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의 가정부가 매일 아침 여덟시 경에 그의 아침식사를 가져오는데, 그날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K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베개를 베고 누운 채 고개를 돌려 길 건너편에 사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노파는 평소와는 매우 다른 호기심을 보이며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기분이 언짢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해서 벨을 눌렀다. 즉시 노크 소리가 나더니, 이 집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호리호리하면서도 건장한 체격이었고 몸에 꼭 맞는 검은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재킷은 여행복처럼 여기저기 주름이 잡혀 있고 다양한 주머니와 버클과 단추에 벨트까지 달린 것이, 어떤 용도로 입는 옷인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매우 실용적으로 보였다. “누구시죠?” K는 이렇게 물으면서 얼른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았다. 남자는 자신의 출현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이렇게 되물었다 “벨을 울렸소?” “안나에게 아침식사를 가져오라고 울린 것이오.” K는 이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문 채 상대방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도대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남자는 그의 시선을 잠시 받아주는가 싶더니 이내 외면하고는 문 쪽으로 몸을 향했다. 그러고는 문을 조금 열고 문 바로 뒤에 있는 것이 분명한 누군가에게 말했다. “안나가 아침식사를 가져다줬으면 한다는군.” 그러자 옆방에서 잠깐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몇 사람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낯선 남자는 그 웃음소리를 듣고서 무슨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마치 뭔가를 전해주기라도 하는 투로 K에게 말했다. “그건 안 될 것 같소.” “그것 참 별 일이군요.” K는 이렇게 말하고는 침대에서 뛰쳐나와 서둘러 바지를 입었다. “옆방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와 있는지 봐야겠소. 그리고 이런 소란에 대해 그루바흐 부인이 뭐라고 해명하는지도 좀 들어봐야겠소.” 그러면서 그는 곧 이렇게 드러내놓고 소리 내어 말하지 말았어야 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이 이 낯선 남자의 감시하에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렸다는 걸 깨달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낯선 남자는 그의 말을 그런 식으로 알아들었다. 남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 있는 편이 낫지 않겠소?” “난 여기에 있고 싶지도 않고, 또 당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한 당신 말은 듣고 싶지도 않소.” “나는 좋은 뜻에서 한 말이오.”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진해서 문을 열었다. K는 의도했던 것보다는 천천히 옆방으로 들어갔는데, 첫눈에 보기에는 전날 저녁과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보였다. 그곳은 그루바흐 부인의 거실이었다. 가구, 침대보, 도자기, 사진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거실은 어쩐지 평소보다 좀 더 넓어 보였는데, 그 점을 금방 눈치 채지 못한 것은 그곳에 웬 낯선 남자가 앉아 있다는 중요한 변화 때문이었다. 남자는 열린 창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당신 방에 그대로 있었어야 합니다! 프란츠가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말했소. 그런데 당신들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요?” K는 이렇게 대꾸하면서 이 새로운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려 문에 서 있는 프란츠라는 남자를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열린 창문을 통해 다시 길 건너편의 노파가 눈에 들어왔다. 노파는 노인 특유의 호기심을 보이며 바로 맞은편 창가로 자리를 옮겼고 계속해서 모든 것을 지켜볼 태세였다. “그루바흐 부인을 좀 만나야겠소.” K는 이렇게 말하고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두 남자에게서 몸을 빼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건 곤란하오.” 창가의 남자가 책을 탁자 위로 던지며 일어섰다. “여기서 나갈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죠?” K가 물었다. “우리는 그런 걸 말해줄 입장이 아니오. 방으로 돌아가 기다리시오. 이제 소송 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때가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충고해주는 것도 내 임무를 벗어나는 거요. 프란츠 말고는 듣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지만 말이오. 사실 저 친구도 규정에 위배되는 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오. 우리 같은 사람이 감시인으로 배정된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행운이 따라준다면 당신은 안심해도 좋을 거요.” K는 좀 앉고 싶었지만, 창가에 있는 의자 말고는 방 안 어디에도 앉을 만한 자리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을 곧 알게 될 거요.” 프란츠가 이렇게 말하면서 창가의 남자와 함께 K에게 다가왔다. 창가의 남자는 키가 유난히 커서 K 앞에 서자 우뚝 솟아 보일 정도였다. 그가 K의 어깨를 몇 차례 툭툭 두드렸다. 두 사람은 K의 잠옷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훨씬 나쁜 옷을 입게 될 텐데 자기들이 그 잠옷을 다른 내의들과 함께 보관해두었다가 사건이 잘 해결되고 나면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보관소에 두는 것보다는 우리한테 맡기는 게 나을 거요.” 