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구두
나는 서양 미술에 관하여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림은 퍽 좋아한다. 그림에 관한 책도 좋아하고 전시회에도 자주 가는 편이다. 내가 지난 주 목요일 오후 찾아가 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전시회 ‘신화 속으로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어렵게 그리고 짧게 한세상을 살고 간 한 천재 화가의 삶과 예술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반 고흐라는 사람이 서양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화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 사람이 한국에서도 이처럼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내가 광화문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날에는 어찌나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는지 나는 반시간이 지나도록 입장을 못하고 전시실 밖에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뱀처럼 기다랗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 전시회에서 보게 될 그림들에 관하여 미리 추측을 해 보았다. 미술관 입구에서 공짜로 나누어 주는 인쇄물에 나타난 대대적인 선전 문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작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은―예를 들어 그의 「감자 먹는 사람들」 같은 것은― 이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대작들은 이미 오래전에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이나 개인 수집가들에 의하여 수집되어 소장되어 있으며, 이 귀중하고 동시에 엄청난 가격을 가진 그림들을 잠시나마 빌려 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그 유명한 고흐의 그림을 서울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잔잔한 흥분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계기로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고흐의 작품들 가운데 몇몇 이름난 그림들을 이미 본 사람이다. 나는 이번 전시회에 대하여 애써 큰 기대를 갖지 않으려 하면서도 혹시나 고흐의 그 유명한 「구두」 그림이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끼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하나마 실은 아주 큰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고흐가 신었던 것으로 알려진 검은색의 더러워 보이고 다 해어진 구두 한 켤레―구두끈은 제멋대로 풀어지고 헝클어져 있는, 지금 우리 기준으로는 내다 버리기 일보 직전에 있는 듯이 보이는 그 낡은 구두― 그림을 혹시 이번 전시회에서 직접 볼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나는 이 고흐의 「구두」를 오래전에 미술에 관한 책에서 처음 사진으로 보았으며, 그 후 이런저런 미술 서적에서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볼 때마다 점점 더 이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그림의 진품(원본)을 볼 기회는 아직까지 없었다. 나의 기대는 이번에 전시되는 67점의 작품들 모두가 고흐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집, 소장하고 있다는 고흐의 모국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고흐 미술관에서 왔다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구두」 그림이 이 미술관의 소장품이라는 사실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짐작한 대로 전시된 반 고흐의 작품들은 나에게는 두서너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새롭고 생소한 것들이었다. 대부분이 고흐가 처음 화가로 출발하여 어떻게 발전 내지 변화하여 갔는가를 보여주는 초기 작품들이거나 습작들처럼 보였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고흐 그림의 전문가들에게는 이 작품들이 고흐의 미술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나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것, 유명한 것, 그래서 무엇인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보고자 찾아온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였다. 다분히 교육적인 전시회였다.
물론 나는 화가 고흐의 천부적 재능과 독창성 그리고 그의 미술사적 중요성을 책에서 읽어 잘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의 그림들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나의 취향은 아니다. 고흐보다 더 좋아하는 화가들이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그의 지나치다 싶게 강렬한 색채, 특히 노란색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들은 나에게 지극히 불행했던 그의 생애와 항상 불안했던 정신 상태, 그리고 비극적인 삶을 상기시켜 준다. 그의 그림들은 나를 즐겁게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 앞에서 나는 이유 없이 심각해진다.
그런데 그의 「구두」 그림은 그렇지가 않다. 그의 「구두」에서는 다른 그림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사실성과 실용성이 들어 있다. 진지한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에는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 노력, 인내심 등과 같은 긍정적 요소가 들어 있다. 고흐의 이 「구두」 앞에서 나는 흔들렸던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무엇보다 보잘것없는 헌 구두 한 켤레가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역시 대가의 솜씨다.
고흐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그의 해바라기 그림을 연상한다. 그런데 고흐가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구두를 그리는 일에도 각별한 관심과 흥미를 보여 구두를 그린 그림을 여럿 남겼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고흐는 해바라기 그림을 여럿 남겼듯이 구두 그림도 여럿 남겼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다섯인가 여섯이 된다. 고흐가 그의 현실에서 얻을 수 없었던 사랑과 삶의 활력을 해바라기 꽃에서 보았고 또 그것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자기가 매일 신고 벗는 구두에서―특히 다 해진 헌 구두에서― 또 하나의 자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에게 구두는 현실적으로 긴요하고 고마운 물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 고통, 절망, 노력, 인내의 상징이었다. 고흐의 미술에서 구두는 해바라기 꽃과는 이상적인 대조를 이루며, 이상으로 기울기 잘하는 그의 정신을 현실로 바로잡아 주는 대상물이기도 하였다. 나는 혹시나 내가 마음에 둔 그 「구두」 그림이 있나 하고 두루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짐작하였던 대로 그 그림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흐의 생애는 그의 그림 이상으로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다. 고흐는 짧은 일생 동안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였으며, 사회의 관습이나 도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불행한 외톨이였다. 생전 그는 화가로서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살아 있는 동안 팔려 나간 작품은 단 한 점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그에게 그림 재료를 팔았던 사람이 밀린 외상값 때문에 마지못해 사 준 것으로 전하여진다.
고흐는 정서적으로 불안하였으며 때로는 아주 위험할 정도였다. 그는 그가 지극히 좋아하였으며 존경하였던 친구 화가 폴 고갱과 격렬한 말다툼 끝에 흥분한 나머지 면도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였으며(그것도 두 번이나), 이런 사건이 있은 뒤 자신의 이런 미치광이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는 크게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뜻에서 자신의 귀 하나를 면도칼로 잘라 내는 정신 이상자의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결국 고흐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고흐에게는 우리가 바람직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회적 또는 윤리적 덕목이나 행실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오직 그림 그리는 재주와 열정을 타고나 신들린 사람처럼 마음껏 자기의 방식으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다가 자기 방식으로 죽었으며, 그가 남겨 놓은 그림들은 야속하게도 그가 죽고 난 다음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어 현재 그가 누리고 있는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불행한 삶을 살고 간 고흐가 남겨 놓은 작품들을 보고 즐기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다.
전시회를 돌아보는 동안 나는 고흐의 그림들 앞에서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이 작품들 앞에서 즐거워하고 흥겨워한다는 것이 어쩌면 죄송스럽기도 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틀림없는 진리다. 고흐가 죽은 후 백 년이 넘게 지난 오늘 그가 살았던 장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수천 아니 수만 리 떨어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그의 그림을 보겠다고 몰려든 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생전에 그처럼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죽은 후에 얻은 그 명성이란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고 소용이 있단 말인가? 누구를 위한 명성인가? 우리들을 위한 명성인가? 아니면 죽은 고흐를 위한 명성인가? 차라리 고흐도 그림을 그리지 말고(아니, 그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나지 말고) 나처럼 평범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도대체 누가 그에게 화가가 되라고 했나? 고흐가 이 전시회를 알고나 있을까?
화가 고흐의 고뇌와 비극적인 생애를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는 아이들은 그저 부모들과 함께 하루 외출한 것이 기쁘고 즐거워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미술관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2008년 3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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