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역사화된 기억공간
4·3의 기억
― 비설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건축했던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안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 대리석의 ‘피에타Pietà’1498~99가 있습니다. 손으로 빚은 도예품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눈을 의심할 정도입니다. 정과 망치로 빚은, 비통하고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자상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성자가 성모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는 기존 사실적 표현의 전통과 다르게 사후 경직이 일어났어야 할 예수를 축 늘어지게 표현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을 편안하게 안을 수 있도록 마리아를 다소 크게 조각하며, 슬프지도 애통하지도 않은 듯 묘한 표정에 앳되어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묘사함으로써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만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한 인간의 거룩하고도 성스러운 죽음 앞에 어머니의 심정은 그저 고통스러울 뿐일 테니까요.
여기, 독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가 그린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Frau mit totem Kind’이 있습니다. 콜비츠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을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1903년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의 둘째 아들이 전사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통한 부모Trauernde Eltern’1932와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Mutter mit totem Sohn’1937~39라는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콜비츠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와 달리 어머니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아들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니, 아들의 주검 앞에서 그저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과 묵상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애통함과 무기력감을 표현한 것이겠지요.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미술적 기교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어머니로서 느낀 고통 그대로를 그리고 만든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고집하지 않은 콜비츠의 피에타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는 나중에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관, ‘신 위병소Neue Wache’ 안에 좀 더 키워진 형태로 전시됩니다신 위병소는 뒤에서 소개합니다.
여기 또 다른 피에타가 있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에 설치된 ‘비설飛雪’입니다. 천장도 벽도 없는 돌담만이 모녀상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4·3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이 피에타는, 바티칸에 있는 아름다운 피에타, 그리고 베를린에 있는 아름다움을 고집하지 않은 피에타와는 다른 고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가야, 춥지?” 어머니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아이를 달랩니다. “울지 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괜찮아질 거야.” 토벌대를 피해 거센 눈보라를 가르며 ‘거친오름’을 오르고 있는 스물다섯살 어머니의 품에서 두 살배기 아기가 울지도 않고 눈만 멀뚱거리며 어머니의 눈을 보고 있습니다. 순간 단발의 총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는 곧 쓰러집니다. “아가야…… 괜찮아…….” 놓쳤던 아기를 다시 품에 안으며 서서히 얼어갑니다.
봉개동 일대에서 대대적 토벌 작전이 있었던 1949년 1월 6일, 두 살배기 아기를 업고 거친오름을 오르며 토벌대를 피해 달아나다 총에 맞아 눈밭에 쓰러져 죽은 변병생호적상 이름 변병옥. 눈 더미 속에서 얼어 있는 모녀를 행인이 발견하였고, 억울하게 희생된 두 생명의 넋을 달래고자 훗날 그 모습을 ‘비설’로 조형하여 4·3평화공원 한쪽 자리에 세웠습니다.
4·3이란 해방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발생한,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 사이 제주 일원에서 남로당 무장대와 군·경 및 우익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그 진압 과정에서 거의 3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충돌의 당사자가 아닌 무고한 주민이 집단으로 잔학하게 살해당한 이 사건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습니다. 이토록 비극적인 사건인데도 이념 문제로 인해 수십 년간 금기시되다가, 2000년대 들어서야 겨우 진상이 규명되었습니다. 다행히 2014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우리는 이제 매년 4월마다 이 비극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비극적인 4·3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 ‘비설’은 2007년 12월 20일에 설치되었습니다. 강문석, 고길천, 이원우, 정용성 작가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모녀상은 실제 크기의 청동 조각상으로 제작되었고, 백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하얀 눈밭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조각상은 주변 지면으로 낮게 설치되어 있는데, 제주석을 사용한 달팽이 형태의 돌담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둘러싸고 있습니다. 돌담 초입 벽에는 제주 전래의 자장가 ‘웡이자랑’이 띠 형태의 오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