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뉴욕에 그대로 눌러 앉았어야 했다. 당신네들이 만나고 결혼하고 나를 낳았던 바로 그 도시에. 하지만 두 사람은 내가 네 살, 남동생 말라키가 세 살, 쌍둥이 올리버와 유진이 첫 돌이 채 안 되고, 여동생 마거릿은 죽고 없을 때 아일랜드로 되돌아갔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내 어린 시절은 비참했다. 행복한 어린 시절 따윈 어차피 별 재미도 없잖은가. 보통의 불행한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고약한 게 아일랜드인의 어린 시절이라면, 그보다 더 고약한 게 가톨릭계 아일랜드인의 어린 시절이다.
어릴 적 고생을 떠벌리며 우는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나의 아일랜드 판 고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거다. 가난, 무능한데다 수다스럽고 술에 찌든 아버지, 삶에 좌절하여 난롯가에 앉아 탄식하던 신앙 깊은 어머니, 거만한 신부, 윽박지르는 선생, 영국인들과 팔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들이 우리에게 행한 끔찍한 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늘 젖어 있었다.
대서양 바깥에 모여든 거대한 비구름들은 느릿느릿 섀넌 강 상류까지 밀고 올라오다가 마침내 리머릭에 자리 잡았다. 도시는 예수할례축일(매해 1월 1일)부터 새해 전날까지 비로 축축하게 젖었고, 잔기침 소리, 기관지에서 갈그랑갈그랑 가래 끓는 소리, 천식환자들의 쌔근대는 숨소리, 폐병환자들의 목쉰 소리가 뒤섞인 불협화음은 그칠 날이 없었다. 코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고, 폐는 세균이 득실대는 스펀지였다. 때문에 오만가지 특효약들이 생겨났다. 후추를 넣어 거무스름해진 우유에 양파를 끓여서 코감기를 달랬고, 막힌 코에는 밀가루에 쐐기풀을 섞어 걸쭉하게 끓인 뒤 그것을 천조각으로 싸서 가슴에 척 붙이고 찜질을 했다.
10월부터 4월까지 리머릭의 벽들은 습기로 윤이 났다. 옷이 마를 날이 없었다. 트위드나 모직 코트는 알 수 없는 생명체를 품고 있다가 이따금 정체불명의 싹을 틔우곤 했다. 선술집의 축축한 몸과 옷에서는 증기가 피어오르고, 엎지른 흑맥주와 위스키의 김빠진 냄새가 뒤섞였으며, 거기에 수많은 사내들이 일주일치 봉급을 토해놓은 옥외 변소의 오줌 지린내가 담배 연기와 함께 더해졌다.
비는 우리를 성당으로 몰고 갔다. 우리의 피난처이자 힘이며, 리머릭에서 유일하게 바싹 마른 장소인 그곳으로. 미사와 성체강복, 구일기도 때면 거대한 습기 덩어리인 우리는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신부의 단조로운 저음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고, 그사이 우리 옷에서는 또다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향과 꽃, 촛불의 향긋한 냄새와 뒤섞였다.
리머릭은 신앙심이 깊은 걸로 명성을 얻은 곳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말라키 매코트는 앤트림 주州 툼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버지도 거칠게 자랐고, 영국인이나 아일랜드인, 혹은 양쪽 모두와 껄끄러운 사이였다. 구舊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는 반半 군사조직)에 입단해서 싸우던 아버지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끝내는 머리에 현상금이 걸린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어릴 적 나는 머리가 성기고 이가 다 빠진 아버지를 보면서 누군가가 그런 머리통에 돈을 내려고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열세 살 때, 아버지의 어머니는 비밀 하나를 알려주었다. 불쌍한 네 아버지는 꼬맹이 때 머리를 거꾸로 해서 떨어졌어. 사고였지. 그 뒤부터 영 이전 같지가 않아. 그러니까 너는 거꾸로 떨어진 사람들은 약간 이상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라.
거꾸로 처박혔던 머리에 걸린 현상금 때문에 아버지는 골웨이에서 출발하는 화물선을 타고 아일랜드를 떠나야만 했다. 금주령이 한창이던 뉴욕에 온 아버지는 자기가 죽어서 죗값을 치르고자 지옥에 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밀주密酒집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미국과 영국을 떠돌며 술을 푸던 아버지는 말년이 되자 평온하게 쉬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벨파스트로 돌아갔는데, 가는 곳마다 온통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저 집구석들 몽땅 염병에나 걸려라, 내뱉고는 앤더슨타운의 부인네들과 할 일 없이 수다를 떨었다. 부인네들은 맛난 음식으로 유혹했지만 아버지는 죄다 사양하고 차만 들이켰다. 더이상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에는 손도 안 댔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갈 때가 된 아버지는 왕립 빅토리아 병원에서 저세상으로 갔다.
