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볼모로 잡힌 새
제왕 같고 무시무시한 종種…… 새의 눈은 이글거리고 반항적이며, 온몸은 생활양식과 섭식 방법에 어울리도록 더없이 알맞게 적응한 형태라서, 보는 사람의 마음에 절로 창조주라는 경건한 발상을 떠올리게끔 한다.
_알렉산더 윌슨, 흰부리딱따구리를 묘사한 글에서
1809년 2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윌밍턴
알렉산더 윌슨은 혀를 쯧쯧 차며 말을 몰아 노스캐롤라이나의 어느 늪지 가장자리를 천천히 나아갔다. 그는 안장에서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의 이끼 낀 가지 사이를 스쳐 나는 작은 새들을 실눈으로 바라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깔끔하게 쏘아 맞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흰부리딱따구리 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그것이 무슨 새의 소리인지 알아차렸다. 새를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설명했던 것처럼 장난감 나팔을 부는 것 같은 소리가 연거푸 울리더니, “바 담” 하고 뼈가 나무를 때리는 두 음조의 소리가 늪 전체로 쏜살같이 퍼졌다. 사람들은 다들 말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이곳이 과연 남부라는 사실을 실감할 거라고.
윌슨은 말에서 내려 웅크린 자세로 새를 향해 다가갔다. 심장이 두방망이질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새는 크기가 수탉만 하고, 깃털은 선명한 흑백이고, 큼직한 부리는 햇빛을 받으면 다듬은 상아처럼 반들거린다고 했다. 새의 힘은 전설적이었다. 100년 전에 영국 탐험가 마크 케이츠비는 흰부리딱따구리가 나무 속 곤충을 파내기 위해서 나무껍질을 널찍한 조각으로 벗겨 내며 한 시간도 안 되는 동안 한 부셸(약 28킬로그램의 무게 또는 약 36리터의 부피_옮긴이)은 족히 될 만한 목재를 땅으로 떨어뜨리는 광경을 나무 밑에 서 우두커니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도 ‘부리가 흰 딱따구리’에 대한 기록을 남긴 적이 있었다. 윌슨이 오랫동안 고대했던 만남이 드디어 이뤄질 순간이었다.
윌슨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가 걸어 다니는 화약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호주머니에는 장전된 피스톨이 들었고, 어깨에는 장전된 라이플을 비스듬히 멨고, 탄약통에는 화약이 한 파운드 들었고, 허리띠에도 화약이 다섯 파운드 들었다. 그것은 여행 중에 마주칠지도 모르는 강도, 퓨마, 곰, 적대하는 원주민에 대한 대책만은 아니었다. 화약은 물감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업 도구였다. 윌슨은 미국에 사는 모든 새를 빠짐없이 그리고 묘사하는 작업에 나선 참이었다. 그 일을 마치면 모든 그림과 설명을 여러 권의 책으로 엮어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이 나라의 새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신이 그 작업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자기 책을 미리 구독하여 선금을 지급하고는 그가 반드시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책을 우편으로 발송할 것을 믿어 달라고 설득하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자기에게 투자하라는 말이었다. 돈을 많이 모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시작은 괜찮았다. 제퍼슨 대통령과 각료 대부분에게 구독권을 파는 데 성공했으니까.
윌슨은 새를 산 채로 붙잡을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리는 편을 좋아했지만, 보통은 생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총으로 새를 쏘아 나무나 관목이나 습지에서 땅으로 떨어뜨려야 했다. 총을 쏘면 작은 탄환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나와 치명적인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면서 새를 맞혔다. 그는 탄환이 깃털을 너무 심하게 찢어 놓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몸뚱어리를 훼손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새가 땅에 떨어지면서 골격이 뒤틀리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는 시체를 주워서 가죽을 벗기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내장 기관을 제거한 뒤, 속에 대신 솜을 채우고 소금에 쟀다. 그리고 여정이 끝나서 그림 그릴 시간이 있을 때까지 그렇게 보관했다.
