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모색 중*
지금이야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대인기이지만, 옛날에는 여기 사육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도시의 큰 동물원이라면 경쟁률이 높아 들어가기 어려웠을 테고, 선후배 상하 관계도 엄격했을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내가 들어가기 5년 전인 쇼와 42년(1967년), 삿포로의 마루야마 동물원, 오비히로의 오비히로 동물원에 이어 홋카이도에서 세 번째로 생긴 신생 동물원이었다. 개원 당시의 사육사는 일곱 명. 거의 대부분이 동물원에서 처음 일하는 사람이었다.
선배들도 젊었고, 동물원에서 일한 경험도 적었다. 누구나 모색중인 상태였다. 역사가 있는 동물원은 경험도 실적도 많고, 그곳 ‘동물원의 철학’도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젊은 사육사가 아이디어를 내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이러저러한 것을 저렇게 하고 싶은데…….” 하고 말하면, “자, 자네가 해 봐.” 하고 제안한 사람이 책임지고 해 보게 하는 곳이었다.
자연환경도 혹독하다. 일본의 가장 북쪽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분지에 있는 까닭에 홋카이도치고는 여름이 덥다. 반면에 겨울 추위는 혹독하다. 영하 20도 이하가 되는 것은 보통이다. 눈은 겨울 내내 8미터 넘게 내린다. 사육사는 그러한 환경에서 날마다 눈을 양쪽으로 밀어내며 동물 우리까지 먹이를 운반한다. 따뜻한 지역에 비해 잔일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자신의 동물원을 지금부터 만들어 간다.’라는 마음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사육사와 동물원이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담당 동물 회의*
담당 동물은 각 동물원마다 제각각 정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대개는 사육 계장이나 동물원장이 면담을 해서 희망을 듣고
“자네는 사자를 맡게.”
“자, 자네는 원숭이.”
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편이라고 들었다. 그렇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좀 다르다. 해마다 한 번, 봄에 동물원을 열기 1주일 전쯤에 ‘담당 동물 회의’가 열린다.
담당 동물 회의에서는, 맨 먼저 사육 계장이 모든 종류의 동물 팻말을 칠판에 붙인다. 사육사는 담당하고 싶은 동물에 손을 든다.
“코끼리…….”
그러면 코끼리를 담당하고 싶은 사람이 손을 든다. 모두 손든 사람을 힐끗 본다. 그때는 그야말로 긴장된다.
“그래, 저 사람이라면 괜찮군.”
사육사들이 말없이 승인한다. 나도 빨리 ‘스타 동물’을 돌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기린…….”
“기린 돌보고 싶습니다!”
내가 손을 든다. 그렇지만
“내가 5년 빨라!”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얼른 지원해도 맨 먼저 거부된다.
사육이 어려운 동물은 제자처럼 배우다가 담당 사육사가 쉬는 날 대신해서 돌본다. 일하는 사이에 시간을 내서, 선배를 도우며 돌보는 법이나 과정을 익히는 것이다. 특히 코끼리나, 고릴라 같은 유인원은 위험하고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자로 일해야 담당으로 승인된다.
동경한다고 해서 그 동물을 담당할 수가 없다. 실수하면 생명을 잃는 위험한 동물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기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단단히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자물쇠 잠그는 것을 잊었네!”
진땀이 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실수를 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몸에 익혔다. 어떤 베테랑이라도 ‘실수’는 반드시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실수했다고 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게으른’ 것은 다른 문제다. 게으름은 겹치고 겹쳐 사고로 이어진다. 나는 딱 한 번 호랑이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문을 연 적이 있다. 호랑이가 우리에 있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전형적인 ‘게으름’이다. 창으로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바깥을 돌아서 운동장에 호랑이가 모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실내 우리의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그것에 게을렀던 것이다. 매너리즘이나 게으름은 언젠가 중대한 실수로 이어진다.
선배에게 달라붙어 일을 배우고, 실수하고 반성하는 등 사육사로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 ‘담당 동물 회의’에서 담당하고 싶은 동물에 당당히 손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의욕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직장이었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었다. 엄격한 의미로 대단히 ‘자유로운 직장’이었다.
*선배를 따라잡기 위해*
사육사가 되고 싶어 하던 즈음은, 그냥 되는대로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렇지만 조금씩 일을 익히자 동시에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어째서 동물원이 있는 걸까.”
“어째서 동물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생명이란…….”
“죽음이란…….”
점점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도 전혀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마음속 깊이 ‘사육사는 어려운 직업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만이 아니라 체력도 정신력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모두 즐겁게 일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알게 되면 괴롭다.
“역시 나한테는 맞지 않아.” 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동물의 매력에 빠지면 이만큼 재미있는 직장이 없다.
동물원에서는 또래의 좋은 라이벌들이 있다. 친구나 연인을 선택할 때 그렇듯이 자신이 희망하는 일도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직장 동료나 상사는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운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그 점에서 나는 무척이나 행운아였다.