결혼 전에 안젤라 시언이라 불리던 나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 오빠인 토머스와 패트릭, 언니 애그니스와 함께 리머릭의 빈민촌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태어나기 몇 주 전에 호주로 도망가버려 평생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외할아버지는 리머릭의 선술집에서 포터주(흑맥주의 일종)를 마시고 애창곡을 부르며 비틀비틀 골목길을 내려온다.
누가 머피 부인의 차우더(조개나 생선, 야채로 끓인 진한 수프)에 작업복 바지를 던져넣었나
아무도 대답이 없자 그는 더 크게 외쳤다네
아일랜드 놈의 못된 장난이야. 믹(아일랜드계 남자를 싸잡아 부르는 경멸의 말)따윈 내가 흠씬 두들겨 패줄 테다
머피네 차우더에 작업복 바지를 던져넣은 놈
흥이 양껏 오른 외할아버지는 한 살배기 아들 패트릭과 잠깐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요 녀석. 제 아빌 좋아한다니까. 공중으로 던져주니 까르르 웃네. 올라간다, 귀여운 패디, 올라간다. 아이는 깜깜한, 칠흑 같은 허공 속으로 올라간다. 아아, 예수님, 그는 그만 내려오는 아이를 놓친다.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진 가엾은 꼬마 패트릭은 꾸르륵 하는 소리를 내더니 훌쩍이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뱃속에 어머니를 담고 있어 몸이 무거운 외할머니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외할머니는 바닥에서 패트릭을 간신히 안아올리고 한참을 흐느끼다가 외할아버지에게 몸을 돌린다. 당장 나가! 나가! 여기 일 분이라도 더 있으면 도끼로 찍어 죽일 거야, 이 술주정뱅이 미친놈아! 예수님께 맹세하건데, 아주 작살을 내겠어. 당장 나가!
외할아버지는 사내답게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입을 뗀다. 난 여기, 내 집에 있을 권리가 있어.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한테 달려든다. 품속엔 다친 아이를 안고 뱃속엔 꿈틀거리는 건강한 아이를 품은 외할머니가 미친 듯이 덤벼들자 외할아버지는 맥을 못 추고 비틀비틀 집 밖으로 나와 골목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길로 내처 호주의 멜버른까지 가버린다.
그 뒤로 어린 삼촌 팻은 영 예전 같지 않았다. 자라면서 머리가 조금 모자랐고 왼쪽 다리는 이쪽으로, 몸은 저쪽으로 따로 노는 사람이 되었다. 팻 삼촌은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전혀 배우지 못했지만, 하느님은 그에게 다른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는 여덟 살에 신문 파는 일을 시작했는데 재무장관보다 셈을 더 잘했다. 왜 그가 앱 시언Ab Sheehan, 즉 수도원장으로 불리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리머릭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내 어머니의 고생은 태어난 그날 밤부터 시작됐다. 저기, 외할머니가 침대에 누워 산통으로 신음하면서 임산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제라르도 마젤라에게 기도하고 있다. 새해 전날 밤, 일명 간호사로 불리는 화려하게 옷을 빼입은 산파, 오할로란 부인도 와 있다. 이 여자는 아이를 빨리 받아내고 곧바로 새해 파티니 축전이니 하는 자리로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부인이 외할머니한테 말한다. 힘줘, 제발, 힘줘. 예수님, 성모님, 성 요셉님, 당신들이 서두르시지 않으면 이 아인 새해나 돼서야 태어나요. 그러면 이렇게 새 옷을 빼입은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성 제라르도 마젤라 따윈 신경 꺼. 아무리 성인이래도 남자가 이런 때 여자한테 뭘 해줄 수 있겠어. 성 제라르도 마젤라? 웃기고 있네.
