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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스스로 돕는
강연자를 돕는다
기자 시절 K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로 방송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세 번째 출연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데, 피디가 나를 불러세웠다.
“내용은 좋지만, 지금처럼 하시면 저는 선생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단호했다. 이유도 분명했다. 말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었다. 청취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느리면 즉시 채널을 돌린다고 했다. 덧붙여 피디는 라디오 방송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 주었다.
“지금보다 세 배 정도 빠르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피디의 요구는 간명했다. 방송할 때 말을 아주 빠르게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두 회 정도만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 말에 자존심은 좀 상했지만, 이참에 내 문제를 고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방송에서 잘리느냐, 살아남느냐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득 의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의사들은 어떤 병이든 그 원인을 알면 어떻게든 처방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드디어 그 이유를 찾았다. 나는 말하는 데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틀리지 않으려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말의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말에 스피드를 올리려면 생각과 동시에 말을 해야 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처방이었다. 그런데 해법을 찾는 게 그리 간단치 않았다. 더구나 한 주의 시간이 지났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갈 길이 바빴다. 그때 신기하게도 해법이 나왔다. 아주 흥미로운 처방이었다. 그건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말 걸기’였다. 좀 유치하고 우스운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해법이었다. 우리는 사람들만 보면 입을 연다.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여럿이 모여 있으면 더 시끄럽게 떠든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문다. 둘이든 여럿이 우르르 몰려오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순간 신기하게도 입이 얼어붙는다. 심지어 친구나 동료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걸어오다가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말이 정지된다. 뮤트Mute, 즉 자동적으로 음소거가 된다.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 누구도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지키는 것 같았다.
“오늘 날씨가 좋네요.”
아파트 옆 동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이웃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처음 보는 아파트 주민이었다.
“그러게요.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졌어요.”
엘리베이터 안의 정적을 깨고 말을 걸었더니, 주민이 얼떨결에 반응을 했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아파트 단지의 동을 바꿔가면서 실험을 이어갔다.
“단지에 고양이가 꽤 많이 돌아다니네요.”
대답을 유도하는 말을 꺼내 보았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니까 몰려드는 거예요. 왜 사료를 주는지 모르겠네.”
이웃 주민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꾸를 했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요.”
“안 주긴 왜 안 줘요. 201동 현관 앞에도 주는 사람 있고, 놀이터에도 고양이 밥그릇 있잖아요.”
나이 든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조용히 말을 하더니, 목소리 톤이 마구 올라갔다.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듯싶었다. 아마도 내가 대꾸를 하면 한 시간이라도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흥미로웠다.
과감하게 장소도 바꾸어 보았다. 성남 분당의 오피스빌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회사원을 상대로 말을 걸어 보았다. 놀랍게도 굳게 닫힌 상대방의 입이 열렸다. 순간적으로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하는 표정이었다가 이내 반응이 나왔다. 나중에는 일부러 회사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로 갈 때 뒤따라가기도 했다. 물론 말을 걸어 보았다. 영락없이 반응이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말 걸기는 단시간에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내가 그간 말이 느렸던 까닭은 내 구강 구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열쇠는 바로 자신감이었다. 다시 말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내 입을 짓누르고 있었던 탓이다.
영역을 넓혀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말 걸기 이후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어 보았다. 사람들은 멈칫하다가도 이내 대꾸를 했다. 예외 없었다. 많은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 같지만, 그건 꽤 괜찮은 해법이었다. 엘리베이터와 공원, 등산로에서 말 걸기를 시도하면서 신기하게도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말의 스피드도 빨라졌다. 나귀를 타다가 갑자기 천리마로 바꿔 탄 기분이었다.
약속한 두 주가 지나고 그 다음 생방송을 하고 나오는데, 피디가 물었다.
“그동안 뭔일 있었어요? 어떻게 그리 달라질 수 있죠?”
“글쎄요. 나도 모르게……, 하하.”
그 프로그램은 그로부터 무려 2년 더 이어졌다. 스튜디오에 가지고 들어가던 대본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간단한 메모지만 들고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애드리브’로 생방송을 했다.
2010년 어린이 월간지에 동화작가로 데뷔했을 때 출판사 마케팅 담당 이사는 당시 출판시장을 어둡게 전망했다. 그때까지 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 위해 작가가 되었는데, 그의 한마디로 작가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 무렵 우연히 한 유명 강사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연은 훌륭했다. 강연자의 말솜씨는 뛰어났고 내용도 괜찮았다. 문제는 강연을 듣는 대상이었다. 강연장에 참석한 청중은 대부분 어린이였는데, 그들은 강연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 아이는 하품을 하거나 딴청을 피웠다. 어떤 아이는 몸을 뒤틀거나 옆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아이도 있었다! 사정이 그런데도 강연자는 준비한 대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연자와 아이들이 서로 겉돌고 있었다. 물과 기름이 뒤섞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송 경험을 살려 강연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 당시는 아직 번듯한 단행본 한 권 못 낸 때였으니 누군가 나를 섭외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누워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서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번에도 떠오르는 게 우리 아파트였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찾아갔다. 아이들을 모아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노라고. 관리소장은 부녀회장을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부녀회장은 의외로 나를 반겼다. 동화작가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주말로 날을 잡았다. 나는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다 일일이 붙였다.
마침내 행사 예정일인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한두 명씩 아이들이 들어왔다. 대여섯 명이 왔다. 문제는 더 이상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슬슬 불안해져갔다. 부녀회장에게 연락을 했다. 곧 아파트 방송으로 부녀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민 여러분, 지금 노인정에서 유명한 생태동화작가의 강연이 시작됩니다. 우리 단지에 사는 분입니다. 다시없는 기회입니다. 선물도 있다고 하네요. 많은 참석 바랍니다.”
부녀회장이 관리실에 와서 안내방송을 해 주었다. 부녀회장은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지막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서둘러 주세요. 노인정 방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지금 많이 몰려오고 있네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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