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2012년 2월
원고료를 떼먹힌 프리랜서를 아시오?
물론 다들 알고 있으리라. 원고료를 떼먹힌 프리랜서 작가가 한 둘이랴. 원고료를 떼먹혀봐야 진정한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정말 이 바닥 수준은 알 만하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프리랜서 따위는 조금도 되고 싶지 않고, 그냥 제 때 원고료를 받고 싶을 뿐이다.
지난 반 년간 한 매체가 내게 주지 않은 고료는 대충 백만 원 정도. 처음에 밀렸을 때는 다음 날 합산해서 들어왔고, 그다음에 밀렸을 때도 중간에 한 번 한 달 치 고료가 정산이 되었기 때문에 덮어놓고 믿은 나의 잘못이 크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의 잘못은 그래도 일을 했는데 돈을 주겠지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잘못은 안 준 쪽에게 있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기고를 한 매체는 심지어 방송사 사보였던 데다가, 대행을 맡고 있는 출판업체가 꽤 많은 매체를 가진 곳이었기 때문에 정말 망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사보와 관련해 청탁을 진행했던 담당자가 업체가 부도났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 원고료를 받지 못한 나는 뭘 해야 하는데요? 나에게 백만 원은 쪼개어 살면 두 달은 버틸 정도의 액수였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앞으로 밟아야 할 절차를 물었다. 일단 내용증명을 보낼 것. 그리고 그다음은 각자 알아서.
각자 알아서.
담당자는 회사 측에 나보다 열 배 이상의 돈을 떼먹힌 상황, 그러니까 사기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알아서 원하는 길로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끊으면서, 나는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각자 알아서 생존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누구도 내 고료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성인인 데다 이 일을 해온 지 벌써 햇수로 6년이니 당연히 알아야 하지만, 머리가 이해하는 것과 몸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그걸 몸으로 받아들이는 건, 뭔가 추운 느낌이었다. 봄은 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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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원에 다녀왔다. 교대역에서 법원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니 누군가 갈 일이 있다면 꼭 편한 신발을 신고 가기를 당부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법원은 굳이 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나 또한 법원 방향이 아니라 진짜 법원에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마치 등산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법원을 향해 올라가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생각해보았다. 원고료가 처음 늦게 지급됐을 때 그냥 이해해준 게 잘못일까? 나에게는 다음 달에도 청탁해줄 매체가 필요했다. 중간 정산을 해주었을 때 믿은 게 잘못일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두 달 뒤에 고료가 들어오더라도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원고를 써서 원고료를 받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잘못인 것이다. 나도 세상도 모두 잘못이다. 하지만, 이 일에는 엄연히 잘잘못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일한 대가로 유무형의 이득을 얻었음에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측이 잘못이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런 마음으로 법원을 향해 올라갔다. 법원에 도착해서야 소액 소송은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상대 회사 측 정보가 담긴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에 어차피 오긴 왔어야 했다. 관련 서류를 발급받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사보에 내 원고가 있는 페이지를 스캔해 정리했다.
소장을 작성하고, 온갖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설치해 자료를 올렸다. 성격 급한 사람이라면 다시 법원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정도의 속도였다. 한 번씩 버그가 나거나 무언가를 한참 설치한 뒤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할 때마다 나는 빨간 궁서체로 마음에 욕을 썼다. 그 욕설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입으로 튀어나오기 직전 전화벨이 울렸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방송작가로 있을 때 함께 일했던 감독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SNS에 올린 분노의 글을 본 모양이었다. 도대체 얼마를 떼먹혔길래 그래. 백만 원? 내가 보내줄게. 그러고 잊어. 나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거절했다.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는 메디치가의 마음으로 주려는 거야.”
빨간 궁서체의 마음이 천천히 녹아 눈가에 찰랑거리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정말로 괜찮아요. 저 아시잖아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전화를 끊고, 마음만 감사히 받는다는 말을 생애 처음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백만 원은, 감독님에게도 받지 못하지만 아마 내 돈을 떼먹은 회사에게도 받지 못할 것이다. 부도난 회사를 상대로 한 소액소송 대부분은 이행권고로 마무리되는데, 부도난 회사는 당연히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으므로 지불하지 못한다. 그 정도도 찾아보지 않고 시작한 소송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원고를 써서 먹고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들 능력은 없지만, 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동안 각자 알아서 하라는 말도 듣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도 듣는다. 영원히 업로드되지 않을 것 같던 자료가 다 올라갔다. 이제 클릭만 하면 된다. 눈물은 닦고.
이런 데서 일하시면 얼어 죽어요
2006년 11월
알바명
빼빼로 판촉 이벤트 도우미
급여
8만 원
알바 강도
체력 ★★★★★
정신력 ★★★★
추천 대상
이벤트 도우미 알바 경험자
오랜만에 이벤트 도우미 일을 하게 됐다.
연인들의 날이 없었다면 내 알바 자리도 명맥이 끊겼을 터. 상술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대한민국 내수를 증진시키는 건 다 연인들의 몫인 것이다. 연인들은 초콜릿도 사고, 사탕도 사고, 빼빼로도 산다.