이윽고 윌슨은 흰부리딱따구리를 제대로 목격했다. 그는 엽총을 고정하고 신중하게 겨눈 뒤 깔끔하게 명중시켰다. 그리고 그루터기 옆에 떨어진 새를 주워 와서 수집 가방에 넣었다. 몇 시간 뒤에 그는 또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세 번째 새가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의 높은 가지에서 나무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보았을 때, 모르면 몰라도 그는 자신의 행운에 싱글벙글하고 있었을 것이다. 큼직한 수컷의 붉은 볏이 햇빛을 받아 불길처럼 타올랐다.
윌슨은 총을 발사하여 또 하나의 노획물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는 한쪽 날개만 살짝 다친 채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윌슨은 기뻤다. 그는 코트를 덮어 새를 진정시킨 뒤, 말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데려왔다. 그러고는 등자에 발을 끼우고 안장 너머로 다리를 얹었는데, 그 순간 새가 ‘어린아이의 격한 울음소리’ 같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갑자기 몸부림쳤다. 놀란 말이 늪으로 내빼려고 하자, 윌슨은 한 손으로는 고삐를 당기고 다른 손으로는 새를 간수하려고 애써서 가까스로 최소한 말은 진정시켰다. 그는 나중에 그 일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적었다.
윌슨이 20킬로미터를 달려 윌밍턴 시내까지 가는 동안, 새는 내내 비명을 질렀다. 기진맥진한 박물학자, 눈알이 퉁방울이 된 말, 울부짖는 딱따구리라는 요상한 삼인조가 윌밍턴 거리를 지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문간이며 창가로 나와 내다보았다. 다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호텔에 도착한 윌슨은 말을 바깥에 묶어 두고 새를 안으로 데려갔다. 주인과 호기심 가득한 손님들이 에워싸는 동안에도 새는 코트 자락 밑에서 줄곧 울부짖었다. 윌슨은 자신과 ‘우리 아기’가 묵을 방을 달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서 새를 덮었던 코트를 걷었다. 한바탕 웃음이 잦아들자, 그는 흰부리딱따구리를 방으로 데려가서 놔두고 문을 잠그고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말을 돌보았다.
몇 분 뒤, 윌슨은 방문에 다시 열쇠를 끼우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방 안에 먼지가 자욱했다. 침대에 석고 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천장 가까운 창틀에 야무지게 앉은 딱따구리가 강력한 부리를 비스듬히 두드리면서 연신 벽을 쪼고 있었다. 벌써 가로세로 40센티미터쯤 되는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몇 초만 더 있으면 새가 벽을 뚫고 나가 탈출할 찰나였다.
윌슨이 황급히 새를 잡으려 들자 새는 부리를 딱딱거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윌슨은 가까스로 한쪽 발에 밧줄을 거는 데 성공했다. 그는 새를 끌어 내려 탁자에 묶어 두고 도로 방을 나왔다. 한숨 돌리면서 딱따구리에게 먹일 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새가 허기지겠구나 생각했겠지만, 윌밍턴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흰부리딱따구리가 먹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는 통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윌슨은 다시 돌아가서 방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새가 산더미처럼 쌓인 마호가니 부스러기 위에 앉아 있었다. 호텔 방 탁자의 잔해였다. 새는 깃털을 부풀리고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노랗고 사나운 눈동자로 윌슨을 노려보았다.
그만하면 충분했다. 윌슨은 스케치북을 쥐고 그리기 시작했다. 방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려야 했다. 그는 새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피의 대가를 치렀다. 나중에 그는 흰부리딱따구리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새는 내게 여러 군데 상처를 입혔다. 새는 늘 품위가 있었고 불굴의 기상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새를 고향 숲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유혹에 쉴 새 없이 시달렸다. 새는 사흘 가까이 나와 함께 살았지만 일체의 먹이를 거부했다. 나는 후회스런 심정으로 새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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