외할머니는 난산의 수호성인인 성녀 앤에게로 기도를 돌린다. 하지만 아이는 나오려 하지 않는다. 오할로란이 외할머니한테 말한다.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성인 성 유다께 기도해봐.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성인 성 유다님, 도와주세요. 전 지금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외할머니가 끙 하고 힘을 주니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 머리만 나왔네, 오 어머니. 자정 종소리가 울린다. 새해다. 리머릭 도시 전체가 휘파람 소리, 나팔 소리, 사이렌 소리, 브라스 밴드 소리,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 소리로 터질 듯하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올드랭사인>이 울려퍼지고 성당들이 사방에서 안젤루스의 종(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전한 데 감사해 아침·낮·저녁에 행하는 기도를 알리는 종)을 울릴 때, 새 옷을 선보일 기회를 놓쳐버린 오할로란 부인은 훌쩍거린다. 저 녀석은 아직 저 안에 있고 나는 쫙 빼입고 여기 있고. 나와라, 아이야, 안 나올래? 외할머니가 크게 한 번 힘을 주자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칼에 슬픈 푸른 눈을 한 어여쁜 여자아이가.
오할로란 부인이 말한다. 아, 하늘에 계신 주님, 이 아이는 양다리를 걸치고 태어난 아이입니다. 머리는 새해에, 엉덩이는 지난해에 태어났으니까요. 아니 머리가 지난해고 엉덩이가 새해였던가? 자네, 교황님께 편지를 써야겠어, 애기 엄마. 이애가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 정하려면 말이야. 내 옷은 아껴뒀다가 내년에 입어야겠네.
그리고 아이는 자정에, 새해에, 태어난 시각에 안젤루스의 종이 울렸다 해서, 그리고 어쨌든 작은 천사니까 안젤라라고 이름 지었다.
비록 약하고 늙고 머리가 희끗희끗해도
어릴 때처럼 어머니를 사랑하라
흙 속에 묻히실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아일랜드 민요 <어머니의 사랑은 축복> 중 일부)
안젤라는 성 빈센트 드 폴에서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배우다가 9학년에 학업을 작파했다. 그후에 가정부, 식모, 작은 흰색 모자를 둘러쓰고 문을 열어주는 하녀가 되려고 애써봤지만 그런 일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익히지 못해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만 들어야 했다. 무슨 애가 요령이 없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니까. 차라리 오만가지 쓸모없는 것들을 받아주는 미국에나 가지 그러니? 뱃삯은 주마.
안젤라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대공황 시절의 추수감사절 첫날이었다. 그녀는 댄 매커도리와 그의 아내 미니가 연 브루클린 클래슨 가街의 파티에서 말라키를 만났다. 말라키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도 그가 좋았다. 그는 트럭을 훔친 죄로 석 달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왔기 때문에 풀이 죽은 꼴을 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친구 존 매클레인은 밀주집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믿었다. 트럭 안에 포크앤드빈(돼지고기에 콩을 넣고 끓인 요리) 깡통이 천정까지 가득 쌓여 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 다 운전할 줄도 몰랐다. 트럭이 머틀 가街를 따라 기우뚱기우뚱 덜컹거리며 가는 꼴을 발견한 경찰이 차를 세웠다. 경관은 트럭을 샅샅이 살펴보고는 포크앤드빈도 아니고 단추 상자들만 잔뜩 실린 트럭을 뭣 하러 훔치려 했을까 의아해했다.
안젤라는 이 풀죽은 모습에 끌렸고, 말라키는 석 달의 수감생활 끝에 외로워하던 터라, 당연히 ‘무릎 떨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릎 떨림은 남자와 여자가 발가락에 힘을 주고 벽에 기대서서 하는 행위인데 서로 너무 힘을 줘서 흥분 상태에 이르면 무릎이 떨리게 되기에 붙은 말이다.
이 무릎 떨림 덕에 안젤라의 몸은 흥미로운 상태에 빠졌고, 당연히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안젤라에겐 맥나마라 자매라는 사촌 언니들이 있었는데, 이들 자매 딜리어와 필로미나는 메이요 출신의 지미 포춘과 브루클린 토박이인 토미 플린과 각각 결혼한 사이였다.
딜리어와 필로미나는 왕가슴에 한성질 하는 덩치 큰 여자들이었다. 이들이 브루클린 인도를 활보하면 그네들보다 왜소한 사람들은 길을 비켰고 모두 경의를 표했다. 자매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았으며, ‘유일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니케아신경에 나오는 교회에 대한 고백)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어떤 의혹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시집도 안 간 안젤라가 흥미로운 상태에 빠질 권리는 없기 때문에 조치를 취할 참이었다.
