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돌하는 두 세계
헤르만 헤세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으로, 그의 가정은 매우 엄격한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에밀은 늘 정돈되고 밝은 생각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 폭력적인 친구 크로머를 만나며 처음으로 갈등을 경험한다. 한편 신비한 친구 데미안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며 에밀과 데미안은 친구가 된다.
독특한 생각을 가진 데미안은 주체적인 인물로 에밀에게는 멘토와 같은 존재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까지 만난 에밀은 점차 넓은 세계에 눈을 뜬다. 그 영향으로 에밀은 그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의 권위와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고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힘까지 얻게 되었다.
에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데미안조차도 자신을 억압하는 제약으로 느끼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한다. 그 과정에서 에밀은 세상의 이중성과 만물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아브락사스’라는 존재를 접한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에 있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이라는 상반된 존재들을 모두 포용하고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두 명의 아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두 명의 소년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화자 역할의 에밀 싱클레어이며, 다른 한 명은 한상 신비한 분위기를 내뿜는 막스 데미안입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난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크로머라는 깡패 같은 친구를 만나 괴롭힘을 당합니다. 돈을 가져오라는 협박에 시달리던 싱클레어를 구해준 사람은 바로 전학생 데미안이었습니다. 데미안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태도를 지녔고,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어떤 문제에든 명쾌한 해답을 내놨기 때문에 싱클레어는 점차 데미안과 그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게 의지합니다.
『데미안』을 떠올리면 중학생 때 아주 친하게 지낸 아이가 생각납니다. 모든 면에서 저와 반대였죠.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이던 저와 달리 그 아이는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늘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겹치는 점은 하굣길이었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함께 걷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져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달랐는데 가장 다른 점은 그 아이는 아주 독실한 신앙을 가진 반면 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제가 지닌 많은 문제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종교의 힘으로 돕고 싶었던 그 아이는 틈만 나면 신과 교회의 이야기를 꺼냈고 저는 거기에 불퉁거리며 대꾸하는 재미에 우리의 대화 대부분은 ‘신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채워졌습니다.
사실 애초에 이런 대화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한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믿음을 갖지 못한 상태로 각자 서로의 전제 조건, 서로의 논리 위에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도그마’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죠. 바다로 갈라진 두 대륙 사이의 해안을 아무리 열심히 걸어 다녀도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두 사람이 아무리 많은 대화를 나눠도 어떤 합의점이나 설득에 도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아이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이 알고 있는 종교의 힘으로 저를 돕고 싶어 하는 그 안달하는 눈빛에 담긴 애정이 고마웠기 때문에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눌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집에 있는 종교와 관련된 책들은 모두 읽고 중학생이 이해하기엔 버거운 철학책이나 우주의 기원을 알려준다는 물리학책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골치 아프다는 책은 다 찾아 읽던 시절에 만난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습니다.
상급 학교인 김나지움에 진학하며 데미안과 헤어진 싱클레어는 정신적 방황을 겪으며 술에 빠지기도 하고 학업에도 소홀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와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고향에 온 싱클레어는 뜻밖에 데미안의 쪽지를 받게 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도대체 이 쪽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계를 파괴하고 나오는 새? 아브락사스는 또 무슨 의미죠? 이 쪽지의 수수께끼에 휘말려든 싱클레어는 다시 한번 거대한 혼란의 늪으로 빨려들어갑니다.
평생 두 세계에서 고통받은 헤르만 헤세
이 소설 첫 번째 장의 제목이 바로 ‘두 개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는 작가가 지닌 가장 중요한 주제 의식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자한 부모님, 다정한 누이들, 사랑과 엄격함, 깨끗함과 도덕이 가득한 빛의 세계죠.
물론 싱클레어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살장과 감옥, 주정뱅이와 강도, 부랑자와 아내를 때리는 남편들이 있는 어둡고 폭력적인 세계죠. 그 세계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밝은 세계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곳입니다. 그 울타리를 깨고 넘어온 악당이 있습니다. 바로 동네 깡패 크로머입니다.
소설 속에서 싱클레어와 크로머의 세계를 다시 한번 구분하는 중요한 상징은 이 둘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독일에서는 초등 교육을 받은 후 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으로 진로가 나뉩니다. 하우프트슐레를 졸업하면 직업교육을 받을 기본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고, 레알슐레를 졸업하면 직업을 얻을 수 있으나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으며, 김나지움에서 인문 교육을 받아 아비투어 학위를 수여해야 비로소 대학에 다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으려면 하우프트슐레 수준에서 그치고, 회사에 취직하려면 레알슐레에, 대학까지 가려면 김나지움에 다녀야 합니다. 김나지움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한다면 라틴어 문법 과목을 배워야 합니다. 독일의 초등 교육 기관은 라틴학교와 초등학교로 나뉘는데 김나지움을 목표로 한다면 라틴학교를 다니고, 그렇지 않고 최소한의 의무 교육만 받으려 한다면 초등학교를 다닙니다.
싱클레어는 라틴학교를 다니고 크로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입니다. 즉, 크로머는 협박과 폭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에 난입한 침략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면 이런 상황에는 밝은 세계를 수호하는 빛의 전사가 나타나 침략자를 내쫓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될 것입니다. 하지만 싱클레어를 구출한 데미안은 크로머를 딱히 혼쭐내준 것도 아니고 그저 얘기를 나눈 것만으로 크로머를 도망치게 만들어버립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