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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2018년 10월 7일, 세계는 곧 멸망할 예정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두 신문의 웹사이트를 훑어본다면 누구나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후 변화 주요 보고서, 빠르면 2040년 큰 위기 닥친다고 밝히다〉. 제목 바로 밑에는 여섯 살 난 소년이 죽은 동물의 뼈를 가지고 노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유엔 과학자들, 기후 변화 통제 가능 시간 10여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와 전 세계 언론이 일제히 쏟아낸 이러한 기사에는 출처가 있었다. 전 세계 195명의 과학자와 그 밖의 인원을 규합해 기후 변화와 관련된 과학적 연구를 집대성하는 유엔 산하 기구인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특별 보고서가 바로 그 출처였다.
2019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2편의 보고서를 추가로 발행했다. 이전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자연재해는 더욱 심각해지고, 해수면은 높아지며,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가 가속화된다.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장기간 지속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말했다. 또한 기후 변화는 식량 생산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풍광에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지구 전체 온도가 높아지면서 자원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홍수, 가뭄, 폭풍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기상 이변이 세계적으로 식량 공급을 방해하고 장기적으로 위축시킬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여러 대륙에서 동시에 식량 공급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한 나사NASA 과학자의 말 또한 인용되었다. 이 과학자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 곡창 지대가 식량 생산에 실패할 위험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 모든 일이 현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52개국 출신 100여 명 이상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기회의 창은 급속도로 닫히고 있으며” “토양이 퇴적되는 속도보다 침식되는 속도가 최소 10배에서 100배 이상 빠르다”라고 경고했다.
농업으로 인류 전체 인구를 부양할 만큼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했다. “80억 인류 또는 그 절반이나마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농학자들은 말했다.
“우리는 변화한 기후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프린스턴대학교의 마이클 오펜하이머Michael Oppenheimer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수위는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강력하게 억제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겁니다.” 만약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한다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83센티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고, 그 정도의 변화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초과할 경우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한계점-옮긴이들을 연쇄적으로 촉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컨대 해수면이 높아지면 대서양의 해류 순환 속도가 느려질 수 있고, 그 결과 지구 표면 온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거의 오스트레일리아 정도 면적을 차지하는 북극 만년설이 녹는다면 탄소 1400기가톤이 대기 중으로 방출될 수 있다. 남극 대륙 빙하가 녹아 바다로 무너져 내리면 해수면은 4미터가량 높아질 수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바닷물의 화학적 구성 역시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그로 인해 해양 생물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대량 멸종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6년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바닷물 속 이산화탄소가 높아지면 산호초에 서식하는 어류들은 포식자에게 더욱 쉽게 노출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를 뒤덮은 산불 역시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은다. 2013년만 해도 산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단 1명뿐이었으나 2018년이 되자 1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폭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불 중 가장 피해가 컸던 20건 가운데 절반이 2015년 이후 발생했다. 오늘날 캘리포니아는 50여 년 전보다 2~3개월 더 긴 산불 기간을 겪고 있다. 기후 변화로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나무들은 전염병과 기생충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산불이 심해지는 건 기후 변화 때문이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말했다. “기후 변화는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다.” 연방하원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의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캘리포니아는 끝났다”라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결론 지었다.
2020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35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다. 34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며, 3000채 이상의 주택이 완전히 불타 버렸다.
《2050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bitable Earth》의 저자인 데이비드 월러스-웰스David Wallace-Wells는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올라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며 경고한다. “빙상이 녹아 무너지고, 4억 명 이상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게 되며, 적도 인근 주요 도시들은 거주 불가능한 곳이 된다. 북반구에서는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해도 여름마다 살인적인 고온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 문명이 쓸려 나가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기후 변화를 막아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환경 저술가이자 기후 운동가인 빌 매키번Bill McKibben의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 저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 어떤 곳에서는 국경선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1만여 명 정도라면 벽을 세워 막을 수 있다. 100만 명까지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00만 명을 벽으로 막을 수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 250일, 10시간이 흐른 시점인 2030년쯤 되면,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비가역적 연쇄 작용으로 인해 우리가 알던 문명이 종말로 향하는 것을 목격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10대 학생이자 유명한 환경 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2019년에 한 연설 중 일부다. “여러분이 희망을 갖기를 나는 원치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패닉에 빠지기를 바랍니다.”
자연은 회복하고
인간은 적응한다
2019년 초 갓 연방 의회에 입성한 29세 하원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흔히 AOC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디애틀랜틱The Atlantic》과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AOC는 바로 기후 변화에 맞서면서 동시에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을 강력히 주창한 장본인이었다. AOC는 그린 뉴딜에 지나친 비용이 든다는 비평가들의 말을 일축했다.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12년 안에 멸망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가요?”
다음 날 뉴스 웹사이트인 〈액시오스Axios〉의 기자는 여러 기후학자에게 연락을 돌렸다. 세계가 12년 내로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AOC의 말에 대한 반응을 듣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정해 두고 하는 모든 이야기는 다 헛소리입니다.” 나사의 기후학자 개빈 슈밋Gavin Schmidt이 말했다. “‘탄소 예산’이 고갈된다거나 기후 변화 목표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탄소 배출 비용이 점진적으로 증가할 뿐이죠.”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의 고기후학자 앤드리아 더턴Andrea Dutton은 이런 답변을 들려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언론은 2030년까지 향후 12년에 모든 게 걸렸다는 이야기에 꽂힌 것 같아요. 아마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 문제가 시급하다는 걸 사람들이 빨리 알아들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겠죠.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말하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를 완전히 잘못 전달하게 되고 맙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2018년 보고서와 언론용 보도자료에 진짜 적혀 있던 내용은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산업혁명 이전 수준에 비해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묶어 두고자 한다면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45퍼센트 줄여야 한다고 것이다. 평균 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서면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문명이 붕괴할 거라는 이야기를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한 적이 없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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