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그러면 네 이름 뒤에는 요즘 어떤 수식어가 붙어?” 앤서니Anthony가 물었다. 나름의 배려였다. 조금 전 내가 앤서니의 이름 뒤에 OBE영국 4등 훈장 수훈자―옮긴이가 추가된 것을 언급했는데 그에 대한 답례였을 것이다.
“박사PhD, 임피리얼칼리지 졸업생DIC, 이학사BSc, 공인정보기술전문가CITP, 공인기술자CEng, 영국컴퓨터협회 회원MBCS, 관광학 박사MRTS, 런던시티길드협회 준회원ACGI…….” 나는 오래된 친구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소년 피터’가 되어 마구 자랑을 해댔다. 이제 ‘어른 피터’가 상황을 수습할 차례였다. “아무리 그래도 OBE가 훨씬 더 대단하지.”
앤서니와 나는 꼼꼼하게 일정을 맞춰 같은 시기에 런던에 머물렀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리릭 오페라Lyric Opera 감독인 앤서니는 국제적으로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한편 10여 년 전 프랜시스Francis와 결혼한 후 나 역시 세계를 돌며 우리 둘이 오래전부터 꿈꿔온 이국적 장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앤서니와 나는 모처럼 함께 보낼 수 있는 하루를 발견하고, 그간의 근황과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가 놓친 역사적 순간이 실은 너와 그의 시민 동반자 관계법률에 의해 인정받는 동반자 관계―옮긴이를 기념하는 의식이 아니라, 결혼식이었다는 거지?”
“맞아! 작년에 법이 다시 개정되어 우리가 시민 동반자 관계에서 혼인 관계로 갱신할 수 있게 됐지. 하지만 사실 상관은 없어. 법이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혼인증명서에는 날짜가 2005년 12월 21로 적혔거든. 세상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9년 동안이나 결혼 생활을 했지 뭐야.”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석 달 사이에 돌아가셨다. 두 분 다 90대 후반이었다.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프랜시스와 내가 그들을 돌보았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의 인도 신혼여행 얘기 좀 들려줘. 콜린Colin이랑 나도 조만간 그쪽으로 갈 생각이거든!” 콜린은 앤서니의 남편이다. 둘이 함께 산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너희들의 방랑벽이 생긴 게 신혼여행 때였지?”
“그랬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둘이 거의 동시에 이렇게 말했어. ‘이대로 여행을 계속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으니까. 많이 모으려고 들면 끝이 없겠지만 필요한 돈은 수중에 충분히 있었지. 오히려 프랜시스와 둘이서 아무리 해도 모자란 한 가지는, 아직 비교적 젊을 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따옴표 모양을 만들었다 ― 은퇴했지.”
“40대에…….”
“은퇴한 거나 다름없어!”
물론 아직까지 컨설턴트로서 몇몇 기업과 조직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지만, 그건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눈에도 네가 ‘은퇴’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앤서니가 내 손가락 따옴표를 흉내 내며 말했다.
“완벽한 생활이야! 그동안 과학책을 두 권 더 썼지만, 대체로 지리나 역사, 미술의 세계에 빠져 지내고 있지. 학창 시절에는 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으니까. 프랜시스도 나도 건강함 그 자체이고, 우리 둘 다 모험을 무지무지 사랑해. 앞으로 20년 동안은 이대로 죽 모험을 계속하고 싶어. 마침내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됐어.”
*
어느 겨울, 프랜시스와 나는 북극광을 보러 여행을 떠났다. 북극권 끝에서 뜨거운 목욕물에 기분 좋게 몸을 담근 후, 나는 미지근해진 물에서 막 일어서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뭔가를 밟은 개처럼 왼발을 들어 물방울을 털어냈다. 그런 다음 매트에 발을 내려놓고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의 세계는 요동치며 다른 차원으로 들어섰고, 이후 나는 완전히 낯선 미래를 향해 초고속으로 내던져졌다.
오른발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물방울을 털어내려 해도 발은 그저 움찔거릴 뿐이었다. 갈라파고스Galapagos제도의 늙은 대형 거북이 다리를 흔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는 뭔가 기묘한 현상을 마주한 과학자의 호기심으로 이 사실을 담담히 기억한 채 일단 목욕을 끝내고 나왔다.
같은 일이 몇 번 더 일어나자 나는 다리에 쥐가 난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근육에 무리가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별일은 아닐 것이다. 완벽하게 납득할 수 있는 가설을 무의식 속에 처박아둔 채 내 뇌는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꼬박 석 달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로도스Rhodos섬을 방문했고,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고대 그리스 신전을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던 중 나는 다리에 떨림을 느꼈다.
서둘러 덧붙이자면 그렇게 심하게 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특정한 방식으로 걸을 때나 앉을 때 오른쪽 다리에 이따금 떨림을 느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었고, 눈길을 끌 만한 정도도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리치료사에게 진찰을 받기로 했다. 2주 후 물리치료사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내 다리를 쿡쿡 찌르고, 펴고, 이런저런 기록을 했다. “깊은 근육 좌상일 수도 있어요. 살짝 찢어졌을지도 몰라요. 또 다른 증상이 있나요?” 물리치료사의 질문에 나는 다리 떨림을 언급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뇨, 그렇게 되는 조건이 있어요. 이렇게 하면…….”
“아아.”
그것은 사람을 왠지 불안하게 만드는 감탄사였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은 알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는 감탄사. 하지만 나는 당연히 알고 싶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거죠?” 나는 그순간 말투를 좀 더 전문적인 어조로 바꾸었다. 사안의 민감함을 의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대등한 입장에서 요점만을 묻자. 그러면 최단시간에 최대한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보통 간헐성 경련이라는 질병의 증상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나는 정확하게는 외우지 못해도 수천 개의 의학 용어를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모른다면 비교적 흔치 않은 질병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대뜸 물었다. “신경 손상인가요?”
“맞아요! 상위운동뉴런장애가 의심됩니다. 당장 주치의에게 의뢰서를 써드릴게요. 주치의에게 뇌신경과 의사neurologist를 소개받아 MRI 검사를 받아보세요.”
나는 물리치료사가 급하게 써준 의뢰서를 부적처럼 움켜쥐고 진료소를 나왔다. 물리치료사가 말한, 내 척수 또는 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애’가 무엇일까? 나는 가능성 있는 후보들을 재빨리 떠올려보았다. 어디선가 다쳤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몸을 심하게 부딪친 것은 가라테를 배우던 10대 후반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문제가 나타난다고?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