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권력의 진화
평평하지 않은
세상이 시작되다
누가 권력을 추구하고, 누가 권력을 얻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바꿔놓는지를 묻기에 앞서 조금 더 큰 그림부터 살펴봐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소수 집단이 권력을 가지고 다수 집단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일까?
두 개의 무인도와 난파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침몰한 바타비아호와 아타섬에 표류한 통가 소년들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에 관한 수수께끼만 던져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을 질문 또한 던져준다. 위계질서는 왜 존재하는가? 계급과 지위는 일상 속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데 너무나 깊이 관여돼 있어 미처 다시 생각해보거나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상사와 장군과 코치와 대통령들이 등장하는 일련의 하향식 배열이 아니라, 대체로 평평하고 동등한 관계라면 어떨까? 물론 이 말이 어느 정도는 무정부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 집단의 몽상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충분히 멀리 뒤돌아본다면,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우리 인간종이 지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시기에 걸쳐 인류가 살아온 세상과 정확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
대략 35억~45억 년 전에는 조상과 가족 모임을 하고 싶다면 뜨거운 물이 솟구치는 심해의 열수분출공을 찾아 바닷속 깊이 헤엄쳐 들어가야 했다. 지구의 겉껍데기를 따라 흐르는 마그마 때문에 들끓는 온도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조상인 단세포 유기체를 만날 수 있다. 이 생물의 이름은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즉 루카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LUCA다. 루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새, 모든 성게, 모든 점균류가 공유하는 조상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루카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루카가 우리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시간을 빠르게 돌려 몇천만 년 전으로 돌아와 보면 털이 북슬북슬하고 좀더 발음하기 어려운 인류의 조상인 침팬지, 즉 인간의 마지막 공통 조상Chimpanzee-Human Last Common Ancestor, CHLCA을 만날 수 있다. 단세포 루카보다는 알아보기가 쉬울 것이다. CHLCA는 우리의 조상과 침팬지를 구별할 수 없었던 마지막 순간을 대표한다. 호미니드hominid의 진화 과정에서 긴팔원숭이가 가장 먼저 갈라져 나왔고, 그다음으로 오랑우탄이, 다음은 고릴라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400만~1,300만 년 전에 침팬지와 갈라졌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듭한 지금도 우리는 침팬지와 밀접한 친척 관계다. 현생인류는 침팬지와 98.8퍼센트의 DNA를 공유한다다만 우리가 개와도 80퍼센트의 DNA를 공유하고 바나나와도 50퍼센트나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수치가 조금 덜 놀랍게 느껴질 것이다. 침팬지가 놀거나 새끼를 돌보는 모습을 볼 때 또는 실제로 지배와 복종을 드러내는 모습을 볼 때 찰나의 인간성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가 이것이다. 침팬지는 많은 면에서 우리와 닮았다.
이런 유사성은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제시한다. 권력, 지위, 위계질서와 인간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그저 침팬지를 관찰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동물 중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면, 어쩌면 침팬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반면 만약 침팬지가 정글의 법칙을 따라 가장 크고 신체적으로 강한 녀석이 지배하는 한편 가장 작고 신체적으로 약한 녀석이 지배당하는 거라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이 모형에서처럼 신체적 강인함만을 따진다면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같은 지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십 년 전,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이라는 이름의 네덜란드인 영장류 동물학자는 침팬지의 사회구조가 당시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침팬지가 권력을 쥐려면 확실히 몸집이 크고 신체적으로 강해야 했다. 그러나 가장 몸집이 큰 침팬지가 언제나 가장 강력한 침팬지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대신 리더가 되려는 침팬지는 동맹을 구축하고, 킹메이커의 환심을 사고, 자원을 분배해야 했다. 알파메일alpha, 그 집단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개체 ― 옮긴이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해도 고용 안정성 따위는 없었다. 찬탈자들이 언제나 자신만의 동맹을 형성하고 알파메일을 무너뜨리기 위해 약점을 노리며 때를 기다렸다. 침팬지가 만드는 위계질서의 역학이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에 드 발은 이들의 상호작용에서 뚜렷한 정치성을 보기 시작했다. 1982년, 그는 역작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를 썼다.
이 책은 뜨거운 감자였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지향성과 전략적 사회 계획을 동물의 특징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침팬지들이 음모를 꾸미고 동맹을 만든다. 강한 침팬지의 권력을 약화하기 위해 약한 침팬지끼리 계약을 맺는다. 영리한 침팬지는 라이벌 침팬지를 골탕 먹인다. 드 발은 심지어 침팬지가 며칠 동안 조용히 준비한 끝에 정확한 순간에 쿠데타를 일으킨다고도 묘사했다. 드 발이 어떤 침팬지 집단을 관찰하든 늘 지위와 관련된 문제가 발견됐다. 그리고 그 지위는 다른 침팬지보다 더욱 가차 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일부 침팬지가 규정했다. 위계질서에서 벌어날 방법이 없었다. 바타비아호와 마찬가지로, 침팬지들은 늘 자신의 계급을 알고 있었다.
