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모두 영원의 바다를 떠가는 생명의 섬광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박테리아든,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법칙 가운데 가장 무자비하고 가차 없는 법칙과 끊임없이 투쟁하는데, 그것은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 전투에서 속절없이 패배하고 만다. 왜냐고? 세계 자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줄곧 이동하고 있고, 반면 엔트로피유용한 작업의 수행에 무효한 에너지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지구의 종말은 모든 것의 온도가 똑같아지는 열사烈死heat death일 것이다. 움직임도 없고, 변화도 없고, 형체 변형도 없는 상태.
진화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으로서 언뜻 보기에 엔트로피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으로부터 새 에너지가 지구로 공급되어 왔고, 그에 따라 진화는 한층 더 복잡한 형태의 생물종들species과 속들genera과 과들families을 부단히 창조해 낸다. 그러나 각각의 생명체는 열역학 제2법칙과 직면해서는 생명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개별 생명체는 자신과 같은 류를 재생산하고, 성장해서는 늙고, 이내 죽어간다. 새 생명체 각각은 영원히 제 모습을 감추기 이전에 아주 짧은 순간 존재할 뿐인 하나의 섬광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자체가 계속해서 팽창하며 온도 차가 0에 가까워지면서 열사에 굴복하고 말지, 아니면 수축해서 하나의 블랙홀 속으로 무너져 내리다가 다시 떠오를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21세기 중엽으로 다가서는 오늘날, 무수한 생명체가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는 사태는 지대한 관심사이다. 현재 우리는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연소가 만들어 낸 지구온난화의 효과에 직면해 있고, 극단적 기후 패턴을, 극지방의 빙하 용융과 허리케인, 홍수와 토네이도를 점점 더 많이 마주치게 될 것이고, 이러한 현실은 지구 자체의 죽음이라는 악령이 출현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인간의 활동이 전례 없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임팩트를 가하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서의 인류세Anthropocene, 2000년에 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과 유진 스토머Eugene Stoemer가 이름 붙인라는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의) 지구가 미래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류세 시대18세기 후반기 증기기관의 출현부터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연료의 연소량 증가가 문제시되는 오늘날까지를 아우르는 기간에 자연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일에는,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 자체를 새로 개념화하는 작업을 요구한다는 심대한 함축이 있다. 예컨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대기오염, 수질오염은 역사,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기후변화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생각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인류세 시대, 인류와 인문학에게 어떤 미래가 준비되어 있을까?
스웨덴 환경사학자 스베르케르 쇠를린Sverker Sörlin은 「인문 과학에서의 환경적 전환Environmental Turn in the Human Sciences」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환경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학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투여되고 있다. 이 학문은 광범위한 다학제 간 접근법으로서, 인간 행동이 환경적 차원과 보조를 맞추도록 하려는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는 (…) 인문학의 새로운 의지를 일러준다. 환경 인문학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관련 계획들이 이미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프린스턴, 스탠퍼드, UCLA 같은 미국의 대학들에서 출현하고 있다.” 과학, 정치, 경제, 거버넌스 분야에서 인류세에 관한 숱한 논문과 책이 출판되었다. 하지만 인문학과 관련하여 인류세를 분석한 담론은 아직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인류세 시대엔 인류와 자연의 상호 생존과 관련해 많은 것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21세기 환경 위기에 대해 일반 미국인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 인문학의 중요성은 지대하다. 변화를 구현하는 과업에 개인과 정부 기관, 지역사회가 참여하도록 하려면 과학자의 연구뿐 아니라, 인문학의 통찰 또한 그에 못지않게 긴요하다. 인류세의 복잡한 대규모 환경 문제들에 적용할 수 있는 환경 인문학의 담론들, 우리는 그 이론적 프레임을 모색해야만 한다.
