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살까지 살려구요
_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이야기
건우 어머니는 10여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 집 밖에 잘 나오지 못한다. 특히 사람 많은 곳에 나오면 증세가 도진다. 집 근처만 다닐 뿐이고, 건우 아버지 차로 나올 때나 조금 멀리 나간다. 노선자 씨를 처음 만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직전인 8월 6일 광화문광장에서였다. 천주교 신자인 그가, 혹시라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해결의 단초가 생길까 하는 기대 속에 용기에 용기를 내어 나선 첫걸음이었다. 막상 용기를 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차를 타자마자 공황증세가 밀려왔다. 처음엔 주체할 바를 몰라 내릴까도 싶었지만, 두려움과 불안증세가 몰려올 때면 내딛는 한걸음마다 건우를 생각해보라 하신 친한 수녀님의 말씀대로 차창 밖의 구름 하나하나에 건우 얼굴을 떠올렸다. 구름 위로 떠오른 건우와 “내 아들, 엄마 갈 수 있게 힘 줘” 라고 대화하며 광화문까지 온 걸음이었다.
그날 유가족들이 머무는 천막에서 여러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한 어머니가 어떤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패널을 들고 와 “건우 엄마, 이거 봤어?”라고 말을 꺼내자, 갑자기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노선자 씨가 폭풍 같은 울음을 쏟아냈다. ‘왜 우시냐’ 물을 것도 없이 천막에 같이 있던 모두가 그의 마음이 되어 펑펑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건우 어머니의 울음은 기운이 꺾이고 지쳐서야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곤 “내 아들이 엄마가 못 오는 동안 이곳에 나와 이렇게 싸우고 있었네… 엄마가 미안해서 어떡해… 아들이 진실을 위해 싸우는데… 엄마는 못 왔네. 내 아들 미안해… 미안해…” 계속 잦아드는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생전 처음 만난 그날, 건우 어머니는 옆자리에서 같이 울던 내게 핸드폰 속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건우 이야기를 마치 실타래 풀 듯 술술 풀어놓았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새에 어머니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한껏 얼굴이 밝아졌다가 한없이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끝도 없이, 아들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여기 적은 것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 이야기와 마음을 어찌 종이 몇 장의 기록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래도 활자의 한계를 넘어 적어보고자 애쓰는 것은 어머님 혼자 건우를 기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가 같이 기억하기 위해서.
아무래도 오늘은 울어야겠어엄마 마음이 답답해미워사람들이 미워우리 아들이 보고싶을 때마다가슴을 쓸어내리고한숨을 쉬어보고나 잘하고 있는거야달래도 보고눈앞에 아른거리는 우리 아들모습에 애써 울지 않으려고밀어내고 있는 나를 알아채는순간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있다뚝뚝 말없이 떨어지는내 눈물소리가 들린다아들~~ 잘 있니?엄마는 너가 보는 대로야울다웃다 똥꼬에 털날 판이야엄마도 참 웃기다 싶어웃다가 울다가 먹다가…너도 지금 큭큭대고 있지엄마도 엄마가 이상하다~생각하면서도 계속 반복하니정상인가? 하고 지내그냥저냥 지내고 보는?이 그림들*처럼 우리 건우가 맞나?생각이 들 때는 제발 우리 아들몰라보게 미치지는 말아야지하고 산다 엄마 꽉 붙잡아줘~언제 어디서든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우리 건우 내 아들1초도 망설임 없이 알아볼 수 있게 알았지?사랑한다 온 마음 다해 사랑해**
* 박제동 화백과 이동수 화백이 건우를 그린 그림들.
** 어머니는 건우가 그리울 때마다 카카오스토리에 일기를 써내려간다. 그 일기 가운데 한편을 원문 그대로 실었다.
정말 온 맘을 다해 사랑했어요
건우 아빠는 며칠 전에도 퇴근 후 술 한잔 하며 마시다 울다를 되풀이했어요. 저 사진 앞에 술상을 놓고 건우와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지요(건우네 집은 들어가자마자 거실 벽에 건우 사진들고 성모상과 초가 놓여 있다. 어머니 아버지는 오갈 때 늘 이 사진을 보며 건우에게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건우가 간 후에도 술 마실 때마다 건우 아빠는 닭날개 하나 맥주 한잔 이렇게 건우 사진 앞에 꼭 놔요. 그러면 제가 마음이 안 좋아요. “그러지 말지” 하면 “아니야, 건우도 줘야지” 그래요. 며칠 전에도 생각 나서 같이 마신다며 상을 사진 앞에 들고 가더니 역시나 울고… 결국 (거실 반대편을 가리키며) 이리로 옮겨서 마셨어요.