그들이 말했다. “그쪽은 슬쩍 빼돌리는 경우도 많고,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당 소송이 끝나든 말든 물건을 모두 팔아버리거든. 그런데 이런 종류의 소송은 아주 오래 걸리는 법이고, 더구나 요즘엔 특히 더 그렇소! 물론 언젠가는 보관소로부터 매각 대금을 돌려받게 되겠지만, 그게 또 형편없는 수준이거든. 가격이라는 게 부르는 대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뇌물 액수에 따라 결정되니 말이오. 그리고 경험상 보니 그런 물건들 값은 해가 바뀌고 이 손 저 손을 거치면서 점점 낮아지기 마련이더란 말이오.” K는 이들의 말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건들에 대해서라면 아직 자신이 처분권을 갖고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 앞에서는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감시인―이들은 물론 감시인에 불과한 게 틀림없었다―의 배가 제법 정답게 그에게 부딪쳐왔지만,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니 그 뚱뚱한 몸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마르고 앙상한 얼굴에 옆으로 비뚤어진 두툼한 코가 보였다. 이런 얼굴의 남자가 K의 머리 너머로 다른 감시인과 의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굴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어느 기관에 속한 자들일까? K는 엄연히 법치국가에 살고 있었다. 어디든지 평온이 지배하고, 모든 법률이 엄존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누가 감히 거처까지 쳐들어와 그를 급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항상 매사를 편하게 생각하고, 최악의 일도 닥쳐온 후에야 믿으며, 사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도 미리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해서 될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것을 일종의 장난, 그러니까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어쩌면 오늘 그의 서른번째 생일을 맞아 은행 동료들이 꾸민 심한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감시인들의 얼굴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기만 하면 그들도 따라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들은 길모퉁이에 있던 짐꾼들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생김새가 비슷한 것도 같다. 그렇지만 K는 프란츠라는 감시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들에 대해 자신이 지닐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혹시 나중에, 장난에 장단도 못 맞추느냐는 핀잔을 듣게 될 위험이 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그는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는 쪽은 아니면서도―지각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몇 가지 일이 떠올랐다. 물론 그 자체로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곤란하다.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된다. 지금 벌어지는 것이 희극이라면 함께 연기해주리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아직은 자유로운 몸이었다. “실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두 감시인 사이를 지나 서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사리분별은 하는 것 같군.” 등 뒤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서자 그는 곧바로 책상 서랍들을 열어젖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흥분한 탓인지 찾고 있는 신분증명서는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자전거 면허증을 찾아내 감시인들에게 가져가려 했지만 너무 빈약한 증명서인 것 같아서 다른 것을 더 찾아보다가 마침내 출생증명서를 발견했다. 그가 다시 옆방으로 들어서는데, 마침 맞은편 문이 열리면서 그루바흐 부인이 막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본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녀가 K를 보자마자 몹시 당황하여 실례한다는 말만 하고는 어느새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리 좀 들어와 봐요.” K가 제대로 말을 꺼낼 사이도 없었다. 증명서를 들고 방 한가운데 서서 계속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감시인들이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창가의 작은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의 아침식사를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저 부인은 왜 들어오지 않습니까?” K가 물었다. “들어오면 안 됩니다.” 키 큰 감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체포되었다니까요.” “어째서 내가 체포되었다고 하는 겁니까? 더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오.” “또 시작이군.” 감시인이 조그만 꿀단지에 버터빵을 담그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소.” “아마 해야 할 겁니다.” K가말했다. “여기 내 신분증명서들이 있어요. 이제 당신들 것을 보여주시오. 우선 체포영장을 좀 봅시다.” “맙소사!” 감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줄을 모르는군. 지금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화나게 할 작정이군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 그렇게 믿는 게 좋을 거요.” 프란츠가 말했다. 