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여행자가 알아야 하는 ‘탄소 위기’
탄소 발자국 줄이기
여행하면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든 방법을 실천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이 낫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여행하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기후 친화적인 식단이나 친환경 숙소를 고려해보자. 다음은 여행하면서 탄소를 최대한 적게 배출하는 방법들이다.
항공편 덜 이용하기
지난해 스웨덴에 갈 때 이지젯EasyJet 항공을 이용했는데, 나는 사실 ‘이지’하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륙하자마자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평소 같았으면 감탄을 연발했을 맑은 하늘 아래 반짝이는 템스강의 풍경을 보아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예테보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탄소와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항공 산업이라는 민감한 문제도 함께 다룰 수밖에 없다. 항공 산업은 일 년 동안 독일 사람 전체가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2019년 ‘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항공사’ 캠페인을 시작하기까지 했던 라이언에어Ryanair는 사실 유럽에서 아홉 번째로 큰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밝혀졌다지금은 규제를 받아 중단되었다. 라이언에어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 오염원은 탄광뿐이었다.
항공 산업이 정부로부터 엄청나게 보조를 받는 것도 문제다. 리스펀서블 트래블의 그린플라잉듀티Green Flying Duty 캠페인에 따르면 자동차 연료와는 달리 국제선 항공기 연료에는 세금과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데, 그 덕분에 항공사들은 세금을 매겼을 때보다 4분의 1 저렴하게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 전 세계 사람들 대다수가 항공기 운항에 돈을 보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항공 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단 2.5%를 차지할 뿐이지만, 문제는 성장 속도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5% 남짓인데, 지난 5년 동안 항공 산업과 관련된 탄소 배출량은 32%나 증가했으며, 화석 연료 사용량으로 따지면 승용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정도다. 기후 전문가들은 비행기가 높은 고도로 날 때 배출하는 질소 산화물과 같은 독성 가스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이 몇 배가 된다는 데도 동의한다.
항공 및 우주 산업체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트 연료보다 친환경적인 바이오 연료가 이미 사용 중이고, 전기로 움직이는 비행기도 상용될 조짐이 보인다. 하지만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릴 정도로 탄소 배출량을 빠르게 줄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2018년에 바이오 항공연료 1,500만 리터가 생산됐는데, 이는 소비된 전체 항공 연료의 0.1% 미만’이라고 밝혔다. 근거리 및 중거리용 전기 비행기 또는 전기 및 화석 연료 겸용 비행기가 앞으로 30년 안에 상용될 예정이며, 그린플라잉듀티 캠페인은 이러한 발전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비행하는 동안 짙고 긴 탄소 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다. 런던과 뉴욕을 왕복으로 오가는 비행기를 한 번 타면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 한 명이 일 년 내내 배출하는 것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된다. 정말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싶다면 비행기를 적게 타는 수밖에 없다.
다른 교통수단 이용하기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모험과 휴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여행하는 동안 천천히 이동하기로 마음먹고 기차나 배, 자전거를 이용하면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장 ‘지속가능 여행 계획하기’ 부분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요즘은 이런 식으로 여행하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이제까지 여행 산업은 비행기에 의존해왔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있는가 하면 각국 정부에서는 환경에 부담이 덜한 버스, 기차, 여객선 인프라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KLM 항공사는 국내선 비행편 중 특정 구간을 고속 열차 연결편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여행 방법 중 가장 덜 친환경적인 방법은 두말할 필요 없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이지만, 다른 이동 수단들은 누가 더 친환경적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기차, 여객선, 버스나 자동차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실어 나르느냐와 어떤 연료로 동력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런던과 파리를 잇는 고속철도인 유로스타는 다른 열차편보다 탄소를 훨씬 덜 배출하는데,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50% 이상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걸어 다닐 게 아니라면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다만 정보가 있으면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통계 몇 개를 준비했다.
○ 미국의 비영리 단체 참여과학자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에 따르면 1여객마일승객 1인 1마일 수송 원가, 1마일은 약 1.61km ― 옮긴이당 버스는 0.080kg, 기차는 0.19kg, 자동차는 0.53kg, 비행기는 0.83kg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 런던에서 파리까지 유로스타를 타면 같은 거리를 비행기로 이동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을 90% 줄일 수 있다. 전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보다 20~30% 적은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 디젤 자동차와 비행기의 마일당 배출량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동차에 4명 이상이 탄다면 1인당 탄소 배출량은 비행기를 탈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온난화 효과가 증가하고 상공에서 다른 오염 물질들이 배출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동차를 타는 쪽이 낫다.
○ 자동차의 편리함을 즐기면서 탄소를 덜 배출하려면 전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자. 어떤 나라에서는 전기차를 빌리는 것이 실용적일 수 있다. 암스테르담은 전기차 충전소가 가장 촘촘하게 배치된 나라이며 노르웨이는 전기차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나라다.
○ 페리 회사가 탄소 배출량에 관해 자체적으로 내놓은 통계가 미덥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시행한 조사에서도 페리는 비행기보다 승객당 3분의 1 적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정말 친환경적인 여행을 하려면 직접 땀 흘려 움직이는 탈것을 이용하자. 배나 자전거를 직접 몰거나 걸어도 좋고, 카약, 패들 보드를 타도 좋다. 연료를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 다른 멋진 방법들도 많이 있다.
더 오래 여행하기
짧은 여행을 여러 번 하는 것보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러야 탄소를 줄이며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짧게 여행할 생각이라면 비행기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용해보자.
리스펀서블 트래블의 〈2020년 탄소 발자국 보고서〉에 따르면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음식, 숙소 같은 탄소 배출원과 이동 수단이 배출하는 1일 탄소 배출량의 차이가 줄어든다고 한다. 오래 여행할수록 1일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장기 여행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네덜란드의 여행사 베러플레이스better places는 여행 기간이 최소 17일 이상인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또 목적지 내에서도 이동을 줄이기 위해 8개였던 방문지를 5개로 줄이기도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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