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찬란하거나, 고독하거나
출정
말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전쟁에 길들여진 말들은 소리를 내야 할 때와 내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한다. 풀이 무성한 초원에서 자라난 말들은 달릴 수 있을 만큼 달렸고, 달릴 수 없을 때에도 달렸다. 말들은 달리다가 엎어지거나 창에 찔려 무릎이 꺾였다. 피보다 먼저 거품이 솟아나왔다. 맹렬하게 뛰던 심장이 관성을 놓지 못한 채 여전히 가쁘게 뛰었다.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혹은 끊어진 뒤에도, 말의 몸에서는 아지랑이처럼 김이 피어올랐다.
군병들은 규율에 길들여져 있다. 저들의 대부분은 전쟁 중에 태어나 전쟁 중에 자라났으며, 곧 전쟁터에서 죽게 될 터였다. 죽음은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보따리 같았다. 노획으로 채워지거나, 찢겨 흩어지거나. 죽음이 무상했으므로 살아 있다는 것도 별것 아니었다.
출정의 아침, 모래바람이 무지막지해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다. 벌판에서는 바람이 늘 이렇게 분다. 거칠 데가 없어서 가속을 놓지 못한 바람이 가슴을 밀어 휘청하고 가벼운 몸이 뒤로 꺾인다. 수십만 군병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출정은 아침에 일어나 문밖의 날씨를 살피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어서 이것은 또 하나의 전쟁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그처럼 대규모의 군병이 모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숫자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든다. 창을 잡고 대열을 이루는 순간부터, 가차 없이 어깨나 등으로 떨어지는 채찍을 느낄 때부터, 그들은 본능적으로 전사가 되었다. 개인의 회한과 슬픔은 무의미했다. 북소리가 심장 소리에 맞춰 천지를 뒤흔들며 둥둥 울린다. 수십만의 심장이 한꺼번에 뛰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을 터뜨리며 이를 닥닥 마주쳐 떨고 있는 소년 군병의 창끝 위로 포성이 울린다. 군병들은 한꺼번에 함성을 지르고, 병기를 실은 마차와 수레들이 어지러이 달리기 시작하고, 채찍을 맞은 말과 낙타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창끝은 거센 모래바람 속에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창백하게 빛난다.
장성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청제靑帝는 출정을 선포했고, 섭정왕이면서 예친왕인 구왕 도르곤이 대장군이 되었다. 만주 전역에서 머리를 깎은 군병들이 몰려오고, 몽골에서 또한 군병들이 밀려왔으며, 투항한 한인들까지 여덟 개의 깃발 아래 대열을 이뤘다. 누구는 십만이라 했고 누구는 이십만이라 했고, 어떤 놈은 백만이라고도 했다. 열 살 먹은 아이 녀석부터 머리가 허옇게 센 백발노인까지 말을 타거나 걸을 수만 있으면 모두가 군병이었다. 출정의 아침 평야에 진을 친 군사들이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데까지 뻗쳐 있었다. 군대는 장성을 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중원에 들 것이라고도 했다.
대장군 구왕이 높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깃발이 일제히 흔들리고 북이 일제히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 북소리에 이은, 순식간의 정적. 얼어붙은 듯한 침묵 속에서 구왕의 입이 열렸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십만 군병들의 함성 소리도, 대왕들의 호령 소리도, 여인들의 느껴 우는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군을 외치는 대장군의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가 정적 속으로 파묻혔다. 이제, 전쟁의 시작이었다.
1644년, 인조 22년에 소현은 심양에 있었다. 만주인이 부르는 이름으로는 무크던, 한인漢人들이 부르는 이름으로는 션양, 조선인의 이름으로 비로소 심양이었던 곳. 무크던은 만주인의 말로 성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만주인들, 더 정확히 말하면 건주여진족이다. 건주여진의 족장이었던 누르하치는 여진의 각 부족을 통일하고 성대한 도시에 도읍을 마련하고, 그의 열네 명의 아들 중 여덟번째 아들 홍타이지에게 칸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때 이른 죽음이 그렇게 했다. 그가 좀더 살았다면, 칸의 자리는 어디로 흘러갔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칸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만큼 강력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들판에 풀이 돋을 때부터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일 때까지 전쟁으로 깨어나 전쟁으로 저물던 시대였다. 전쟁은 영웅을 낳았고, 영웅은 오래 살아남아 더욱 큰 영웅이 되었으며, 마침내 정복을 이루었다. 칸의 자리에서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정복했다. 조선의 임금이 이마를 땅에 부딪쳐 항복의 뜻을 전하고 군신의 예를 맺을 때, 소현은 배반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아비의 맹세로 볼모가 되었다. 소현은 임금의 아들이었고, 조선의 세자였다. 밝게 빛날 소昭에 나타날 현顯. 죽은 뒤에야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될 세자는 적의 땅에서 9년을 머물며, 적이 소멸하는 것을 보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는 것을 보았다.