그렇다. 곧 빼빼로데이인 것이다. 11월 11일은 토요일, 그러니까 목요일과 금요일, 토요일까지 사흘만 오후에서 밤늦게까지 바짝 팔면 된다. 근무지는 회사와 상가가 밀집된 지역의 편의점 앞 매대. 11월이 되자마자 들이닥친 추위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사흘인데 그사이 별일이 있겠나 싶었다.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짧은 치마를 입고, 두터운 검정색 레깅스 대신 얇디얇은 살구색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는 게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무적의 발토시가 있다! 내레이터 모델이 흉물스런 발토시를 왜 끼고 다니나 싶었더니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발토시는 겨울, 거리에 나선 판촉 알바에게 주어진 유일한 보온처였던 것이다. 역시 모든 건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이다.
이번에는 밖에서 일해서 그런지 8.0을 받는다. 사흘 치인 이십사만 원을 받고 나면 또 근근이 살아질 것이다. 졸업까지 하고나니 스터디를 갈 때를 제외하면 나갈 데도 없어서 차비나 드는 정도니 괜찮다. 뭔가 어머니들이 소일을 하면서 차비나 버는 거지, 하고 말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목요일이었던 어제는 별로 장사가 되지 않았다. 굳이 포장을 해서 거창하게 선물하는 게 어색한 과자이니 이해는 된다. 나라도 빼빼로 같은 건 그냥 한 상자 사서 건네고 말 것 같았다. 빼뺴로로 만든 하트 같은 건 초콜릿이나 사탕과 다르게 그 크기도 거대하니 말이다.
“내일은 아마 잘될 거예요. 여기는 다 회사라서 금요일이 피크야. 오히려 주말에 장사가 더 안 되거든.”
어제 퇴근하면서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선수를 쳤더니, 점장이 저렇게 대답했다. 존댓말과 반말이 미묘하게 섞인 말투가 거슬렸지만 내일은 더 잘 팔아야겠다고 대답하고 웃었다. 마음에 없는 미소를 지어야 하는 날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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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금요일이 왔다. 점심시간 직전에 출근했는데, 점심을 먹으러 몰려나온 회사원들이 빼빼로를 꽤 사갔다. 하긴, 회사 동료들끼리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내일이 빼빼로데이네요 같은 말들을 의미 없이 나누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확실히 날이 쌀쌀해져서 치마와 토시 사이, 얇은 스타킹으로만 가려진 살에 닿는 바람이 차가웠다. 저녁이 되자 거의 이가 부딪힐 정도로 추워졌지만, 장사는 어제의 세 배는 잘됐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솔에서 라 정도의 음으로 “빼빼로데이를 준비하세요! 사랑을 전하세요!”를 외쳤다. 어깨를 움츠리고 걷던 사람들이 돌아볼 때면 일단 웃었다. 여러분, 빼빼로 몇 상자 묶어서 리본 좀 달고 뒤에 0 하나 더 붙여서 파는 거 맞긴 한데요. 그래도 한번 보고 가시면 어떨까요? 내 속마음이 드러났을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다. 저녁은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퇴근 시간 한차례 폭풍처럼 지나간 손님들 덕에 매출이 무색하지 않은 수준은 될 것 같았다. 촌스러운 묶음 포장에 리본을 단 빼빼로 세트를 회사원들이 척척 사 들고 갔다. 만 원이 넘는 세트를 몇 개 연속으로 팔자, 점장이 나와서는 뜨거운 캔커피를 쥐어주며 조금만 더 고생하라고 말했다. 두 시간만 더 팔자. 캔커피를 허벅지에 문지르자 조금 나았다.
좋았어, 어서 팔아버리자!
마지막 한 시간은 취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찌감치 1차를 마쳐 어중간하게 취한 회사원들에게 빼빼로를 흔들면 흔쾌히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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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아저씨가 “이봐 빼빼로 아가씨!”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가온 건, 퇴근 시간이 15분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호기로운 척 가장 큰 세트 가격을 물으며 자꾸 손을 만지려 하고 옆에 붙어댔다. 폭탄주라도 말아 드신 건지 이미 냄새부터가 술이 그인지 그가 술인지 모를 상태였다.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대며 집적거리는 통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뜨겁고 축축한 손이 내 허벅지에 턱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휙 잡아챘다.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노려보다가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입술을 움직여 겨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펴서 빼빼로 세트 손잡이를 걸어주었다.
“이거 사모님 갖다 드리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찰나의 긴장. 긴장을 깨트린 것은 부장님인지 과장님인지 하는 아저씨의 껄ᄁᅠᆯ대는 웃음이었다.
“이 아가씨 재밌네!”
이번에도 다시 웃어 보려고 했지만 입이 얼어서인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세트 하나를 샀고, 몰고 온 직원들에게도 한 상자씩 빼빼로를 돌렸다. 와 통이 크시네요! 그것으로 마지막 매출을 찍었다.
판촉 유니폼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거울 속에는 눈 화장이 번진 채 입술이 파랗게 질린 여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윤이나 씨, 이런 데서 알바하시면 얼어 죽어요. 그런데도 아직, 하루가 더 남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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