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뚜기
하필 급식 반찬으로 꼴뚜기조림이 나왔다. 물엿을 잔뜩 넣고 조렸는지 교실 안에 달큰한 냄새가 진동했다. 길이찬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지만 끝끝내 식판에 꼴뚜기를 담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길이찬만 그런 게 아니라 반 아이들이 다 그랬다. 마치 못 볼 걸 본 듯이 꼴뚜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휙휙 지나쳐 가기에 바빴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담임 선생님이 씁씁 슬리퍼를 끌며 다가왔다.
“너희들 꼴뚜기 왜 안 먹어? 딱딱해서 그래? 딱딱한 것도 자꾸 씹어야 턱이 튼튼해지는 거야. 자, 조금씩 받아.”
선생님은 마침 앞에 서 있던 김소정한테 꼴뚜기를 한 국자 덜어 주었다. 하지만 김소정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식판을 잽싸게 잡아 뺐고, 그 바람에 서로 끈적끈적 들러붙은 꼴뚜기 한 덩어리가 교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러자 김소정 뒤에 서 있던 여자애들까지 행여나 꼴뚜기가 제 발에 닿을세라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고, 그 와중에 김소정은 달랑 밥만 담긴 식판을 들고 자기 자리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얘네들이 진짜.”
선생님이 어이없단 얼굴로 애들을 둘러봤다. 몇 번 입술을 달싹대기도 했지만 웬일인지 더 잔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았다. 대신 배식대에 수북하게 쌓인 꼴뚜기를 푹 뜨더니 자기 식판에 옮겨 담았다.
“너희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이 꼴뚜기에는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에도 엄청 좋거든. 에잇, 너희들 편식해서 스트레스 받는데 나라도 실컷 먹어야겠다.”
그러더니 애들 보란 듯이 꼴뚜기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발, 제발…….’
길이찬은 두 손을 꼭 부둥켜 잡고 아무도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짭짭! 짭짭!”
선생님은 기어이 꼴뚜기를 입 속에 넣고 ‘아유, 요 맛있는 걸 왜 안 먹니’ 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와 동시에 5학년 3반의 다섯 번째 꼴뚜기가 되고 말았다. 스트레스 해소는 고사하고 이제부터 스트레스가 열 배쯤 더 쌓일 일만 남은 것이다. 길이찬은 그제야 몇 끼니를 내리 거른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을 퍼먹었다.
꼴뚜기 사건이 시작된 건 한 달쯤 전이다. 속담을 열 개씩 조사해 오는 게 지난 시간 쓰기 숙제였는데, 선생님이 1분단 앞에서부터 한 명씩 일어나 조사해 온 걸 발표하고 그 뜻을 설명하라고 했다. 자기 주변의 일들을 예로 들면 더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맨 앞줄 애가 일어나더니 연예인들은 스캔들 기사가 날 때마다 무조건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했고, 그 뒷자리 애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했다면서 자기는 세뱃돈 받을 때도 혹시 위조지폐일지 몰라서 안쪽에 숨어 있는 세종대왕 얼굴을 꼭 확인한다고 했다. 다음 차례는 길이찬이었다.
“어, 저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를 조사해 왔는데요. 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면…….”
길이찬은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사실 길이찬은 속담의 뜻까지 알아 오는 건 줄 모르고 속담 몇 개만 겨우 베껴 왔다. 그래서 이제라도 얼른 생각해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데 도무지 적당한 예가 떠오르질 않았다.
길이찬이 더 말을 못 하고 안절부절 서 있기만 하자 옆자리 아이들이 핼끔핼끔 길이찬을 올려다봤다. 따따부따 참견쟁이 김소정도 궁금해 죽겠단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길이찬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한동네 사는 김소정의 얼굴을 보자마자 길이찬의 머릿속에 반짝하고 불이 들어왔다.
“아! 생각났어요. 어, 그러니까 김소정네 집이 수유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하는데요. 지난번 과학 시험에서 김소정이 물고기를 물에 뜨게 하는 기관 이름 쓰는 거 틀렸다 그랬거든요. 부레가 답인데 자기는 아가미라고 썼다고, 저한테 분명히 그랬거든요. 어, 그러니까 이건 생선 가게 망신이고, 어, 어, 그러니까 김소정이 꼴뚜기인 거죠.”