1644년 4월, 청은 중원으로 돌격했고, 소현은 그들의 전쟁에 종군했다. 조선의 아비는 먼 곳의 궁궐에서 아들의 종군 소식을 들었다. 아비의 표정은 임금답게 의연했다.
1643년 12월 심양
자, 그러니 꿈을 꿔봐.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 죽어가는 자에게 살아 있는 마지막 생에서의 꿈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언 바닥에 누운 몸이 온기를 잃어 생의 기억이 함께 차가워지고 있다. 아스라하게 남은 것들 위로는 눈이 쌓였다. 끝없이 흘러 멈추지 않을 것 같던 피도 쌓이는 눈에 묻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꿈을 꾼다면 저승의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곳의 꿈은 어떤 것일까.
꿈을 꾸려고 눈을 감자 보이는 것이 전쟁의 들판이다. 아직은 덜 죽어서 이승의 기억이 남은 것일까. 아니면 죽어 떠날 저곳에서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무수히 보았었다. 포가 터지면 언 땅이 우물처럼 파이고, 그 파인 곳으로 시체들이 완전히 찢긴 살 조각이 되어 폭설처럼 떨어졌다. 기왕에 죽으려면 누구나 한 번에 죽기를 바랐으나 누구도 한 번에 죽지는 않았다. 포가 머리 위에 떨어져 단번에 머리가 깨지고, 칼이 모가지를 한칼에 자르고, 창이 몸뚱어리를 꿰뚫어 제 가슴을 뚫고 나온 창끝을 제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도 죽음은 여기에서 저기로, 한 번에 넘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가는 순간이 또 하나의 생처럼 길었다.
그는 장수가 아니었고, 병사도 되지 못하였다. 헌데 죽음의 기억은 어찌하여 전쟁인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어미의 뱃속을 뚫고 나온 아이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뼈가 저리게 외롭다. 아비와 어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지는 않았을까. 떠오르는 것은 그저 무수한 죽음들뿐이다. 무작스럽게 날아오는 포탄에 성벽이 깨지고, 성이 불타고, 말 탄 적들이 성을 짓밟았었다. 말 등에서 내리지도 않은 적들이 여인들의 머리채를 말 등 위에서 휘어잡고 끌고 갔다. 누구나 울었으나 누구도 자기가 울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불이 타고 성의 누각이 내려앉고 여인들의 치마가 벗겨지고, 대가리가 깨져 쏟아져 나오는 뇌수를 한 손으로 싸맨 병사들이 알 수 없는 곳으로 걸어가고, 그리고 피를 토했다.
자, 그러니 꿈을 꿔봐.
그 소리를 그때에도 들었을지 모른다. 그는 전장에서 죽지 못했다. 전장에서 싸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죽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고작 살아남기 위해 살았던 것일까.
그는 홍등가에서 칼에 찔렸다. 자객은 그를 찌르며 오줌을 쌌다. 칼에 찔린 자리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피가 자객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줄줄 흘리는 오줌과 뒤섞였다. 피도 펑펑 쏟아졌고 자객의 오줌도 펑펑 쏟아졌다. 허무한 죽음의 기억이었다.
그날, 해가 저물어가는 날에 폭설이 쏟아졌다. 낮부터 날이 바짝 얼어 쏟아지는 눈이 고스란히 빙판이 되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수레바퀴들이 헛돌다 미끄러지고 말들도 재게 발을 놀리려고 들지 않았다. 그런 밤이었으나 눈발은 희게 빛나고 홍등의 불빛은 더욱 뜨거웠다. 짐승의 털을 덧댄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눈발을 맞고 서 있는 사내의 등 뒤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꽁지가 말꼬리처럼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뒤로는 길게 땋아 내린 변발이었으나, 머리는 꼭대기까지 밀어 앞으로 보면 맨머리일 터였다. 그 맨머리 아래로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추운 날에 눈을 맞으며 웬 땀인가, 그는 어쩌면 아주 잠깐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여깁니다.”