인류세라는 개념 덕에 우리는 인문학을 21세기의 매력적인 학문으로 다시 개념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미지는 개인들의 행동 방식과 공공 정책에 변화를 일으키고 대중을 일깨우는 데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로 예시되는) 인문학 담론은 향후 50년에서 100년간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시대에 우리가 마주치게 될 중대한 선택지들에 관한 새로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의 지구와 그 미래를 그리고 지구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교육받은 일반 대중을 위해 집필되었다. 환경, 인문학, 사회과학을 조명하는 학부 과정과 대학원 세미나, 전자책 동아리나 토론 모임에서 활용될 수 있을 책이다. 이 책은 예술과 인문학, 과학과 역사, 윤리와 정의를 검토하며, 그럼으로써 창의적 해법을 고무하고 사려 깊은 대응을 촉발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장에서 나는 인류세라는 용어를 소개한 뒤, 왜 이러한 새 명칭이 중요한지 질문할 것이다. 또 과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이 이 용어에 부여한 다양한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인류세라는 개념은 인류가 직면한 미래 위기의 성격을 분명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규명함으로써, 산업화 이전 시기, 식민지 시기, 산업화 시기, 모던 시기, 포스트모던 시기 같은 지난날의 시대 규정·개념들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특히 서구 문화권에서 출현한, 인류세의 기원들과 관련이 깊은 사상들을 검토할 것이다. 또한 어떤 행동 규범들이 에너지, 과정, ‘녹색’ 과학에 토대를 둔, 지속가능성의 새 시대new Age of Sustainability를 지시해줄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다. 나는 인류세와 인문학의 연계가 왜, 어떤 식으로 미래의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지 밝히고자 한다.
내가 이 책의 본문에서 주목한 지역은 산업화가 처음 발생했던 유럽특히 영국과 미국이지만, 인류세라는 개념이 더 깊이 탐구될 수 있고, 탐구되어야 하는 다른 대륙과 지역들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나의 궁극적 목표는 서구의 역사와 사상이 지닌 문제점들을 검토하는 것, 미래를 위한 이상이 될 수 있을, 과정과 동반자 관계에 관한 새로운 원칙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나는 나의 학문 이력 전반에 걸쳐 있는 아이디어들에 의존하고 그것들을 종합할 것이다. 인류세라는 시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예시되는지, 그리고 인류세를 지속가능성의 시대로 전환해 낼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관해 통찰을 제공하는 (과거의) 내 책과 논문들 속의 개념들을 이 책에서 다룰 것이다.
이 책이 관련된 주제 전체를 망라하는 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나는 모든 국가와 대륙과 시대를 다루려고 하지도 않고,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인류세에 관한 책 전부를 인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사유를 자극하는 사례들을 선택적으로 골라내어, 인류세와 인문학의 관계에 대해 통찰을 제공하고자 하며 다른 이들이 어디에서 이런 연구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일반 독자들도 이 책을 쉽게 접하도록 인류세의 출현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이미지를, 아울러 인류세의 의미와 결과의 특징을 말해주는 미술 작품들을 책에 집어넣었다.
인류세라는 시대 맥락에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기후변화와 밀접히 연관성을 갖는 것들을 밝혀내려는 우리의 탐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온실가스 축적량의 지속적 증가, 지구온난화, 그리고 북극과 남극과 산 정상의 빙하와 빙설의 용융이라는 사건 지구 해수면 상승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고 있고, 그에 따라 세계 곳곳의 생명체들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효과는 수온 상승, 가뭄, 사막화, 생물종의 멸종과 이동에서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 인류 역시 악영향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하고, 연료를 취합하며, 가족을 돌보는 등의 작업이 늘어나면서 커다란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늘어난 노동의 양은 특히 빈곤층과 노동자 계급, 인종 차별의 희생자들, 여성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지구적 생태 위기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는 일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 해법은 인문학으로부터 영감과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과학적 접근법과 테크놀로지, 새로운 정치와 윤리의 출현과 함께 탄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토록 많은 이에게 고통을 야기하고 있는 계급 간, 인종 간, 성별 간 차별이라는 현실의 변화와 함께 출현하게 될 것이다. 지구 자체야 어떤 형태로든 존속하겠지만, 아마 크게 변모된 상태로 존속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류와 자연을 구원할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 이 과업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 온 방문객들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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