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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칩거하던 새 요양원도 첫 번째 요양원처럼 내 병을 치유하지 못했다. 그곳을 떠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기차를 타고 마침내 파리로 돌아가는 여정 동안 예전에 게르망트 쪽을 산책하면서 발견했다고 믿었고, 탕송빌에서 늦은 시각의 저녁 식사를 위해 귀국하기 전 질베르트와 함께 일상적으로 하던 산책에서 보다 서글프게 인식했으며, 또 탕송빌의 영지를 떠나기 전날 밤 공쿠르의 일기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문학의 공허함과 거짓에 거의 동일시했던 상념이, 나의 개인적인 병약함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믿어 온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 데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그 상념은 덜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내 마음을 더 울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자 오래전부터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던 그 상념이 어느 때보다 더 비통한 힘으로 내 가슴을 다시 때렸다. 내가 탄 기차가 들판 한가운데 정차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태양이 철길을 따라 한 줄로 늘어선 나무줄기를 절반까지 비추고 있었다. ‘나무들이여,’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대는 이제 내게 할 말이 없겠구나. 차가워진 내 마음에도 그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 나는 자연 한가운데 있고, 그러나 내 눈은 그대의 빛나는 꼭대기와 그늘진 줄기 부분을 가르는 선을 그저 냉담하고 권태로운 마음으로 확인할 뿐이다. 내가 한때 시인이라고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시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앞으로 열릴 내 삶의 그토록 메마른 새로운 부분에서는 자연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대신해서 영감을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어쩌면 내가 자연을 노래할 날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관찰이 이런 불가능한 영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거라고 위로하면서도 그것이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몸짓에 지나지 않으며, 또 나 자신이 별 가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정말 예술가의 영혼을 가졌다면, 석양빛이 비치는 이 나무들의 장막 앞에서, 거의 기차 발판까지 뻗어 오른 철로에 쌓인 경사면의 작은 꽃들 앞에서 어떻게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꽃잎의 수는 셀 수 있지만, 나는 그토록 재능 있는 문인들이 하는 것처럼 그 빛깔을 묘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조심할 것이다. 자신이 느끼지 않은 기쁨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잠시 후 같은 석양빛이 어느 집 유리창에 오렌지와 금빛 렌틸콩을 체로 치는 것 같은 광경이 보였고, 마지막으로 시간이 늦은 탓인지 꽤 낯선 분홍빛 소재로 건축된 것 같은 또 다른 집도 보였다. 그러나 마치 어느 귀부인과 정원을 산책하다 얇은 유리판과 조금 더 멀리에는 설화석고와 유사한 물질로 만들어진 대상을 보았을 때, 그것의 익숙지 않은 빛깔이 나를 나른한 권태감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부인에 대한 예의에서 뭔가를 말하려고, 내가 그 빛깔에 주목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채색 유리와 석고 조각을 가리킬 때와 같은 그런 절대적인 무관심 속에서 그 다양한 요소들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도록 나를 동행하고 또 거기서 나보다 더 많은 기쁨을 끌어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하듯 나 자신에게, 유리창에 비친 붉은 반사광과 집의 분홍빛 투명함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내게 그 신기한 효과를 확인하도록 환기시켜 준 동행자는 아마도 그 광경에 황홀해하는 다른 많은 이들에 비해 덜 열광적인 기질이었는지, 이런 다양한 빛깔을 보아도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파리를 떠났지만 내 오래된 친구들은 그들 명단에 내 이름이 남아 있는 관계로 계속해서 초대장을 보내왔는데, 집에 돌아오면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라 베르마가 딸과 사위를 위해 베푸는 다과회 초대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음날 게르망트 대공 부인 댁에서 열리는 오후 모임의 초대장이었다. 기차에서 했던 서글픈 명상도 그곳에 가지 말라고 권할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사교계 인간으로서의 삶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날마다 내일 시작하겠다고 그토록 오랫동안 희망했으며 이미 그토록 여러번 언급된 그 ‘작업’에 내가 적합하지 않으며, 아니 더 이상 적합하지 않으며, 그리고 어쩌면 그 일은 어떤 현실에도 상응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이유는 그저 소극적인 것으로 다만 사교계에서 열리는 이 음악회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는 이유의 중요성만을 제거했을 뿐이다. 나를 그곳에 가게 만든 이유는 게르망트라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내 머리를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므로, 초대장에서 그 이름을 읽었을 때 한 줄기 주의력이 깨어났고, 이 주의력이 내 기억의 깊은 곳으로부터 당시 그 이름을 동반하던 모든 영지의 숲과 키 큰 꽃들의 이미지가 함께하는 과거의 부분을 들어올렸으며, 또 내가 콩브레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루아조 거리에서 게르망트 영주인 질베르 르 모베가 그려진 채색 유리를 밖에서 어두운 광택처럼 보았을 때 느꼈던 온갖 매혹과 의미를 되찾게 했다. 한순간 게르망트 사람들은 내게 사교계 인사들과는 완연히 다른 존재들, 사교계 인사들과는 양립할 수 없으며, 모든 살아 있는 자들과도 설령 그것이 군주라 해도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며,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어두운 콩브레 마을의 시큼하고 바람 많은 공기와의 수정受精을 통해 태어난 존재들로, 좁은 거리에서 채색 유리 높이까지 알아볼 수 있는 과거로부터 태어난 존재들로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이 내 유년 시절, 또 내가 그 시절을 보는 기억의 깊은 곳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준다는 듯, 게르망트 저택에 가기를 열망했다. 그리하여 콩브레라는 이름처럼 그렇게 친숙하고 신비스러운 이름을 구성하는 철자가 저항하면서 독립성을 회복하여 내 피로한 눈앞에 내가 모르는 이름을 그려 넣는 것 같은 인상을 줄 때까지, 나는 계속 초대장을 읽었다. 마침 어머니가 따분한 모임이 될 것임을 미리 알면서도 사즈라 부인 댁에서 열리는 작은 차 모임에 갈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별 스스럼없이 게르망트 대공 부인 댁에 갈 수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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