우리 건우는 키가 작아 나이보다 어려 보이지만 저희는 어린 아이처럼 대하지 않고 뭐든지 같이 이야기하고 나누며 그렇게 살았어요. 아빠 꿈이 건우 크면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그러는 거였어요. 그래서 작년 추석부터는 건우 아빠가 이제 술도 배울 나이라며 건우에게 술을 가르쳤지요. 어차피 배울 거면 아빠한테 배우라고. 그러면서 맥주 한잔을 줬어요. 그리고 앞으론 명절, 휴가, 생일 때는 술 한잔씩 해도 된다고 했지요. 아빠가 건우에게 술을 가르치던 날 건우가 참 좋아했어요. 아빠가 자기를 어른 대접한다고. 자기는 우리집 같은 집은 없는 것 같다고. 공부하라고도 안 하고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고. 친구들한테도 자랑을 했나봐요. 우리 아빠는 나를 인정해준다고.
저희는 정말 온 맘을 다해 사랑했어요. 아빠도 나도. 건우가 원하는 것은 거의 다 들어주며 아이를 억압하지 않고 키웠지요. 누나(송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아서 제가 그걸로 너무 힘들어하다 지금의 공황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아들에게는 통제하거나 뭘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아이가 즐겁게 잘 자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큰아이 사춘기 때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억지로 부모가 몰아야 큰다고 생각 안 했어요. 그래서 건우는 자기 하고 싶은 걸 솔직히 말하고, 생생히 살아서 스트레스 없이 늘 맑고… 저 미소 보세요. 얼마나 해맑은지.
우리 식구가 다 그래.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건우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교통사고라거나 병이라면 운명이라고 하겠는데, 이건 사고라지만 국가가 죽인 거죠. 그리고 어떻게 한 학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한낱 한시에 죽는 운명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죠. 이번 사고에 김건우만도 세명이에요. 세명의 김건우가 같은 운명이라구요? 그걸 받아들이라구요? 말도 안 되지요. (단원고 김건우 셋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건우 아빠는 애주가예요. 요즘은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온다며 매일 마셔요. 전엔 제가 일주일에 이틀은 못 마시게 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냥 둬요. 저는 울어서라도 풀지만 건우 아빠는 어떻게 푸나 싶어서. 그래서 친구들 만나서 마시고 오라고 해도 안 가요. 자기 마음 아픈데 좋은 척하기도 그렇고. 계속 얼굴 구기고 있기도 그렇다구요. 그래서 거의 집에서만 마셔요. 저는 술을 못 하는데 이야기라도 받아주며 같이 있어요. 전에도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닌데 이 사건 이후로는 나 혼자 두고 나가기 불안해서도 거의 안 나가요. 그동안 친구 거의 세 번 만났나. 그것도 한 친구만. 다른 친구들은 거의 안 만나요. 술 먹고 막 그럴 기분도 아니라고. 오로지 나만 옆에 있으면 된다고. 오로지 나만 지키면 된다고. 오로지 나만 지키면 된다고. “(대책위) 나가서 다른 아버님들과 어울려봐” 그러면 “나가면 뭘해. 나는 말주변도 없고 자기만 있으면 돼” 그러고 안 나가요. “가서 좀 만나. 그걸 내가 원해” 그러면 “그거는 말고” 그래요. 그래도 제가 가족들 투표 이런 거 갈 수 없으니까 거기 갔다오라면 그건 해요. 그러곤 제 곁만 지켜요.
딸(송이)은 이 사건 이후 아이를(건우의 누나에게는 네 살짜리 아들 라익이가 있다) 떼어놓지 못하고 위험한 곳에 절대 보내지 않아요. “엄마도 아무데도 못 가고 있는데 너도 그러면 어떡하냐”라고 제가 딸에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이런 일이 흔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 왜 내 동생한테 일어났어. 많으니까 일어난 거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은 거야, 엄마”라며 불안해해요. 라익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봉고차 타고 체험 학습장에 가는데 그걸 아예 못 보내더라구요. 그 정도로 애가 두려움이 심해요. ‘애가 이렇게 작은데 나 없이 버스 타고 가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라구요. 그러니까 걱정인 거예요. “그래도 애가 재밌어 할 텐데… 보내지?”라고 하면 자기가 다른 데 데려가 재밌게 놀게 한다며 아무데도 안 보내요. 또래하고도 놀고 그래야 하는데. 아이가 이제 네 살이거든요, 이해는 가는데 이게 계속 가면 라익이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없을 테고, 걱정이에요. 일단은 저도 보내지 말라고는 하는데…
아, 우리 아들 잘했어
건우와 마지막 통화도 못했어요. 아마 배터리도 없었을 거예요. 건우 갈 때 여분의 배터리 가져가라고 했는데 안 챙겼더라구요. 그나마도 제가 창밖으로 충전기만 던져줬어요. 저는 아들과 연락이 안 되면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너랑 연락 안 되면 엄마 힘든 거 알지. 꼭 충전해” 하면서 던져줬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충전을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날 새벽 7시엔가 친구랑 카톡은 했대요. 이제 일어나 씻으러 간다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저하곤 그 전날 저녁 10시쯤에 통화했어요. 자기가 림보게임에서 일등 먹어서 제주도 왕복 티켓 탔다고 엄마 제주도여행 보내준다고 하더라구요. 엄마 한 번도 못 가봤으니 가보라고. 그런데 제가 “엄마는 배를 무서워하잖아. 그래서 못 갔잖아. 엄마 무서워서 못 타” 그렇게 말했어요. 아이가 좋아서 아주 들떠 전화했는데 그렇게 말한 것이 못내 걸려요. 나중에 살아온 애한테 들었는데 건우가 효도한다며 너무 좋아했다고. 그런데 그걸 내가 못 간다고 했으니…
건우는 나올 때 입고 있던 옷 외에는 어떤 물건도 찾지 못했어요. 핸드폰도 못 찾아서 나중에 동영상도 다른 친구들 거 복원된 것에서 볼 수 있었지요. 다들 동영상들을 찾아서 보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무섭고 그래서 한동안 못 봤어요. 우리 아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욱 볼 수 없었어요. 건우가 겁이 많았거든요. 무서운 영화 보고 오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가려면 불을 다 켜요. “너 또 왜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 하면 “엄마, 나 무서운 영화 봤잖아” 그래요. 그 생각을 하면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서.
