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여기저기 ‘청년’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대중매체는 물론 국가 정책, 정치, 각종 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청년’이 등장하지 않는 영역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청년 담론은 포화 상태다. 소위 ‘청년’을 위하고 걱정한다는 이 수많은 청년 담론이 조직되는 동안, 실제 청년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혹시 반대로 청년 담론이 청년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 건 아닐까?(책소개)
일상적으로 수다를 나눌 때는 물론이고, 대학원에서 열리는 세미나나 학술 행사와 같이 나름대로 좀 더 공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예전하고 달라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같은 관용적인 어구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경제 수준, 인터넷 등 기술 발전, 몇몇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논리를 구축해나간다. 성장 배경이 과거와 달라졌으니 요즘 청년들은 옛날 청년들, 혹은 지금의 어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핵심 전제이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기자나 정치가, 방송인, 연구자들을 통해 지식으로 확립된다.
그럴 때마다 그 논리와 ‘다른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는 것이 지금껏 내가 맡아온 역할이다. 청년들이 보수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청년들이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 청년들이 학벌주의에 오염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 여성 청년들이 과거의 여성들과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고 투표도 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반대되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져보곤 한다. 주로 내가 알고 있는 반례를 제시하거나,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치를 제시하는 식이다.
애석하게도 내가 제시하는 ‘다른 이야기’는 곧잘 기각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청년세대에 관한 일종의 가설들을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성장 배경이 다르니 ‘당연히 뭔가 다른 점이 있겠지’라는 식으로 청년 혹은 세대에 관한 그들의 관점은 매우 안전하게 유지된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만난 어떤 40대 대학원생이 “요즘 청년은 인종이 다르다”는 아주 강력한 이야기를 해서 한껏 당황스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아무튼 그 정도로 ‘청년세대’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물론 연령age이나 출생 코호트birth cohort로 사람들을 묶어 범주 간의 차이를 따져보는 작업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발견을 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세대사회학sociology of generation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령이나 세대에 따라 다른 특성을 지닌다는 전제가 실증적인 증거들까지 잡아먹게 되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세대 차이나 세대적 특성을 논의할 때 필요한 체계성이나 엄밀함을 놓칠 경우, 세대사회학적인 사고들은 반대로 가장 세대사회학적이지 않은 공허한 사고틀로 전환된다.
각각의 세대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는 생각, 요즘 청년들은 과거와 다르게 이러하거나 저러하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을 기사나 논문 등에서 전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믿음이 한국 사회에서는 꽤나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 개입할 수 있도록, 세대와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최대한 논리적으로 풀어보는 것이 이 책이 하려고 하는 일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래도 청년은 기성세대와 뭐든 다르지 않겠어요?”라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청년과 기성세대가 어떤 면에서는 공유하는 점이 있지 않겠어요?” 혹은 “그래도 그게 청년한테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우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세대라는 요인을 전제하고 쉽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때, 역설적으로 오늘날 세대의 문제 혹은 청년 문제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세대와 청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세대주의’generationalism라는 개념으로 포착하면서 이 책의 주요한 논의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2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구세대와 신세대를 가르는 식의 단순한 세대 논의는 기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세대에 대한 사회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로 점점 더 다양한 사회현상들이 세대라는 설명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세대주의 현상이 본격화된 시기를 1990년대 이후로 본다. 신세대, 386세대, 88만원 세대 등 세대 담론의 적용 범위를 혁신했다고 여겨지는 세대 명칭들을 차례대로 검토한 후, 세대 개념을 경유해 벌어지고 있는 현실 정치와 문화정치의 양상들을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특히 ‘청년세대’를 지식화하는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담론 경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는 세대라는 범주 및 ‘청년’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과정을 다루며, 오히려 그런 ‘청년세대’ 담론이 현실의 여러 청년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핵심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세대’ 담론은 젊은 층 인구를 ‘청소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이는 결국 청년들을 타자화하게 된다. 청년을 일탈적이거나 미성숙한 인구로 간주해, 공론장에서 공적 주체의 역할을 맡기에 부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세대 내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세대 내부의 상대적인 소수자들을 배제하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진보적인 ‘청년세대’ 담론으로 여겨지는 ‘3포세대’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셋째, 다수의 ‘청년세대’ 담론은 ‘진보 진영’에서 생산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청년과 사회를 보수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진보 정치 세력의 ‘청년세대 위주 선거 전략’이 세대 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듯 말이다.
