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타 할머니가 모닥불에 잣나무 장작을 또 툭 던져 넣었다. 향긋한 연기가 우리 곁을 지나 총총 별이 뜬 하늘로 몽실몽실 떠올랐다. 할머니가 내 옆, 담요에 자리 잡자 무릎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나는 할머니가 만들어 준, 시나몬을 뿌린 핫초코는 이번엔 손도 대지 않았다.
“네가 여행에 가져갔으면 하는 게 있다, 페트라. 네 13번째 생일에 이 할미는 거기에 없을 테니까…….”
할머니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태양 모양 은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 한가운데 납작한 검은색 보석이 박혀 있다.
“태양을 향해 들어 올리면, 그 흑요석에 빛이 비치지.”
나는 할머니 손에서 펜던트를 받아 하늘을 향해 올렸다. 하지만 태양은 없다. 달만 떠 있다. 가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있다고 상상하려 한다. 그 보석 한가운데로 정말 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 같다. 펜던트를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위로 멀찌감치 들어 올리자 빛은 사라져 버렸다.
다시 돌아보니, 할머니는 자신의 목에 건 똑같은 펜던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유카탄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반도. 사람들은 흑요석에 마법이 있다고 믿어. 죽은 사람들과 재회할 수 있는 문.”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할머니 입가의 갈색 피부는 쩍쩍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날 억지로 가게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말했다.
할머니가 한참을 멀리 시선을 돌렸다가 나를 보았다.
“넌 가야 해, 페트라. 아이들은 부모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할머니는 아빠의 부모잖아요? 그럼 아빠는 할머니와 함께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 모두 그래야 한다고요!”
이렇게 말했지만,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들렸을 거다.
할머니가 밭은기침을 하며 웃었다.
“멀리까지 여행하기엔 난 나이가 너무 많아. 하지만 너에게…… 에구머니, 새로운 행성이라니! 정말 가슴 설레지 않니?”
내 입술이 떨렸다. 나는 할머니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할머니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배가 아래로 푹 꺼졌다. 집 뒤쪽, 저 멀리 사막 어딘가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청승맞게 울부짖으며 친구들을 애타게 찾았다. 마치 그것이 신호인 양 닭들이 꼬꼬 울어 대고, 겁 많은 염소 한 마리가 매매 울음을 터트렸다.
“쿠엔토cuento, 스페인어로 ‘이야기’라는 뜻. 하나 들려줘야겠구나.”
할머니가 이야기보따리를 풀 준비를 하며 말했다.
우리는 함께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따뜻한 사막 바람이 불어온다.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나를 꼭 껴안았다. 난 이곳을 떠나기 정말 싫다.
할머니는 핼리 혜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옛날 옛적에, 어린 불뱀 나구알이 있었단다. 엄마는 지구고, 아빠는 태양이었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뱀이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태양과 지구가 부모가 될 수 있어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내가 끼어들었다.
“쉿! 이건 내 이야기란다.”
할머니는 목청을 가다듬고 내 손을 잡았다.
“불뱀은 화가 났어. 엄마 지구는 불뱀을 먹여 주고 키워 주었지. 하지만 아빠 태양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어. 아빠는 곡식을 가져왔지만, 엄청난 가뭄과 죽음 또한 가져왔어. 무척 더운 어느 날, 태양이 나구알에게 다가갔을 때…….”
할머니는 하늘을 향해 팔을 흔들었다.
“나구알은 아빠한테 도전했어. 엄마는 곁에 영원히 있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젊은 불뱀은 아빠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지.”
할머니는 잠시 잠자코 있었다. 긴장감을 주려는 할머니의 전략이다. 그 전략이 먹혔다.
“그래서요?”
할머니는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꼬리에 불꽃을 일으키며, 불뱀은 점점 속도를 높였어. 그러다 마침내 속도를 늦출 수 없게 되었지. 아빠 태양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어. 아빠의 불꽃은 이 우주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어. 나구알은 아빠 옆에서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 아빠의 불꽃에 눈이 타버리고 말았던 거야. 그래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
할머니는 혀를 쯧쯧 찼다.
“가엾은 것, 눈이 먼 데다 너무 빨리 움직였기에 속도를 늦출 수 없었어. 그래서 엄마를 찾을 수도 없었지.”
할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목소리가 경쾌해지는 부분에 이르렀다. 모퉁이 빵집으로 가는 길을 무심하게 알려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75년마다, 나구알은 여행을 되풀이해. 엄마와 재회할 희망을 품고서.”
할머니는 다시 불뱀을 가리켰다.
“엄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하지만 결코 포옹할 수는 없지.”
“이번만은 빼고요.”
내가 말했다. 등을 타고 열기가 올라왔다.
“그래, 며칠 안에 불뱀은 마침내 엄마를 찾게 될 거야. 이제 이야기는 끝났어.”
할머니가 나를 꼭 끌어당기며 쿠엔토를 마무리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쓰다듬으며 할머니의 주름살을 기억했다.
“이 이야기 누가 해 줬어요? 할머니의 할머니?”
할머니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 할머니가 좀 들려줬지.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지어냈을걸.”
“나 무서워요, 할머니.”
내가 속삭였다.
할머니가 내 팔을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야. 네 고민 잊었니?”
나는 창피해서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느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잊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라. 난 하나도 안 무서워. 나구알이 집으로 오고 있을 뿐이야.”
조용히 불뱀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할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이야기 전달자요.”
할머니는 일어나 책상다리로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야기 전달자, 그래. 그건 네 핏속에 흐르지. 하지만 그냥 나처럼 되고 싶다고? 아니, 아가. 넌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그리고 알아낼 거야.”
“제가 할머니 이야기를 다 망치면 어떻게 해요”
내가 물었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갈색 손으로 내 턱을 감쌌다.
“넌 이야기를 망칠 수 없어.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으니까.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거쳐 너를 찾아냈어. 이제, 그걸 네 이야기로 만들렴.”
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알까? 그 사람들을 뒤따르는 나는 누구일까?
나는 손 안의 펜던트를 꼭 쥐었다.
“할머니 이야기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게요.”
“너도 알겠지만, 네가 가게 될 행성에는 태양이 하나일지 두 개일지 몰라.”
그러고는 할머니는 자신의 펜던트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렸다.
“도착하면 나를 찾아볼 거지?”
내 아랫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할머니가 내 뺨에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네 일부란다. 너는 나와 내 이야기를 지니고 새로운 행성으로, 그리고 수백 년 미래로 가는 거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약속할게요, 할머니가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도록요.”
나는 흑요석 펜던트를 꽉 잡았다. 불뱀이 마침내 엄마와 재회할 때, 할머니가 진회색 유리알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