그러고는 손에 든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한참 동안 K를 바라보았다. 뜻하지 않게 프란츠와 서로 쏘아보는 상황이 되었지만 K는 곧 증명서들을 탁 치면서 말했다. “여기 내 신분증명서들이 있어요.” “그래서요?” 키 큰 감시인이 바로 소리쳤다. “어린애보다 더 고약하게 구는군.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신분증명서니 체포영장 같은 문제로 감시인들과 언쟁을 벌인다고 당신의 그 빌어먹을 거대한 소송 사건을 조속히 결말지을 수 있을 것 같소? 우리는 신분증명서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하루 열 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외에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말단 직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신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지만, 그래도 우리를 고용한 상급 관청이 이런 체포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체포 대상자의 신원과 체포 사유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소. 거기에는 착오가 있을 수 없지. 나는 말단 부서의 일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바로는, 우리 관청은 주민들에게서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법에 쓰여 있듯이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것이 법이라는 거요. 거기에 무슨 착오가 있겠소?” “난 그런 법은 모릅니다.” K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 불리하군.” 감시인이 말했다. “그런 법은 아마 당신들 머릿속에나 있을 뿐이겠죠.” K가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감시인의 생각 속으로 몰래 파고들어가 그들의 생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거나, 아니면 차라리 그들의 생각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감시인은 거부하는 투로 말했다. “당신도 차차 그걸 느끼게 될 거요.” 그때 프란츠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봐, 빌렘, 저자는 법을 모른다면서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군.” “자네 말이 맞아. 이 친구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다른 감시인이 말했다. K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 자신들이 말단이라는데, 내가 왜 이런 말단들이 지껄이는 잡담 때문에 마음이 더 혼란스러워져야 하는 거지? 저들은 자신들조차 이해하지도 못하는 걸 떠들어대고 있어. 저들이 가진 확신은 그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니, 내게 걸맞은 사람과 몇 마디만 나눠보면 저런 자들과 장황한 대화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분명해질 거야. 그는 방 안을 몇 차례씩 왔다 갔다 했다. 길 건너편 노파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노파는 자기보다 훨씬 더 늙은 노인을 창가로 끌고 와서 끌어안고 있었다. K는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이런 상황을 끝내야 했다. “당신들 상관을 만나게 해주시오.” 그가 말했다. “그쪽에서 원한다면 몰라도 그 전에는 안 됩니다.” 빌렘이라는 감시인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 충고하겠소.” 그가 덧붙였다. “방으로 돌아가 잠자코 당신에게 닥쳐올 일을 기다리는 게 좋을 거요. 공연한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키도록 해요. 앞으로 당신에게 커다란 요구 사항들이 내려올 거요. 당신은 우리가 베푼 친절에 걸맞게 우리를 대해주지 않았소. 우리가 아무리 말단이라 해도 적어도 현재의 당신에 비해서는 자유로운 몸이라는 걸 잊은 것 같은데, 그건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지. 하지만 당신이 돈을 갖고 있다면 건너편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식사 정도는 사다 줄 용의가 있소.”
K는 이 제안에 별다른 반응 없이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옆방 문이나 심지어 응접실 문을 연다 해도 저들이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사태 전체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 저들에게 붙잡혀 꼼짝 못하게 돼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단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래도 아직은 저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의 순리를 따라 안전한 해결책을 선택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도 감시인들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아침식사 때 함께 먹으려고 전날 저녁에 챙겨둔 예쁜 사과 하나를 침대 옆 탁자에서 집어 들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아침식사였다. 그러나 어쨌든 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물자마자, 감시인들의 선심 덕분에 먹을 수도 있었던 그 지저분한 철야 카페의 식사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났다. 오늘 오전에는 은행 업무를 못 하게 되었지만, 직장에서의 비교적 높은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런 것쯤은 쉽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그렇게 한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경우 그루바흐 부인이나 지금쯤 맞은편 창문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을 건너편의 두 노인을 증인으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K는, 적어도 감시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이 방으로 몰아넣은 그가 방 안에서 자살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이렇게 혼자 내버려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살을 할 만한 어떤 이유가 있을지 자문해보았다. 