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릭스 포터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영국 잉글랜드 지방 컴브리아 주에 위치한 유명한 풍치 지역이자 국립공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윈더미어를 비롯한 호수가 많고, 주변을 감싸는 산과 계곡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옮긴이) 니어 소리의 힐 탑 농장을 구입한 건 1905년이었다. 화가이며 동화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는 그때부터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이 고장과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레이크 디스트릭트 인근 요지에 4,000에이커의 토지를 보유하고서 개발 위협에 처한 지역 농업문화 보존에 앞장섰다.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은 베아트릭스 포터보다 윌리엄 힐리스 부인으로, 농부이자 양 사육자이며 무엇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이름을 알렸다.
1925년에 보스턴 서점에서 미국 독자들을 위한 짧은 소개를 부탁했을 때 그녀는 다음처럼 무뚝뚝한 글을 써서 보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윌리엄 힐리스 부인입니다. 잉글랜드 북부에 있는 집은 그림책에서 보신 산과 호수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편은 변호사이고 슬하에 자식은 없습니다. 힐리스 부인은 60세입니다. 시골에 살면서 양을 키우느라 몹시 분주하지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봉한 편지에 이렇게 덧붙였다. “누구든 나에 대해 더 이상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된 작은 그림책 시리즈의 첫 작품 『피터 래빗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오래전에 친구의 아들이 아프다기에 그림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피터는 그 아이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시작됐어요… 1900년 즈음엔 작은 그림책들이 유행했던 터라, 피터 정도면 출판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기란 힘들더군요. 수없이 거절당한 끝에, 편지에 썼던 것처럼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어서 소량의 책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피터 래빗은 그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죠. 무슨 매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사랑받고 있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사우스 켄싱턴의 볼턴 가든스에서 부모님과 47년을 살다가 잉글랜드 북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뿌리를 내렸다. 친가와 외가 모두 직물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아 집안은 부유했다. 친가는 더비셔, 외가는 랭커셔 출신이었다. 아버지인 루퍼트 포터는 변호사였지만 실제 변론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교에 관심이 많아서 당대의 저명한 정치인, 이름 높은 작가와 예술가, 사진가 등과 두루 교분을 나눴다.
베아트릭스는 어려서부터 집 안의 세간이나 시골 풍경을 관찰하는 눈이 예리했다. 가족들은 봄에 두 주, 8~9월에는 더 길게 집을 비우고 휴가를 떠났다. 시골의 친척집을 찾을 때마다 베아트릭스는 느낌을 기록하고, 집 안의 공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스케치에 담았으며, 동식물과 화석의 세밀화를 그렸다.
여러 친척집 중에서 베아트릭스의 뇌리에 제일 먼저 각인된 곳은 조부모님이 사셨던 캠필드 플레이스였다. 친할아버지인 에드먼드 포터는 그녀가 태어나던 해에 더비셔 글로솝의 날염공장을 정리하고 하트퍼드셔 햇필드 인근에 있는 이 캠필드 플레이스로 거처를 옮겼다. 베아트릭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했던 이 집은 에드먼드가 구입했을 당시엔 “적당한 크기에 작은 방들로 나눠져 있고 장식이 요란하지 않은 낡은 집이었으며, 바깥에는 붉은 벽돌에 회반죽을 발랐다.” 300에이커의 터에 “산울타리마다 줄지어 선 나무들, 멀리 농가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 여름이면 갓 베어낸 풀 냄새가 진동했다.” 에드먼드 포터는 집의 일부를 노란색 테라코타 벽돌로 크게 증축했다. 하지만 베아트릭스가 매료된 건 증축하지 않은 원래의 공간이었다. “그 집에서는 항상 옛날 공간이 더 좋았다. 새로 지은 곳도 별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중에서도 애정을 듬뿍 쏟은 건 아래층, 모든 집안 살림의 중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곳은 흰 울 양말에 검정 벨벳 슬리퍼를 신고 실내용 모자를 쓴 자그마한 체구의 유모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베아트릭스는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돌화덕과 스프를 끓이는 커다란 솥이 있는 식기용 선반, 신기한 굴뚝의 꼬치돌리개(굴뚝의 상승 기류를 이용해서 아래에 걸린 꼬치를 돌리는 장치-옮긴이), 굴뚝만큼 까만 말썽꾸러기 갈까마귀, 리넨실(쓰지 않는 침구와 세탁물을 수납하는 장소-옮긴이)의 문은 생뚱맞게 벽널 사이로 열리고, 회반죽을 칠한 천장에는 반사된 햇볕이 너울거린다.”
