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것이 없어도 즐거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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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관 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생각을 별로 안 해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치, 경제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저는 사람이 사는 데에는 삶의 문제도 있고 영혼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다루는 게 문화의 문제라고 봅니다. 삶이 있는 시대로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삶의 위기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이 있는 시대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해보면, 참여정부 때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사회 정책을 문화적으로 디자인해본다거나 하는 장치와 기구 같은 것들은 있어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것은 좋지만, 사회를 다시 디자인하는 데 문화적 관점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럴 때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사회 자체를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이런 것이 중요한 문화 의제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인 사회 혁신 문제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 혁신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인데, 이런 기회에 이런 것을 해낼 수 있는 국가적 의지나 장치를 담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 사이가 고립되고 익명화되고 관계가 없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삶의 관계들을 전체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저는 문화예술이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그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대화하고 소통하게 하며 사회 통합적 가치도 있고 창조적 가치도 있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경제 민주화에 걸맞는 수준의 문화적 사회 혁신 플랜 같은 걸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대선에서 문화적인 내용은 장식물처럼 지나가는 말 정도로 언급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현식 말씀하신 문화적 관점은 소통, 네트워킹, 고립된 것들 사이의 순환 같은 것들이 가장 사회에서 필요한 대목이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사회의 여러 영역들 사이에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게 문화라는 말씀이지요. 문화라는 건 어떤 특정 대상이라기보다 과정의 문제이고, 절차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전효관 그렇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요즘 갑자기 서울시의 도시 개발 문제 자문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저는 그걸 하면서 꼭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시민 참여 얘기가 대단한 이슈입니다만, 시민 참여는 좋지만 시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영향력 범위 안에서 어떻게 바꿔볼 것인가를 얘기해야 하는데 ‘서울은 무슨 도시가 돼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는 모습을 보고 과연 시민 참여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여라는 뜻은 좋은데 자기가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뭐가 좋을지, 뭘 하면 좋을지를 두고 이야기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살아가는 생활권, 주거권에 있어서 문화적으로 어떤 장치가 있으면 좋을지, 꼭 공연장이 아니라 텃밭이 될 수도 있고 자전거 공방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되면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의 이야기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도시 계획 같은 것에서도 문화적 관점이랄까요, 삶에서 느끼는 문제들이 언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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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큰 소통, 신나는 마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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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주민 주도라고 해도 서울시 쪽에서 같이 일을 하고 계신데 서울도 지방 자치 단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문화 정책이 지방 분권이란 측면에서 문화 정책을 어떤 식으로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인지, 혹은 현재 서울시의 문화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나 느끼신 것이 있을까요?
유창복 저는 문화예술 전체에 관련된 지식이나 경험이나 식견은 없습니다. 다만 마을 차원에서 제한하여 말씀드리자면, 커뮤니티 아트라고 하는 말이 요즘 몇 년간 많이 회자됐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해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가 바탕이 된 예술 행위와 커니티 아트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티 아트는 커뮤니티의 여러 가지 일상과 이야깃거리들을 예술가가 예술적으로 재현하면서 예술적 메시지를 예술가 나름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재건축 현장의 사진을 찍어서 사진전을 하거나 하는 건 예술가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재개발 현장이라는 커뮤니티의 현실을 재현하면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보고, ‘주민은 어디 갔느냐’ ‘주민은 도구화되고 주민 주체는 사라졌다’는 식으로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은 ‘커뮤니티가 바탕이 된 예술 행위’ 관점에서 하는 질문이지, 커뮤니티 아트의 관점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커뮤니티 아트는 커뮤니티 아트로서 나름의 영역과 역할이 있는 것이고, 주민을 찾는 질문은 ‘커뮤니티가 바탕이 된 예술 행위’를 통해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즉, 저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하고 싶습니다. 또한 community based art라고 하기보다는 community based performance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커뮤니티를 베이스로 한 예술은 장르적 구분이 필요 없고 장르를 넘나들기 때문입니다. 또 예술적 전문성과 아마추어성이 명확하게 준별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를 베이스로 한 예술(행위)이란 커뮤니티에서의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을 단위의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보아야 합니다.
