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종교로 자리하고 있으나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시대 앞에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쇠퇴 징후를 보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 야훼 신의 실체를,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수긍할 만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학적 논리로 탐구하고 서술하려고 했다. (12쪽)
책머리에
신은 있다고 한다. 없다고도 하며, 죽었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그저 신이 있다고 믿었을 뿐이라고도 한다.
알 수 없는 (그)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현대 서구 과학자들의 대다수가 무신론으로 기울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불변의 실재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물론 대중들 가운데도 신에 무관심한 이들이 적지 않으며, 지나치게 열정적인 신앙인들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하다고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이들이 여전히 신앙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 유일신 야훼야웨 혹은 여호와와 연관된 종교들로 인한 논란과 분쟁도 적지 않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 형성 과정에서 성립된 야훼 신앙은, 남북 왕국의 멸망 이후 민족 대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유대교로 자리잡아 갔고, 다시 그 안에서 갈릴리 예수의 개방적이고 종말론적인 개혁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탄생시키고 나아가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의 연원이 되었다. 결국 이들 소위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두고 있으니, 실로 야훼 신은 가장 영향력이 큰 유일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세 종교는 신의 성격이나 신앙 양태에 상당한 거리감이 있고 근대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 신앙은 크게 쇠퇴하는 듯 보이지만 흔히 ‘신’으로 통칭되는 이 존재의 위세가 갑자기 소멸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크게 성장했다. 약자를 사랑하고 복 주기를 좋아한다는 인격적인 이들 종교의 신은, 민족 해방과 급속한 경제 발전을 통한 근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기복적인 성향의 한국인들과 의기투합했다. 이제는 국민의 30퍼센트 가까운 이들이 그 기이한 삼위일체의 하나님하느님을 신앙하고 있다. 이들 종교는 수입된 서양 종교를 넘어 사회·문화·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장 대표적 종교로 자리했다. 한국 역사를 전공한 필자가 야훼 신의 문제를 깊이 알아보고자 나선 이유도 이렇게 변화한 한국사회의 종교적 현실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처한 현실과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예배당은 크고 화려해졌지만 젊은이들은 교회를 다소 비이성적 집단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편이며 교인의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대다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위기감은 느끼고 있으나 당장의 평안에 머물며 교회 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는 중에, 상당수의 비판적 지식인, 교양인 신자들은 보수적인 교회에 대해 회의하며 교회를 벗어난 신앙방식을 모색하기도 한다. 다소 의도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도 신자임을 자임하는 소위 ‘가나안 성도’의 급증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급속하고 과도한 성장의 결과로 교회와 신도들의 소유가 크게 증대되고 기득권화화면서 교회가 인맥 형성을 위한 사교의 장으로 더욱 중요성을 띠기도 하고, 신화적, 기복적 신학을 여전히 선포하며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부자간에 세습하고 교회 공동 재산을 사유화하려는 퇴행적 시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며, 이 고달픈 사회에서 적자생존,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체제를 앞장서 옹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가 외쳐온 자기 비움과 약자에 대한 희생적 사랑을 통해 자신은 물론 사회의 구원 실현이란 목표와 오히려 대립하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논란이 적지 않고, 일반 사회도 세속화된 이 고루한 거대 조직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구나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낮게 보며 자신들의 신만을 참 신이라 주장하는 유일신 신앙을 여전히 고수하려 하고, 자신들도 그대로 지키지 않는 먼 고대에 저술된 『성경』 내용이 전혀 오류가 없는 진리라 고집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 속에 『성경』이 전하는 창조 신화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크게 회의되고 있다. 아울러 과학 만능의 사유 속에 이 종교의 역사적, 현실적 과오에도 주목하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서가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그리스도교의 허물과 약점을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첨단 과학과 인터넷 세상을 통해 과거의 어떤 신보다 빠르고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하는 소위 ‘데이터교’의 출현은 기존의 신이나 제도적 종교의 필요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대표적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와 이 시대의 괴리와 불화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동성애나 낙태 문제 등은 물론, 사회적 분배의 확대 등 정치·경제·문화적 이슈 등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비교적 유연하고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으나, 그들을 대표하는 기득권 지도층이 주도하는 대다수 교회들은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 교회는 시대의 과학적, 진보적 흐름과 충돌하고 있으며 나아가 해묵은 이념 대립으로 치달아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이나 통일 문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분란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각자들의 염려와 노력이 있어왔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교회는 시대적 전환에 따른 신학적 대안 마련이나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존재감이 크게 약화된 신과 함께 표류하고 있다. 