이 집에 올 때마다 베아트릭스는 늘 네 번째 방에서 잠을 자고 놀이방을 들락거렸다. 그녀는 커서도 놀이방의 뻣뻣한 융단(카펫이 헤지는 걸 막기 위해 덮어놓은 천), “낡고 보기 흉해서 치워버린” 흔들의자와 자수함, 침실의 “늘어진 녹색 침대커버”와 속이 빈 놋기둥(나중에 그 속에 들어간 애완용 쥐를 꺼내기 위해 분리한), “의자들과 거울, 여덟 점의 그림, 표범에 올라탄 아리아드네의 석고상에 유리를 씌워 벽난로 선반에 올려놓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침실 가구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각별했던 나머지 1891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캠필드 플레이스를 처분했을 때 그것들을 물려받았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그 집에서의 행복했던 순간이 새삼 사무친 그녀는 에스더라는 가상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캠필드 플레이스의 추억」이라는 짧은 글을 쓰기도 했다. 캠필드는 베아트릭스에게 블레이크스무어였다. 에세이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찰스 램이 자기 할머니의 시골집 블레이크스웨어(글에서는 블레이크스무어라고 칭한)에 대해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한 것처럼, 캠필드는 베아트릭스에게 오래된 공간들, 잘 가꾼 시골 생활에 대한 강렬한 동경, “완벽한 일체”가 주는 충만함과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 짧은 에세이에서 베아트릭스는 캠필드 플레이스를 알게 된 후 자신의 예술적인 인식이 예리해졌음을 탄식조로 토로했다. “현명해지는 대가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잃는 것일까!” 겨우 스물넷이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놀이방장식의 단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 마냥 감탄했던 높은 산의 그림들도 이젠 색을 덕지덕지 칠한 서투른 그림으로 변했다. “땅거미 질 무렵이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했던” 석고상들은 부지런한 가정부가 아무리 열심히 쓸고 닦아도 더 이상 우아한 기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월터 롤리 경(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시인-옮긴이)은 막대기 같고, 온수관 위쪽 구석으로 바위에 기댄 여인상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길쭉하다. 예전엔 우아함의 표본으로 여겼건만.”
외할머니 제인 리치의 집은 스탤리브리지에서 멀지 않은 페나인 산자락의 고스홀이었다. 친가와 외가는 모두 맨체스터 인근 출신이며, 면화 사업으로 부를 일궜다. 그녀도 “우리 집의 혈통, 관심사와 즐거움의 뿌리는 북쪽 지방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스홀에는 캠필드 플레이스만큼 자주 가지 않았다. 열여덟 살이던 1884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도착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즐거운 추억이 어려 있는데, 그 느낌이 달라질까 봐 겁이 난다. 이미 나는 이곳보다 더 긴 복도와 더 높은 홀을 경험했다… 밤에 자러 가면서 다정하게 토닥였던 복도는 더 이상 어두침침한 신비로운 곳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왔던 게 6~7년 전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현관 앞 흙먼지떨이의 무늬, 낡은 축음기의 그림, 흔들 목마를 탈 때 나던 소리, 계단 난간의 조각장식, 옥수수 냄새, 곡물 통 속으로 손을 집어넣을 때의 느낌, 칠면조가 울고 부채꼬리공작비둘기가 날갯짓 하던 소리도. 이런 느낌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바람일 뿐이었다. “문을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괜히 왔다는 후회였다. 홀이 얼마나 작아졌던지. 게다가 흙먼지떨이도 바뀌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예전의 느낌이 살아났다. 그곳은 여전했고, 잔잔한 빛과 냄새도 그대로였다. 집집마다 냄새가 독특한 건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어떤 곳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냄새, 그리고 빛의 양이다.” 베아트릭스는 엄마와 해리엇 이모를 도와 집을 치우고 유품을 정리했다. “그 광경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이 남은 물건들에 담겨 있을지 모르는 의미를 등한시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벽장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결혼예복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액면 가치가 없다고 해서 낡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몇 년 후 해리엇과 그녀의 남편 프레드 버튼은 맨체스터에서 웨일스 북부의 덴비로 이사를 갔다. 처크 캐슬의 미들턴과 같은 가문의 소유였던 유서 깊은 그 집을 베아트릭스가 처음 찾은 건 1895년이었다. 목재로 틀을 세운 원래의 부분은 역사가 15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세기 초에 증축한 전면은 “안타깝게도 엉터리 고딕풍으로 얼굴만 바꿨다.” 그웨이니노그라고 불린 이 집은 “부족한 줄 모르고 사치를 부리다가… 부엌에서 사는 신세로 전락”한 미들턴 가문으로부터 프레드 버튼의 형이 구입한 것이었다.