생태계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일상의 예술을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해서 그에게 노래로 마음을 전한다거나, 또 부모들이 아이들 어린이집 송년 잔치를 기획하고 생일 잔치를 기획할 때 다 예술적인 터치가 있습니다. 이런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상적 예술 행위가 발전된 것이 마을 단위의 합동적인 예술 활동입니다. 마을의 문화예술 생태계란 바로 공연, 합창, 퍼포먼스, 연극, 밴드, 대동놀이, 축제 등 마을에 함께 사는 이웃들의 관계망을 토대로 하는 합동적인 예술 활동이 잘 되고 재미나고 또 성숙되게 하는 환경이자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 생태계의 성숙을 좌우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민들의 ‘예술 동아리’이고 또 하나는 ‘마을 축제’, 그리고 ‘공간’입니다. 공간이란 성미산마을의 극장일 수도 있고, 인천시민예술센터의 동아리 연습실 같은 개념일 수도 있고 마을 카페나 작은 마을 도서관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일상의 공간들을 통해 예술적 행위를 일상적으로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일 년에 한 번 축제로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아리라고 하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예술 활동의 그릇으로 피드백되고, 이런 선순환되는 마을 단위 예술 활동의 생태계가 성장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선순환되는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하는 데에 문화예술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책을 보면 순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먼저 공간을 만들겠다고 정부가 지자체에 명령을 내리면 지자체에서 비어있는 아무(?) 공간을 들고 옵니다. 심지어 주민의 접근성조차 고려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무 공간을 가져오면 프로그램은 예술가에게 채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주민을 초대합니다. 마을 문화예술 생태계의 조성과는 정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원래 마을의 문화예술 생태계의 흐름은 주민이 먼저 놀고, 놀다 보니 공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공간이 설계되고 이렇게 공간이 채워지고 공간이 진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문화예술 공간에 관한 정책이 생태계 조성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예를 들면, 북카페와 관련된 것인데, ‘북카페는 도서관, 카페는 찻집’ 이렇게 고정된 시각으로 보고 정책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미 도서관만 보아도 더 이상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다양한 소통의 문화 공간,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특성을 다 분리해서 보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공간을 통합적인 삶의 공간으로 보지 못하고 기능적인 특성만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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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예술도 밑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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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지역 문화와 관련된 재원 문제는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하시는 분들한테 공통적으로 드리는 질문인데, 특히 경제학을 전공하신 입장에서 아까도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대구에서 살고계시고 인천에서도 산 경험이 있으시고 지역에서 경험이 많으신데, 우리 한국 사회라는 거시적인 틀에서 문화 혹은 지역 문화가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실 문화라는 것 자체가 규정을 내리는 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주 좁게는 예술로 생각하는 분들도 여전히 계시고, 가장 넓게는 사람이 하는 모든 게 다 문화라고 넓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진폭이 큽니다. 그래서 결국 지역 문화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가치를 부여한다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경제학 전공자 입장에서 말씀하셔도 좋고요.
홍인기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다 보니 20대의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특히 가슴 깊이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구나! 그런데 자기정체성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자신이 나서 자라고, 생활하고, 느끼고, 성장한 지역 또는 고향입니다. 자신의 지역에 대한 사랑이나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자기정체성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지역이란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준거틀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존에는 한국인이냐 아니냐, 여성이나 남성이냐, 부자냐 가난하냐 등을 통해서 웬만큼 규정이 됐지만, 향후에는 공동체적인 삶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하게 자신의 뿌리나 성장 과정 같은 것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체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거나 스스로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아무리 경제적으로 좋아지고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공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현재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직전에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 무기력 증세에 빠져 있습니다. 지방 대학에 있는 학생들은 더 그렇습니다. 인천에 있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일종의 심리적인 요인, 자존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자기애와 자신감이 결합돼서 나온다는 전문가들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특히 지역에서 문화라는 것은 이중의 질곡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어떻게 보면 근거가 박약한 듯 보이면서도 그 누구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는 요인이 있어, 그런 것들이 자신감과 자기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문화의 전부인 양 생각하게 되면서 자기애가 약화되고, 인천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서울이나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에 있으니까 덜 그렇지만, 다른 지역의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주민들은 거기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겪고 실험해보고 실행해보지 못하면서 자신감에 또 상처를 입게 됩니다.
결국 지역에서의 문화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못 해주면서 경제적 삶의 기반마저 바뀌게 되면 지방 출신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지게 되는 것이죠.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고향을 떠났어도 기회가 허락한다면 고향을 위해서 뭔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는 의식도 약화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은 점차 작아지고 약해지게 되는 것이죠. 방금 말씀하셨듯이 문화가 꼭 예술인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여 우리 나라 또는 지역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자존감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그런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교사나 부모들, 지역 주민들에게도 그런 것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세대 간의 또는 세대 내의 지역적인 자존감이 개인적인 자존감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 그런 쪽으로 문화 예술, 지역 문화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히고 경로를 다양하게 모색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에는 단순히 소득 재분배의 차원을 넘어서고, 소득이 늘어날수록 더 나은 더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긴다는 사치재적인 사고 방식도 뛰어넘어서, 인간이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뿐만이 아니며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가 살아가는 지역을 사랑하는 데에서 근본적으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토불이라는 것이 우리의 먹을거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라든가 지역 예술 같은 것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신토불이는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생존의 정언 명령 같은 것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문제 의식을 가지고 시야를 더 넓히면 조금 더 다양하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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