저 두 사람이 옆방에 앉아 그의 아침식사를 가로챘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한다는 것은 워낙 불합리한 짓이어서, 설사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 불합리성이 자살의 실행을 막았을 것이다. 감시인들의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만 않다면, 그들 역시 똑같은 확신에서 그를 혼자 버려두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그가 품질 좋은 독주를 보관해둔 벽걸이 장식장으로 가서 아침 대신 작은 잔을 비우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한 잔을 더 마시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잔은, 사실 별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에 신중하게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옆방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는 술잔에 이를 부딪쳤다. “감독관님이 부르십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외치는 소리였다. 짧고 토막토막 끊어서 내는 그 군대식 외침은 감시인 프란츠가 낸 소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시 자체는 매우 반가웠다. “때가 되었군요.” 그는 소리쳐 응답하고는 벽걸이장식장을 닫고 서둘러 옆방으로 갔다. 그러나 옆방에 서 있던 감시인들은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그를 다시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요?” 그들이 소리쳤다. “잠옷차림으로 감독관님 앞에 나서겠다고요? 당신뿐만 아니라 우리까지도 혼쭐이 날 거요!” “무슨 상관이야, 젠장!” 이미 옷장까지 떠밀려온 K가소리쳤다. “당신들은 잠자리에 있는 사람을 덮쳐놓고 내가 정장차림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는 거요?” “뭐라고 해도 소용없소.” 감시인들이 말했다. 그들은 K가 소리칠 때마다 조용하다 못해 슬픈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정신이 들었다. “웃기는 격식이군!” K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이미 의자에서 양복 상의를 집어 들고 마치 감시인들에게 검사를 받으려는 듯 잠시 두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은색 상의여야 합니다.” 그러자 K는 상의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자신도 무슨 뜻으로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아직 정식 공판이 시작된 것도 아니잖소.” 감시인들은 빙그레 웃었지만 자신들의 말을 고수했다. “검은색 상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이 빨리 진행된다면, 좋소.” K는 이렇게 말하고 옷장을 열어 한참 동안 이 옷 저 옷을 들추다가 가장 좋은 검은색 슈트를 골라냈다. 아주 맵시가 좋아 친구들에게 칭찬깨나 들었던 신사복이었다. 셔츠도 다른 것으로 바꿔 조심스럽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감시인들이 목욕하라고 말하는 걸 잊어버린 덕분에 일을 한결 빨리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그걸 기억해낼까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역시 그런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물론 빌렘은 프란츠를 감독관에게 보내 K가 옷을 입고 있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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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883-1924)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의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독일계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을 거쳐 역시 독일계의 카를페르디난트 대학에 입학했다. 카프카는 유실된 습작을 제외하고는 첫 작품으로 알려진 단편 「어느 투쟁의 기술」을 대학 시절 집필할 만큼 문학에 대한 열의가 컸지만 가족에 대한 의무감으로 법학 공부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 법률시보로 지내다 결국 법조계 생활을 접고 이후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산재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1922년 은퇴할 때까지 14년간 일했다. 카프카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했고,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말년에는 히브리어를 배우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를 계획하기도 하지만 결국 발병 7년 만인 1924년, 『소송』, 『변신』, 『성』 등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기고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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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권혁준
쾰른대학교에서 독문학, 영문학, 철학을 전공한 후 2006년 프란츠 카프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카프카 문학에 나타난 성서의 "인류타락" 신화 수용과 형상화 연구」는 같은 해 독일 쾨니히스하우젠 & 노이만 출판사의 학술총서 중 하나로 출판되었다. 현재 서울대, 한양대, 이화여대, 동덕여대에 출강하면서 독일문학, 독일 및 유럽 문화, 독일 영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다섯번째 여자』, 『모래사나이』, 『카프카 단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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