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의 딸, 길 위에 서다
― 신소설의 성性·계층·민족
| 권보드래
‘여성소설’로서의 신소설
신소설은 ‘여성적인’ 장르이다. 『혈의누』1907와 『귀의성』1906, 『빈상설』1907과 『홍도화』1908, 『추월색』1912과 『금강문』1914 등 대중적인 인기에서나 문학사에서의 영향에서나 주목할 만한 신소설이 모두 여성주인공을 내세웠고 여성의 생애를 서사의 초점으로 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신소설이라 해야 할 『혈의누』에서부터 이런 면모는 뚜렷하다. 『혈의누』의 서사를 점화한 사건, 청일전쟁 당시의 평양 전투 이후 서사적 행로를 시작하는 사람은 기실 두 명이다. 한창 장년으로 이름난 한량인 ‘김관일’과, 일곱 살 된 딸 ‘옥련’. 출발점에서의 자의식으로 말하자면 김관일이 여러 급 위이건만 『혈의누』는 김관일을 외면한 채 철저하게 옥련에게 초점을 맞춘다. 옥련이 중도에 만난 청년 ‘구완서’에 대해서도 『혈의누』의 관심은 인색하다.
김관일은 10년간 미국 유학을 경험한 후에도 “영문에 서툴러서 보기를 잘 못”할 정도로 더딘 성장을 보이며, 구완서의 변화 역시 옥련과 비교하면 지지부진하다. 옥련이 “고등소학교에서 졸업 우등생”69쪽으로 명예를 빛내는 반면 구완서는 “계집의 재주가 사나이보다 나은 것이로구나.”70쪽라며 축하의 말을 던지는 데 만족해야 할 조연의 역할에 머무른다. 김관일은 “내 나라 사업을 하리.”14쪽라는 각성과정을 거쳤고 구완서는 나아가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86쪽 강렬한 사회의식을 내비치지만, 『혈의누』의 주인공은 주체적으로는 한 번도 그런 거대 담론에의 지향을 보인 적 없는 옥련이며, 앞날이 가장 촉망되는 것 또한 옥련이다.
이후 옥련의 후예들은 위축되고 보수화되면서나마 신소설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대부분의 신소설에서 중심인물은 명백히 여성으로서, 남성은 주변적이고 방계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소설사 특유의 현상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남성주인공을 내세워 ‘정치’나 ‘견책譴責’ 소설의 단계를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여성주인공을 초점으로 ‘가정’과 ‘원앙호접鴛鴦胡蝶’이란 주제를 다루었다면, 근대 초기 한반도에서는 처음부터 여성주인공의 수난과 모험담을 애호했다. 아마 일본의 ‘정치’나 중국의 ‘견책’에 가까운 서사 전통으로는 신소설과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던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1905 같은) 단형 서사체나 (『을지문덕전』1908 같은) 역사·전기물을 들어야 할 터인데, 1909년 출판법 공포와 1910년의 일제 강점 후 그 서사적 가능성은 사실상 폐색된다.
더욱이 이들 양식은 신소설에 비해 독자의 호응이 현저히 뒤떨어진 양식이었다. ‘소설’은 민족어를 사용한 글쓰기로서 급부상했으며, 량치차오梁啓超의 지적마따나 다른 세계에의 동경과 감정의 대리표현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널리 호응을 얻었다. 역사·전기물은 신소설에 비해 이 두 가지 측면에 모두 취약했다. 한자 빽빽한 국한문체를 선택한 대부분의 역사·전기물은 여성이나 노동자로선 접근하기 어려웠고, 민족의식과 역사 서사로 충만한 내용 역시 그들의 일상적 생활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식인·학생층을 넘어 집 안의 여성이나 장터 나무꾼 사이에서 읽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전기물은 여성영웅을 내세워 국문으로 출간한 『애국부인전』1907, 『라란부인전』1907 류가 주종이다.
근대 초기 독서 시장에서 여성주인공의 부상은 자못 흥미롭다. 대체 여성주인공, 나아가 여성의 서사가 대중적인 관심의 핵심에 위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여성독자층의 확대 때문인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때문인가, 아니면 당대 인식과 표상 체계에서 여성이 독특한 위치를 가졌던 때문인가? 근대 초기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서 여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의 연관은 어떠했는가? 이 글에서는 위의 여러 가지 질문 중 ‘여성을 둘러싼 담론과 표상 체계의 변화’라는 측면을 추적해 보려 한다.