“침팬지들, 그러니까 암컷을 비롯한 모든 침팬지는 권력에 매우 큰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드 발이 나에게 말했다. “침팬지를 상대하려 한다면 그 침팬지는 반드시 당신을 지배하려 들 것이고, 당신의 반응을 보기 위해 위협할 것입니다. 언제든 당신을 떠볼 테죠. 당신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상대적 위치가 어디인지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약점을 발견하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당신을 떠밀어버릴 것입니다.”
권력은 분명 침팬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지만, 침팬지는 권력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부 침팬지는 권력에 속절없이 이끌렸다. 다른 몇몇은 지배권을 향해 손을 뻗어보긴 했으나 부하로 남는 데 만족하기도 했다. “정상을 향한 질주는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죠. 모든 침팬지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드 발의 말이다. “예컨대 서열 제3위에 만족하는 수컷도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이런 복잡성은 우리에게도 친숙해 보인다. 우리 중 일부는 권력을 추구한다. 그리고 일부는 이를 피해 옆으로 물러나 다른 이들이 주도하도록 둔다. 권력을 추구하고, 얻고, 휘두르는 데 침팬지와 인간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이론이 득점하는 순간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꽤 심란한 고찰이다. 어쨌든 대부분 침팬지는 다른 침팬지를 지배하기 위해 적어도 시도는 해보겠다는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1964년의 어느 연구에서는 태어나자마자 고립돼 어떤 사회구조에도 포함되지 않고 자라난 침팬지 역시 여전히 사회적 지배력을 드러내는 것과 관련된 행동거지를 보였다. 위계질서와 권력 그리고 지배는 침팬지라는 존재의 일부인 듯하다. 우리가 침팬지와 공유하는 유전 코드에도 같은 집착이 깃들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유전적으로 98.8퍼센트 유사하지만, 우리와 침팬지를 가르는 1.2퍼센트의 DNA에는 수많은 주요 차이점이 담겨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수십억 개의 A, C, G, T 유전정보 중 약 1,500만 자가 침팬지의 유전정보와 다르다. 이런 변화 중 다수는 의미 없는 전사transcription 오류로, 우리의 생물학에 식별 가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모든 DNA 염기쌍이 동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염기쌍은 매우 중요해서 인간에게 팔이 두 개 있고 그것이 다른 곳이 아니라 몸통 윗부분에 달리게 하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나머지는 그냥 쓰레기다.
2000년대 초, 계산생물학자 캐서린 S. 폴라드Katherine S. Pollnad는 침팬지와 우리를 가르는 1,500만 자의 유전정보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 밝히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폴라드는 간단한 논리를 따랐다. 우리의 유전체 중 어떤 측면은 침팬지와의 마지막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수백만 년에 걸쳐 현저히 변화했으나, 어떤 측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전체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 즉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식별할 수 있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화에는 조금 더 복잡한 점이 있다. 사소한 변이는 무작위 돌연변이의 결과일 가능성이 가장 컸고, 이들은 단순한 쓰레기이자 의미 없는 우연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라면 우연으로 생겨났을 리가 없었다. 무작위 돌연변이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한 모든 유전암호는 ‘선택된’ 유전암호였다. 달리 말하자면, 이런 변이는 우리의 준準인간 조상의 생존 가능성을 키워주는 변이였다. 도움이 되게끔 재작성된 DNA 자투리는 생존을 도운 공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질 가능성이 더 컸다. 유용한 유전적 혁신은 이토록 우아한 방식을 통해 ‘속도를 높였다.’ 폴라드가 가장 ‘가속화된’ DNA 자투리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원시 조상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 터였다.
2004년 11월, 폴라드는 컴퓨터 코드 앞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하며 수백만 년에 걸친 유전적 분기를 정확히 골라냈다. 합쳐서 인간 가속 영역, 즉 HAR1Human Accelerated Region 1으로 알려진 118개의 DNA 염기였다. HAR1은 인간의 뇌 발달에 관여한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뇌가 잘못될 수 있고, 심지어는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퇴화할 수도 있다. 폴라드는 우리와 침팬지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수많은 주요 염기쌍을 발견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다른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행동 측면에서 우리와 원숭이 또는 유인원은 무엇으로 구별될까? 몇몇 놀라운 단서에 따르면, 우리는 공정과 평등에 관한 선입관을 타고나지만, 침팬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리는 바타비아호의 살인자보다 통가 소년들에 더 가까운 존재이리라는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대목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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