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문학에 나 있는 사상으로의 길
해방 공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채로 일본의 항복과 해방 소식을 접했다.* 해방 직후 상황에 대한 증언들은 많다. 일례로 김병걸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선열들이 목 타게 기다렸던 그날이 왔을 때, 이 강토는 태극기의 물결이었다. 온 산하는 감격의 눈물바다였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행길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덩실덩실 춤추며 뒹굴었다. / 백의민족이 한 덩어리로 뭉쳤으니 신분의 높낮이가 없었고, 있는 자 없는 자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었다. 8·15의 감격은 그렇게 민족의 일체감을 형성했다. 어제의 불화가 오늘의 화합이 되고, 어제의 증오가 오늘은 우애로 변했다. 모든 슬픔, 모든 분노,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싹 물러갔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적어도 8·15 후 얼마 동안은 모두 한몸 한마음으로 얼싸안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소식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와 함께 환희의 축제를 벌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고 정확한 시각은 잘 합의되지 않는다(강준만 2004a 1:29-30).
해방은 감격이었다. 핍박받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던 모멸의 36년을 겪은 후였으니 밝은 미래만이 보일 뿐이었다.
미국의 경우, 식민지인들은 18세기 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 그들이 떠나온 유럽의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인류 최초로 헌법을 제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새로운 미국인의 모습이 제시되었다.* 첫 세대 미국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팔방미인으로 기업가이자 과학자이며 문필가에 외교관까지 지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년은 새로운 미국인으로 ‘완벽한 인간’을 제시했다. 영국의 소설가 D. H. 로렌스는 그저 놀라울 뿐인 이 최초의 미국인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평한다.
인간의 완벽성perfectibility이라, 하느님 맙소사!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는 한 갈등하는 여러 인간들이 그 안에 있다. 그중에 어느 것을 다른 것들을 대가로 삼아 완벽한 것으로 선택한단 말인가? / 프랭클린 영감님이 보여줄 것이다. 그는 그를 결박지어 네 앞에 대령해 보일 것이다. 그 모범 미국인the pattern American을. 오, 프랭클린이야말로 노골적인 첫 번째 미국인이었다. 그 영악하고 쬐끄만 노인은 자기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첫 번째 마네킹 미국인the first dummy American을 내세운 것이다. / 문필 경력의 초기에 영악하고 왜소한 벤저민은 ‘모든 종교의 선생님들이 흡족해하고 아무도 놀라지 않을’ 신조creed를 세웠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대해서는 루이스 하츠Hartz 1955를 참조할 것.
프랭클린이 이런 새로운 미국인상을 세운 것은 동료 미국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유럽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유럽인들에게 보여준 미국인의 모습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것이었다. 그 미국인은 현존하는 그대로의 미국인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춘 ─ 열거하면 무려 13가지 ─ ‘인조인간’, 말하자면 프랭클린이 만든 멋진 마네킹이었다. 로렌스에 의하면 19세기 후반 남북전쟁 전까지 나타난 미국의 고전적 소설들은 ‘마네킹 미국인’의 모험이야기였다. 이 마네킹은 결국 허먼 멜빌의 1851년 작 『모비딕Moby Dick』에서 광란 끝에 거대한 최후를 맞는다. 에이헙 선장Captain Ahab은 흡사 진짜 인간이 되려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Pinocchio처럼 극단의 존엄성을 과시하며 진짜 인간으로 부활하기 위해 과감히 죽음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남북전쟁1861~1865년 후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에 의해서야 비로소 진짜 미국인이 나타났다고 로렌스는 지적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또한 20세기 초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그의 출세작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인간형으로 지목한 바로 그 인물이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 후 칼뱅의 예정설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이 만들어낸 금욕적 인간형의 완성판이었다. 그는 재산을 늘리는 것을 평생의 목적으로 사는 부르주아였지만, 물질적 탐욕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합리적으로 통제해 가며 재물을 끊임없이 쌓아나가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삼는 새로운 종류의 ‘영혼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한국, 남한에서는 이런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신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이 제시되었고 신인간의 형성은 그 후로 오랫동안 북한 문학의 과업이 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남한과 다리 소련군이 갖고 들어온 이상향의 청사진들 갈피 안에 신인간의 초상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상징적 인간형이 나타났다면 1945년 해방 후에 나온 동요에서였다. 1945년 12월 1일 『어린이신문』 창간호 첫머리에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의 〈새나라의 어린이〉라는 노래가 실렸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쌈을 하지 않습니다
정답게들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 노래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이 지금도 부를 수 있는 고전 명작 동요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어른들에게는 별로 기대할 게 없고 다만 어린이들이 잘 교육받고 성장한 20년 후에나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북한의 경우에는 별로 증언이 남아 있지 않으나 남한의 경우에 해방 직후 환희의 광란과 축제의 분위기는 며칠이 지나자 파괴와 약탈로 변환되었다. 유리창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모두 부수고 공공재산은 잡히는 대로 약탈했다. 한국인들은 일제 36년간 받은 압제와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 상태가 정상에서 멀어져 버렸는지 모른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한국인들은 ‘광기의 순간a moment of craziness’을 겪었다.* 이 말은 해방 공간에서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박명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45년의 해방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기억하고 있다. 단체의 폭발적인 족출, 흥분과 설레임, 집단적 철야, 폭포와도 같은 연설과 구름 같은 집회와 인파들, 수많은 노선의 등장과 쟁투, 공연한 바쁨과 바깥소식에 목말라하는 잦은 외출, 이러한 것들이 광기의 순간의 특징이었다.” (박명림 1996b: 38).
일제가 물러간 남한, 특히 서울의 해방 공간에서는 조선 땅에서 낯설지 않은 세상이 펼쳐졌다. 리영희는 그의 자서전 『역정: 나의 청년시대』에서 해방 공간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세태는 날로 혼란해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악마적인 상태가 되어 갔다. 각종 권력의 중심부와 주변에 기생하는 자들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나라의 부를 서로 찢어 나누어 먹고 있었고, 헐벗고 굶주린 조무래기들은 서로 속이고 뺏는 것으로 그날 그날의 생존을 이어갔다. 날로 증가하는 이북으로부터의 월남민이 모두 좁은 남대문 시장을 끼고 그 같은 결사적인 강식약육의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니 가장 교활하고 가장 파렴치한 자만이 ‘정글의 법칙’대로 적자생존의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나의 둔한 감각, 교활성에서의 낙제점, 파렴치해지기에는 아직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18세 소년으로서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이 인용문은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38쪽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리영희의 이 진술은 2006년 같은 저자 같은 제목으로 한길사에서 펴낸 판에는 ─ 초판 출간년도는 분명히 1988년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 나와 있지 않다. 2006년 판에는 대신 다음과 같은 진술이 나온다.
“서울과 남한의 시국은 혼란을 극하고, 세태는 17세기 소년에게는 전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웠다. 집을 떠날 때 그리던 질서정연한 건국과 독립에 대한 이행이나, 새로운 믿음으로 서로 돕고 사는 안정된 새 사회는 흔적도 없었다. 화폐 가치는 하루가 멀다고 하고 폭락해 일제하의 안정된 돈의 가치를 생각하고 가지고 내려온 얼마간의 돈은 며칠이 안 가서 몸에서 사라져버렸다. / 시간이 갈수록 아비규환이었고 가장 흉악한 형태로서의 ‘적자생존’적 경쟁이 냉혈적으로 전개되어 갔다. 기대가 컸던 만큼 환멸도 컸고 먹고 살아갈 길이 막연해 얼마 동안 망연자실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너무나 의외로운 사회상에 적응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리영희 1988: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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