대다수 지성인들도 이러한 점을 그저 한 종교와 연관된 별도의 상황으로 방관하는 편이다. 사회 구성원의 지지를 통해 존속되는 종교 중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사회와 부조화를 이루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며 소외된 조직으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급속하게 노령 사회로 진전되어 활력과 비전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안녕이나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사회 전반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제도적 종교의 쇠퇴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삶의 확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종교는 비이성적 과오들을 적지 않게 저질러 왔음에도 인간다운 삶과 진리와 구원에 이를 최상의 삶의 가치들을 모색해 제시해 왔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아직은 인간의 삶을 자신 있게 주도해 인류 구원의 전망을 제시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과학 등만을 바라보고 종교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종교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는 과학은 근대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이 해방되는 길로 인도하기도 했지만, 대대적인 인명 살상을 가져온 1, 2차 세계 대전과 그 후 여러 처참한 지역 전쟁 유발에 일조했으며, 인류 필멸을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들을 불완전한 인간들의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아울러 과학과 더불어 진전된 산업화가 가져온 대량의 공해 물질은 기후 변화와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와 인류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과학 덕분에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나, 문명사회들에서는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우울증 환자가 격증해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아울러 생산성의 향상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주도할, 각종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효율과 편리란 은총과 함께 동반할 인간 소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하게 펼쳐질지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부 무신론자들의 확신과 달리, 이처럼 불안한 면이 있고 탐구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 과학에 의지하여 지금껏 인간들의 삶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중심에 있어온 신이 불필요하다고 확언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과학적 지성으로 보면 신앙은 유치한 신화적 상상과 관념의 산물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기계라고 할 수도 있는 생명체 중 의식을 비롯해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지성을 가진 인간만이 누려온 비약적 차원이자 문화의 요소로서, 오랜 세월 인간의 삶과 역사와 함께하며 모든 분야에 흡수·융합되어 있어 완전한 분리나 극복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과학과 종교적 진리간의 괴리와 모순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들에게 흔들리는 신을 대신해 제시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종교로 인해 필요 이상의 억압을 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과학이나 경제의 발전이 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그것에서 찾고 행복해하며, 정신적으로 위로를 얻고, 물질적으로도 혜택을 누리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봉사 단체 다수가 여전히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처참한 테러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종교가 가진 본래의 속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제, 민족, 문화, 역사, 심리적 갈등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의 종교계는 과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던 것처럼 특정 신만 배타적으로 신앙할 것을 주장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인류가 오래 전부터 찾아온 여러 궁극적 실재들-신, 브라만, 아트만, 열반, 도 등-과 진화론이나 빅뱅이론 등 과학적 성취를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며 인간의 참된 해방과 구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정도에 이르기도 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종교로 자리하고 있으나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시대 앞에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쇠퇴 징후를 보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 야훼 신의 실체를,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수긍할 만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학적 논리로 탐구하고 서술하려고 했다. 여전히 많은 추종자들이 확신하는 것과 같이 야훼 신이 과연 자존하고 살아 역사하는 전능 불변의 유일한 객관적 실재인지, 아니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숭배된 상상 속의 관념적 실재에 불과한지를 『구약성경』 등을 중심으로 역사학적으로 검토했다.
사실 이 주제는 참된 신의 존재 문제와도 연관된 것으로, 약 3천 년간 진실을 추구하던 많은 인간들, 특히 『성경』에 보이는 욥Job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상당수도 매우 궁금해했으나 드러내 언급하기에 부담스러워하던, 근본적이며 너무나 큰 질문이었다. 한 고대 약소민족에 의해 지나치게 포장된 신의 절대적 위세 앞에 그에 대한 진실 탐구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의 배타적 유일성 인식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일부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은 먼저 필자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도 연관된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보다 분명히 밝혀보고 싶어서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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