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에이징 솔로가 온다
― 4050 비혼 여성들의 ‘혼삶’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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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로 중년 되기
“노처녀가 사라졌다.”
2022년 7월 온라인 뉴스를 보던 중 눈에 띈 제목이다. 뉴스를 열어보니 나이 든 비혼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인 ‘노처녀’가 뉴스 제목에서 점차 줄어들다가 이제 더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뉴스 제목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10년 치 뉴스 763만 8,139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노처녀’라는 표현은 2020년 4월을 끝으로 뉴스 제목에서 사라졌다. 다이브는 “누군가를 노처녀라 지칭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가운 변화다. 그러고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노처녀라는 말을 듣거나 읽은 지 오래다. ‘골드 미스’라는 표현도 요즘 잘 쓰이지 않는다. 돈을 물 쓰듯 하는 고소득 여성이 인생을 즐기려고 결혼하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뉘앙스를 물씬 풍기던 그 말도 거의 사라져 반갑다. 1인 가구가 대폭 늘고 평범한 여성들이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게 드물지 않은 삶의 양식이 되면서 생겨난 변화일 것이다.
최근의 변화를 짚어보다 문득 1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마흔두 살이 되던 해, 나는 18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가만히 있으면 정년퇴직까지 쭉 갈 수 있는데 별 대책도 없이 굳이 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사표를 낸 나를 한 선배가 회의실로 불렀다.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 다시 생각해 보라는 설득 끝에 선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네 나이에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으면서, 회사까지 그만두면 어쩌려고 그래? 인생 망칠 작정이야?”
지극한 염려인지 노골적 비난인지 알쏭달쏭한 말을 듣고 얼떨떨해져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나이의 여성이 남편도, 자식도, 정규직 직장도 없으면 인생 망가진 것으로 보이나 보다’ 하는 인상만 선명히 남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나는 ‘남편도, 자식도 없이’ 어디에도 묶이지 않았던 덕택에 홀로 긴 여행을 여러 번 떠났고,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안전한 일터를 떠나 낯선 분야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겪기 어려웠을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물론 가족이 있다고 불가능한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내 변수만 고려하면 되는 솔로라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웠다.
가족주의가 강력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경험이 밝고 따뜻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험은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혀온 시간이기도 했다. 이혼한 뒤 내가 오래 속했던 제도와 그 안에서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주류에서 벗어난 삶,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행위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겉모습으로 단정 짓지 않고 남의 속내를 쉽게 넘겨짚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도 배웠다.
여전히 사는 일에 흔들리고 헷갈릴 때도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문제를 다루는 품과 역량도 늘어났는지 젊은 시절만큼 괴롭지는 않다. 요컨대 나는 또래의 기혼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그럭저럭 내 삶을 꾸려가고 있고, 10여 년 전 선배의 우려와 달리 인생을 망치지 않았다.
이대로 충분한 중년의 ‘혼삶’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도 중년에 이른 자신의 ‘혼삶’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지역단체에서 일하는 강미라52는 현재 비혼생활의 만족도에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자 100점 만점에 98점을 줬다. 절친한 친구가 가까이 살지 않기 때문에 2점을 뺐다고 한다. 그는 몇 년 전 넓은 주거공간을 찾아 경기도 소도시로 이주했다.
“나이 들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어요. 어릴 땐 뭔가 남들은 나보다 더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 우울할 때도 있었고 혼자 사는 데 대한 좌절감도 있었는데, 50대가 되니까 좋아요. 한때 결혼할 뻔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20대 때도 재미있게 살았지만 뭔지 모를 조바심과 불안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게 없어졌어요. 넓은 공간을 찾아 이사도 했고, 갱년기 증상을 겪기는 해도 나이 들수록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이 나아지느냐 물으니 그는 자신의 태도 변화를 들었다.
“힘든 상황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어쩌면 힘든 일이 지금 더 늘어났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걸 대면하는 내가 달라졌어요. 지금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골짜기 바닥에 있는 거니까 조금만 지나가면 올라간다는 걸 알고 참는 힘이 생겼달까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과민 반응이나 과대 해석을 예전보다 덜 하는 것 같아요. 현실적 목표를 설정할 줄 알게 되었고, 인맥과 네트워크에 목매지 않고 나에게 소중한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죠.”
