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환경과 경제의 공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은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 숲은 사라지고, 어린 시절 흔했던 새와 나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야생화 역시 점점 더 만나기 어렵다. 사라져가는 자연과 멸종위기 동식물 종種의 증가 추세는 통계적으로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 친구이자 동료며 오랑우탄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환경학 교수 돈 멜닉Don Melnick이 동료들과 함께 오랑우탄 보호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오랑우탄이라는 개성 넘치는 유인원은 멸종했을 것이라 한다.
무너져가는 자연을 볼 때마다 비극적인 손실 때문에 충격을 받곤 했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이런 문제를 내 전공인 경제학의 시각으로 분석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집을 짓고 농장을 만들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는 경제적 활동 자체가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학을 통해 풍요로웠던 과거로 자연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경에 대한 고민이 일종의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조금 놀랄 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자연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고 있고, 자연이 없다면 우리의 번영은 환상에 불과하다.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학문이다. 숨 쉬는 데 필요한 공기, 마실 물, 농업에 적합한 기후, 식량 등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원 대부분은 중요하면서도 희소하다. 그러니 그에 대한 경제학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이기도 하다.
자연환경이 건강해야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 국가경제는 숲, 지하수, 해안선, 바다 등은 물론이고 벌레와 새, 지표면과 지각 아래에서 펼쳐지는 풍요로운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움직인다. 산업지구와 주거지역, 공업 생산과 공해, 농업과 수산업 등 서로 다른 세계가 복잡한 관계망으로 얽혀 있다.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 경제와 자연은 조용히 부딪혀가면서 우리의 경제적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지만, 자연이 경제적 성공에 기여하는 바는 엄청나다.
자연이 우리에게 기여하는 사례는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곤충, 새, 심지어 박쥐를 통한 농작물의 가루받이는 자연이 경제에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다. 가루받이는 농업에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다. 가루받이 과정이 없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 중 3분의 1은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농업 생산성에 기여한 식물의 다양성 또한 자연이 부여한 경제적 가치 중 하나다. 자연은 지표수와 지하수를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농업과 산업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한 수력발전은 가장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이다.
자연이 파괴되면 이러한 경제적 가치들 역시 파괴되어 결과적으로 시민의 건강이 악화되고 생산성도 떨어지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캘리포니아의 사례는 놀랍다. 기술실리콘밸리, 엔터테인먼트할리우드, 고부가가치 농업와인, 과일, 채소을 기반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지표면의 오존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과일과 채소 수확량이 감소했다. 오존 농도가 높아질수록 농업 노동자가 호흡하기 어려워지면서 눈에 띌 ㄹ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진 것이다.
또한 오존 농도가 높아질수록 천식과 심장마비의 위험도 높아진다. 공해가 일으키는 건강문제로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대수명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사망하는 등 표준 이하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제학자 마이클 그린스톤Michael Greenstone 연구팀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극심한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중국 도시 지역의 경우 연료로 쓰는 석탄 때문에 기대수명이 5년 6개월이나 짧아졌다. 일인당 수명이 7~8퍼센트나 줄어든다는 것은 인적 손실은 물론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귀결된다.
반대로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서 수석 경제학자로 일했던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와 스페인의 경제학자인 호르디 갈리Jordi Gali의 거시경제학적 연구를 통해, 좀더 친환경적인 경제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자. 2000년대와 1970년대의 두 번에 걸쳐 원유가격이 몇십 배로 뛰어오르는 불안정한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의 경우 원유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36달러 사이에서, 1997년에서 2011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10달러에서 145달러 사이에서 움직였다. 1970년대에는 원유가격이 열 배 이상 오른 탓에 석유를 소비하는 모든 국가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지만, 2000년대에는 더 크게 폭등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블랑샤르와 갈리는 1970년대와 20세기 말의 가장 큰 차이는 산업경제의 에너지 효율이 대폭 개선된 까닭이라고 주장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서 일정 단위의 생산물에 소비되는 원유가 감소했고, 원유가격의 급격한 변동에도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이다. 천연자원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함으로써 국제 자원시장의 급격한 변동에도 끄떡없는 안정적인 경제가 만들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와 환경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를 무시하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경제적 존속의 기반을 잠식해왔다. 풍요로운 자연환경 없이 국가 경제는 존속할 수 없다. 경제와 환경이 충돌하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한다면 ‘시장의 실패’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 누가 소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경제활동의 기본을 구성하는 시장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 그리고 물론 이 결함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시장이란 정말로 놀라운 제도다. 사회적으로 가장 뛰어난 발명 중 하나인 데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도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고 운영하는 탓에 어떤 세대는 인터넷 거품이나 주택 거품 등을 겪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금융위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시장 실패는 쉽게 극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좀더 영속적이고 튼튼하게 시장을 고치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생각들을 입증하기 위해 환경의 관점에서 시장 실패란 무엇인지, 이를 수정하기 위해 경제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변경해왔는지, 이를 통해 우리가 더 나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살펴보려 한다. 단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오래전 설명했듯이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시장경제의 결함은 무엇인가, 그리고 좀더 자연 친화적인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기 위해 그 결함들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개인과 기업은 자신의 선택으로 발생한 모든 비용을 인식하고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기여에 따라 정확하게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든 선택에 따른 모든 결과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하다. 자기가 벌인 일들을 스스로 깨끗이 청소하도록 하고, 이상적으로는 아예 처음부터 혼란을 만들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와 동일한 원칙을 우리 세계를 다루는 데도 적용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떠한 행동이 유발하는 모든 비용을 계산에 넣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일으킨 사람이나 기업이 그 모든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물정 모르는 기계적인 주장 같기도 하고, 합리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이상적인 경쟁시장경제로부터 너무나 멀리 벗어나버렸다. 그렇기에 오염자에게 모든 비용을 부담시킨다는 이 간단한 아이디어 또한 도달하기 힘든 이상향이 되었다. 하지만 실현하기만 하면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아름다운 비유를 만들어냈다.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우리의 경제적 선택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을 만들어낸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제도 자체가 경제적 자원을 향한 이기심을 중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주장한다. 1776년에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출간한 이래 그의 주장은 폭넓은 지지를 받아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놓친 몇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 공해를 예로 들어보자. 산업화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효율적인 손재주에 비한다면야 공해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었다.