그런데 한번은 예상치도 못하고 영상을 하나 보게 됐어요. 1초 정도 건우 모습이 나와서 “앗, 건우다” 하는데 지나가더라구요. 그때 가슴이 덜컹하고 또 안정이 안 돼서 안 봐야겠다 했는데 뉴스에 계속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같은 반 (박)수현이가 찍은 영상을 받아서 봤지요. 우리 아들이 약간 겁먹은 얼굴로 있더라구요. 그때 심하게 울었더니 아빠는 보지 말라구 하구요. “자기가 힘들면 내가 힘들어. 제발 보지 마. 당신마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 그래서 한동안 안 보다가 또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엔 건우 목소리까지 나오는 거예요. 다른 엄마들은 다 찾아서 보려고 하는데 나는 안 보려 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봤어요.
그 마지막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거기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더라구요.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또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앞에 있는 여학생이 구명조끼가 작아 안 맞으니까 다른 것 가져다 비닐 뜯어서 주고 그래요. 그 모습을 보니까 우리 아들이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또 배가 기울어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었는데 얘기 그 친구를 끌어올리려 했는지 끙끙거리는 소리만 들려요. 그런데 우리 애가 체격이 작아서 못하니까 옆에 친구랑 같이 둘이서 끌어올리는 모습도 있고… 아, 우리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있었구나, 겁에만 질리지 않고 이렇게 행동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영상을 보기 전에는 겁먹은 건우 모습만 떠올렸는데 의연히 있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낫더라구요. 아, 우리 아들 잘했어.
먼저 나온 아이가 하나 있었어요. 그 엄마가 전화가 왔어요. 동영상 봤냐고. 다른 동영상에서 그 엄마 아들을 걱정하며 “준혁이 구명조끼 어떡해” 하는 목소리가 건우 목소리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나는 봤는데도 건우 모습 보느라 목소리를 놓쳤는데 (안)준혁이 엄마는 자기 아들 이름이 나오니까 귀에 꽂혔나봐요. 그러면서 준혁이 걱정을 해줬다고 들어보라고. 준혁이는 먼저 앞으로 나가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부족해서 입지 못했나봐요. 그걸 건우가 걱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우리 아들도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이미 밖으로 나가서 안보이는 아이까지 챙기고 있었구나 싶어서 “우리 아들 너무 장해”라고 이야기해줬어요. 피하고 안 보려던 영상이 오히려 내게 겁에 질려있는 아들 모습을 잊게 해주었어요. 우리 아들이 겁에만 질려 있지 않았다는 거. 물속에 잠기는 순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이 저렇게 했구나 그것만 생각하려해요. 아빠는 그래도 못 보더라구요. 제가 보고 말해줬어요.
다른 애들은 문자도 전화도 했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전화도 문자도 안 했을까 되게 의문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 순간에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안 해도 네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어서 엄마는 참 좋아. 엄마도 서운함을 잊을게. 잘 지내. 자랑스러워, 내 아들” 하고 건우한테 말해줬어요. 어려울 때 남 도와주라는 엄마 말대로 행동했구나, 내 아들.
지금도 사무치게 마음 아픈 게, 생존자 아이들이 전하는 말이 아이들이 서로 밀치지도 않고 구해줄 줄 알고 줄 서서 있었다고 그래요. 그 말 들으니까 애들은 다 자신들이 구해질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 애들이 얼마나 성숙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오라는 정보도 안 주고… 아이들이 어려서, 말 잘 들어서 그랬다는 거 들으면 억울하고 분하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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