1년 위로 마키타 선배가 있었다. 천재적인 사육사다. 나에게 그 사람의 존재는 무척이나 컸다. 동물 지식이 굉장했다. 마키타 선배 집에 놀러 가면 책장에 동물 관련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동물원 일이 끝나면 필사적으로 읽고 공부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벽장 속에도 이불과 함께 책이 쌓여 있었다. 동물 관련 책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으로, 월급의 대부분을 술과 책에 쓰는 것 같았다.
“이봐, 아베. 원숭이는 세상에 몇 종류가 있어? 무슨 과, 무슨 목, 학명은?”
이런 식으로 기습적으로 갑자기 묻는다. 예비지식이 없는 나는 당연히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마키타 선배는 묻기만 하고, 답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늘 애가 탔다.
그렇지만 지식만이 아니라 기술도 굉장한 사람이었다.
“아베, 늑대를 잡자구.”
하고 말하고, 늑대 우리로 들어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셔츠를 왼손에 두르고, 아직 어린 늑대에게 짐짓 달려들었다. 그리고 기죽지 않고, 왼손을 쭉쭉 늑대 주둥이 가운데 집어넣었다.
“이렇게 하면 늑대는 괴로워한다구.”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늑대 머리를 잡아서 상자에 넣는다. 지식과 기술을 갖춘 굉장한 선배였다. 그의 뒤를 쫓아서 ‘사육사란, 동물이란’ 것을 공부했다.
나보다 1년 뒤에 들어온 수의사 고스게도 좋은 라이벌이었다. 나중에는 ‘전우’가 된 녀석이었다. 같은 나이여서 무엇이든지 개의치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생명이란?’ ‘동물원이란?’ 하며 의논도 많이 했다. 마키타 선배, 고스게, 그리고 다른 선배들과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흥미를 갖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한 우리는 진짜로 열심히 공부했다. 수험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공부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게 피와 살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수험 공부도 필요 없지는 않았다. 2년간 수험 공부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공부 방법’이 몸에 붙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엇을 읽으면 좋을까?’ ‘어떤 눈으로 읽으면 될까?’와 같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생각하니 그것도 훌륭한 역할을 했다.
사육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책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동물이나 사육에 관한 일본어 전문서가 드물었다. 전문서는 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가 출판했던 『사육 핸드북』이 유일했다. 거기에는 ‘사자의 수평 도약 거리가 몇 미터니까, 해자는 몇 미터를 파야 한다.’ 같은 것과 ‘원숭이는 이렇게 잡는다.’ 같은 보정법, 그리고 ‘동물원의 사명’ 등이 몇 장으로 나누어 길게 쓰여 있다. 확실히 사육사에게 바이블 같은 기본적인 책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젊은 사육사들은 책으로 공부하고, 실제 현장에서 응용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까지 있던 사람들은 『사육 핸드북』을 갖고 있었지만, 절판되어서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책을 계장에게 빌려서, 한 글자도 남김없이 전부 베껴 복사본을 만들어 공부했다.
지식이 풍부한 마키타 선배를 어떻게 해서 이길까. 아니, 이기지는 못해도 어떻게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동물원에는 전문서도 있고 여러 동물원에서 온 회보도 있지만, 아무도 정리하지 않아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다. 좋은 자료는 많았지만, 그 정보를 거의 살리지 못했다.
‘그래, 동물원 자료실을 만들자. 모르는 게 있으면, 거기서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구나.’
일하는 사이사이에, 사육사 방 가까운 데에 있는 창고를 정리하고, 책장을 만들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이나 회보 등을 분류해서 꽂았다. 이때는 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분류 방법을 생각하고, 거기 맞추어 정리하고, 라벨을 붙여 한 권씩 책꽂이에 꽂았다. 한 달이 지나자 작은 도서실이 생겼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정보가 어떤 식으로 수집되어 있는지 낱낱이 알았다. 동물 도서실은 내게 또 하나의 두뇌가 되었다.
사육사는 동물원을 걷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어째서라는 질문을 받고 멈추게 된다.
“기린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어요?”
“어째서 머리가 길어요?”
“바다표범과 물개는 어떻게 달라요?”
“왜 뱀은 혀를 날름날름하는 거예요?”
아이의 질문은 무섭다. 알고 싶은 기초 지식이나 부끄러워서 묻기 힘든 것도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마키타 선배라면, 질문을 받자마자 대답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베 도서실’이 있다.
“조금만 기다려, 5분만!”
그렇게 말을 남기고, 답을 조사하러 얼른 도서실로 달려간다. 질문한 동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꺼내서 조사하고, 답을 발견하면 곧장 아까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기린은 말이야… ….”
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금붕어는 행복하나요?” 같은 질문도 있어 진땀을 흘렸다. 아이의 질문은 진짜로 무섭다.
지식으로는 마키타 선배를 이길 수 없지만, ‘프로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동물원 사육사가 된 지 5, 6년째 된 해의 일이었을 것이다. 동물과 동물원이 재미있어서, 재미있어서 한눈팔지 않고 몰두했다. 등에 ‘동물의 생명’이라고 써 붙이고 있는 것처럼 몰두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틈엔지 ‘그림’도 흥미 있던 다른 일도 전부 어디론가 휙 날아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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