자매는 행동을 개시했다. 그네들은 지미와 토미를 대동하고 애틀랜틱 가街의 밀주집에 들이닥쳤다. 말라키가 일을 다닐 땐, 봉급이 나오는 금요일에 그곳으로 가면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밀주집 종업원 조이 카차마니는 자매들을 가게에 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 코가 면상에, 저 문짝이 경첩에 그대로 붙어 있길 바란다면 문을 열어주는 게 좋다, 왜냐면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필로미나가 윽박지르자 그가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어, 이 아일랜드 것들아. 오, 주여! 골칫거리야, 골칫거리.
바 구석에 앉아 있던 말라키는 사색이 되어 왕가슴 여자들에게 병약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술을 권했다. 자매는 미소도 무시하고 권주勸酒도 물리쳤다. 딜리어가 말했다. 네가 북아일랜드 어느 족속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필로미나가 말했다. 네 식솔 중에 장로교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은 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네가 우리 사촌동생한테 한 짓이 설명이 되지.
지미가 끼어들었다. 아, 아녀, 아, 아녀. 저 녀석 가족 중에 장로교도가 있대두 그건 저놈 잘못이 아니여.
그러자 딜리어가 받아쳤다. 당신은 입 다물어.
토미도 거들어야 했다. 네놈이 저 불쌍하고 가련한 계집애한테 한 짓은 민족의 수치야. 부끄러운 줄 알라고.
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말라키가 대답했다. 정말로요.
필로미나가 말했다. 아무도 너한테 안 물어봤어. 네 녀석은 그 허튼소리로 이미 충분히 몹쓸 짓을 했으니까 입 닥치고 있어.
딜리어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입 닥치고 있어.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네놈이 우리 불쌍한 사촌동생 안젤라 시언을 위해 옳은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야.
말라키가 말했다. 아, 그럼요, 그럼요. 옳은 일은 옳은 일이죠.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는 동안 여러분 모두에게 술 한잔 사고 싶은데요.
토미가 말했다. 그 술 받아서 네 녀석 똥구멍에나 집어넣어.
필로미나가 말했다. 우리 어린 사촌동생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네놈이 걔한테 들이댄 거야. 우리 리머릭에는 말이지, 도덕이란 게 있다고, 도덕이. 우리 리머릭 사람은 산토끼처럼 무턱대고 들이대는 앤트림 출신하곤 달라. 장로교 소굴인 앤트림 말이야.
지미가 말했다. 장로교 같아 보이진 않는데.
당신은 입 다물어. 딜리어가 말했다.
필로미나가 말했다. 우리가 또 알아본 건 네 녀석이 별종이라는 거야.
말라키가 씩 웃었다. 제가요?
딜리어가 말했다. 그렇다니깐. 너를 처음 봤을 때 내 눈에 띈 게 바로 그 요상한 언행이야. 그 때문에 아주 기분이 별로란 말이지.
장로교 같은 저 비열한 썩소가 바로 그래. 필로미나가 말했다.
말라키가 말했다. 아, 그건 제 이빨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이빨이 있든 없든, 별종이든 아니든, 넌 그애랑 결혼하는 거야. 식장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는 거라고. 토미가 말했다.
말라키가 말했다. 이런, 다들 알다시피 전 결혼 계획이 없는데요. 일자리도 통 없으니 식구를 부양하지도 못할 테고…
결혼은 이제 기정사실이야. 딜리어가 말했다.
식장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는 거지. 지미가 말했다.
당신은 입 다물어. 딜리어가 말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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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프랭크 매코트 (Frank McCourt, 1930-2009)
아일랜드계 미국인 교육자, 에세이스트. 나이 예순여섯 살에 펴낸 첫 책 『안젤라의 재』로 퓰리처 상, 전미 도서 비평가상, LA 타임스 도서상, 애비 어워드 등을 휩쓸고,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피플 매거진>, <베니티 페어> ‘올해의 책’에 선정된 작가. 대공황이 한참이던 미국 브루클린에서 1930년 8월 19일,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말라키 매코트와 안젤라 시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 『안젤라의 재』는 이 시절의 경험을 아일랜드인 특유의 유머와 가슴 찡한 정서로 녹여낸 작품이다. 이후 발표한, 뉴욕에서의 이민 생활과 참전 경험을 담은 『그렇군요』와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다감한 교사로서의 체험을 그린 『선생 노릇』 역시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7년 마지막 작품인 동화 『안젤라와 아기 예수』를 발표하고, 2009년 맨해튼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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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루시아
학부,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후 수년간 번역가로 활동해왔으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불평 없이 살아보기』, 『매기와 초콜릿 전쟁』, 『그렇군요』(문학동네 근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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