4장에서는 대안을 논의한다. ‘청년세대’ 담론이 수많은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데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많은 청년 단체들과 청년 개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발화하기 위해 ‘청년’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세대론의 덫을 벗어나 어떻게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나갈지 고민한다. 청년에 관한 토론이 앞으로 새로운 지평 위에서 전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청년’에 관한 내 생각의 일부를 공유하고자 했다.
흔히 ‘청년 문제’라고 정의되는 다양한 현상들, 예컨대 청년실업이나 주거, 부채, 또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주체성이나 문화적 특질에 관한 문제, 그리고 ‘기성세대’와의 차이로 언급되는 무기력함, 미성숙함, 탈물질적·탈정치적 성격 등을 직접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나열한 문제들 중 일부는 앞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다만 이 책은 청년들의 문제를 재차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싶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왜 그런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는지, 다시 말해 어떤 제도적, 문화적 기반 위에서 그런 담론이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해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원고 일부는 기존에 내가 작성해왔던 ‘청년’ 문제, ‘청년세대’ 담론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보완 및 수정한 것이다. 2014년 《문화와 사회》에 발표한 논문 〈세대 연구를 다시 생각한다: 세대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서울시 청년허브 공모연구 보고서 〈청년들, 청년세대 담론을 해체하다〉, 2016년 《언론과 사회》에 발표한 논문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 2010년 이후 청년세대 담론에 관한 비판적 분석〉, 2017년 《문화와 사회》에 발표한 논문 〈청년-하기를 이론화하기: 세대 수행성과 세대 연구의 재구성〉, 2018년 《한국언론정보학보》에 발표한 논문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정책 거버넌스 현상 읽기: 청년당사자운동의 정치적 기회 구조 분석을 중심으로〉, 그리고 ‘고함20’을 비롯한 몇몇 매체에 기고했던 원고들이 바탕이 되었다. 물론 단행본의 형식에 맞게 문체와 범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했다.
‘청년’과 관련된 담론과 정책 등을 연구한 경력이 쌓이면서 최근 ‘청년’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각종 논의 테이블에 참여할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나에게 자극을 주는 논의도 있지만, 지루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피로하다는 생각이 드는 자리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익숙한 과거를 반복하는 ‘청년’ 담론을 마주할 때마다 또 한 번의 예정된 실패를 목격하는 듯하다. 청년으로서 ‘청년’이라는 말을 가지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동료 활동가들도 비슷하게 지쳐 있는 것 같다. 청년을 찾는 곳은 많고,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은 없고 같은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는 상황 탓이다.
이 책 한 권이 모든 ‘청년’ 이슈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 문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내놓는 기존의 지배적인 담론, 그리고 세대 문제에 대한 주류적인 이해에 대항하는 다른 접근법들을 이 책에 모았다. 나는 비성찰적인 세대주의에 기반을 둔 ‘청년’ 담론의 누적이 청년-시민을 포함한 모든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낫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이름을 팔아 사회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청년’ 담론은 청년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청년이라는 이름을 팔아 그 담론을 생산하는 본인의 가치를 높이고 이득을 도모한다. 이와 같은 이른바 ‘청년팔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청년’과 ‘세대’라는 개념 자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대안적인 세대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다양한 변화의 역사들이 알려주듯,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더 나은 담론을 만드는 데에는 짧지 않은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 성ㅊ알과 변화의 여정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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