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슈투름 운트 드랑
‘가슴의 피로 쓴 작품’ : 체험적 배경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74)는 청년 괴테의 직접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라이프치히 대학과 슈트라스부르크(오늘날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괴테는 1772년 5월부터 9월까지 베츨라Wetzlar에 있는 제국고등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1772년 7월 샤를로테 부프Charlotte Buff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반하는데, 훗날 괴테는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이 ‘탐스러운 여인’과 금방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고 회고한다.1 하지만 샤를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결국 그녀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괴테는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같은 해 9월 수습근무를 중단하고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낙향한다. 그런데 실연의 슬픔을 달래고 있던 차에 괴테는 친구의 자살소식을 접하게 된다. 예루잘렘Jerusalem이라는 그 친구는 괴테보다 두 살 위로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괴테와 마찬가지로 베츨라의 제국고등법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예루잘렘은 법원 서기관의 아내인 어떤 여성을 사랑했으나,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못 이겨 1772년 10월 말에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괴테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공직을 포기하고 베츨라를 떠난 지 불과 한달 만에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예루잘렘은 사랑의 좌절을 겪은 것 외에도 베츨라에서 상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소설 속의 베르터처럼 귀족들의 사교연회에 ‘입장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예루잘렘이 자살에 사용한 권총은 괴테가 사랑하던 샤를로테의 약혼자에게서 빌린 것이었다.
이렇듯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비운의 사랑과 괴테 자신의 쓰라린 실연경험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괴테는 일년 반이 지난 1774년 2월부터 3월 사이 불과 4주 만에 작품을 탈고하였다. 만년의 괴테는 자신도 실연의 고통 속에서 자살충동에 빠지곤 했으며, 침대 맡에 비수를 둔 채 잠자리에 들곤 했다고 고백했으며, 그러한 극한의 고통과 싸우면서 집필한 이 소설을 “마치 펠리컨처럼 가슴의 피를 먹여 탄생시킨 작품”2이라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혹독한 산고를 겪으며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청년 괴테는 죽음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괴테는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성사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3고 회고한 바 있다. 괴테에게 창작과정은 견디기 힘든 실연의 고통과 싸우며 작품을 통해 일생의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 괴테에게 창작과정이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당대의 청년층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베르터의 운명에 몰입하게 하여 모방자살을 낳는 등 베르터 씬드롬을 유행시켰다. 이에 성직자들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불륜과 자살을 부추기는 책’이라고 비난하며 이 책을 금서목록에 올릴 것을 촉구하였고, 실제로 독일의 여러 지역에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금서로 지목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당대 독서계에 뜨거운 반향을 부러일으킨 이유는 베르터가 그와 비슷한 번민에 빠져 있던 당대 청년층의 열망을 대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독자반응을 괴테 자신은 훗날 “충족되지 않는 열정으로 번민하고, 의미있는 행동을 이끌어낼 외적인 자극이 전혀 없으며, 거추장스럽고 맥빠진 평범한 시민적 삶을 감내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병적인 젊음의 광기에 노출된”4 청년층의 집단심리라고 진단한 바 있다. 괴테의 이러한 은 감성의 해방과 전인적 자아실현을 추구한 당대의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 문학운동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인 렌츠Lenz(1751~92)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공로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느끼지만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격정과 감성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데 있다”5고 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이 글에서는 문학사에서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슈투름 운트 드랑의 문학정신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연과 영혼과 세계의 교감: 반복투영의 원리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슈투름 운트 드랑’과 그 정신사적 배경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작품 초반부의 5월 10일자 편지에 나온다.
나를 둘러싼 정겨운 골짜기가 안개 속에 잠겨들고, 드높은 태양은 햇빛이 들어가지 못하는 어두운 숲의 겉면에 머물며 단지 몇줄기 햇살만이 내밀한 성소聖所로 살며시 비쳐든다. 이럴 때면 나는 쏟아져 내려가는 개울 옆 우거진 풀숲에 드러눕고, 그러면 대지 가까이에서 온갖 다채로운 풀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대지 가까이에서 온갖 다채로운 풀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풀줄기 사이에서는 꼬물거리는 작은 벌레들의 세계, 조그만 땅벌레와 날벌레 들의 헤아릴 수 없이 불가사의한 형태들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전능한 분의 현존을 느끼며, 우리가 영원한 기쁨 속에 머물도록 지켜주시는 자애로운 분의 입김을 느낀다. 이윽고 시야가 어둠에 잠기고 주위의 세계와 하늘까지도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온전히 내 영혼 속에 고이 깃든다. 그럴 때면 나는 곧잘 그리움에 잠겨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내 마음속에 이렇게 충만하고 뜨겁게 살아 있는 것을 재현할 수는 없을까! 내 마음을 종이 화폭 위에 입김처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화폭이 내 영혼의 거울이 되고, 내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 될 수만 있다면! 친구여, 하지만 이런 벅찬 생각에 나는 쓰러질 것만 같고, 이 장관의 장엄한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네. (14~15면)6
