간에 이틀 내에 기술적인 내용을 몽땅 까먹을 겁니다.」
그러면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다시 물었다. 금융이나 은행가들과 관련해, 당신이 들은 답변을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마음에 심히 걸리는 질문은 있습니까? 그런데 대화를 나누기가 참 어려웠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먼저 분통을 터트리는 말을 쏟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사람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나왔다. 「우리 세금으로 은행가들에게 구제 자금을 마련해 줘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은행가들은 상여금까지 받아 챙겼습니다. 그들이 받은 상여금을 아무도 다시 토해 내지 않아도 된다니! 그들 때문에 재정 지출이 삭감돼서 가장 못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 보세요. 반면에 은행가들은 우리가 구제해 주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도 못했을 은행들에서 거액의 상여금을 받아 챙긴다. 이겁니다.」 결국 내 친구들이 던지던 질문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가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용인하면서 살 수 있을까?〉 출발점으로서는 꽤 괜찮은 질문 같았다. 물론 이보다는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야 하겠지만.
나는 런던에 자리를 잡자마자 주소록을 꺼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런던 금융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반응이 돌아오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나의 새 근거지를 둘러볼 기회로 삼았다. 예전에 나는 늘 런던을 베를린이나 파리와 똑같은 범주의 도시, 즉 커다란 유럽 국가의 수도이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런던은 베를린과 마드리드와 파리를 〈모두 합친〉 규모의 도시였다.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 거리를 걸었다. 그제야 내 눈으로 런던의 금융가를 뜻하는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 혹은 줄여서 〈시티〉 ─ 이 이제는 더 이상 정확한 말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런던의 금융 부문은 25만에서 30만 명가량을 고용한다. 이 정도면 아주 많은 일자리인데, 그 일자리들이 오래전부터 런던 내 작은 행정구역인 시티의 경계를 넘어 도시의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티 밖의 서쪽으로는 피커딜리서커스 인근에 부유하고 인적이 드문 편인 메이페어 구역이 있는데, 이곳에 남들의 돈을 운용해 주는 상대적으로 더 모험적인 유형의 전문 투자자들(사모 주식 투자 회사private equity와 헤지 펀드hedge fund, 벤처 자본가venture capitalist 등)이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좀 걸으면, 뱅크 지하철역 근처에 예로부터 형성되어 온 바로 그 역사적인 〈시티〉, 다른 말로 〈스퀘어마일〉이 펼쳐진다. 여기에 다수의 증권사와 보험사, 그리고 골드만삭스와 같은 거대 은행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들 주위로 세인트폴 대성당이라든가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 그리고 아주 유명한 예전의 증권 거래소(지금은 레스토랑과 쇼핑센터)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감싸고 있다. 거시서 동쪽을 향해 런던 도심 공항 쪽으로 가면 커네리워프가 나온다. 예전에는 항구였던 곳인데 약 30년 전부터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는 은행과 금융 기관이 계속 늘어났다. 커네리워프에는 반짝이는 유리 외벽의 매력적인 고층 건물들과 거대한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다. 깔끔한 화단들이 건물 주위를 장식하고 있고, 구석구석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쉬지 않고 작동한다. 이 구역 전체가 사유 재산이고 사적으로 통제된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시위하려고 모여들면, 곧바로 그 사실이 그들에게 통지된다. 런던 지하철 주빌리 노선의 커네리워프 역을 중심으로 45미터 이내 지역만 빼고 커네리워프 구역의 모든 필지는 전부 사유 재산이다.
시티의 여기저기를 계속 둘러보는 사이 여러 날이 흘렀다. 금융계 내부자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지만 아직 단 한 건의 응답도 얻지 못한 상태여서 차츰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예루살렘에서 알게 된 친구가 초대한 파티에 갔더니, 그가 나를 〈시드〉라는 사람에게 소개해 주었다. 시드는 훤칠한 키에 어깨가 넓은 30대 후반의 이민자 2세였다. 그는 이름 있는 은행 여러 곳에서 트레이더로 일다가 몇몇 동료들과 합세해 증권사를 창업했다. 보통 증권사brokerage firm라고 하면, 고객을 대신하여 시장에서 금융 상품을 사고팔아 수수료를 받는 위탁 매매 업자를 뜻한다(이 일에 조사하는 개인을 가리켜 흔히 브로커broker라고 한다). 시드는 외부자들이 시티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라면, 〈벌써 이루어졌어야 할 중요한 일〉이라며 호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나더러 자기 회사에 나와서 하루를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딱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내가 기사를 쓸 때 시드와 그의 회사를 실명으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고객들은 우리가 언론과 이야기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요.」
일주일 뒤, 동이 튼 직후 시드의 회사에 도착했다. 시티의 역사적 중심부에 속한 번잡한 거리에 위치해 있는 회사였다. 앞서 파티에서 시드를 만났을 때, 금융계 사람들은 오전에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과 저녁에 돌보는 사람들로 선명하게 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과 같은 박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정말 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만 시장이 개장할 때 행동할 준비를 갖출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저녁에 아이들을 돌본다. 이와 다른 쪽의 금융계 사람들은 시장과 무관하게 일한다. 예를 들어, 변호사라든가 기업의 인수 및 합병Mergers and Acquisitions, M&A을 성사시키는 거래 해결사들이 그러한 경우다. 이들은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로 데려다 줄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아주 밤늦도록 야근을 한다. 금융계 종사자들이 시티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을 본다면, 이 사람들은 반드시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시장에 맞추어 일하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사무실의 컴퓨터 화면 바로 곁에서 점심을 먹는다.
