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령에게 바쳐진 신전
스톡홀름 시립도서관Stockholms stadsbibliotek
| 설계 | 에리크 군나르 아스플룬드Erik Gunnar Asplund
1928년 스웨덴 스톡홀름 Stockholm, Sweden
스웨덴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1928년에 개관하여 책을 좋아하는 주민(1인당 연간 대출 건수 20권)을 위한 시립도서관 서비스의 거점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건물 중심에 있는 대열람실은 삼층을 뚫은 원통형 구조로, 안쪽 벽면 전체를 돌아가며 서가가 자리 잡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건축가 에리크 군나르 아스플룬드Erik Gunnar Asplund 1885~1940는 단순하고 힘 있는 형태에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는 작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북유럽의 근대건축을 이끌었다. 대표작으로 <스칸디아 영화관The Skandia Cinema>(1923), <숲의 화장터Skogskyrkogården>(1915~40) 등이 있다.
백야의 북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불쑥 떠난 여행이었던 탓에 헬싱키와 스톡홀름으로 행선지를 압축하고, 예전에 방문했던 건축과 풍경을 다시 찾아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의 목적지는 헤이키 시렌(Heikki Siren 1918~)이 설계한 헬싱키 공과대학 오타니에미 캠퍼스Otaniemi Technical University의 <오타니에미 예배당>, 스톡홀름에서는 에리크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숲의 화장터>와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이었습니다. 헤이키 시렌과 <숲의 화장터>에 관해서는 언젠가 자세히 쓰기로 하고(하권 참조), 우선은 아스플룬드의 스톡홀름 시립도서관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유럽에는 매력적인 도서관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래된 것으로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출입구 홀의 계단을 디자인한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이 있고, 파리에는 도서관 건축의 양대 걸작으로도 불리는, 앙리 라브루스트(Henri Labrouste 1801~75)가 설계한 <국립도서관Bibliothéque nationale de France>(1868)과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Bibliothéque Sainte-Geneviéve>(1842~50)이 있습니다. 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Dublin에는 ‘롱 룸Long Room’이라 불리는 멋진 도서관이 있으며, 20세기에는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Alvar Aalto1898~1976)가 설계한 훌륭한 도서관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훌륭한 도서관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사이에 그 도서관들이 전부 개가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그들 도서관의 서가는 벽면을 전부 덮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빽빽이 줄지어 있는 책등이 책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을 사방팔방에서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습니다. 도서관 본연의 모습을 생각할 때 저는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방대한 책을 효율적으로 수납하거나 합리적으로 정리 정돈하여 능률적으로 출납하기 위해서는 책장을 글자 川 자처럼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개가식 도서관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배치로는 진정한 의미의 ‘도서관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책과 도서관에 흠모의 정을 품은 저의 의견입니다. 이쯤 되면 폐가식 도서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시는 독자분도 있으실 겁니다. 사실 저는 폐가식 도서관의 폐쇄적이고 거들먹거리는 듯한 부분을 좋아할 수가 없어, 아예 처음부터 그것을 도서관의 범주에 넣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장서 수가 막대하다고 해도 폐가식으로 운영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커다란 도서 창고’ 혹은 ‘도서 자료 창고’일 뿐, 도서관의 ‘관館’이라는 글자를 붙이기에는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요다 구千代田?에 있는 그 훌륭한 시설의 명칭도 ‘국립국회도서관’보다는 ‘국립국회서고’ 정도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어쨌든 그 문제는 이쯤 해두고 우선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의 내부를 차분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과 그 저자에게 바쳐진 이 아름다운 공간이야말로 ‘도서관’이라 불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빛의 우물과도 같은 대열람실의 원통형 공간에 들어서서 약 8미터, 3층 높이의 공간을 360도 돌아가며 가득 채운 책들에 둘러싸이면, 기분이 들떠 말로 발화되지 못한 ‘와!’라는 감탄사가 몸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도서관의 즐거움’입니다. ‘좋은 건축이란 오장육부를 울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온몸을 흔드는 감동의 전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실 벽면을 따라 가득 꽂혀 있는 수많은 책 중 대부분은 제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책’ 그 자체가 갖추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뭔지 모를 힘에 매료되고 맙니다. 책등에서 반사되는 강렬한 아우라를 뜨거운 샤워처럼 온몸에 맞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도취되어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붙박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책등 하나하나는 그 책에 담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며, 일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권 한 권 그 책만의 거대한 신천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으로 제 가슴은 뜨겁게 일렁입니다.
