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진화와 여성의 몸
나는 미국자연사박물관 내부 벽에 걸려 있는 루시를 보았다. 이 3백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신은 유인원과 호모사피엔스 사이의 중간 단계에 속하는 원인猿人이다. 루시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 가운데 하나다.
바로 그 직전에 나는 다른 전시실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유인원과 침팬지의 넓은 골반을 보고 나왔는데, 그에 비해 루시의 골반은 너무나 작고 타원형이어서 깜짝 놀랐다. 태아의 머리가 레몬만큼 작다고 해도 아이를 낳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루시를 빤히 쳐다보면서, 창세 이후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상상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산파, 원추형 머리의 아기, 각종 분만 도구, 경막외마취술, 의료 과실 소송, 최신 분만 기법 등과 루시의 골격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유인원 크기의 골반을 가졌다면, 조산사의 도움이나 멸균 소독된 기구,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 등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랬다면, 또 다른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루시는 유인원이나 침팬지와 관련이 있었다. 루시는 긴 팔과 짧은 다리, 유인원의 얼굴을 가졌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 명확히 달랐다. 직립보행을 했고, 이를 증명하듯 치밀 골반을 갖고 있었다. 진화의 시작점으로서 루시는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첫째, 우리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더 큰 머리를 가진 영리한 자녀를 낳기 시작함에 따라, 출산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출산의 육체적 측면을 보여 준다. 둘째, 루시가 살던 시대에 존재했을지 모르는 원시사회의 행동 방식이 오늘날의 진통과 분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루시 이후로도 여성의 골반은 직립보행에 적응하기 위해 여전히 좁았지만, 골반 모양은 수천 년에 걸쳐 뇌의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커진 신생아의 머리 크기에 맞게 진화되었다. 오늘날 여성의 대골반(골반 위쪽 입구)은 루시의 골반처럼 좌우로 넓지만, 아기가 빠져나오는 소골반(골반 아래쪽)은 앞뒤 폭이 넓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신체 구조상 인간의 출산은 말 그대로 뒤틀려 꼬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해, 태아가 산도를 통과하려면, 신체의 가장 큰 부분인 태아의 머리가 한쪽 방향으로 돌면서 내려와야만 한다. 반면, 아기 원숭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원숭이는 산도에 낙하산 타듯 내려올 정도의 충분한 공간이 있고, 얼굴은 엄마 원숭이의 배쪽을 바라보며 나온다〔반면, 인간의 태아는 산도에서 회전을 하기 때문에, 산모의 엉덩이 쪽을 바라보며 나온다〕.
네 다리를 가진 포유동물과 인간의 출산 사이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다. 산도가 넓고 약 2분 안에 분만할 수 있는 북극곰이나 원숭이에 비해, 인간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인간은 출산할 때 도움이 필요한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새끼를 낳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지만, 인간은 보통 동료들에 둘러싸여 출산을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머리가 큰 아기가 과연 산도를 잘 빠져나올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웬다 트레버선Wenda Trevathan에 따르면, 진통할 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산과적 문제가 일어나기 쉬운 종種이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 하는 적응반응이다. 트레버선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의식을 갖게 되면서 아마도 2백만 년 전쯤에 나타났을 것이라고 한다. 일단 인간의 두뇌가 출산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만큼 발달하게 되면, 진통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공포감을 느낀다. 공포감을 느끼면 종종 아드레날린으로 알려져 있는 에피네프린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은 자궁수축을 멈추게 한다. 산모들은 이런 공포감을 완화하기 위해, 즉 분만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원숭이들 역시 진통 중에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궁수축을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간이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 집에서 몇 시간 동안 진통을 하던 상당수의 여성들이, 병원에 도착해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진통이 갑작스레 멈추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한데,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를 “흰색 가운 증후군”white coat syndrome이라 부른다. 이처럼 산모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되면 분만이 지연될 수도 있다.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산모가 홀로 출산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혼자 출산하는 문화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 족은 첫 번째 출산은 도움을 받지만, 그다음부터는 산모 혼자 출산을 한다. 호주의 유목민인 피트쟌자라Pitjandjara 족의 여성들 역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홀로 출산을 한다. 나미비아 북동 지역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유목 부족인 !쿵산!Kung San 족 여성 역시 혼자 출산하는데, 이는 ‘강인함’의 상징으로 부족 안에서 존경을 받았다. 그렇지만 !쿵산 족 여성인 니사Nisa의 출산 경험담은 난산이 아닌 경우에도 홀로 출산하는 것이 여성들(심지어 홀로 출산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에게 매우 충격적인 정신적 외상을 입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세기 초 쌀쌀한 한밤중에 니사는 수풀 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첫 아이를 출산했다. 진통이 시작되자 그녀는 온기를 유지할 동물 가죽과 담요만 챙기고 남편이 있는 마을을 떠나 근처 모래 위에 앉아 기다렸다.
마을에서 조금 걸어 나와서 나무 밑에 앉았지. 거기 앉아서 기다렸어. 아기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지, 누었는데도 나올 생각을 안 하기에 다시 일어나 앉아서 나무에 기대 있는데, 또 진통이 와. 계속 진통이 오락가락해. 아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러다 진통이 또 멈춰. ‘왜 빨리 안 나오는 거야? 빨리 나와서 좀 쉬게 해주지 않고. 그 안에서 뭉개 봤자 득 될 게 뭐 있다고! 제발 빨리 좀 나와라!’ 그랬지.
그런데 아기가 나오기 시작했어. 나는 속으로 ‘울지 말아야지. 참고 앉았어야지. 봐, 이제 아기가 나오고 있잖아.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했어. 하지만 너무 아파!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지. ‘소리가 시집 식구들 있는 마을에까지 들렸겠다.’ 그러다가, ‘아기가 벌써 다 나온 건가? 그러다가. 확실히 잘 모르겠는 게, 그냥 병이 나서 그런 건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마을을 떠나올 때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던 것도 있어.
그러다 어찌해서 아기가 나왔어. 일어나 앉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무 느낌도 없어. 아기가 누워서 손가락을 빨려고 팔을 버둥대더니 우네. 나는 그냥 앉아서 애를 들여다보고 있었지…….
추위가 밀려오기에 배를 덮었던 영양 가죽을 끌어다 아기한테 덮어 주고 나는 가죽 외투를 뒤집어썼어. 그러고 좀 있다 태반이 나와서 그걸 땅에 묻고.
니사는 얼마 동안 멍하니 덜덜 떨며 앉아 있었고, 탯줄을 묶지도 않은 채로 아기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마을로 달려갔다. 니사의 남편은 피가 흘러 있는 다리를 보고는 자신의 할머니를 깨워 탯줄 자르는 것을 도와 달라고 소리쳤고, 할머니는 즉시 달려가 그렇게 했다.
니사의 사례를 연구한 마저리 쇼스탁Marjorie Shostak에 따르면, 순산은 !쿵산 족 여성들이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때 산모는 조용히 앉아서,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분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한다. 반대로 난산을 하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에 대해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는 뜻이며 나아가 산모가 아이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이 출산하면서 혼자 남겨지는 일은 드물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