여성의 모험과 여성 신체의 현실성
가정家庭, 그 이상의 신소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일본의 가정소설이나 중국의 원앙호접파 문학의 경우 여성주인공의 생명은 가정에서 비롯되어 가정에서 끝난다. 일본의 가정소설과 그 주변의 『금색야차』1897, 『불여귀』1898, 『젖자매』 등에서 여성주인공은 모험이나 기적의 세계와 어떤 연관도 없으며, 남성이 집 밖에서 모험을 감행하는 동안 가정에서 음해당하고 수난에 처한 채 기다려야 하는 인물들이다. 중국 원앙호접파의 여성주인공들 역시 신문기자와 사랑을 나누고 국무총리의 며느리가 되는 등 남성주인공을 매개로 정치·사회와의 접점을 확보함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존재로 시종한다. 『파멜라』1750, 『클라리사』1749를 쓴 영국 소설가 새뮤얼 리처드슨에 대해 제기되었던 평을 빌자면,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가사에만 몰두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중산계급의 인간”이 그 주인공인 셈이다.
반면 신소설의 여성주인공들은 결혼으로 낙착되는 서사 구조에 지배되고 있으면서도 집 안의 세계보다는 집 밖의 세계에서 더 자주 살아간다. 『혈의누』, 『빈상설』, 『목단화』1911, 『추월색』에서 여성주인공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만, 서사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자의 혹은 타의로 집 밖에 나선 후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요, 그 일환으로서의 연속적인 수난이다. 지금까지 주목된 것은 주인공의 수난, 특히 ‘성적’ 수난이라는 측면이었으나, (따라서 ‘여성=성적 존재’로 각인되어 있고, 그것이 신소설의 보수성을 증명한다는 해석 또한 피하기 어려웠으나) 거꾸로 보자면, 성적 수난이라는 형식 속에서나마 여성이 계속 집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신소설의 여성은 일본의 가정소설이나 중국의 원앙호접파 소설에서 남성에 할당되어 있는 역할, 즉 ‘집 밖의 존재’로서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이양받는다. 그 실질적 성과를 차치하고라도 이양의 양상은 그 자체로 주목될 필요가 있다.
물론 ‘여성의 모험’이라는 모티프가 초유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이래 한국소설사는 여성영웅의 형상을 다채롭게 보여준 바 있다. 근래 10여 년 사이 ‘여성영웅소설’이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이들 서사는 실상 신소설과 거의 겹치는 시기의 서사이다. 19세기 중후반 인기리에 읽혔던 『이대봉전』, 『홍계월전』, 『이학사전』 등의 여성영웅소설은 주인공의 ‘여화위남女化爲男’과 전장에서의 무용담을 특색으로 한다. 『이대봉전』의 ‘장애황’, 『홍계월전』의 ‘홍계월’, 『이학사전』의 ‘이현경’ 등은 일찍이 남복男服한 채 자라났거나 전란에 즈음해 남성으로 가장, 난亂을 평정하고 군주의 인정을 받는다. 이후 가정으로의 복귀 여부나 그 양상에 있어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혼을 결말 삼는 경우조차 이들은 남편보다 뛰어난 존재이며 한결 시선을 끄는 존재이다.
이런 인물 및 서사에 조선 후기의 여성 현실이 어떻게 굴절된 것인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현실적 진보가 서사에 투영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보수화를 상상이 보충한 것인지. 다만 이들 예외적 여성조차 ‘남성’의 기호로 위장해야만 집 밖에 나설 수 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홍계월은 여성임이 밝혀진 후에도 관직에 머무를 수 있었으나 “여복을 입고 그 위에 조복을 입”은 괴이한 차림새로 군무軍務에 임해야 했고, “낙루하고 남자 못 됨을 한탄하”는 자기부정의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이들은 남성성이라는 기호를 걸침으로써 비로소 허용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그런 의미에서 육체를 가진 현실적 존재라기보다 기호에 대한 욕망 그 자체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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