「잠시 무언가 할 거리를 찾아보시지 않을래요?」 시드가 내게 말을 건넸다. 「저는 7시 반까지 투자자들에게 보낼 메모를 작성해야 하거든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그의 자리에는 자막 뉴스며, 그래프며, 시장 자료를 보여 주는 컴퓨터 화면들이 아주 인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에나 전화기와 금융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시장이 개장할 시각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실내는 온통 개장을 대기하는 데 신경이 쏠린 분위기였다. 내 위장은 마치 중요한 월드컵 경기가 막 시작될 찰나처럼 긴장되었다.
시드는 자신의 메모에는 고객들을 위한 분석과 투자 조언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의 고객들은 대부분 연금 펀드와 보험사를 비롯해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전문 투자자들이다. 그가 추정하기로는 고객들이 매일 그러한 내용의 전자 우편을 적어도 300통씩 받을 거라고 한다. 「메모는 간략하게 요점만 적으려고 노력합니다. 고객들의 주의력은 한 쪽을 넘어갈 때가 없어요. 바랄 수 있는 최대한은 그들이 두세 문단이라도 읽어 주는 겁니다.」 개별 기업을 분석하는 연구팀들은 다른 회사들에 널려 있어서 그는 메모에다 개별 기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그의 말로 〈경제 전반에 대한 조감도〉를 포착한다고 했다. 나머지 일과 동안에는 새로운 동향에 대한 논평을 제공하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아침의 메모를 갱신했다.
〈시장을 스포츠 경기라고 치면, 그가 하는 일은 경기 해설가와 비슷한 것일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단, 내 분석은 경기장의 관중이 아니라 관중석 아래의 코치와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만 빼면 말이지요.」 그의 고객 중에는 주력 은행들의 트레이더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대형 은행에서 일해 봤기 때문에 그곳 분위기를 잘 압니다. 트레이더로 사는 것은 꽤나 고독한 삶이기도 합니다. 트레이더들은 어떤 특정 분야, 가령 자동차 산업에 전문화를 합니다. 그런 담당 분야가 트레이더의 〈북book〉이지요. 하지만 그 북을 가진 사람이 딱 한 사람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도와주는 신참 사원이 따라붙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다입니다. 우리의 연구는 고객이 자기 생각을 비추어 보는 울림판 같은 겁니다. 우리는 괜찮은 아이디어도 건네지만, 그들이 자기 상사에게 잘 보이는 데 써먹을 만한 통찰의 토막들도 보내 줍니다.」
시장이 개장했다. 개장하자마자 30분 동안 모두가 정신없이 분주해 보였다. 트레이딩 룸trading floor 여기저기서 서로를 향해 고함치는 브로커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 시세가 1670이야. 봤어?〉 브로커 업무를 하는 한 여성은 〈시장에 들어가〉 자신의 고객이 팔고 싶어 하는 것을 사줄 매수자(반대로, 고객이 사고 싶어 하는 것을 팔아 줄 매도자)를 찾는 일을 하는데, 개장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한쪽 눈으로는 일간지 『선The Sun』을 응시하면서 다른 눈으로는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브로커와 고객의 차이를 아세요?」 곧이어 그녀가 답을 해 주었다. 「브로커는 전화를 끊고 난 〈뒤〉에야 〈빌어먹을〉이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 이야기를 노트북에 적어 놓고, 2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고서 컴퓨터 화면 네 개를 보고 있었다. 너무 뚫어지게 보느라 그의 코가 화면에 닿을 지경이었다. 지금 〈기술적 분석〉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가 내게 설명해 주었다. 쉽게 말해서 그는 특정 기업군의 주가 추세를 찾아내는 중이고, 그 추세를 바탕으로 투자 조언을 전달한다고 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쭉 시장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지만, 큰돈을 움직이는 대형 전문 투자자들만이 시드의 분석처럼 세련된 고품격 연구를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렸다. 그러다 그는 공개된 자료를 활용해서 시장을 연구하는 한 방편인 〈기술적 분석〉을 발견했다. 「기술적 분석을 한 지는 이제 꽤 여러 해가 됐습니다. 놀랍게도 이 일은 주가의 유형을 직관과 무의식적인 인식으로 읽어 내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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