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테세우스의 진정한 나 찾기 스토리텔링 들여다보기
1 왜 태세우스는 굳이 아버지에게로 가려고 했을까?
이름난 사촌형이 온 사방의 땅과 바다에서 악한들을 물리치는데 자신은 앞 길에 도사린 수난들로부터 꽁무니를 뺀다는 것, 그리고 도망자처럼 바닷길로 여행함으로써 아버지라고 소문난 분을 모욕하고, 친아버지에게는 아들이라는 징표로 겨우 가죽신 한 켤레와 피 묻지 않은 칼 한 자루를 바친다는 것은 끔찍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테세우스는 뛰어난 업적과 공을 세워 고귀한 신분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테세우스는 길을 떠났다. 먼저 힘을 자랑하는 자는 혼내주되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기로 작정하고 떠난 길이었다.
테세우스 신화를 살펴보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이 된 테세우스가 등장합니다.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를 깨닫게 된 테세우스는 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되죠. 그런데 엉뚱맞을 순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왜 테세우스는 굳이 아버지에게로 가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왜 테세우스는 굳이 험난한 육로를 통해 가고자 했을까요? 이미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트로이센의 왕이었던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있는 아테네로 가지 않고, 그냥 트로이센에 머물러 살아도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테네로 떠나는 테세우스는 육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테세우스는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처럼 자신도 영웅이 되고 싶었기에 수많은 괴물과 강도들이 살고 있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육로를 택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어쩌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테세우스의 첫 번째 선택 또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적힌 질문들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어 보입니다. 테세우스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와 ‘헤라클레스’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2 왜 테세우스는 위험한 크레타 섬으로 가고자 했을까?
세 번째 조공을 바칠 때가 왔을 때, 그리고 젊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이 아들들을 데리고 제비뽑기에 응해야 했을 때,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게우스에 대한 새로운 비난이 터져 나왔다. 애통하고 또 원통했던 이들은 아이게우스가 그들에게 불행의 원인을 제공해 놓고도 처벌은 나누어 받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으며, 바깥 나라에서 서자를 데려와서는 왕국을 맡기고 자신들로부터 적자를 빼앗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테세우스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시민들의 운명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제비뽑기와 상관없이 자신도 가겠다고 나섰다. 시민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했고 공익을 위하는 정신을 칭송했다. 아이게우스는 기도를 하고 간청을 한들 아들이 설득을 당하거나 단념하지 않을 것을 알고, 나머지 젊은이들에 대한 제비뽑기를 진행했다.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면 테세우스의 두 번째 모험이 펼쳐지는 부분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크레타 섬으로의 모험은 앞선 모험과는 다른 이유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크레타 섬은 트로이센으로부터 아테네로 오는 위험한 여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곳이죠. 오죽했으면 테세우스마저도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성공해서 돌아오게 되면 배에 흰색 돛을 달겠다고 했을까요. 하지만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결국 테세우스는 크레타 섬으로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테세우스는 위험한 크레타 섬으로 가고자 했을까요? 물론 테세우스 신화에서 그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의 위험에 대한 시민들의 원망, 다시 말해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테세우스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시민들의 운명을 함께 나누고자 함’은 영웅 신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현에 불과하고, 그러한 시민들로부터의 인정과 존중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즉 아테네 시민들로부터의 인정은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이자, 테세우스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번과 동일하게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어 보입니다. 테세우스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의 인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3 왜 테세우스는 자신의 아테네를 조용히 떠났을까?
테세우스가 전처럼 도시를 통치하고 지배하려고 하자 파벌 간의 싸움과 방해 작전이 벌어졌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떠났을 때 자신을 증오했던 이들이 이제 그 증오에 경멸까지 더했음을 깨달았고 많은 사람들이 부패한 것을 보았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치켜세우며 간청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니 돌아온 테세우스가 원하는 바를 강제로 관철하려 하자 여러 민중 지도자와 파벌들이 그를 제압한 것은 당연했다. 마침내 테세우스는 목적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은밀히 에우보이아에 있는, 칼코돈의 아들 엘레페노르에게 보내고 자신은 스퀴로스 섬으로 갔다…… 스퀴로스의 왕인 뤼코메데스는 그의 명성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메네스테우스에게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테세우스의 선조들의 땅을 보여주겠다며 섬의 높은 곳으로 데려가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 죽였다.
테세우스 신화의 마지막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래서 조금 허무한 느낌도 있습니다. 청년기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나와 영웅이자 왕이 된 테세우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다니. 김이 빠지는 결말이긴 분명합니다. ‘평판이 나빠져서 아테네로부터 추방당하고, 결국 높은 언덕으로부터 추락하여 죽게 된다.’ 또한 어떻게 보면 신화 속 영웅의 마지막이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도 어떤 의문이 생깁니다. 수많은 괴물을 퇴치했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아테네의 시민들로부터 영웅이자 왕으로 인정받았던 테세우스가 아테네의 왕권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순순히 인정하면서 쓸쓸히 스퀴로스 섬으로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보면 테세우스 신화는 테세우스라는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과정, 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면서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테세우스가 태어나고 영웅이 되며 다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일생은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삶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이 되고 싶었으며, 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왕이 되고 싶었으며, 시민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고 싶었던 테세우스의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테세우스의 쓸쓸한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테세우스의 쓸쓸한 죽음은 바로 나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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