도서관이라면 기본적으로 찾고자 하는 책이 즉각 눈에 잘 띄도록 하는 기능과 편의를 중시해야겠지만 그 전에 먼저 책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풍겨나는 책의 향기를 보관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라든지 도서관은 벽면을 따라 책장이 이어지는 개가식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진을 보며 감동적이었던 그 공간을 떠올리다보니 결국 또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사전 설명 없이 독자 여러분을 갑자기 대열람실로 끌고 들어온 것도 부족해, 독단적인 의견까지 말해버렸으니 말입니다.
다시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스웨덴의 건축가 에리크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설계했습니다. 1924년부터 1927년까지 공사가 이어졌고 1928년에 개관했습니다. 이후 몇 번인가 운영상의 필요에 의해 증개축과 보수 공사가 이어졌지만 아스플룬드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손상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힘 있는 설계 구성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건물 중심에 가로 30미터, 높이 32미터의 거대한 원통형 열람실을 앉히고, 가늘고 긴 네 동의 건물(서쪽 건물은 1932년에 증축)이 바싹 붙어 원통을 감싸고 있습니다. 즉 건물의 외관은 사각형 두부의 정중앙에 동그란 차통茶桶을 올려둔 것 같은 모양으로,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한 기념비적인 형태입니다. 직육면체와 원통이라는 단순 기하학 형태의 조합에서 고대 이집트 신전을 자연스레 떠올렸는데, 가까이서 잘 살펴보니 실로 그러했습니다. 외벽 중간 높이에 띠 형태로 장식되어 있는 이집트풍 부조도 그렇고, 위쪽이 약간 오므라진 장대한 정면 입구의 테두리 문 모양에서도 그렇듯, 이집트 신전 건축이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의 명확한 모티프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도서관에 오는 방문자는 먼저 건물의 위용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계단식 슬로프를 밟으며 도서관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이런 면에서도 어딘가 신전을 참배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습니다. 건물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의 신성한 느낌은 건물에 들어서서도 계속됩니다. 회전문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검은 벽면, 높다란 천장의 현관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검은 벽 사이로 나아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완만한 경사의 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방문객을 더 안쪽에 있는 거대한 원통형 빛의 우물, 즉 대열람실 내부로 유도합니다. 건물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신전과 같은 느낌이지만,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그곳은 마치 무덤의 내부 같습니다. 주 계단을 전부 올라서면 천공을 기준으로 내경 28미터, 내부 높이 24미터의 원통 혹은 양동이를 엎어놓은 듯한 공간에 들어서게 되고, 공간의 분위기에 온몸이 압도된 방문객은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열람실에 완전히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빛의 우물, 그 공간의 훌륭함은 바로 곡면 벽 상부에 매립된 스무 개의 높은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의 효과가 빚어낸 것입니다. 높이 24미터의 뻥 뚫린 공간 중, 아래쪽의 3분의 1은 책장으로 채워져 있고 상부는 하얀 벽토를 잔잔한 물결 모양으로 칠해 마감한 벽으로, 높은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은 이 하얀 곡면 벽에 부드럽게 흐르고 반사되고 확산되며 투명한 빛의 입자가 되어 공간 전체에서 아침 안개처럼 일렁입니다. 즉 이 공간은 책의 정령에게 바쳐진 신전인 동시에 아름답게 제어된 자연광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대규모 열람실만이 아닙니다. 아스플룬드는 세부 디자인에도 대단한 정열을 쏟았고, 여기저기 효과적인 건축적 장식을 꾸며 놓았습니다. 대열람실로 향하는 계단 손잡이에 꼭 맞게 감겨 있는 검은 가죽, 손잡이 끝에 붙어 있는 놋쇠로 된 링 장식, 요소요소에 배치된 조명 기구, 열람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벼루 모양의 식수대와 식수대의 수도꼭지에 달려 있는 인물 조각, 대수롭지 않은 가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상감 장식, 슬며시 고혹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개성적인 의자들…
한껏 차려입은 귀부인을 장식하는 장신구가 그러하듯, 내부의 세심한 디자인이 특유의 효과를 가져와 딱딱해지기 쉬운 건축에 부드럽고 화사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건축 장식을 바라보고 있자니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는 근대 건축은 어딘가 융통성이 부족하고 고지식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기도 합니다. 건축이 기능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다이내믹한 공간 구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역시 공감합니다. 물론 미니멀 아트의 느낌처럼 철과 유리, 콘크리트만으로 지은 간략하고 명쾌한 건축에 감동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요소만이 건축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신비감’, ‘기지’와 ‘유머’, 그리고 ‘꿈’이라고 하는 더없이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막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네요.
