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그걸 대체 왜 먹었습니까?”
“아니 그냥, 잠결에 이렇게 보니까 뭐가 여기로 오고 있어서…….”
“그렇다고 뭔지도 모르고 그걸 먹어요?”
“뭔지도 모르긴요, 문어잖아요…….”
“무슨 근거로 그게 문어라고 확신했습니까? 잠결이었다면서요?”
“그냥, 딱 보니까 문어같이 생겼던데…….”
“그렇다고 그걸 먹습니까? 대학교 건물 복도에 문어가 돌아다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아니 그러니까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잠결에 이렇게 보니까 문어 같았다고…….”
벌써 한 시간째 똑같은 대화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어쩌면 두 시간째인지도 모른다. 잡혀 왔을 때 제일 먼저 소지품부터 다 뺏겼기 때문에 시계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고 심지어 안경도 뺏겼다. 그래서 나는 눈앞도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위원장님하고 흐릿한 검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정장 입은 사람이 똑같은 대화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을 옆에서 초점 없는 근시안으로 멀거니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안 그래도 초점 안 맞는 눈에서 점점 더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던 차에 위원장님이 자기도 의도하지 않은 폭탄을 던졌다.
“근데 그 문어가 한 마리가 아니더라고요. 최소 두 마리고 안에 또 뭐가 들었던데…….”
“뭐라고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긴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얼굴이 안 보이니까 실제로 긴장했는지 확신하긴 좀 힘들지만 목소리는 명확하게 날카로워졌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에?”
위원장님이 불분명하게 되물었다.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요?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먹어봤으니까 알죠…….”
위원장님이 우물우물 대답했다.
“한 놈은 싱싱하지만 엄청나게 질기고 다른 한 놈은 물렁물렁하니 맛이 갔던데요……. 그런데 안에 이상하게 딱딱한 게 들어 있고…….”
“어떻게 했습니까?”
“에?”
위원장님이 또 되물었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위원장님은 일부러 자꾸 되묻는 것이 틀림없었다.
“안에 딱딱한 게 들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어떻게 하셨냐고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거의 비명 지르듯이 물었다. 위원장님이 다시 우물우물 대답했다.
“먹다 말았죠, 딱딱한데…….”
“그럼 그거 지금 어디 있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물었다.
“모르죠, 먹다 말았는데…….”
“먹다 말고 어떻게 했냐고요?”
“아니 그러니까 먹다 말아서…….”
다시 같은 대화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내가 모기만 한 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거 제가 치웠는데요…….”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의 시선이 돌연히 나에게 향했다. 위원장님도 덩달아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마치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았다.
“치웠다니? 버렸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불길하게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음식물 쓰레기니까 따로 버리려고…… 냄비 가져다가…… 그랬는데……. 하필 그때 다들 오셔가지구…….”
나는 횡설수설 웅얼거렸다. 여기서 ‘다들’은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을 포함한 정부 요원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나는 손가락으로 방 안을 모호하게 가리켰다.
“그 냄비 지금 어디있습니까?”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농성 천막 안에…… 아마 그대로 있을 거예요……. 누구 다른 사람이 치우지 않았으면…….”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벽에 붙은 이중 거울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전화기를 꺼냈다. 어딘가에 전화해서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일어서려 하자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은 전화하다 말고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위협적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안경을 안 썼지만 그 적대적인 몸짓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도로 앉았다. 검은 정장 입은 사람이 방을 나갔다. 나는 위원장님과 취조실 안에 단둘이 남았다.
“진짜로 그건 왜 드셨어요?”
한참 정적이 흐른 뒤에 내가 물었다.
“선생님까지 왜 그래요, 몇 번이나 대답했는데…….”
위원장님이 우물우물 말했다.
“말했잖아요, 자다가 배가 고파서 깼는데…… 나한테 오고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새벽에 대학교 본관 건물 복도에서 문어, 혹은 문어처럼 생긴 어떤 생물이 자기한테 다가오고 있으면 잡아서 끓여 먹을 생각은 보통 잘 안 하지 않느냐고 나도 묻고 싶었으나 위원장님이 정체불명의 검은 정장 사람들을 약올리려고 일부러 느물거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그리하여 취조실 안에 침묵이 흘렀고 배고픈 위원장님의 배 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우리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이라고 하는 것이 제정되었고, 예상대로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났고, 잘려서 열받은 선생님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에 우리 노조는 잠시 부흥기를 맞이한 것 같았지만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고, 고등교육법 시행령과 대학 강사 제도 운영 매뉴얼에 따라 공개 채용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학교들 중에서 몇몇은 불분명한 채용 기준을 제시하며 예전에 하던 대로 학과에서 내정한 자기 사람들을 꽂아 넣고 자격을 갖춘 다른 학교나 전공 출신 강사들을 밀어내려 했고, 강사를 많이 자르고 적게 뽑았기 때문에 강사들이 주로 담당하던 교양 과목은 숫자가 대거 줄어들었고, 그리하여 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할 수 없어서 담당 강사와 담당 학과에 수강 정원 증원을 요청하고 그래도 여전히 수강 신청이 안 되니까 교양 수업 대신 타 학과의 1학년이나 2학년 전공 수업을 신청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인문계나 외국어문계 학과에서 개설한 수업들의 수강 정원이 갑자기 늘어났으며 그중 전공 기초 과목을 절반 이상 타과 학생들이 채웠고, 그래서 강의실이 터져나가고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강사의 업무량은 폭증했고, 한 학기쯤 시행령과 운영 매뉴얼에 따라 공개 채용과 임기 보장 등의 규정을 지키는 시늉을 하던 대학들은 강사법 제정 이후 몇 달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까지 법 규정을 꼼꼼하게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금슬금 자체 규정을 정하거나 학과 내규를 들먹이면서 연줄과 인맥에 의존하여 쉽게 쓰고 쉽게 버리던 이전의 주먹구구식 강사 채용 방식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모 대학교가 강사법 시행에 관한 협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강사 임용 규정을 제정해서 노조가 대학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으며 나는 해당 분위 소속은 아니지만 집중 투쟁 기간이라고 해서 지원하러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땡볕에 땀범벅이 되어 기자회견을 하고 구호를 외쳤고 총장실 앞에 가서 성명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총장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며 사무처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총장실에서 멀리 떨어진 소회의실에 밀어 넣으려고 해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경비 회사 직원이 달랑 한 명 등장하여 불안한 표정으로 뒤에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고 위원장님이 우리는 총장을 만나러 왔으니 소회의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며 총장실 문 앞 복도에 주저앉았고 그래서 우리는 기자회견하고 나서 본관 앞에 늘어놓았던 현수막과 피켓을 전부 들고 올라가서 총장실 앞 복도에 눌러앉았고 세 시간 동안 그렇게 총장실 앞 복도에서 모기와 싸우며 구호를 외치고 궁상맞게 피켓에 기대앉아 있는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와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고 그 와중에 사무국장님이 아이스크림을 사 왔고 위원장님이 혼자서 세 개 먹었고 다시 구호를 외치고 사무처 사람들하고 말다툼을 했고 경비 회사 직원은 별일 없을 것 같아 보였는지 슬그머니 사라졌고 그런 뒤에야 위원장님과 수석부위원장님과 사무국장님과 분회장님이 총장실에 들어가서 성명서를 전달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3층에서 철수해서 1층으로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파업과 투쟁에 관한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고 그런 뒤에 대충 해산하고 다들 집에 갔고 그리하여 밤이 되자 위원장님 혼자서 농성 천막을 지켰던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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