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아빠, 나 왔어!” 봉안당에 들어설 때면 최대한 명랑하게 인사한다. 그날 밤 꿈에 아빠가 나왔다. “은아, 오늘은 아빠가 왔다.” 최대한이 터질 때 비어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가마득한 그날을 향해 전속력으로 범람하는 명랑.
그곳
그곳이라고 불리던 장소가 있었다. 누군가는 거기라고 했다가 혼쭐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짜 거기로 가면 어쩌려고 그래? 뼈 있는 농담이 들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더라? 우리는 만났지, 인사했지, 함께 있었지. 어떤 날에는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했지. 죽자 사자 매달리기도 했지. 죽네 사네 울부짖었을 때, 삶보다 죽음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
너나없이 그곳을 찾던 때가 있었다. 만날 때마다 너와 나는 선명해졌다. 다름 아닌 다르다는 사실이. 같은 취향을 발견하고 환호하던 때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는 가까워졌다. 어쩜 잠버릇까지 일치하는지 몰라. 네가 말했을 때 너도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지. 우리 아이에는 고작 그것만 남아 있었다. 내 앞에 네가 있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났다. 내남없이 갔어도 내가 남이 되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져도 이냥저냥 살아갔다. 체면은 삶 앞에서 이만저만하게 구겨지기 일쑤였다. 이러저러한 사연은 이럭저럭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쿵저러쿵 뒷말만 많았다. 이심전심은 없고 돌부리 같은 감정만 웅긋중긋 솟아올랐다. 삶의 곁가지에 울레줄레 매달린 건 애지중지하는 미련이었다.
아무도 그곳을 부르지 않아서
그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
거울이 말한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는 마라.
형광등이 말한다.
말귀가 어두울수록 글눈이 밝은 법이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를 조심하라.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
치약이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기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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