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950년에 유네스코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種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었다. 이 무렵이면 이 결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많이 쌓여 있었고, 여기에 관여한 과학자들은 인간 집단 간 차이를 실제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어서 비슷한 내용의 성명이 미국인류학회AAA와 미국체질인류학회AAPA에서도 발표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무수한 과학적 데이터가 이 결론을 뒷받침했다. 오늘날 인간 집단간 차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인간 종에는 ‘생물학적〔으로 구별되는〕 인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 현대 과학의 기법과 논리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연구자들에게 이것은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만큼 참이고 타당한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히 최근인 2010년에도 저명한 저널리스트 가이 해리슨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1980년대의 어느 날 대학에서 첫 인류학 수업을 듣게 된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이 멋지고도 희한한 종에 대해 알고 싶어서 들뜬 채로 강의실 맨 앞 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생물학적 인종이 실재가 아니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은 것이다. 방대한 생물학적 범주들이 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지 보여주는 완벽하게 합당한 이유들을 듣고 나니 사회에 배신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이 이야기를 들었을까? … 인류학자 대부분이 생물학적 인종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이야기를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Harrison 2010.27.30
인종주의의 신화
불행하게도, 생물학적 토대에 따라 구분되는 인종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함께 미국과 서유럽에 인종주의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가 그토록 많은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교육받은 사람 대부분은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 간의 차이와 관련해 현대 과학이 알려주는 바를 받아들이기는 훨씬 어려워한다. 왜 그럴까? 인종이 실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수반되는 ‘인종주의’의 편견과 혐오가 너무나 오랫동안 문화에 뿌리박혀 우리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머지, 많은 이들이 그냥 사실일 게 틀림없다고 가정해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인종주의는 우리 일상에 속속들이 스며 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를 가는지, 어떤 직장이나 직업에 종사하는지, 누구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사람들이 나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의료 시스템과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나를 대하는지 등등 모두가 내 인종이 무엇인지에 영향을 받는다. 지난 500년 동안 우리는 지능, 성적인 행동, 출산율, 영유아 돌봄, 노동 윤리와 노동 역량, 개인적인 절제, 수명, 법 준수 성향, 공격성, 이타심, 경제 및 기업 행위, 가족의 응집, 심지어는 뇌의 크기까지 우리의 구체적인 특질 상당수가 인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누누이 들어왔다. 또한 우리는 인종에 위계가 있어서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배워왔다. 인종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삶도 이러한 방식으로 질서 지워진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인종주의적인 사회에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그러한 인종주의적 구조가 실재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미 꽤 한참 전에 인종이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 실체가 아님을 입증했다. 복잡성이 높은 인간 행동 중 흔히 ‘인종적’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밝혀진 행동은 하나도 없다. 지능, 법 준수성, 경제 행위 등과 인종 사이에는 내재적인 관련이 없다. 코의 크기, 키, 혈액형, 피부색이 복잡한 인간 행동 중 어느 것과도 내재적인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난 500년 동안 우리는 지식인, 정치인, 행정가, 기업인의 비공식적이고 상호 강화적인 연합에 의해,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문헌을 통해, 생물학적 인종이 실재이며 생물학적으로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개념을 보고 듣고 학습해 왔다. 이러한 가르침은 스페인 종교재판 시절의 유대인과 비非그리스도교인, 식민지 시대의 비非유럽인과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노예제 시기와 〔남북전쟁 직후〕 ‘재건 시대’의 미국 흑인, 나치 독일 시기의 유대인과 일부 유럽인,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출신 사람들과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행된 막대한 불의의 요인이었다.
생물학적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등에서 축적되어 온 과학적 지식을 이 책에서 또 다시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작업은 지난 50여 년간 많은 학자들이 잘 수행한 바 있다. 그보다 이 책은 인종 및 인종주의의 ‘신화’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이 역사를 통해, 왜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인종주의적인 오류를 믿도록 우리를 오도하고 미혹해 왔는지, 또한 어떻게 그 오류가 중세 말부터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올 수 있었는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현대 사회의 삶의 방식을 계속해서 통제하기 위해 인종 개념과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을 숱하게 개발해 왔다. 이 지도자들은 종종 자신이 가장 우월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펴볼 역사〔인종 및 인종주의의 신화〕의 상당 부분이 스페인 종교재판, 식민주의, 노예제, 나치즘, 인종 분리와 인종차별, 반反이민 정책 등을 촉발하거나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노골적인 인종주의 정책은 차차 완화되어 온 듯 보이지만, 인종에 대한 신화는 미국과 서유럽 전역에 아직도 건재하다. 나는 인종주의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또한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이 인종주의의 정당성에 어떻게 도전하고 어떻게 그것의 부당성을 밝힐 수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인종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만연해 있는지를 더 명료히 이해할 수 있게 돕고자 했다.
지난 500여 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과 그들이 내놓은 저술들이 인종주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 개념의 원형을 개발했고, 그들이 만든 경제적, 정치적 정책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인종 개념에 토대를 둔 믿음과 태도가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러다가 100년쯤 전에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가 상이한 지역 출신들 사이에, 또는 상이한 여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인종주의적이지 않은〕 새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집단은 서로 다른 역사, 서로 다른 집단 경험, 그리고 이러한 차이와 관계를 맺는 서로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 특정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즉 우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아스와 제자들이 이러한 개념을 발달시키고 학계에 널리 전파하기까지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하지만 지난 50-60년 사이에 인류학자, 생물학자, 유전학자 들이 인간 종에는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하위 분류로서의 인종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저술을 내놓았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피부색, 머리카락의 색과 형태, 눈동자 색, 안면 구조, 혈액형 같은 특징을 가지고 인종을 구분하려 했다. 더 최근에는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서른 개 이상의 인종으로 사람을 구분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지만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는 않았다.Molnar 2006 참고 이러한 가설적인 ‘인종’ 대부분은 상이한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과 유전적 특질의 집단간 분포에 대한 모종의 가정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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