이처럼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황홀경에서 ‘창조주의 현존’을 느끼는 신비적 합일은 괴테가 1770년대 초반부터 심취하기 시작한 ─ 그리고 괴테 자신이 사상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받았노라고 고백한 바 있는7 ─ 스피노자Spinoza의 범신론에서 나온 것이다. “신은 곧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유명한 경구로 집약되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신의 창조물인 모든 자연사물에 창조주의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데, 베르터가 풀잎과 벌레 등의 미물에서 창조주의 현존을 느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베르터가 자연과 교감하고 그 장엄함에 압도당하면서 느끼는 숭고한 감정도 자신과 무한한 존재인 창조주 사이의 내밀한 연관성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8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사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말은 괴테의 스피노자 해석에 따르면 개체 속에 신성의 ‘부분적 속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자가 무한한 신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유한한) 현존재의 개념과 (신적인) 완벽함의 개념은 전적으로 일치한다. (…) 모든 유한한 현존재는 무한자 속에 존재하는데, 무한자의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한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9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베르터가 대자연에서 신성을 느끼는 것은 창조주의 무한함을 온몸으로 교감하는 가운데 신적 창조과정에 비견되는 창조적 삶을 일구려는 소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신이 만물을 창조한 것과 같은 이치로 베르터는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베르터가 느끼는 자연과의 일체감은 절대적 자율성에 대한 희구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외적 간섭이나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베르터가 ‘나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 되길 갈망하는 것은 온전한 자기정립을 하려는 열망이며, ‘슈투름 운트 드랑’이 지향하는 전인적 자아실현의 이상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용한 5월 10일자 편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물이 다름 아닌 베르터의 ‘가슴’이라는 것이다.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성적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가슴’을 통해 비로소 창조주와 교감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과 창조주의 삼위일체를 느낄 때 베르터의 가슴에서는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 작품 인용문의 ‘내밀한 성소’는 그런 점에서 단지 숲속 공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및 신성과 일체가 된 가슴속의 성소이기도 하다.
그러한 베르터의 가슴이 그리움으로 달아오를 때 그의 가슴은 대자연과 일체화된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주위의 세계와 하늘까지도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온전히 내 영혼에 고이 깃든다.” 미지의 여인에 대한 베르터의 그리움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우주적 교감에 상응한다. 작품에서 베르터에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로테Lotte가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감정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베르터가 자신의 가슴속에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종이 화폭 위에 입김처럼 불어넣을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 토로하는 뜨거운 열정의 고백이 곧 베르터가 쓰는 편지들, 다시 말해 그 편지들의 모음집인 이 작품이다. 그리하여 베르터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동시에 ‘저자’로서 편지의 수신자인 독자에게 직접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다. 작품에서 편지의 수신자는 빌헬름Wilhelm이라는 친구 단 한명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이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는 주인공이자 저자인 베르터의 내밀한 고백을 듣는 친구 빌헬름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폭발적 반응은 상당 부분 이러한 서술전략에 힘입은 것이다.
5월 10일자 편지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거울’의 메타포이다. 베르터의 가슴속에 뜨겁게 달아오른 그리움의 ‘입김’을 불어넣는 ‘종이 화폭’ 즉 작품의 텍스트는 그의 ‘영혼의 거울’이 되고, 또한 그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 되기를 소망하는 방식으로 거울의 메타포가 중첩되어 있다. 인간의 영혼을 신의 거울에 견주는 것은 라이프니츠Leibniz의 모나드Monad론 이래 익히 알려진 발상이다.10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모나드는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고유한 내적 통일성을 지닌 실체로서,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와 삼라만상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계는 그 충만함으로 인해 모든 존재자는 서로 관련을 맺고 있고 모든 사물은 서로 멀고 가까운 정도에 따라 다른 모든 사물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이로부터 다음을 추론할 수 있다. 즉, 각각의 모나드는 제각기 고유한 행위Handlung를 하는 살아 있는 거울이며, 우주의 삼라만상은 각 모나드의 관점에 따라 드러나고 각각의 모나드는 우주 자체와 똑같은 원리에 따라 운행된다는 것이다.11
1 괴테 『시와 진실』, 전영애 · 최민숙 옮김, 민음사 2009, 695면 이하 참조.
2 1824년 1월 2일자 괴테와의 대화.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2,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8, 47면.
3 괴테 『시와 진실』, 760~61면. 번역은 필자가 부분적으로 수정하였다.
4 같은 책 735면.
5 Goethe, Werke(Hamburger Ausgabe) 6, München 1989, 533면. 이하 괴테 작품집 함부르크 판본은 HA로 약칭함.
6 작품 인용은 졸역 『젊은 베르터의 고뇌』(창비 2012)를 따르고 괄호 안에 면수만 표기한다. 강조는 인용자의 것이다.
7 괴테 『시와 진실』, 816면 이하 참조.
8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과 무한한 존재 사이의 관계를 맹아적으로 자각할 때, 비록 그 관계의 조화로움이 온전히 펼쳐졌을 때의 상태를 단번에 온전히 조망하거나 느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인상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숭고함은 인간의 영혼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장엄한 것이다" (Goethe, "Studie nach Spinoza", HA 13, 8면)
9 같은 글 7면.
10 Goethe, Sämtliche Werke (Frankfurter Ausgabe) 11, Frankfurt a. M. 2006, 962면 주석 참조. 이하 괴테 작품집 프랑크푸르트 판본은 FA로 약칭함.
11 Leibniz, Prinzipien der Natur und Gnade 참조. Heinz Holz, Leibniz, Frankfurt 1992, 135면에서 재인용했으며 강조는 인용자의 것임.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