당신이 공장을 운영한다고 상상해보라. 가장 명백한 비용요소들은 당장 지불해야 하는 청구서의 형태로 제시된다. 경제학자들은 임금, 원재로, 에너지, 건물, 자본 등과 관련된 비용을 ‘사적 비용private costs’이라고 부른다. 손익계산서의 매출원가 항목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익숙한 비용들이다. 그런데 공장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형태의 비용이 있다. 이 비용들은 공장의 소유자가 아닌, 공장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당신의 행동이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를 ‘외부비용external cost’이라고 한다.
공장이 공기를 오염시키면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모든 사람이 비용을 치르게 된다. 비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좀더 확장해보자. 금전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건강상의 질환, 불편, 고통 등이 야기한 생산성 저하도 비용으로 환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캘리포니아의 농업 노동자나 중국 대도시 주민이 겪는 고통까지 비용으로 계산해야 한다. 공장이 강을 오염시킨다면 하류에서 깨끗한 물을 써왔던 사람들 모두 이 같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공장이 있다면 모든 인류가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를 겪어야 한다. 외부비용이나 편익을 초래하는 일련의 과정을 ‘외부효과external effects’라고 부른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공해는 외부비용을 초래하는 외부효과인 셈이다.
2010년 4월 20일, 멕시코 만에서 거대 섬유기업 BP가 운영하던 시추선 딥워터 허라이즌Deepwater Horizon이 폭발해 노동자 열한 명이 사망하고, 마콘도Macondo 유정에서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사건이 일어났다. 원유는 유정이 폐쇄된 7월 15일까지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앨라배마·플로리다 해안으로 무려 86일간이나 계속 퍼져나갔다. 원유 2억 1,000만 갤런[약 7억 9,000만 리터]이 바다로 쏟아지면서 주변 해안의 백사장이나 습지에서 살아가던 물고기와 새는 물론이고 활기찼던 새우잡이 어민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
이러한 사고는 외부로 비용이 전가된 명백한 사례다. 석유를 시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중 일부를 멕시코 만 주변의 구성원, 즉 어민, 레스토랑 주인, 호텔 종사자와 그들의 손님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BP와 관련업계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그들 자신뿐 아니라 BP와 상관없는 수백만의 개인과 기업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아주 예외적으로 전개되었다. 경제학적인 수사를 빌리자면 ‘비용을 내부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원유 유출에 따른 피해는 BP와 무관한 개인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외부비용이었지만, BP와 투자자들의 내부비용으로 바뀐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BP의 시장가치가 300억 달러나 하락했는데, 이는 원유 유출에 따른 피해 복구에 필요한 비용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주식시장에서는 원유 유출로 발생한 피해를 거의 모두 BP가 보상할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비용은 종업원과 대규모 연기금, 투자자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의 예측은 정확했다. BP는 보상금과 과징금으로 200억 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오염에 따른 모든 피해를 오염자가 배상한다는 견해는 극히 예외적이다. 공장 운영, 숲 벌목, 차량 운행, 석유 시추 등으로 발생한 비용을 행위자가 모두 부담하지는 않는 경유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상당 부분이 제3자에게 전가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외부비용을 함해서 자기가 발생시킨 모든 결과의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면 공해를 유발하는 행위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석탄을 덜 쓰고, 개인들 역시 자동차가 소비하는 휘발유를 줄이고, 석유회사들은 원유 유출을 훨씬 더 조심할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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