“건축은 지성과 이성의 산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건축은 무엇보다 몽상의 산물이어야 한다.” 아스플룬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지 혹은 생각하고 있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지만,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의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다 보면 확신에 가득 찬 아스플룬드의 낮은 중얼거림이 어딘가에서 들려올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몽상의 산물’이라는 말에서 생각났습니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는 잊지 말고 짚어두어야 할, 마음을 들뜨게 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습니다. 1층 어린이 전용 도서 코너의 구석에 있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방입니다. 다소 비밀스럽고 어둑어둑한 이 방은 모퉁이가 둥근 반원의 동굴 모양으로 그 가운데에는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을 위한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의자 뒤쪽 벽에는 안데르센의 동화 <올레 루코이에 Ole-Lukøie>를 소재로 그린 닐스 다르델(Nils Dardel 1888~1943)의 환상적인 프레스코가 있어 방의 동화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켜줍니다. 책 읽어주는 사람 주변을 둘러싸듯, 아이들은 둥그렇게 배치된 벤치에 앉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 작은 방에는 깊은 숲 속 풀밭에서 느껴지는 친밀한 공기가 충만합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집니다. 그러고보니 낭독자를 위한 의자도 이와 같은 연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케이블스티치가 들어간 이 소박한 의자 역시 아스플룬드가 디자인한 것으로, 폭이 보통 의자의 1.5배나 되는 평범치 않은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의자를 둘러싼 아이들에게 거인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자는 의도라고 합니다.
원을 그리며 배치된 벤치에 앉아 텅 빈 낭독자의 의자를 바라보는 동안, 마녀의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가 나타나 뭔가 수상해 보이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이야기책을 읽어준다면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릴까, 이런 상상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방인데도 말입니다. 성우이면서 동화 작가이기도 한 기시다 교코(岸田今日子 1930~2006) 씨에게 미야자와 겐지(宮?賢治 1896~1933)의 동화를 듣는다거나, 혹은 배우 오손 웰스(Orson Welles 1915~85)를 이 세상으로 다시 불러내 피터팬의 모험담을 한 토막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이 도서관에는 어느 순간 사람을 몽상에 빠져들게 하는 기운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3장 전문, 아래는 『내 마음의 건축』下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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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나카무라 요시후미 中村好文, 1948-
건축가. 1972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신지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요시무라 준조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한 후 1981년 ‘레밍하우스’를 설립하여 독립했다. 1987년 <미나타 씨의 집>으로 제1회 요시오카 상을, 1993년 주택 시리즈로 제18회 요시다이소야 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본대학 생산공학부 주거공간디자인 코스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 『주택순례』『집을 생각한다』『평범한 주택 예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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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정영희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강원도 곰배령 자락으로 귀촌하여 산에 기대어 소박하게 살고 있다. 좋은 책을 만나면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도 한다. 『집을 생각한다』『소품으로 꾸미는 나만의 정원』『디자인의 꼼수』『디자인의 꼴』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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