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걷기 클럽 때문이야
강은이가 학교에 오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방과 후에 혜윤이, 재희와 함께 강은이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강은이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집 주소를 물어볼 수 없어서 대신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강은이네 엄마와 통화하고 주소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강은이를 만나지 못했다.
“미안한데 어쩌지. 강은이가 나오려고 하질 않아.”
강은이네 엄마는 무척 미안해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돌아섰다.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지.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난 혜윤이와 재희를 따라 걸어 내려왔다. 10층에서 9층으로, 9층에서 8층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며 생각했다.
만약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걷기 클럽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까?
나는 지난 3월을 떠올렸다.
얼렁뚱땅 걷기 클럽
1
“꼭 해야 돼요?”
점심시간, 나는 연구실에 있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아까 4교시가 끝나기 전에 담임은 운동 클럽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이 어제 결석한 강은이와 나, 두 명뿐이라며 점심시간까지 정하라고 했다.
어제 운동 클럽 때문에 교실이 종일 떠들썩했다. 학교에 운동 클럽이 생기는데, 모두가 한 개 이상은 가입해야 했다. 배구, 농구, 축구, 필라테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클럽이 있고, 새로운 클럽을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담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손을 들어 원하는 클럽을 말했다. 한 클럽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서 인기가 많은 운동 클럽은 서로 들겠다고 난리였다.
머리띠 시스터즈 다섯 명도 어제 필라테스 클럽을 두고 실랑이했다. 머리띠 시스터즈는 색깔만 다른 형광색의 엄청 두꺼운 머리띠를 하고 다닌다. 분홍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이 눈에 확 띄었다.
“넌 다른 거 하면 안 돼?”
“꼭 우리 다섯 명이 같은 클럽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고작 두 시간인걸. 너, 테니스 배워 보고 싶다고 했잖아.”
“혜윤이는 테니스복 입으면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아.”
네 명이 한 명을 설득했다. 노란색 머리띠를 한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운동 클럽이 뭐라고 다들 난리람. 난 도무지 하고 싶은 게 없다. 사실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윤서도 아직 이 학교가 낯설지? 다들 그래. 그래서 운동 클럽을 만들려는 거야.”
담임은 학교에서 운동 클럽을 운영하려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신호수 초등학교는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며 작년 3월에 처음 생겼다. 3월부터 다닌 아이들보다 도중에 전학 온 아이들이 더 많다. 나도 작년 12월에 전학 왔다. 전학 오자마자 5학년이 끝났다. 이 학교에 다닌 날짜를 계산해 보면 20일도 채 되지 않는다.
“무조건 하나씩은 가입해야 해.”
아, 귀찮아, 정말. 왜 다들 나한테 자꾸 뭘 하라는 걸까.
“윤서야, 목요일에 혼자 교실에 남아 있을 순 없잖아. 얼마나 쓸쓸하겠니.”
귀가 번쩍 뜨였다. 혼자? 혼자 남을 수 있다고? 담임의 경고가 내겐 아주 매력적인 제안으로 들렸다.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배구랑 탁구 남았네. 윤서는 어떤 거 할래?”
담임은 신청서에 내 이름 적을 준비를 했지만 어디에도 내 이름을 적고 싶지 않았다.
“배구? 아니면 탁구?”
“수영요.”
난 학교에 없는 수영장을 떠올렸다.
“뭐?”
“수영할래요.”
“수영은 안 돼. 우리 학교에 수영장이 없잖아.”
담임은 다른 클럽을 고르라고 했다.
“테니스도 옆 중학교 가서 한다면서요.”
“거기 테니스장이 있으니까.”
“수영장도 구청 문화센터에는 있어요. 어제 선생님이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새로 만들어도 된다고요. 저는 수영하고 싶어요.”
난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혹시 클럽 하기 싫어서 그래?”
담임에게 정곡을 찔렸다. 뜨끔했다.
“아뇨.”
난 담임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창밖을 바라봤다.
“새로 만들려면 학교 안에서 클럽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승인이 날 거야.”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운동장 둘레를 걷는 남자아이도 있다. 두 주먹을 가슴 앞에 쥔 채 빠르게 걷고 있다. 어딜 가려는 게 아니라 걷기가 목적인 것 같았다. 참 열심히도 걷네. 저럴 바엔 차라리 뛰는 게 낫지 않나? 그래도 뛰는 것보다 걷는 게 편하긴 하겠지. 남자아이가 코너를 돌더니 교무실 쪽으로 다가왔다. 어? 우리 반 아이다. 두껍고 큰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서 알아봤다. 이름이 공 뭐였는데, 이름 대신 ‘공’ 아니면 ‘볼’이라고 불렸다.
“걷기가 좋긴 하겠어요.”
난 걷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걷기 클럽을 하겠다고?”
“네? 누가요, 제가요?”
“응. 네가 방금 말했잖아.”
담임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그랬나? 그 사이 공은 교무실 앞을 휙 지나갔다.
“그럼 걷기 클럽 할래? 나도 걷기는 해야 하는데. 허리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걷는 게 좋다더라고. 내가 담당 교사를 맡아서 한번 만들어 볼까?”
담임이 갑자기 의욕을 보였다. 이건 내 계획이랑은 다르다.
“참, 그런데 어쩌니. 클럽을 너 혼자 할 수는 없는데.”
담임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클럽은 적어도 학생 두 명 이상은 참여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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