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논리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마음이 열리지는 않는다
서로를 신뢰하는
담론 공동체 구축하기
― 대니얼 양켈로비치와 스티브 로셀
민주주의는 양보를 전제한다. 양보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정당한 관심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이를 강조하는 대신 상반되는 입장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 대니얼 양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
처음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스티브 로셀Steve Rosell을 샌프란시스코만 맞은편에 있는 소살리토의 작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내가 막 구상하기 시작한 아이디어를 로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내 아이디어가 로셀의 저명한 동료 사회과학자인 대니얼 양켈로비치의 인터뷰를 따낼 만큼 가치 있는 아이디어임을 확신시키고 싶기도 했다. 양켈로비치를 처음 만난 건 10여 년 전이었다. 나는 그의 뛰어난 저서들도 웬만큼 읽어본 데다가 그의 사상 역시 굉장히 흠모하고 있었다.
1924년에 출생한 양켈로비치는 열두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다. 또한 뉴욕 대학교 소속으로 교수직을 비롯한 다양한 학술 활동을 맡아 왔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한 바 있다. 로셀과 양켈로비치는 양극단으로 분열된 공적 갈등을 담론을 통해 풀어나가는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선구자다.
로셀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는 새 책에 ‘낚였네, 어쩌다?’라는 제목을 붙일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로셀은 곧바로 우려를 표했다. 그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다가는 사람들이 책 표지만 보고 분열을 부추기는 작품이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셀은 독자에게 마치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말하는 듯한 제목으로 책을 시작하는 것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심사숙고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참고로 로셀은 코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수많은 국제기관과 대기업에 고문 자격으로 자문을 제공했으며 총 네 명의 캐나다 총리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로셀은 2011년 미국 부채 한도 위기를 예로 들어 요점을 뒷받침했다. 당시 워싱턴 D.C.에서는 공직자 모두가 마지막 순간까지 언쟁만을 벌였다. 로셀은 그런 언쟁이 ‘논쟁’이라 말하기에도 부족한 ‘참사’에 가깝다며 철저히 비효율적인 대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시동이 꺼진 비행기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조종석에 타고 있는 모두가 뭘 해야 할지 말싸움을 벌이는 꼴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그처럼 전투적인 언쟁을 주고받는 이면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획이 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진실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취하는 행동 방식이 대단하거나 합리적인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셀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배후에서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통제 불능 상태라고 보아야겠죠.”
로셀과 대화를 나눈 뒤 나는 갈등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제안한 책 제목을 바꾸기가 영 내키지 않았다. 곳곳에 만연한 프로파간다나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PR 장난질 등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가리는 온갖 속임수 때문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처럼 사악한 기술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리 내서 밝히는 사람마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기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순진한 피해자들을 어떤 식으로 구워삶는지 까발리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감히 로셀의 혜안을 무시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내 입장을 고수하다가는 열린 마음을 가진 똑똑한 독자들마저 쫓아낼지도 몰랐다.
나는 로셀과 양켈로비치가 데이비드 스즈키의 의문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둘로부터 담론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즉 고장 난 광장을 회복하고 명료하면서도 협력적인 방식으로 소통함으로써 어떻게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 배우고 싶었다. 오늘날 광장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지, 분열을 초래하는 프로파간다나 캠페인 등 《기후 은폐 공작》에서 까발린 소행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상반되는 입장 사이에 다리 놓기
로셀이 인터뷰를 주선한 덕분에 우리 셋은 샌디에이고에 모여 앉았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양켈로비치는 사고의 양극화가 소통의 흐름을 차단해 교착 상태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양극화는 우리가 긴급한 문제에 당장 달려들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합의에 이르지 않고는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켈로비치는 우리가 논쟁적인 사안을 다룰 때 서로의 차이를 부각하기보다는 공통 기반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다양한 접근법을 모두 고려하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켈로비치는 이렇게 기록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양보를 전제한다. 양보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정당한 관심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이를 강조하는 대신 상반되는 입장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러면서 양보를 모르는 편파적인 태도가 관계를 좀먹는 응어리를 남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가장 큰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든 지구온난화와의 전쟁에서든, 양극화가 패배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 서로 편파적인 태도만 취하다가는 필연적으로 독단적인 (따라서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게 되며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양켈로비치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대화하고 숙고하기보다는 논쟁하고 변호하고 대립하기를 선호하지요”라고 말했다. 물론 적대적인 형태의 담론도 나름 쓰임새가 있다. 법정이나 TV에 누가 나와 특정한 이익 집단을 공격할 때면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마비시킬 위험이 있는 교착 상태에서 적대적 방식을 취하는 것은 전혀 좋지 않다. 양켈로비치의 말에 따르면 ‘귀를 닫고 상대를 불신하며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고 공통된 이해나 사고방식을 공유하지 않는’ 오늘날의 전형적인 공적 담론 모델은 어떤 논의도 왜곡하고 만다. 우리에게는 공통 기반을 찾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양켈로비치는 오늘날 광장이 ‘매우 형편없는’ 수준인 이유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공공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며, 미디어가 자의적으로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의사소통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문제 역시 존재한다.
특히 오늘날 과학계는 공적 담론의 원리에 사실상 무지한 수준이다. 재능 넘치는 학자들이 추상적이고 전문적이고 난해한 언어로 고도로 검증된 진술을 하면, 미디어가 그런 진술을 논쟁 형식으로 보도하는 실정이다. 이런 형태의 담론을 이해하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네도 합의하지 못하면서 우리한테 뭘 기대하는 거지?”라고 반문하며 아예 담론 자체를 무시하는 쪽을 택한다.
과학계는 어떤 상황이든 동일한 의사소통 원리를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상정한다. 대중이 열린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진실의 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한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고의적으로 조종하려고 애쓰기는커녕 선의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믿어 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전부 착각이다.
과거 시장조사 분야에서 30년 경력을 쌓은 양켈로비치의 말에 따르면 불신이 깔린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첫 단계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회의와 염려를 인정해야 하며, 그런 다음 그들이 왜 이번에는 의심을 거두어야 하는지 추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증 책임이 우리 쪽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대가 아니라 성과를 보여야 한다. 약속은 필수적인 경우에만 제시해야 하며 약속한 내용은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핵심 가치를 윤리적인 언어로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평범한 화법을 사용해야 한다. 고상한 목표라도 이행 과정에 결함이 있으면 이상가가 아니라 위선자로 비춰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관심이 팽배한 상황을 다루는 경우에는 목표가 명백하다. 사람들이 듣도록 만들어야 한다. 뛰어나고 명망 있는 과학자가 공정하고 균형잡힌 견해를 제시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초장부터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귀는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정책 입안자나 과학자가 일단 인정해야 할 부분은 자신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켈로비치는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거의 벼랑 끝 같은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가장 똑똑하다는 엘리트들이 의사소통을 한답시고 우물우물 갈팡질팡 중얼거리고 있지요. 그건 전혀 의사소통이 아니에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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