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루소포비아,
또는 다른 민족의 눈으로 본 러시아
서구 소비에트 학자들은 서구 중국학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학자들은 중국을 사랑하는데 반해, 소비에트 학자들은 러시아를 증오한다.
― 러시아 농담
모든 잘못을 러시아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소소한 일로 다른 누군가를 힐난하는가?
― 세르게이 아르메이스코프. 오브비오프 대위의 면도기. Russian Universe Blog
러시아를 측정하는 척도는 무엇인가? 이 신기한 나라를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가? 지난 500년 동안 러시아 땅을 밟은 모든 여행가, 외교관, 논평가, 간첩, 언론인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비밀스러운 질문에 대해 최종적으로 만족할만한 답변을 구한 자는 없었다.
심지어 러시아인들 스스로도, 대대로 도대체 러시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내려 무던히 애를 써왔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심장이 서구에 속한다고 단언하며 타타르의 잔재를 영혼으로부터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거꾸로 아시아 초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신들의 슬라브 민족성을 강조한다. 이들 모두 상대를 완벽하게 설득하지 못했다. 거듭하여 자신들을 거부하는 유럽에 아첨한 서구주의자들도 성공하지 못했고, 불결한 외부로부터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러시아 영혼이라는 신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슬라브주의자들이나 그 후예인 ‘유라시아주의자들’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이론이 편파적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는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러시아는 유럽이며 동시에 아시아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니라고 하여 이것이 러시아를 혐오할 이유가 되는가? 그것이 서구 저널리스트와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러시아를 야만, 전제, 반동, 팽창주의가 번성하는 악령이라고 표상할 근거가 되는가? 여러분 스스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여 그것이 러시아를 풍자화로 조롱하고 상투적인 반러시아 왜곡과 편견의 거울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선동의 주도자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일이 서구 세계 수많은 대사관, 언론사 편집국, 그리고 대학 강의실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왜 이럴까? 대체 어디에서 이런 악의가 생겨났으며, 대체 왜 그 악의가 하필 러시아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서방 세계는 자기들의 우월감에 도취했을지라도 중국을 그와 같이 편견에 가득찬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또는 심지어 자기들이 적대적 ‘타자성’의 근원이라고 간주하면서 그렇게 비난하고 조롱해온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러시아가 서구보다 훨씬 더 먼저 문자를 발명했던 중국이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다르게 수천 년 문명의 발상지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바이블의 태생지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는 끝없이 펼쳐진 춥고, 황량한 광야로 꽁꽁 얼어붙은 황부지이다. 후진성과 야만성의 근원지로 탓하기 딱 좋은 대상이 아니겠는가?
러시아는 서구를 닮기도 했고,
또 아니기도 하다
러시아에 대한 인식에서 또 하나의 함정은 러시아와 서구의 사이비 유사성이다. 벌써 25년이나 러시아의 카렐리야에서 살고 있는 폴라드인 작가 마리우슈 빌크는 “러시아와 유럽의 사이비 유사성보다 더 기만적인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그 (땅덩어리의 ― 옮긴이) 규모가 전혀 다르고, 종교적 관습도 같지 않으며, 국가 조직 또한 엄청나게 방대하다. 그 어떤 민족도 세상에 알려진 이래 러시아인만큼 그렇게 오명을 썼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사실은 유럽인들과 전혀 다르면서 외모가 그렇게 유사한 민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서구에서는 누구도 러시아의 실재를 그 내부로부터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처럼 지난 500년동안 유럽인들은 15~16세기에 러시아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유럽 여행자들이 만들어낸 상투적 어구와 잘못된 판단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그 오해와 실수를 바로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빌크는 경험이 풍부한 여행가 작가인 그의 동포 리샤르드 카푸신스키 또한 그런 실수를 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카푸신스키는 1939~89년 기간에 소비에트 제국 곳곳의 여행담을 기록한 기행문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불필요하게 자세히 부풀리고, 자신의 관점에 맞지 않는 다른 것들은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 여행자들로부터 시작되어, 공산주의 이념이 사라진 지 이미 4반세기가 지난 21세기까지 지치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러시아의 ‘야만성’에 대한 진부한 상투어들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보자.
러시아인은 선천적으로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어서, 최근 체츠냐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쟁에서처럼, 그들은 소수민족이나 종교적 소수자들을 학살하고, 강제이주 시키고, 괴롭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인들이, 다른 모든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그렇게 자상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5년을 되돌아보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미국과 나토의 만행으로 인해 관타나모 고문실에서 고통을 받고, 무인 전투기의 부정확한 조준으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의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했는가. 이 숫자들은 러시아인들이 그로즈니이후 그들이 재건한 도시에서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악행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우리는 이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고, 러시아에 대해서만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스탈린이 여러 민족들을 중앙아시아 사막지대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끔찍한 범죄이다. 그런데 스페인인, 포르투갈인, 프랑스인, 영국인들이 2,8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은 너그러운 여행사가 제공한 즐거운 크루즈 여행이었던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거의 절멸시킨 범죄는 또 어떤가? 서구는 인류를 향해 저지른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러시아인들의 이른바 본능적 팽창주의를 폭로하면서 틈만 나면 러시아 비난 타령을 하는 서구 언론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는 상황에 맞춰 생각해낼 줄 모른다. 물론, 러시아 제국이 캐비어를 팔거나 (피정복민들에게 ― 옮긴이) 상냥하게 굴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과연 서구의 총탄 소리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량살상된 원주민들의 귀에 달콤한 음악으로 들렸을까?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처럼 ― 옮긴이) 나라를 완전히 분열시킨 내전을 겪지 않고, 알렉산드르 2세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러시아 황제 치하에서 살았던 수백만 농노들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다. 하지만 1865년까지 미국 흑인 노예의 운명이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았던가?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 당한 수천만 명의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갔고, 미국에서는 (공식적 노예 해방 이후에도 ― 옮긴이) 마틴 루터 킹이 등장할 때까지 법적이고 체계적인 인종 차별이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뿐인가? 아직도 미국의 흑인들은 전체 인구 비중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가 체포되어 감옥에 가고 있다.
과거 러시아 식민주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에트 제국이 1991년에 무너졌고,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유럽의 식민세력이 자신들의 제국 영토로부터 기꺼이 물러났는가? 얼마나 많은 콩고인들이 벨기에인들에 의해 말살되었던가? 프랑스인에게 살해당한 마다가스카르인들과 알제리인들은 또 얼마나 되었던가? 영국군은 또 얼마나 많은 케냐의 ‘마우 마우’ 반군과 인도의 세포이 항쟁 참여자를 학살했는가?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1830년에 테즈매니아 원주민의 마지막 남자와 여자, 아이까지 멸종시킨 만행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더 할 것인가? 스탈린의 숙청으로부터 20년 후 알제리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전기고문은 프랑스가 수행한 ‘문명화 사명’이었던가? 지난 5년 동안에만도 프랑스는 리비아, 시리아, 차드, 아이보리 코스트, 말리 그리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천 명의 양민들에게 야만적인 폭격을 가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용서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용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스탈린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금까지도 묻고 있는데 반해, 프랑스의 범죄는 오래 전에 잊혔고, 독일 나치즘의 만행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이 지배하던 민족들을 전쟁 없이 놓아준, 인류사의 유일한 제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1년, 불과 몇 달 사이에 15개의 국가가 자유와 독립을 얻었다. 다른 어느 곳에서 이와 비슷한 사태를 본 적이 있는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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