사내의 말이 눈발에 가로막혀 잘 들리지 않았다. 눈발이 정적을 쌓았으나, 정적을 깨는 것은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라 뒤쪽에서 들려오는 악기 타는 소리와 고함 소리와 여인들의 웃음소리였다. 그중에서도 악을 쓰는 소리가 가장 컸다. 기루와 투전방들이 뒤섞여 있는 값싼 홍등가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그런 소란이 벌어진다 들었다. 곧 어딘가에서는 술상을 뒤엎고, 사람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사내의 앞으로 다가섰다. 검은 갓이 눈에 덮여 제 색을 드러내지 못했다. 갓 챙이 넓어 얼굴만은 눈에 뒤덮이는 것을 면해 짙은 눈썹과 윤기 나는 수염이 더 장하게 보였다. 그가 그 흰 옷 입은 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심석경. 그것은 흰 옷 입은 자의 이름이었고, 그의 이름이었다.
“줄 것이 있다 하였소?”
수염은 장했으나 목소리는 굵지 않은 그가 가뜩이나 추위에 얼어 낮게 물었다. 조선말의 발음이 더욱 똑똑한 것은 오히려 변발을 내리고 청나라 복색을 한 사내 쪽이었다. 사내가 그의 앞으로 두어 걸음을 다가섰다.
“드릴 것이 있으니 오시라 하였겠지요.”
사내가 품속에서 두툼한 것 하나를 꺼내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어둠과 눈발 때문에 잘 알아볼 수 없는 그 뭉치가 서찰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손을 내밀지 않은 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찰을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무언가로 둘둘 싸놓은 뭉치일지도 몰랐다. 구석이라도 젖어서는 안 될 서찰이라면… 게다가 이토록 은밀한 곳에 와서까지 받아가야 할 서찰이라면… 그 내용이 무엇일 것인가.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짐작이, 곧 죄였다. 그가 비로소 손을 내밀었다. 사내의 손이 불쑥 흔들리는 듯했다.
“헌데 이것이 손으로 받을 물건이 아니요.”
이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그의 눈빛이 의심스레 사내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이미 그 뭉치는 몸속에 있었다. 손으로 받을 물건이 아니라 하던 사내의 말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칼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었다. 칼이 몸속에 들어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방심한 눈빛 그대로였다. 사내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었으므로 그는 사내를 쳐다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오?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도 없었다. 품이 넓은 옷 밖으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은 잠시 후였다. 칼에 찔린 그보다 칼로 찌른 사내의 낯빛이 더 창백했다. 사내가 그에게서 떨어져 서자 그의 무릎이 꺾였다.
“죽지 않았소? 아직 안 죽은 게요?”
사내가 벌벌 떨며 물었다. 무릎이 꺾인 채 칼자루를 움켜쥔 그가 여전히 사태를 분간하지 못한 채 놀란 눈으로 그자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의 얼굴이 창백했다가 흙빛이었다가 시뻘건 핏빛이었다. 사내는 허둥지둥 품을 뒤져 다시 또 한 자루의 칼을 꺼냈다. 그자가 자객의 흉내라도 낼 줄 아는 자였다면 칼을 두 자루씩이나 찔러 넣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먼저 맞은 칼을 움켜쥐고 무릎이 꺾여 있는 그의 어깨를 잡고 사내가 다시 칼 하나를 그의 몸속에 깊이 찔러 넣었다. 칼은 수월하게도, 예리하게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토록 단단한 칼이 무른 살 한 번을 찌르는데, 마치 철갑옷을 뚫듯 제 몸의 온 힘을 다하여 부르르 떨었다. 그의 입이 벌어지고,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쓰러진 그의 주변으로 눈이 둥글게 녹았다. 칼을 찌른 자가 오줌을 싸고 있었던 것이다. 덜덜 떨리는 양손을 번갈아 쥐며, 거의 넋이 나간 그자가 선 자리에서 오줌을 펑펑 싸고 있는 것이었다.
자, 그러니 무슨 꿈을 꿀 수 있겠어.
그의 이름, 석경. 이제 온통 피투성이 몸이 되어 오줌 싸는 자의 앞에서 고꾸라진 석경은 서찰인 줄 알았던 칼의 자루를 손에서 놓치며, 중얼거렸다.
“저하… 세자 저하…”
눈이 내려 그의 말을 묻었다. 남은 것은 피와 오줌뿐이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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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인숙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상실의 계절」이 당선, 같은 해 장편소설 『핏줄』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우연』, 『봉지』 등과 소설집 『칼날과 사랑』,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등을 발표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생활하다가 1995년에 귀국, 그후 중국 다롄에 거주하기도 했다. 1995년 『먼 길』로 제2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고, 2000년 「개교기념일」로 제45회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2003년에는 「바다와 나비」로 제2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외에 2005년에 「감옥의 뜰」로 이수문학상을, 2006년에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으로 제14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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