캠필드 플레이스와 고스홀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추억은 마냥 행복했지만 그웨이니노그를 방문할 즈음에는 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베아트릭스는 이 집의 “흠 잡을 데 없는 취향”에 흠뻑 빠졌다. 프레드는 면화 사업에서 모은 돈으로 집을 다듬고 버튼 가문의 문장(면화를 쥐고 있는 손)을 장식했다. 해리엇 부부가 처음 도착했을 때에도 섬세한 벽난로 선반과 패널을 댄 방에 적잖은 참나무 가구가 있었는데, 프레드는 거기에 “너무나 환상적인 치펀데일(18세기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그가 만든 가구, 또는 그런 스타일의 가구를 통칭한다-옮긴이) 마호가니 컬렉션”을 추가했다. 베아트릭스는 그곳을 처음 본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배색이 탁월하며, 셰러턴(영국 가구 디자이너 이름에서 유래된 셰러턴 스타일의 가구를 뜻한다-옮긴이)이 이렇게 가볍지 않고 우아한 곳은 본 적이 없다.” 베아트릭스는 이후 15년 동안 그웨이니노그를 자주 드나들며 집 안팎의 풍경을 수많은 스케치와 수채화에 담아냈지만, 웅장한 가구들로 꾸민 거실은 그리지 않았다. 캠필드 플레이스 때처럼 이 집에서도 오래된 곳을 더 좋아해서 낡은 참나무가 있는 홀을 자주 스케치했다.
태어나서 30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다닌 여행도 집과 공간의 형태와 배치에 대한 베아트릭스의 관심에 자양분이 되었다. 베아트릭스의 가족은 해마다 봄맞이 여행을 갔는데, 주로 서부 지역의 호텔에 짐을 풀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름에는 시골의 대저택을 빌려 길게는 석 달까지 머물렀다. 열여덟 살까지는 스코틀랜드를 자주 찾았고, 그중 열한 번이 던켈드의 달가이즈 지역이었다. 그러다 1882년부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여러 번의 여름을 보냈다. 처음엔 윈더미어의 레이 캐슬을 빌렸고, 나중에는 더웬트워터의 링홈 등지에서 지냈다.
베아트릭스는 여행할 때마다 부지런히 스케치를 했다. 서섹스 해안의 윈첼시에 있는 낡은 집들, 레이크 디스트릭트 스켈길에 있는 집, 테이사이드 달가이즈에서 본 제분소, 하트퍼드셔 햇필드 인근에서 머물렀던 베드웰 로지 상가의 통로. 그녀는 임의적으로 배치한 것 같은 농가의 건물들과 커다란 저택 뒤로 복잡하게 얽힌 통로의 높낮이, 문으로 스며드는 빛줄기와 활활 타오르는 난롯불의 따사로운 광채에 매료되었고, 그런 것들로 스케치북을 가득 채웠다.
열여덟 살 때는 여행길에 부모님을 따라 “가구와 도자기, 온갖 진기한 물건들로 빼곡한” 옥스퍼드의 골동품 가게에 들렀다. 스무 점에서 삼십 점쯤 되는 그곳의 참나무 가구 중엔 그녀가 유난히 좋아했던 레이 캐슬의 것과 비슷한 찬장이 있었다. 그녀는 골동품 가게에서 돌아온 후에 이런 바람을 토로했다. “언젠가 내 집이 생긴다면 고가구를 갖고 싶다. 식당엔 참나무, 응접실엔 치펀데일. 현대식 가구만큼 비싸지 않으면서, 비교가 안 될 만큼 멋지고 만듦새가 뛰어나다.”
가족 휴가는 평생토록 이어진 시골생활에 대한 애정과 이해의 토대가 되었다. 달가이즈를 떠날 때가 다가오자 그녀는 그 풍경 속에서 풍성하게 자라난 낭만적인 상상력을 돌이켜봤다. “숲에는 신비롭고 선한 종족이 산다… 이 지역의 미신을 은근히 받아들이면서 내 속의 환상을 직시하면 그 존재는 실재가 된다. 나는 그런 별천지에서 살았다.” 8월의 둥근 보름달이 언덕 위로 떠오르면 “정령들이 잔디밭으로 나와 춤을 추고, 으스스 소름이 돋는 쏙독새 울음소리, 부엉이 소리, 박쥐가 날갯짓하는 소리 너머, 저 멀리서 희미하게, 서서히 다가오는 여름밤의 산들바람 소리는 별세계의 음악이었다.”
(제1장 부분)
--------
저자 소개
수전 데니어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잉글랜드 북부의 역사 유적 및 건축물을 관리하고 있다. 힐 탑의 내부 복원에 깊이 관여했으며, 혹스헤드의 베아트릭스 포터 갤러리를 꾸미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전통적인 건물과 삶』, 『베아트릭스 포터와 그녀의 농장』을 비롯해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고유한 건축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역자 소개
강수정
대학을 졸업한 뒤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여자라는 종족』, 『나의 엄마, 타샤 튜더』, 『거꾸로 가는 나라들』,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아버지가 없는 나라』, 『신도 버린 사람들』, 『앗 뜨거워』, 『독서일기』, 『우리 시대의 화가』 등이 있다.
-------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