잠깐 침묵이 흐르던 교실에 크크크큭 웃음보가 터졌다. 아이들은 “꼴뚜기래, 꼴뚜기!” 배를 움켜쥐고 웃다가 “김소정이 꼴뚜기래!” 책상을 탕탕 치면서 또 웃었다. 조용히 하라고 칠판을 몇 번 두드리던 선생님도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딱 한 사람 김소정만 빼고,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 속이 꼬이고 컥컥 기침이 나올 때까지 “꼴뚜기! 꼴뚜기!” 하면서 한참을 웃어 댔다.
김소정의 새 별명이 꼴뚜기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날부터 남자애들은 김소정을 볼 때마다 “헤이요, 꼴뚜기 아줌마!” 하고 부르거나 “어유, 꼴뚜기 비린내.” 하면서 코를 감싸 쥐었다.
그런데 김소정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도 안 꿀리고 따따따따 쏘아붙였을 김소정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기만 할 뿐 뭐라고 대꾸를 안 하였다. 누구는 그걸 보고 김소정이 부레를 아가미라고 쓴 게 창피해서 그러는 거라 했고, 또 누구는 자기네 집이 생선 가게 하는 걸 애들한테 다 들켜서 저러는 거라 했다. 이 말이 맞네, 저 말이 맞네, 아이들이 편을 갈라 찧고 까부는 동안에도 김소정은 쌕쌕 분한 숨을 내쉬며 책상 밑에서 발을 구르기만 했다.
며칠 뒤 종례 시간이었다. 교실 텔레비전에 알림장 화면을 띄우고 슬슬 돌아다니던 선생님이 박용주 옆에 가만 멈춰 섰다. 그러고는 알림장 공책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몸을 반쯤 숙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용주야, 엄마한테 택배 잘 받았다고 전해 드려.”
순간 박용주의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박용주 엄마는 해마다 담임 선생님한테 밑반찬을 해서 대는 걸로 유명했다. 박용주 담임이 되면 일 년 동안 반찬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선생님들끼리 속닥이는 말을 몇몇 애들이 몰래 듣고 한바탕 소문을 낸 적이 있다. 선생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박용주 머리통을 싹싹 쓰다듬으며 한마디를 더 했다.
“깍두기랑 동치미 다 맛있고, 꼴뚜기젓도 아주 맛나더라.”
박용주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또 꼴뚜기였다. 몇몇 아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리자 다른 분단 애들이 왜 그러느냐고 옆구리를 찔렀다.
“꼴뚜기래, 꼴뚜기.”
키득대던 애들이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고 대답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종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김소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너네도 들었지? 이제부턴 박용주가 꼴뚜기야! 난 꼴뚜기 끝났어!”
난데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다들 어리둥절해하는데, 박용주가 아까보다 더 뻘게진 얼굴로 허둥지둥 가방을 싸 들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길이찬의 짝꿍인 구주호가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길이찬에게 물었다.
“쟤 왜 저래”
“몰라. 자기가 꼴뚜기라서 그런 거 아냐”
“어? 그럼 이제부터 박용주가 진짜 꼴뚜기야”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스멀스멀 교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원래 별로 말이 없던 박용주는 그다음 날부터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아이들은 김소정에게 했던 것처럼 박용주 앞에서 대놓고 꼴뚜기라고 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투닥투닥 장난을 걸거나 지우개 좀 빌려 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박용주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떠들썩하던 교실에 슬그머니 정적이 흘렀고, 그럴 때마다 박용주 근처에는 불편하고 어색한 공기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반면에 김소정은 못 말리는 참견쟁이로 다시 돌아와 밀린 숙제 하듯 웃고 떠들고 재잘거리느라 하루가 아주 짧아 보였다.
구주호같이 눈치 없는 애들이 가끔 “근데 꼴뚜기가 뭐야” 하고 물었지만, 다른 애들이 “그것도 모르냐? 이 꼴뚜기 같은 놈아.” 하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모르냐고 비웃던 아이들도 꼴뚜기가 뭔지 더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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