계속 일을 해온 솔로에게는 중년기가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할 때다. 직장을 다니다 지금은 프리랜서가 일하는 박진영46은 “솔로의 삶에서 40대가 전성기 같다”라고 했다.
“일하는 비혼 여성으로 40대가 되면 나 하나 건사하는 것은 일단 쪼들리지 않고 할 수 있어요. 제 직업이 고소득 직종이 아닌데도 씀씀이 대비 넉넉해요. 계속 일해왔고 부양가족이 없으니까요. 아이, 남편, 시댁, 친정이 없으니까 최우선 순위로 신경 쓰고 챙겨야 할 대상이 오로지 나와 나의 일뿐이라는 점을 100%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라 언제까지 일감이 꾸준히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지금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일이랑 결혼했다는 표현이 아주 틀리지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좋게든 싫게든 계속해서 대화나 사소한 일들이 불쑥불쑥 끼어들 텐데, 그런 것 없이 시간의 우선순위가 온전히 나한테 달려 있고, 집중해야 할 시간을 내 의지로 더 잘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일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큰 자산 같아요.”
솔로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느낌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좋아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젊은 시절이 너무 괴로웠어서 돌아가기 싫다는 게 아니라, 감사하게도 관심 가는 일은 충분히 다 해볼 수 있었고, 그렇게 보낸 인생에 무언가 맺혔거나 억울한 점이 없다는 뜻이에요. 결혼과 출산은 못 해봤지만 어떤 시기에도 그것들이 간절히 해보고 싶은 우선순위의 일은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성취하고 인정을 받는 것은 제 기준으로 과분할 만큼 해봤다고 생각해요.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광고대행사 임원에서 비영리단체 활동가로, 컨설턴트로 직업을 몇 차례 바꾼 남지원60은 이사와 이직 등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홀가분한 선택이 가능했던 점을 솔로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졌던 여러 기회 중 70~80%는 비혼이어서 갖게 된 것 같다”라고 했다.
“직장을 6년 다니면서 돈을 모아 서른한 살에 유학을 갔어요. 제가 책임질 관계가 없으니까 선뜻 결정할 수 있었죠. 40~50대 때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하는 선택을 했는데 어떤 모험을 해도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은 나 하나니까 결정이 어렵지 않았어요. 제 선택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용기 있다고 하는데, 용기가 있는 게 아니라 장애물이 없는 거죠. 물론 비빌 언덕도 없지만.”
그는 “그런 결정을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라는 세계에 와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던 자유로움을 솔로의 장점으로 꼽았다.
노년이 그리 멀지 않은 60세를 비혼으로 맞이한 느낌은 어떨까. 그는 “이대로 충분하다”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 눈이 빠지도록 미친 사랑을 했더라면 그 경험을 살아보고 싶어서 결혼했을지도 모르지만, 프러포즈를 받을 때조차 그런 느낌이 없어서 선택하지 않았어요. 어느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출산하고, 늙으면 뭐 하고…. 그런 일정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싶은 마음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그는 2021년에 60세를 맞아 스스로 통과의례를 기획했다. ‘돌아온 말들’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 중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을 나에게 들려주세요”라고 요청한 것이다. 어릴 때 친구나 가족을 제외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 동료, 후배 30여 명에게 보냈는데 20명에게서 답이 왔다. 한두 문장의 문자메시지부터 그에게 들은 말을 엑셀로 정리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자기 느낌까지 써서 돌려준 후배도 있다고 했다.
“60이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다음 10년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어요. 내가 실제의 나를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관계의 그물망 속에 있는지 알고 싶어서 기획한 거죠. 혼자 앉아 생각만 해서는 모르잖아요. 일반적인 생애 경로와 다른 삶을 살수록 여행이든 이벤트든 스스로 인생의 매듭을 만들어서 자기를 낯설게 보는 훈련을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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